산업 일반
[요즘뭐함?]'뜨개질하는 20대, 흠뻑쇼 가는 40대'..한국, 세대 취향이 붕괴된다
- 뜨개질하는 Z세대, 워터밤 뛰는 40대
취향의 세대 경계 무너져
일본 100엔숍도 뜨개질 특수
‘아미카쓰’ 젊은층에 인기
빠른 디지털 시대에 ‘느린 취미’ 뜬다
“몇 살이냐보다 뭘 좋아하느냐”에 달라진 소비 공식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20대 직장인 K씨(27)는 퇴근 후 집 근처 커피숍에서 뜨개질을 한다. 올 겨울을 앞두고 모자와 목도리 세트를 완성하는 것이 소소한 목표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뜨게질을 바라보는 게 요즘 K씨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K씨는 “처음에는 시간을 보내려고 시작했는데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성취감이 생긴다”며 “뜨개질을 하다 보면 웹서핑이나 넷플릭스를 볼 때보다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말했다.
#40대의 취미도 달라졌다. 가수 비비와 걸그룹 리센느의 팬인 자영업자 B씨(40대)는 SNS로 콘서트와 팬 이벤트 일정을 챙긴다. 지난 7월에는 비비가 ‘워터밤 서울 2026’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휴가까지 냈다. 요가복 브랜드 알로의 탱크톱을 입고 자식뻘인 청년들과 ‘밤양갱’과 ‘나쁜X’을 목청껏 따라 불렀다. B씨는 “예전에는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면 어린 팬들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나이와 상관없이 좋아하면 즐기는 분위기”라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즐기는 게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했다.
‘20대는 최신 유행을 좇고 40대는 익숙한 취미를 즐긴다’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젊은 층은 한때 부모 세대의 취미였던 뜨개질과 LP, 자수, 탐조에 빠지고 있다. 반대로 30~40대는 아이돌과 콘서트 등 젊은 세대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즐긴다. 나이로 취향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면서 소비 시장에서도 세대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특히 20대를 중심으로 ‘느린 취미’가 인기를 끌고 있다. LP를 듣고 뜨개질을 하거나 도자기를 빚고 새를 관찰한다. 스마트폰으로 음악과 영상을 빠르게 소비하는 데 익숙한 젊은 층이 오히려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고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활동을 찾는 것이다.
부산의 한 LP바를 찾는 대학생 C씨(24)는 데이트 장소로 LP바를 자주 찾는다. C씨는 “카페보다 분위기 있는 곳을 선호한다”며 “LP 특유의 따뜻한 음질과 조용한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스마트폰만 열면 수천 곡을 들을 수 있지만 일부러 LP 한 장을 골라 턴테이블 앞에 앉는 것이다.
뜨개질은 달라진 취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아미카쓰(編み活·뜨개질 활동)’가 유행하면서 관련 용품 판매도 크게 늘었다. 도쿄 신주쿠의 수예 전문점 오카다야 본점의 2025년 털실 매출은 2023년보다 약 6배, 전년보다 약 2배 증가했다. 젊은 층의 유입이 늘면서 뜨개질이 다시 대중적인 취미로 떠오른 결과다.
뜨개질을 즐기는 장소도 달라졌다. 일본에서는 코메다커피와 스타벅스 등 카페에서 뜨개질을 하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집에서 조용히 하는 취미라는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친구와 함께 즐기는 외출형 취미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100엔숍에서 털실과 도구를 쉽게 살 수 있고 SNS와 유튜브에는 초보자를 위한 영상이 넘친다. 과거 대바늘로 스웨터나 목도리를 만드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코바늘로 가방·인형·모자 등 작은 소품을 만드는 방식이 인기다.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고 SNS에 결과물을 공유하기도 쉽다.
아날로그 취미가 디지털과 맞물려 확산되는 것도 특징이다. 스마트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뜨개질을 다시 SNS에서 공유하는 식이다. ‘디지털 디톡스’와 ‘인증 문화’가 한 취미 안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셈이다.
일본에서는 반대로 젊은 세대의 문화가 중장년층으로 넘어가는 모습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오시카쓰(推し活)’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배우, 캐릭터를 응원하며 공연을 찾고 굿즈를 사는 활동을 말한다.
로이터에 따르면 일본에서 오시카쓰를 즐기는 사람은 약 1400만명으로 추산된다. 관련 소비 규모도 연간 3조5000억엔에 달한다. 오시카쓰가 젊은 층만의 문화라는 인식도 옅어지고 있다. 일본 조사기관 비디오리서치 조사에서는 50대의 약 30%가 자신이 좋아하는 ‘오시’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장년층이 K팝 공연을 찾거나 굿즈를 구매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어린 시절의 취미를 성인이 된 뒤에도 즐기는 ‘키덜트’ 문화도 커지고 있다. 일본 캡슐토이 시장은 2021년 이후 4배 이상 성장해 지난해 1960억엔 규모로 커졌다. 어린이용 장난감으로 여겨졌던 상품을 성인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소비하면서 시장의 주 소비층도 달라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젊은 층이 ‘그래니 취미(Granny Hobbies)’에 빠지고 있다. 뜨개질과 자수, 정원 가꾸기, 도자기, 종이접기처럼 과거 할머니 세대의 취미로 여겨졌던 활동이다. AP통신은 젊은 성인들이 디지털 기기에서 잠시 벗어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을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팬데믹을 거치며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가 늘어난 데다 SNS를 통해 완성물을 공유하는 문화도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영국에서는 중장년층의 취미로 여겨졌던 탐조가 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새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은 뒤 SNS에 기록을 남기는 방식이다. 새 사진이나 울음소리를 분석해 종류를 알려주는 앱도 등장하면서 처음 시작하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국내에서도 탐조 쇼츠와 인스타툰, 탐조 굿즈 등이 등장하며 젊은 층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취향 소비’가 있다. 예전에는 나이에 맞는 상품과 취미를 골랐다면 지금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시간과 돈을 쓴다. SNS는 이런 취향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창구가 됐다. 유명한 취미를 따라가는 것보다 ‘나만의 취향’을 찾는 것이 중요해진 이유다.
스마트폰 피로감도 영향을 미쳤다. 무엇이든 빠르게 보고 넘길 수 있는 환경에서 오히려 천천히 즐기는 경험의 가치가 커졌다. 뜨개질 한 코를 뜨고, LP 한 장을 끝까지 듣고, 새 한 마리를 기다리는 시간이 짧은 영상에서는 얻기 어려운 만족을 주는 것이다.
기업들도 달라진 소비자를 겨냥하고 있다. 연령대별로 상품을 나누기보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상품과 콘텐츠를 내놓는 방식이다. 일본 100엔숍이 뜨개질 용품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수예 전문점이 초보자용 영상을 제공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패션·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20대, 30대, 40대처럼 연령을 기준으로 소비자를 나누고 그에 맞춰 상품과 마케팅을 설계했다면 이제는 취향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소비자를 바라봐야 한다”며 “세대 구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 자신의 나이와 관계없이 여러 세대의 문화를 함께 즐기는 현상은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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