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NOMIST

오피니언

오피니언

민간 기업이 만든 AI가 전쟁 핵심 전력 되는 시대[한세희 테크&라이프]

전문가 칼럼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최근 전면 공습은 50년 가까운 시간의 흐름이 누적된 결과다. 하지만 가까운 원인을 따지자면 2023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민간인까지 납치 살해하며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뻗어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싸우는 한편, 레바논 헤즈볼라와 예멘 후티 번군도 공격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후티는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란이 지원하는 이란 대리 세력들이다. 이어 이스라엘은 2025년 6월 이란을 기습해 주요 군사 및 핵 시설을 파괴했고 핵 과학자와 정치인 등을 암살했다. 미국도 이스라엘에 가세해 이란 핵 시설을 폭격했다. 이른바 ‘12일 전쟁’이다. 이후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이 이란 핵무장 포기 등을 놓고 벌인 지루한 협상은 결국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또 한 번의 대규모 공격으로 귀결됐다. 이란 둘러싼 갈등에서 ‘전쟁 AI’ 등장 현재 이란을 둘러싼 급박한 정세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서 비롯된 것처럼 지금 이란 공습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새로운 기술 하나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처음 논란이 된 바 있다. 바로 전쟁을 위한 인공지능(AI) 기술이다. 2024년 이스라엘 군이 민간인 사이에 섞인 하마스 병력을 식별하기 위해 AI를 쓰고 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스라엘은 ‘라벤더’라는 AI 시스템을 개발, 무리 중 누가 하마스 무장 세력에 참여하는 사람인지 식별했다. 여러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결 관계를 분석, 하마스 무장 조직원인 것으로 판단되면 폭격을 가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대 3만7000명이 라벤더 AI에 의해 병력으로 판단되기도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결정에 AI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로선 AI가 실제 전장에서 활용된 최대 규모 사례로 꼽힌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가능성을 보인 군사 AI 활용은 이번 공습에서 제대로 위력을 발휘했다. 미군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정부 고위 인사들, 주요 핵 시설과 군사 기지를 타격할 작전을 짜고 우선순위를 정할 때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의 ‘클로드’ 모델과 팔란티어의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 등을 적극 활용했다. 179개 출처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메이븐에 클로드를 결합해 정보 수집과 표적 식별, 작전 계획 및 전투 결과 평가 등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이스라엘의 라벤더 AI가 하던 일을 훨씬 큰 규모로,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하게 된 것이다. 데이터를 분석해 공격 표적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찾아낸다는 점에서 둘은 같다. 1등 공신 앤트로픽, 도리어 퇴출 위협?하지만 세상에 주는 충격은 같지 않다. 팔레스타인 일대에서 무장 세력 참여자를 찾아내 제거하는 것과 한 나라 최고지도자와 고위 인사 수십 명을 추적해 은신처에 미사일을 보내는 일은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앤트로픽 클로드는 올해 초 미군이 베네수엘라를 습격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붙잡아 올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른 나라의 방공망을 사이버 공격으로 마비시키고 최고 지도자와 고위 인사들의 동선을 낱낱이 파악해 미사일을 날리거나 특공대를 보내 체포하는 장면은 새로운 종류의 ‘초강대국’의 등장을 예감하게 한다. 팔레스타인의 라벤더에서 테헤란의 클로드까지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AI는 놀랄 정도로 발전했고, 생소하고 강력한 힘이 처음 등장할 때 늘 그랬듯 우리는 본능적 두려움과 당혹감을 느낀다. 이런 당혹 속에서 우리는 이 새로운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 정부와 앤트로픽의 최근 대립은 이 논의가 혼란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란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앤트로픽 클로드는 마두로 체포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정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공습 직전인 2월 말 모든 연방 기관에 앤트로픽 기술 사용을 중단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앤트로픽이 클로드를 국방부에 공급하는 조건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AI를 인명 살상 여부의 자율적 판단이나 내국인 대규모 감시엔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AI의 윤리적 활용을 강조하는 앤트로픽의 평소 기조와 부합하는 요구이나, 합법 범위 내에서 AI 사용 범위를 제약 없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미국 전쟁부와 입장이 갈렸다. 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은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하고 국가안보 관련 시스템에서 앤트로픽 제품 사용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직후 시작된 이란 공습에서 앤트로픽의 AI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부는 AI의 강한 능력을 활용하고자 하지만 민간 기업에 예속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기업은 강한 국가의 영향력 아래 스스로의 원칙을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을 우려한다. AI는 제2의 핵무기아마도 제2의 핵무기와 같은 의미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큰 AI 기술을 놓고, 정부가 기술을 가진 민간 기업의 결정에 예속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리라 기대한다면 순진한 것일 터다. 경쟁 AI 기업들이 정부와 거래를 트고 싶어하는 상황에서 앤트로픽의 윤리적 원칙은 의미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오픈AI와 국방 관련 AI 활용에 대한 계약을 맺었고, 앤트로픽은 “경쟁사가 하는 만큼은 우리도 하겠다”며 원칙에서 물러나는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픈AI의 로봇 부문 책임자가 국방 계약 체결에 반발하며 퇴사하는 등 조직 내부는 뒤숭숭하다. 안보를 위해 최첨단 AI를 국가가 활용할 수 있게 해야겠지만, AI가 시민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겨누지 않게끔 통제하는 방법 논의가 필요하다. AI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지뢰나 화학무기, 집속탄 같은 위험한 무기의 사용을 국제 조약으로 규제하듯 AI 규제를 위한 국제적 약속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강대국이나 불량 국가는 이런 조약에 가입하지 않거나, 가입하더라도 규제를 우회하는 방법을 찾아내기는 하지만 말이다.

2026.03.15 08:00

4분 소요
노란봉투법과 AI발 노동 대전환의 시대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두 번의 대통령(전 정부) 거부권, 경영계와 야당의 거센 반대를 뚫고 작년 입법화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이 6개월의 준비기간을 마치고 3월 10일 정식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쟁의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도록 한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이에 하청업체 등 간접고용 근로자도 원청 사용자와 단체교섭 등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자동차·조선·석유화학업계 등 곳곳에서 하청 노조들의 원청 교섭 요구가 봇물 터지듯 분출되고 있습니다. 대형 노동자단체인 민주노총은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를 회피하는 사업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고 오는 7월에는 총파업까지 전개한다는 계획입니다. 그동안 기업 경영진이 좀 더 유리했던 노사 환경에서 노란봉투법이라는 친노동법이 도입되면서 노동자들, 특히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던 비정규직·특수 노동자 등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 나선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고 일부 개선 움직임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라는 돌발 악재로 유가 및 환율이 요동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이런 위기에서는 노사가 하나로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내부에서 노사가 갈라져 대립하게 돼 대응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사 관계는 늘 좋을 수가 없습니다. 또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양보를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어느 선에서는 서로 악수를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기업들이 국내외적인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최근 기업들은 로봇 도입과 AI(인공지능) 전환의 시대를 맞아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전환의 흐름을 외면해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게 자명한 만큼 다들 AI·로봇으로의 대전환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문제는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노조의 반발이 크다는 겁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개발하고 있는데, 노조측은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들여올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사람처럼 걸어 다니며 관절을 이용해 생산 작업을 할 수 있는 아틀라스가 생산 현장에 투입되면 고용 충격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도입이 된 것도 아닌데 반대부터 한 셈이어서 비판 여론이 컸는데요, 노조측은 “기술 발달을 저해할 생각이 아니라 충분한 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한발 물러났습니다. AI·로봇이 일상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면서 노동 생태계도 큰 변화가 불가피한데요, 그렇다고 ‘일자리 축소’라는 결론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은 미지의 세계인 만큼 노사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그 길에서 노란봉투법이 갈등의 증폭제가 아니라 상생을 위한 숙의의 장을 여는 시발점이 되어야 할 텐데요, 이는 노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2026.03.15 06:00

2분 소요
루이비통 vs 강남 수선집의 '리폼 전쟁'...대법원 판단 살펴보니 [백세희의 컬처&로(LAW)]

전문가 칼럼

지난달 말 대법원은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 국내 수선업체 강남사 간 소송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놓았다. 루이비통이 이른바 ‘리폼’ 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 침해 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수선업자가 루이비통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1·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26. 2. 26. 선고 2024다311181 판결).원고 루이비통은 잘 알려진 글로벌 명품 브랜드다. 특유의 로고는 1896년 창안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돼 왔다. 루이비통의 2020년 매출은 약 1조467억원에 이른다. 피고 강남사는 국내에서 가방과 지갑 등의 수선·제작업을 하는 사업자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명품 가방 소유자들의 요청에 따라 대가를 받고, 명품 로고가 표시된 가방의 원단이나 금속 부품 등을 활용해 전혀 다른 형태의 가방과 지갑을 만들어 왔다. 이런 가공 행위를 흔히 ‘리폼’이라 부른다.리폼은 약 8~9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누구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새로운 시장이었다. 유행이 지난 명품 가방을 다른 제품으로 바꿔 사용하려는 소비자와, 이를 수선해 용역비를 받는 수선업자가 주요 참여자였다. 그러나 이 흐름에 편승해 출처가 불분명한 명품 부자재를 대량으로 확보해 리폼 제품을 만든 뒤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예컨대 샤넬 로고가 새겨진 단추에 침을 달아 귀걸이로 만든 뒤 ‘업사이클링 제품’이라며 판매하는 식이다.명품 브랜드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수선업자와 업사이클링 판매자를 가리지 않고 상표권 침해를 주장했다. 실제로 “내용증명을 받았다”는 상담도 잇따랐다.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어 보이면서도, 글로벌 브랜드와 소송을 벌이는 부담 때문에 쉽게 맞서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결국 루이비통은 타협하지 않은 강남사를 상대로 2022년 2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 시작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른 리폼 업체들은 온라인 광고를 내리거나 사업을 중단했고, 일부는 조용히 영업을 이어갔다.전혀 다른 제품이 되는 리폼…1·2심의 판단“내 돈 주고 산 가방인데 마음대로 고쳐 쓰지도 못하나.” 루이비통의 소송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의 반응이었다. 실제로 인터뷰와 칼럼을 통해 의견을 들어보면 상당수는 루이비통의 소 제기를 과도하다고 봤다.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었다. 법원에 제출된 리폼 제품 사진을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는 의견이었다. 일부 리폼 제품은 단순한 수선을 넘어 새로운 제품을 창조한 수준에 가까웠다. 현재 판매 중인 신제품과 거의 동일한 디자인의 제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런 제품이 중고 시장에 유통될 경우 소비자가 정품으로 오인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였다.1·2심 법원의 판단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리폼 제품이 독립된 교환가치를 지닌 채 중고 시장에서 거래된다면 이는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하며, 소비자가 루이비통 정품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상표의 사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리폼 제품을 판매하는 행위뿐 아니라 리폼 행위 자체와 완성 제품을 의뢰인에게 전달한 행위까지도 상표권 침해로 판단했다.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핵심은 ‘개인적 용도의 사용’이었다. 명품 가방의 원단과 부자재를 이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든 뒤 이를 개인이 직접 사용하는 경우라면 상표법 위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제 조건은 분명하다. 리폼 제품이 상거래에 제공되거나 시장에 유통되지 않고 오직 개인적 용도로 사용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리폼 과정에서 이루어진 상표 표시 행위가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대법원은 또 중요한 현실적 문제를 짚었다. 리폼 작업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동,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직접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만약 소유자가 직접 하는 리폼만 허용하고 수선업자를 통한 리폼을 금지한다면, 소유자의 자유는 사실상 형식적인 권리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수선업자의 리폼 행위라도 소유자의 의뢰에 따라 이루어지고 결과물이 개인적 사용에 머문다면 위법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 사건에서 피고 수선업자는 루이비통의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됐다.대기업 명품 브랜드와 국내 수선업체의 법정 공방이라는 점에서 이 판결은 큰 화제를 모았다. 국내 최대 로펌을 선임한 루이비통을 상대로 작은 수선업체가 승소했다는 점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는 평가도 나왔다. 또 “국내 최대의 로펌인 김앤장을 선임한 루이비통을 이긴 수선집!”이라는 이 서사를 주제로 벌써 ‘소송의 뒷이야기’ 같은 후속 기사들도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위법한 리폼’은 무엇일까다만 이번 판결이 모든 리폼을 허용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상표권 침해가 될 수 있는 리폼의 기준도 함께 제시했다.형식적으로는 소비자의 의뢰가 있었더라도, 실제로는 리폼업자가 주도적으로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시장에 유통시키는 경우라면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해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리폼 제품의 디자인이나 형태, 생산 개수 등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수선업자가 가지고 있는 경우, 소비자가 가져온 명품 제품은 일부만 사용하고 수선업자가 보유한 부자재를 대부분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경우, 혹은 리폼 전 제품의 소유권을 수선업자에게 넘겨 판매 목적의 제품을 만드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또 리폼이 개인 사용이 아니라 제3자 판매를 위한 것임을 수선업자가 알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도 상표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다만 이러한 사정을 입증할 책임은 상표권자인 명품 브랜드에 있다. 브랜드 측이 리폼업체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려면 이러한 구체적 사실들을 모두 증명해야 한다.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한동안 주춤했던 명품 리폼 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 같다. 하지만 이에 편승해 명백히 위법인 유사 행위도 다시 활개를 칠까 걱정이다. 소유자가 오래된 자기 물건을 가지고 와 고쳐달라는 게 아니라, 업자가 출처 불명의 부자재를 가공해 이른바 명품 ‘업사이클링’이라 주장하는 방식이 그렇다. 폐기 대신 재활용(recycling) 또는 새활용(upcycling)을 통해 제품 수명을 연장하려는 소비자들의 선한 뜻을 이용해 명품 브랜드들의 명성에 무임승차하는 이들이다. 예컨대 단추에 침을 달아 귀걸이를 만들거나, 가방 로고를 목걸이 펜던트로 가공해 판매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는 리폼업자가 제품 생산과 판매를 주도하며 시장에 유통시키는 행위로, 대법원이 제시한 상표권 침해 사례에 정확히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그 부자재가 실제 명품에서 나온 것인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이번 판결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던 중요한 사건이다. 사회적 파급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런 판결을 접하면 짜릿하다. 생활 속 분쟁이 명료하게 정리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 사회가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다. 독자들도 함께 이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2026.03.14 10:00

5분 소요
‘같은 1등급’의 함정…내신 9→5등급제, 2028 대입 변수로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2027학년도 대학입시를 끝으로 내신 9등급제는 사실상 막을 내린다. 2028학년도 대학입시부터는 내신 등급 체계가 5등급제로 개편된다. 현행 9등급제에서는 학교 내신 상위 4%까지 1등급, 11%까지 2등급, 23%까지 3등급, 40%까지 4등급, 60%까지 5등급, 77%까지 6등급, 89%까지 7등급, 96%까지 8등급이 부여된다. 상위 96% 미만에 해당하는 학생은 9등급으로 처리된다. 반면 5등급제에서는 상위 10%까지 1등급, 34%까지 2등급, 66%까지 3등급, 90%까지 4등급을 부여하고, 상위 90% 미만은 5등급으로 분류된다. 등급 체계 변화가 불러올 가장 큰 변수는 2028학년도 대입부터 나타난다.같은 1등급, 다른 기준2028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고3 수험생이 5등급제 내신 성적표를 제출하는 반면, N수생은 9등급제 내신 성적표를 제출하게 된다. 이때 대학으로서는 ‘같은 1등급’이라도 서로 다른 기준에서 산출된 성적표를 동시에 받아보게 되는 셈이다. 특히 대학이 9등급제에서 상위 4%에 들어 획득한 1등급 수험생과, 5등급제에서 상위 10% 이내에 들어 1등급을 받은 수험생 중 어떤 학생을 최종적으로 더 높게 평가할지가 입시 현장에서 중요한 관전 요소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통계적으로만 놓고 보면 9등급제 1등급이 상위 4%로 더 촘촘하게 압축돼 있어 ‘희소가치가 높다’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다는 점도 함께 제기된다. 결국 대학들이 어떤 방식으로 두 성적표를 해석하고 반영하느냐에 따라 입시 지형에 큰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더 나아가 2029학년도 입시에서는 ‘등급 체계 혼재’가 한 단계 더 복잡해질 수 있다. 만약 대학이 내신 9등급제 1등급을 더 선호하는 방향의 평가 경향을 보인다면, 2029학년도에는 고3과 재수생이 5등급제 성적표를 제출하고, 삼수생 이상부터는 9등급제 성적표를 제출하게 된다. 이 경우 삼수생 이상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물론 내신 5등급제에서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적용되는 만큼, 학생부의 다양한 활동 기록이 어떤 방식으로 평가받느냐가 또 다른 관건이 될 수 있다.이런 변화는 ‘마지막 9등급제 입시’인 2027학년도에도 파급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2027학년도는 현행 내신 9등급제가 적용되는 마지막 대입이다. 이 과정에서 내신 상위권 학생들의 대학 진학 이후 움직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예컨대 현행 9등급제에서 내신 1등급을 확보했더라도, 상위권 학생들이 특히 선호하는 의약학 계열에 진학하지 못하고 일반 학과에 합격해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있을 수 있다. 이들 중 일부는 9등급제 마지막 대학입시 상황에서 당초 목표했던 대학(또는 의약학계열)로 ‘재진입’을 노리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9등급제 내신 희소가치 소멸그 배경에는 ‘내신 성적표의 희소가치’ 문제가 놓여 있다. 2027학년도에 이미 확보한 상위권 내신 성적표를 활용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면, 2028학년도에는 5등급제 고3 학생들과 섞여 경쟁해야 한다. 이때 9등급제 내신이 갖고 있던 희소가치가 사실상 소멸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여기에 2027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지역의사제가 도입되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지역의사제는 상위권 학생들의 대입 문호를 더 크게 확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향후 5년간 지역의사제는 확대되는 상황이 계속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도 입시 수요의 이동을 촉발할 여지가 있다.이미 ‘대학 중도 탈락’ 증가 흐름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최근 5년간 재학생 중도 탈락 수는 공시 기준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2020년 1,416명에서 2021년 1624명, 2022년 1971명, 2023년 2131명, 2024년 2126명으로 증가했고, 2025년에는 2496명으로 더 늘었다. 이들 서연고 중도 탈락 학생의 상당수는 의약학 계열로 재입학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분석이 뒤따른다.범위를 주요 10개대로 넓혀도 흐름은 유사하다. 주요 10개대 중도 탈락 인원은 2020년 5827명, 2021년 6790명, 2022년 7265명, 2023년 7576명, 2024년 7781명, 2025년 8683명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다. 주요 10개대에서 중도 탈락한 학생들 역시 의약학 계열 또는 상위권 대학으로의 재입학을 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된다.의대 재학생 상황도 예외로 보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의대 재학생 가운데 중도 탈락자는 2020년 185명, 2021년 173명, 2022년 203명, 2023년 179명, 2024년 201명, 2025년 386명으로 집계됐다. 이를 의대·치대·한의대·약대 범위로 확대하면 수치는 더 크게 뛴다. 2020년 300명, 2021년 311명, 2022년 360명, 2023년 521명, 2024년 660명, 2025년 1004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의대 중도 탈락 학생의 72%가 지방권 소재 의대 재학생이라는 점도 언급된다. 의대 재학생의 중도 탈락은 대부분 수도권 또는 상위권 의대로의 재입학으로 볼 수 있으며, 치대·약대·한의대 역시 의대로의 재진입 또는 상위권 의약학 계열 대학으로 이동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2027학년도는 상징성도 크다. 2027학년도는 현행 내신 9등급제가 도입된 2008학년도 대학입시 이후 20년 만에 처음 맞는 ‘마지막 9등급제 입시’다. 따라서 내신 상위권 학생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중위권대 재학생까지도 5등급제로 바뀌기 이전, 마지막 입시에서 원하는 대학으로의 재진입을 노리는 사례가 상당수 발생할 수 있다는 예상이 제기될 수 있다.연도별로 등급 체계가 겹치는 구조도 복잡해진다. 2028학년도 입시에서는 고3이 5등급제 성적표를 제출하고, N수생은 9등급제 성적표를 제출한다. 2029학년도에는 고3과 재수생이 5등급제 성적표를 제출하며, 삼수생 이상부터는 9등급제 성적표를 제출하게 된다. 2030학년도에는 고3·재수·삼수생이 5등급제 성적표를 제출하고, 4수생 이상부터는 9등급제 성적표를 제출하는 형태로 겹침이 이어진다.결국 내신 정책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내신 제도 개편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또다시 진행되는 중이라는 점에서, 향후 입시 환경의 변동성은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2026.03.14 08:00

4분 소요
와인 역사를 바꾼 10대 발명품 [와인인문학]

전문가 칼럼

와인은 ‘신의 물방울’이라 불리지만 그 물방울을 우리가 마시는 형태의 문화로 완성한 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탐구와 ‘발명’이었다. 인류가 포도를 발효시켜 알코올을 얻은 이래 와인의 품질과 유통 그리고 문화를 혁명적으로 진보시킨 10가지 결정적 발명품을 소개한다.로마의 실용성이 낳은 ‘맛의 연금술’첫 번째는 오크(참나무)통이다. 고대 와인 운송의 표준은 무겁고 깨지기 쉬운 점토 항아리인 ‘암포라’였다. 로마인들이 갈리아(현재의 프랑스)를 정복하며 발견한 나무통은 혁명이었다. 오크통은 굴려서 운반할 수 있어 물류의 혁신을 가져왔지만, 진정한 발명은 그 ‘화학적 작용’에 있다. 오크는 와인에 타닌과 바닐라, 토스트 향을 입히고 미세한 기공을 통해 와인을 숨 쉬게 해 맛을 부드럽게 해준 덕분에 복합미를 지닌 숙성주로 진화할 수 있었다.두 번째는 와인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부여한 유리병이다. 17세기 이전까지 와인은 산화에 쉽게 노출돼 장기 보관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석탄을 연료로 하는 용광로의 발명으로 튼튼한 유리병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와인의 역사는 바뀌었다. 유리병은 와인을 외부 공기로부터 차단하여 산패를 막고 진정한 ‘숙성’을 가능하게 했다. 빈티지의 개념 그리고 수십 년을 견디는 위대한 와인의 탄생은 유리병 덕분이다. 세 번째는 유리병의 완벽한 단짝인 코르크 마개다. 유리병이 발명됐어도 그것을 막을 완벽한 마개가 없었다면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다. 나무 조각이나 기름 먹인 천을 쓰던 시절을 지나 17세기경 도입된 코르크는 와인 역사상 위대한 발견 중 하나다. 코르크의 유연성은 병목을 완벽하게 밀봉하면서도 아주 미세한 양의 산소만을 투과시키는 ‘미세 산화 작용’을 허락한다. 덕분에 와인은 병 속에서 질식하지 않고 천천히 숙성되며 제3의 아로마(부케)를 피워낼 수 있었다.네 번째는 와인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수호자라 불리는 이산화황(SO2)이다. 현대에는 첨가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이산화황의 사용은 와인을 상하지 않게 막아준 결정적인 발명이다. 고대부터 황을 태워 통을 소독하는 지혜는 있었으나, 이를 과학적으로 제어해 항산화제로 사용하게 된 것은 와인 품질 유지의 핵심이다. 이것 없이는 바다를 건너온 와인을 마실 수 없었을 것이며 곧바로 산화돼 갈색으로 변했을 것이다.다섯 번째는 멸종 위기에서 유럽 와인을 구한 접붙이기 기술이다. 19세기 후반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진딧물 ‘필록세라’는 유럽의 포도밭을 초토화했다. 유럽종 포도나무가 멸종될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낸 것은 바로 ‘접붙이기’ 기술이었다. 필록세라에 내성이 있는 미국 종 포도나무 뿌리에 유럽 종 가지를 접붙이는 이 발명은 오늘날 포도 재배의 표준이 됐다. 우리가 마시는 대부분의 프랑스, 이탈리아 와인은 사실 이런 접목 기술의 결과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부터 정교한 과학 기술까지여섯 번째는 불량품을 명품으로 바꾼 샴페인 제조 방식이다. 과거 와인에서 발생하는 기포는 ‘악마의 장난’이라 불리는 결함이었다. 그러나 돔 페리뇽과 동시대 수도사들 그리고 영국인들의 유리병 기술이 결합해 이 기포를 병 안에 가두는 기술을 완성했다. 병 속에서 2차 발효를 유도해, 높은 압력을 견디며 효모 찌꺼기를 제거하는 일련의 복잡한 공정의 발명은 와인을 단순한 술에서 축제의 상징이자 ‘럭셔리의 아이콘’으로 격상시켰다.일곱 번째는 대항해 시대를 견디게 한 보존 기술인 주정 강화다. 긴 항해 동안 와인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증류주를 첨가하는 아이디어는 포트·셰리·마데이라라는 위대한 와인 장르를 탄생시켰다. 이는 단순한 보존법을 넘어 발효를 중단시켜 천연 당분을 남기거나 산화적 숙성을 유도해 와인의 풍미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주정 강화 기술은 와인의 수명을 극도로 늘려준 획기적인 발명이다.여덟 번째는 와인 양조를 과학으로 진화시킨 파스퇴르의 미생물 연구다. 루이 파스퇴르 이전까지 와인 발효는 신비로운 자연 현상이었다. 파스퇴르는 효모가 당분을 알코올로 바꾼다는 원리를 규명하고 박테리아가 와인을 식초로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의 연구 덕분에 인류는 비로소 ‘저온 살균법’을 비롯한 위생적인 양조 제어를 할 수 있게 됐다. 와인 양조학은 파스퇴르의 현미경 아래에서 비로소 과학으로 다시 태어났다.아홉 번째는 신선한 화이트 와인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와 온도 조절 시스템이다. 1960~70년대 도입된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와 냉각 기술은 현대 화이트 와인의 혁명을 가져왔다. 이전에는 통제가 어려웠던 발효 온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함으로써 포도 고유의 신선한 과일 향과 산도를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게 됐다. 이 발명 덕분에 서늘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훌륭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전 세계 와인의 상향 평준화를 이끌었다.마지막은 ‘떼루아’(포도 재배 환경)를 지적재산권으로 만든 사회적 발명인 원산지 통제 명칭 제도다. 기술적 도구는 아니지만 1935년 프랑스에서 법제화된 원산지 통제 명칭(AOC) 시스템은 와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도적 발명’이다. 포도의 원산지가 와인의 품질과 가치를 결정한다는 떼루아의 개념을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 제도는 가짜 와인을 근절하고 지역별 와인의 개성을 보호하며 와인을 단순한 농산물이 아닌 ‘문화유산’이자 ‘브랜드’로 확립시켰다. 전 세계 모든 와인 법규의 모태가 된 위대한 발명이다.

2026.03.14 07:00

4분 소요
스타드림 크루즈, 제주항공 회원 대상 캐시백 이벤트 실시

여행

크루즈 예약 플랫폼 크루지아는 3월 12일부터 17일까지 제주항공 회원을 대상으로 스타드림 크루즈 예약 시 현금을 환급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한다고 밝혔다.이번 프로모션은 크루지아 웹사이트에서 홍콩 또는 싱가포르를 출발지로 하는 스타드림 크루즈의 발코니 객실을 예약한 제주항공 회원을 대상으로 한다. 조건 충족 시 선실당 1회에 한해 10만원의 캐시백이 지급된다. 해당 혜택은 크루지아 내 타 프로모션과 중복하여 적용할 수 없다.크루지아는 주요 크루즈 선사의 일정과 객실 정보를 실시간으로 대조하여 예약을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최근 항공과 크루즈를 결합한 여행 방식이 이용되고 있으며, 스타드림 크루즈는 홍콩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 항구를 거점으로 동남아시아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스타드림 크루즈는 선내 식단과 엔터테인먼트 구성을 아시아 지역 이용자의 특성에 맞춰 운영 중이다. 홍콩 및 싱가포르 출발 노선은 단일 일정 중 여러 도시를 경유하는 경로로 구성되어 있다.크루지아 관계자는 “스타드림 크루즈는 아시아 여행객의 취향과 여행 패턴을 잘 이해하고 있는 크루즈 브랜드”라며 “이번 제주항공 회원 대상 프로모션을 통해 항공과 크루즈를 결합한 새로운 여행 경험을 보다 많은 고객들이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프로모션 정보는 크루지아 공식 웹사이트와 제주항공 이벤트 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26.03.12 16:39

1분 소요
‘아시나요’ 1919년 최고 잘 나갔지만 역사적으로 묻힌 기업가 이야기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고, 옥고까지 치른 기업인은 누구일까요?’ 이에 해당하는 인물은 단 1명. 그럼에도 정답을 알고 있는 이는 극소수다. 심지어 주인공의 친인척들조차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다. 기업인이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교육자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역사책에서는 볼 수 없는 동화약품의 설립자 민강 선생의 발자취를 되짚어봤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실천의 선구자이기에 현시대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인·독립운동가·교육자 ‘불굴의 족적’ 지난 2월 25일 서울 중구 순화동에 위치한 동화약품의 본사 1층 ‘1897 라운지’에서 민강 선생의 선한 영향력을 받은 후손들이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이날 평전 출판 기념회를 맞아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을 비롯해 서울대와 대한약학회 등의 약학계, 동성고·이화여고 등의 교육계, 저자인 고진숙 작가를 비롯한 사학계 및 출판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색적인 조합의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모두 민강의 선한 영향력 덕분이다. 민강은 국내 제약업 태동을 이끈 기업가이자 소의학교(현 동성중·고등학교)와 조선약학교 설립에 참여하며 교육과 약학 기틀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등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기업인·독립운동가·교육자로서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지만, 민강에 대한 사료는 많지 않다. 그는 평생 일기나 저작을 남기지 않았다. 이에 다방면에서의 쌓은 업적에 비해 역사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졌다.평전 출판으로 민강의 삶을 재조명하게 된 계기도 후손의 간절함 때문이었다. 평전의 저자인 고진숙 작가를 붙잡고 오열하면서 역사적으로 묻힌 ‘민강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게 출판으로 연결됐다. 민강의 친인척인 송지희 서울시립대 교수는 “‘몸까지 다쳐가며 기업 운영과 독립운동을 하신 분은 없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또 그런 분의 자취가 역사책에 전혀 남지 않아서 너무 아쉬웠다”고 털어놓았다. 고 작가는 민강을 “한 병의 약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한 뜻으로 조국의 독립을 꿈꾸다”라는 문장으로 정리했다. 최초의 국산 신약으로 꼽히는 ‘활명수’는 민강의 업적에서 빼놓을 수 없다. 활명수는 구한말 급체와 토사곽란(吐瀉癨亂)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활명수는 국내 최초의 등록 상품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활명수는 왕명을 전달하는 연락관인 궁중 선전관 직책을 지낸 아버지 민병호와 민강이 개발한 소화제다. 궁궐에서 쓰인 소화불량 해소약과 양약을 섞어 최초의 국산 신약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활명수는 양약을 구하기 힘들었던 일제 강점기에 대히트를 쳤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활명수를 찾는 사람이 줄을 섰다고 한다. 하지만 민강은 이윤만을 좇지 않았다. 고 작가는 “1919년 당시 동화약방은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갔던 기업이었다. 하지만 부를 축적하기보다 활명수를 판매한 수익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모두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으로 이동할 때 활명수를 휴대해 현지에서 판매하고 그 수익을 독립자금으로 활용할 정도로 지원해줬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책임 다한 ESG 경영의 시초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독립자금을 지원한 경영인은 있었지만, 독립운동으로 옥살이까지 경험한 인물은 민강이 유일하다. 민강은 1909년 항일 비밀결사단체 대동청년단을 결성했다. 독립운동이 거세게 일었던 1919년 동화약방 분점을 개점해 ‘3.1만세운동’의 연락사무소로 활용했다. 또 임시정부의 국내 연락 거점인 경성연통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교육자로서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1907년 소의학교와 1918년 조선약학교 설립에 참여하며 인재 양성의 토대를 마련했다. 조선약학교는 현재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으로 이어지며 한국 약학 교육의 산실로 자리하고 있다.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제약업계 기업인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독립운동으로 인한 외압 속에 동화약품의 경영은 점차 어려워졌다. 그러다 1937년 민족기업가 윤창식 사장이 인수 후 동화약품의 역사와 ‘민강 정신’은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민강이 진정한 ESG 경영을 펼쳤다는 점에서 귀감이 되고 있다. 활명수 판매로 얻었던 이윤을 대부분 독립자금으로 전달하는 등 기업 활동이 사회적 책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강 선생의 삶과 실천은 기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되묻게 하며, 이 정신은 오늘날 ESG 경영과 지속가능발전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고 평했다. 송지희 교수도 민강이 가족들에게 손수 보여준 사회적 가치를 주목했다. 그는 “민강 선생의 활동이 이윤이 목적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것, 교육시키는 것,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것 그 세 가지 사회적 가치에 있었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가치들이 다 이뤄졌다. 큰 가치를 두고 모든 것을 다 바치셨던 분이라 더욱 감동스럽다”고 말했다. 이번 평전에는 친척들도 잘 알지 못했던 독립운동가 민금봉 선생의 생애도 담겼다. 민금봉의 손녀딸인 송지희 교수는 2019년 할머니가 대통령 표창을 받으면서 독립운동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서대문 형무소에 할머니의 사진이 있는 것도 그때 알았다고. 민강의 친척인 민금봉은 동화약방에 거주했고,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항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서대문경찰서에 피검됐다. 이화여고보의 독립만세시위에 앞장선 그는 손수 80장의 태극기를 직접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1000만 관객을 모은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단종의 곁을 끝까지 지킨 ‘조용한 충신’ 엄흥도의 삶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활명수를 낳은 기업가이자 독립운동가 민강’ 평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유산을 남긴 역사적 인물인 민강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2026.03.09 07:00

4분 소요
요동치는 주가, 빚투, 그리고 워런 버핏의 투자 원칙[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이제 무섭기까지 해요.” 최근 미친 듯이 요동치는 코스피를 두고 나온 말인데요, 정말 그렇긴 합니다. 코스피는 올해 1월 4300선에서 출발해 같은 달 27일 종가 기준 처음으로 5000선을 상회했고, 한 달도 안 된 2월 25일 사상 처음으로 6000선을 돌파했습니다. 1700포인트나 뛰어오른 데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은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힘든 모습이라서 투자자들 중에는 놀라움을 넘어 두렵다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증시로 돈이 쓰나미처럼 밀려들고 있는데, 이 중에는 빚을 내서 투자하는 ‘빚투’도 상당합니다.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금액인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 2월 26일 기준 32조368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1월 29일 사상 처음 30조원을 돌파한 이후 한 달도 안 돼 2조원 이상 늘었으며, 작년 말 27조2864억원에서 올해 들어서만 약 20% 급증했습니다. 이에 일부 증권사는 신용거래융자를 중단했습니다. 빚투 열기는 이 같은 수치뿐 아니라 각종 주식 토론방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한 맞벌이 부부는 ‘국내 증시가 불장이라서 1억원을 대출받았다. 잠시 쓰고 갚을 건데…’라며 자신들의 빚투 상황을 자세히 얘기하면서 다른 투자자들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제 빚투는 특별한 사례가 아닌, 일종의 보편적인 투자 행태가 된 모습입니다. 그 이면에는 ‘나만 뒤처질 수 없다(FOMO, 포모)’는 불안감과 ‘이번 기회에 인생 역전을 하겠다’는 심리가 강하게 깔려 있습니다. 한 증권업계 임원은 “요즘 집 등 자신의 고액 자산을 걸고 대출을 받아 주식 투자하는 분들이 있다”며 “주식으로 돈 벌 기회가 왔고 놓치면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애기했습니다. 문제는 증시가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겁니다. 끝없이 치솟을 것 같던 국내 증시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라는 예상치도 못한 악재에 6000선이 단번에 무너지면서 투자자들의 낯빛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한 빚투 직장인은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공포에 휩싸인 모습이었습니다. 빚투의 무서움은 하락장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주가가 하락해 담보유지비율이 기준치 밑으로 떨어지면, 증권사는 주식을 강제로 매도하는 ‘반대매매’를 단행합니다. 이 매물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주가는 더 하락하고, 이는 또 다른 반대매매를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합니다. 자칫하면 평생 일궈온 자산을 한순간에 잃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그래서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주식 투자는 여윳돈으로 하라’는 겁니다. 또 개별 종목을 직접 투자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지수펀드(ETF) 등 금융상품에 투자하라고 권합니다. ‘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워런 버핏의 원칙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남들이 탐욕을 부릴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을 부려라.” 지금은 누군가의 수익률을 부러워할 때가 아닙니다.

2026.03.08 06:00

2분 소요
인스타그램은 왜 공짜일까? [새로 나온 책]

구글과 인스타그램은 왜 사용자에게 요금을 받지 않을까. 펩시는 어째서 ‘만년 2등’에 그치는 걸까. 알리익스프레스는 쿠팡이 장악한 물류 시장에 어떻게 진입했을까. 이런 모든 의문 뒤에는 ‘마케팅’의 비밀이 숨어 있다.성공하는 마케팅과 실패하는 마케팅에는 차이가 있다. 저자 이완배는 ‘인스타그램은 왜 공짜일까?’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케팅이라고 말한다. 1971년생인 저자는 동아일보 사회부와 경제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네이버 금융서비스 팀장 등을 거쳐 현재 유튜버 겸 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쇼핑의 설계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경제학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광고와 브랜드의 세계를 전한다.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일상을 지배하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마케팅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대중을 속이고 물건을 파는 기술이 아니라 ▲휴리스틱 ▲넛지 ▲라이코노믹스 등 행동경제학적 원리로 소비자의 무의식을 공략하는 현대 마케팅의 근간을 파헤친다. 또 현란한 광고들 사이에서 길을 헤매곤 하는 오늘날의 Z세대에 기초적인 마케팅 감각과 소비의 가이드라인을 함께 선사한다.특히 저자는 세련된 광고와 화려한 브랜드 로고 뒤에 숨겨진 치열한 탐구와 혁신을 이해하되 기업의 철저한 손익 계산 역시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레드불이 도전이라는 가치를 카페인 음료에 새겨 넣고 애플이 특유의 미감을 통해 팬덤을 구축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마케팅이란 단순한 광고 기법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고도의 심리학임을 깨닫게 된다.기업들의 각기 다른 마케팅 기법과 판매 전략을 하나씩 이해해 나가면서 청소년 독자들은 나의 지갑을 사수하는 법은 물론, 세상을 이해하고 취향을 가꾸기 위한 경제적 감각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건강 구독 사회우리는 왜 부작용이 명확한 약은 불안해하면서 효능이 불분명한 영양제는 아무 의심 없이 삼킬까. 언제부터 ▲먹는 것 ▲맞는 것 ▲관리하는 것이 하나의 고단한 일이 됐을까. 이 책은 ▲기적의 다이어트 약 위고비와 마운자로 ▲아이들의 키를 키우는 성장호르몬 주사 ▲식탁 위의 필수품이 된 오메가3와 비타민까지 현대인이 건강을 믿고 소비하는 방식을 과학과 심리의 언어로 해부하는 책이다. 저자 정재훈 약사는 약은 위험하고 영양제는 안전하다는 익숙한 믿음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알고리즘 그리고 마케팅을 통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짚는다. 이제는 오히려 효과가 확실한 약이 영양제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비교 해방사람들은 ▲더 좋은 학벌 ▲더 좋은 직업 ▲더 좋은 연봉, 이른바 ‘황금티켓’을 손에 넣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쓴다. 이 책은 이런 속박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책이다. 미움받을 용기로 한일 양국에서 ‘아들러 심리학’ 열풍을 일으켰던 기시미 이치로가 이번에는 ‘비교와 경쟁에서 벗어나 나만의 보폭으로 자유롭게 걷는 법’으로 돌아왔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남다른 삶을 꿈꾸면서도 왜 모두와 똑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우리 내면의 심리를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인정과 기대 및 불안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삶의 욕망을 채우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주역필사이 책은 동양철학자이자 주역 연구가인 김동완 교수가 주역 64괘의 핵심 문장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길어 올린 필사책이다. 공자가 책 끈이 세 번 끊어질 만큼 곁에 두고 읽었다는 주역은 수천년 동안 변화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를 길러온 고전의 정수다. 저자는 고전을 해설로 이해하기보다 한 줄씩 직접 써 내려가며 내 삶과 조용히 마주하도록 이끈다. 세상이 빠르게 달릴수록 우리는 돌아와 앉을 자리가 필요하다. 그 자리는 읽는 말이 아니라 써보는 문장에서 만들어진다. 하루 한 줄, 마음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작은 의식을 제안한다.

2026.03.07 11:00

3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