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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넘어 맥락을 전하다”…콩두의 실험은 계속된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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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 높은 빌딩들 사이 한복판에 조용히 자리한 레스토랑 ‘콩두’.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이 공간은 오롯이 한식을 말한다. 입구 한쪽엔 작은 장독대와 300년 된 간장 종지가 놓여 있고, 내부는 전통적이지만 결코 올드하지 않은, 세련된 절제의 미학을 품고 있다.향긋한 들기름 냄새와 정갈한 백김치, 섬세하게 정리된 나물 한 접시. 그리고 묵직한 황동 솥에 담긴 전복 미음과 제철 나물 비빔밥까지. 콩두의 식탁은 단순한 요리가 아닌 하나의 서사다. 각 메뉴는 오래된 장독대의 기억과 어머니 손맛, 그리고 지역의 역사와 계절이 담긴 한 폭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그 식탁 앞에 앉은 외국인 손님들의 표정은 놀라움 그 자체다. “이 요리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왜 이 김치는 이렇게 부드럽고 담백하죠?” 식재료 하나하나에 깃든 의미와 문화적 맥락을 하나씩 풀어낼 때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멈추지 않는다. 바로 이 감동의 순간들, 이 작은 문화적 공감들이 모여 한식의 세계화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한윤주 콩두 대표가 있다.한식의 실험실이 된 레스토랑 ‘콩두’ 서울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콩두는 한윤주 대표가 20년 넘게 일궈온 철학의 결실이다. 그는 “왜 한국 음식은 고급화되지 못하나”라는 질문 하나로 전국의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장류를 배우고, 농촌의 재래시장을 돌며 진짜 재료를 탐구했다.그렇게 만들어진 콩두의 식탁은 느리고 조용하지만, 그만큼 깊다. 계절 따라 바뀌는 제철 나물, 직접 담근 장, 장독의 세월이 깃든 음식 하나하나에 그의 시간과 철학이 담겨 있다. 대통령 외빈 만찬의 한상차림으로 선정된 콩두의 음식은 외교의 장에서 한식의 품격과 정서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한 대표는 한식을 단지 맛있는 요리가 아닌 브랜드로 인식한다. 그래서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및 한식진흥원과 함께 ‘한식 콘텐츠 번역 플랫폼’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단순한 조리법 전수가 아니라, ‘철학과 맥락, 감정과 서사’를 함께 가르치는 구조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한식을 레시피 중심으로만 가르쳐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음식을 설명하는 언어도 바뀌어야 합니다.”그의 관심은 이제 관광으로 확장된다. “한식은 국가관광의 전략 콘텐츠”라며, 그는 남도의 장류, 강원의 전통주, 경북의 한옥 다이닝 등 지역성과 문화성을 담은 체험형 미식관광을 기획 중이다. “한식은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진짜 한식은 땅에 있고, 장독에 있고, 계절에 있어요.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그는 패션 디자이너 출신으로서 감각과 창의성은 넘쳤지만, 식당 경영은 처음이었다. 좋아하는 일도 막상 일이 되면 고민과 어려움이 따르는 법이었다. 하루아침에 쏟아진 인기에 즐거움과 함께 부담도 찾아왔다. “집에서 30명분 음식을 만드는 건 문제도 아니었는데…,” 라며 그는 웃지만, 정작 매일 수많은 손님을 상대하며 식자재 관리부터 직원 교육까지 신경 써야 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삼청동 한옥에서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 콩두라는 이름 아래,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음식’이라는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한식은 철학 없이 유행만 좇아 그는 요즘 세계 미식 트렌드 속에서 한식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감지한다. “이제는 한 끼 식사를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는 시대”라며, 음식이 단순한 영양소가 아니라 목적지이자 콘텐츠, 체험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렇기에 그는 한식이 ‘어떻게 만들까’보다 ‘왜 이렇게 만들었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한 대표는 K-푸드의 세계적 인기에 대해 “조심스럽게 바라본다”고 말한다. “한식은 철학 없이 유행만 좇고 있다”는 그의 말은 지금의 ‘K-푸드 신드롬’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단순한 확산을 넘어선 해석과 설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맛이 아닌 맥락, 조리법이 아닌 시간과 정서를 세계에 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사람들이 스시를 먹으며 일본을 떠올리듯, 김치를 먹으며 한국의 계절과 기후, 문화를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한식의 세계화가 진짜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그의 메시지는, 한식이 단순한 ‘음식’이 아닌 ‘문화의 언어’가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된장과 간장은 수개월, 때로는 수년을 기다려야 완성됩니다. 한식은 기다림과 정성을 재료 삼아 탄생하는 ‘시간의 음식’입니다.” 그는 프렌치처럼 레시피가 명확하고 빠른 완성을 지향하는 요리와는 달리, 한식은 그 자체가 느리고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손맛, 장맛, 계절감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이 중심이기 때문이다.한식의 세계화는 단순한 언어 번역이 아닌 ‘문화 번역’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치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김장이 왜 생겼고, 겨울을 어떻게 준비했는지까지 설명되어야 의미가 살아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그가 자주 언급하는 ‘번역력’이다. 단순한 단어의 변환이 아니라, 정서와 이유, 서사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의 문제다.인터뷰의 마지막, 그는 조용히 되묻는다. “우리는 종종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죠.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 문화를 얼마나 잘 설명하고 있을까요?”한윤주 대표는 한식 세계화를 ‘자기 존중’의 문제로 본다. 우리가 우리 것을 믿고, 사랑하고, 자랑할 수 있을 때 세계도 그것을 존중하게 된다는 믿음이다. “세계화는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됩니다.”지금의 K-푸드는 세계로 확산되고 있지만, 그 속을 채울 언어와 철학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김치 한 조각, 된장 한 숟갈 뒤에 숨은 계절과 사람, 기억과 문화까지 전달되어야 한다. 한식의 세계화는 이제 ‘어떻게 만들까’가 아니라, ‘왜 이렇게 만들었나’를 묻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제, 그 물음에 우리 스스로 답할 차례다.

2025.06.08 09:00

4분 소요
빼앗긴 일자리, 높아진 효율…AI가 짠 코드 ‘바이브’를 느껴 봐 [한세희 테크&라이프]

전문가 칼럼

불과 몇 해 전의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테크 분야 호황이 이어지며 소프트웨어 개발자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개발자 연봉이 치솟으며 테크 업계 전반의 임금 수준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오르고, 비전공자들 중에서도 코딩 교육을 받아 커리어를 전환하려는 이들이 늘어났다.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입 개발자의 초봉이 중견 관리자 월급에 육박하는 사례도 등장했다.팬데믹이 끝나고 테크 버블이 꺼지면서, 이 시기 방만하게 채용한 인력이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하던 즈음, 새로운 바람이 불며 개발자 일자리에 또 한 번 충격이 가해졌다.바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이다. 오픈AI의 챗GPT를 시작으로, 구글의 제미나이와 앤스로픽의 클로드 등 초거대 언어모델(LLM)에 기반한 대화형 AI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사람처럼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는 문장을 생성하며 대화하는 능력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기술력을 수익으로 연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원자력 발전소를 새로 지어야 할 정도로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고, 수십만 장의 최고급 GPU를 동원해 학습시킨 값비싼 AI 모델을 활용해 수익을 내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코드 짜는 AI, 개발자를 대신하다챗GPT가 등장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생성형 AI의 가장 명확한 활용 분야로 자리 잡은 것이 있다. 바로 코딩이다. LLM은 언어를 유창하게 다루는 AI다. 그리고 코딩 역시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단지 사람이 아닌 컴퓨터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사람이 말하는 언어에서 다음에 올 단어를 예측하는 작업이나, 컴퓨터 언어에서 다음에 이어질 코드를 예측하는 작업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이뤄진다.AI가 가장 능숙하게 다루는 언어는 다름 아닌 컴퓨터 언어였다. 코드 작성은 AI가 가장 먼저 혁신을 불러온 분야가 된 셈이다.이로 인해 개발자는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한때 가장 유망하다고 평가받던 직업이었던 개발자는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많이 해고되는 직종 중 하나가 되었다. 미국 고용통계국에 따르면, 2023~2025년 사이 소프트웨어 개발자 고용은 27.5%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달 전체 인력의 3%인 6800명에 대한 감원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 중 40%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4월 메타가 주최한 AI 콘퍼런스 ‘라마콘’에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와의 대담 중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작성된 코드 중 30%는 AI가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케빈 스콧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기술책임자(CTO)도 “2030년에는 전체 코드의 95%가 AI로 생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저커버그 CEO 역시 “내년쯤에는 개발의 절반 정도가 사람이 아닌 AI에 의해 이뤄지고, 그 비중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 개발자 자리는 줄어들고, AI를 개발하는 인재를 육성한다는 계획이다.구글 역시 지난 4월, 구글 코드의 30% 이상이 AI에 의해 생성된 것이라고 밝혔고, 앤디 재시 아마존 CEO는 “작년 한 해 AI를 통해 개발자가 4,500년치 일한 것에 해당하는 시간을 절약했다”고 말했다. 코드의 분위기를 이해하는 ‘바이브 코딩’이 같은 흐름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AI 기반 코딩 보조 서비스다. 마치 프로그래밍에 능숙한 고수가 코드 편집기 옆에 앉아 질문에 답해주듯, 사용자가 일상 언어로 원하는 기능이나 디자인을 말하면 AI가 이를 코드로 자동 작성해준다. 개발자는 그 결과물에 피드백을 주며, 코드를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간다.코딩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도 앱 개발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한편, 전문 개발자의 생산성을 크게 높여준다. 실제로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팀의 생산성이 40~60% 높아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이러한 방식의 코딩은 흔히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고 불린다. 개발자가 의도한 느낌이나 분위기(vibe)를 AI가 파악해 그에 맞는 코드를 생성한다는 의미다.바이브 코딩 분야의 대표 기업들도 이미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코드 편집기인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에 AI를 통합한 ‘커서’(Cursor)는 지난달 실리콘밸리 주요 벤처캐피털로부터 9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고, 기업 가치는 100억 달러로 평가받았다. 오픈AI가 인수를 희망했으나, 커서는 독자 노선을 택했다.오픈AI는 대신 커서와 유사한 바이브 코딩 기업인 ‘윈드서프’(WindSurf)를 30억 달러에 인수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커서는 연간 매출 약 1억 달러, 윈드서프는 약 5천만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다만 두 기업 모두 아직 적자 상태다. 앤스로픽의 클로드 등 외부 AI 모델에 의존하고 있어,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재정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외부 모델 의존도 문제지만, 자체 모델을 개발하더라도 막대한 비용과 기술 리스크가 뒤따른다.바이브 코딩은 숙련된 개발자의 역량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이제 막 진입하려는 신입들에게는 벽이 되는 AI 시대 ‘일자리의 문제’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하지만 반복적인 코딩 작업을 AI에 맡기고, 개발자는 보다 고차원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다. 코딩을 몰라도 누구나 앱 개발에 도전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그러나 노동 불안 외에도, 바이브 코딩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보안이다. 생성형 AI가 문장을 만들면서 사실이 아닌 내용을 생성하는 ‘환각’ 현상이 문제되듯, 코딩 과정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라이브러리나 가짜 패키지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흥미로운 점은 AI가 생성한 가짜 패키지들이 실제 존재하는 패키지와 유사한 이름을 가진다는 것이다. 해커는 이 점을 악용해 동일한 이름의 악성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유포하고, AI의 도움을 받아 개발 중인 다른 사용자가 이를 실수로 다운로드하게 하는 방식의 공격이 가능하다.

2025.06.08 07:00

4분 소요
철학으로 사유하고 삶의 조급함을 내려놔라 [새로 나온 책]

로마 시대 뛰어난 철학자이자 존경받는 리더로 꼽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지혜를 이 시대에 펼쳐 보인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무슨 철학이냐’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만 저자는 43가지 철학 사상과 개념을 선별해 이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고 삶의 방향을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조언하고 있다. 저자인 안광복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상가들의 이야기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가깝다. 책에서 다루는 42명은 일상인에게는 대부분 낯선 인물이다. 그렇기에 시대가 바라는 새로운 발상과 참신한 대안을 안겨주기에는 오히려 적격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면 이 시대의 논쟁거리인 것을 보면 저자가 철학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1장은 ‘노동의 종말에 대비하라’라는 도전적인 주제를 던진다. 예상할 수 있듯이 노동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AI 시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노동이 줄어드는 게 나쁜 일인가를 질문한다. 육아와 가사 노동 그리고 문학 등과 같은 시민 노동에 대해 시민 수당을 지급하자는 도깅ㄹ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제안을 소개한다. 돌봄·가사 등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노동을 임금 노동에 포함하자는 프랑스 사회학자 도미니크 슈나퍼의 주장을 가져온다. 2장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가상현실이 만드는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시대의 권력자가 누구인지, 영상 시대에서 이미지에 현혹되지 않는 법 등을 미셸 푸코, 발터 베냐민 등의 철학자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3장은 스토리텔링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야기하는 ‘서사가 살아야 한다’라는 주제를 가라타니 고진과 아널드 토인비 등의 석학의 목소리를 빌려 논쟁을 한다. 4장에서는 편견과 혐오의 시대를 넘어서는 법을 ‘형이상학적 욕망을 틔우라’라는 제목으로 설명하고 있다. 5장은 변화를 맞이할 때 흔히 나타나는 거부가 아닌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이렇게 저자는 각 장마다 현대 사회에서 불거지고 있는 여러 논쟁들을 과거 철학과 사상을 대입해서 해석하고 해결방법을 고민한다. 현대인이 처한 다양한 문제와 고민거리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 중동고에서 철학 교사로 30년째 근무하는 1세대 철학 교사다. 대중과 소통하는 임상철학자로 ‘철학으로 휴식하라’ ‘철학, 역사를 만나다’ 등 20여권의 교양서를 냈고,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AI는 어떻게 마케팅의 무기가 되는가서양수 / 1만8500원 / 260쪽챗GPT가 촉발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는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가 성공의 열쇠로 떠올랐다. 직종과 분야를 떠나 AI를 업무에 혹은 학업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이 책의 제목처럼 AI를 마케팅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AI의 도움으로 어떻게 브랜드 가치를 완성할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이 책은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9100편이 넘는 응모작이 들어온 종합 부문에서 대상으로 선정됐다. 마케팅 실무자들은 이 책에서 나이키·맥도날드·코카콜라 등의 글로벌 브랜드의 성공에 AI가 어떤 식으로 적용됐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명랑 주교 유흥식김민희·한동일 / 1만4000원 / 128쪽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후 차기 교황 후보로 거론된 한국의 유흥식 추기경을 알 수 있는 책이다. 유 추기경의 성장과정부터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일화 그리고 한국 교회가 나아갈 길 등을 담담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탁한 교황청 핵심 인사로 꼽히기 때문에 차기 교황 후보로 거론될 수 있었다. 저자 중 한명인 한동일은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라는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책 수익금 전액은 유 추기경의 요청과 두 저자의 뜻에 따라 자립 청년 주거사업 지원에 쓰인다. 사이렌스 콜크리스 헤이즈 / 1만9800원 / 424쪽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주의력 자본주의’의 실상이다. 일상에서는 쉽게 들어보지 못한 주의력 자본주의는 어쩌면 우리 일상에 이미 깊이 들어와 있다. 테크 기업들은 이미 기술을 사용해 사용자가 머무르는 시간에 값을 매기고 있고, 이를 광고주가 사고, 인플루언서는 타인의 관심을 현금으로 받는 시대다. 저자는 우리가 남들의 주의를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는지가 유일한 관심사가 된 시대라고 경고한다. 이 시대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철학과 심리학 등을 넘나들면서 독자들에게 인사이트를 준다. 저자인 크리스 헤이즈는 미국 정치 평론가이자 MSNBC의 뉴스 앵커이기도 하다.

2025.06.07 08:00

3분 소요
경제살리기를 위한 새 대통령의 책무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선서문 시작 문구인데요, 대통령의 으뜸 책무가 헌법을 수호하는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굳이 선서하지 않아도 당연하고도 가장 중요한 책무이지만 이를 저버린 대통령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대선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적 비상계엄’이라는 반헌법적 행위 때문에 치러졌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해당한다”며 윤 전 대통령을 파면했습니다.윤 전 대통령이 위헌·위법에 이르게 된 데는 자기편 얘기만 듣고 반대편의 말에는 귀를 닫고 일방통행식 통치를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불통(不通)’으로 인해 임기 5년을 채우지 못하고 탄핵되는 흑역사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그리고 민생도, 경제도, 외교도, 정치도 무너졌습니다.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반대편의 얘기도 듣고 하나로 모아가는 ‘소통(疏通)의 대통령’, ‘통합(統合)의 리더십’을 바라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헌재도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정문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해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고 했습니다.이재명 대통령이 소통과 통합의 대통령이 된다면 정치 안정 속에 민생도, 경제도, 외교도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올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를 잘 알고 있는데요, 취임 선서 직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일방통행이 아닌 소통·대화·양보·타협의 행보를 실천한다면 최악의 국내외 상황에 처해 있는 경제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첫날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며 행정명령 1호로 ‘비상경제대응TF’ 구성을 지시, 첫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또 ‘이재명 정부’를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로 규정하고,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과 네거티브(법률·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 중심의 규제 정책 등을 예고했습니다. 기업들이 극심한 내수 부진과 통상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 등 복합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 등 견해차가 큰 경제 법안의 재추진, 주 4.5일제와 정년 연장 등의 공약 현실화에 대한 경제계의 우려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경제계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없겠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실용적 시장주의에 부합하는 결과물이 도출되길 기대해 봅니다.

2025.06.07 06:00

2분 소요
영주 소백산철쭉제 성료... “자연과 도심 잇는 봄날의 힐링”

여행

5월의 마지막 주말, 영주 소백산철쭉제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쉼과 즐거움을 선사하며 축제의 막을 내렸다. 소백산과 서천둔치 일원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 시민과 관광객 1만여 명이 찾아, 늦봄 정취를 만끽했다.올해 축제는 철쭉이 만개한 소백산 자락에서 등산객을 맞이하는 환영행사와 이벤트로 시작됐다. 희방탐방지원센터에서는 축제 안내와 SNS 팔로우 이벤트, 안전산행 캠페인이 펼쳐졌고, 삼가야영장 입구에서는 설문조사와 함께 홍삼액 시음행사가 진행됐다. 풍기역 앞에서는 철쭉 부채 만들기와 갤러리 전시 등이 가족 단위 나들이객의 발길을 끌었다.전통문화 체험도 눈에 띄었다. 희방사역에서 죽령까지 죽령옛길 걷기행사가 열렸고, 죽령 장승공원에서는 죽령 장승제와 죽령길 개척자 죽죽을 기리는 죽죽제의가 열려 전통문화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했다.서천둔치 행사장에는 도심 접근성을 살려 '철쭉 피크닉존'이 조성됐다. 파라솔 쉼터와 푸드트럭, 어린이 체험 부스, 네일아트·페이스페인팅 부스 등이 운영돼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소백산국립공원 홍보부스와 장애 인식 개선 캠페인도 함께 진행돼 축제의 공공적 의미를 더했다.또한, 인기 가수 치즈와 V.O.S, 지역 예술인들의 피크닉 콘서트, 덴동어미 화전놀이, 철쭉 레크리에이션 등이 이어져 축제 분위기를 돋웠다. 포토존과 장미터널에는 봄의 정취를 담으려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이재훈 시장 권한대행은 "천혜의 자연을 품은 소백산과 아름다운 영주에서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봄의 끝자락을 즐길 수 있어 뜻깊었다"며, "앞으로도 철쭉제를 국내외에 널리 알려 더 많은 이들이 사람을 살리는 산, 소백산의 매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홍성철 기자 thor0108@edaily.co.kr

2025.06.02 16:35

2분 소요
울진군, 오는 7일 왕피천 피래미 축제 개최

여행

경북 울진에서 초여름 더위를 잊게 할 시원한 계곡축제가 열린다. 울진군은 6월 7일부터 이틀간 근남면 굴구지 산촌마을 일원에서 '왕피천 피래미 축제'를 개최한다.굴구지 산촌마을은 사방이 금강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오지 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맑은 왕피천이 흐르며, 최근에는 전국 최고의 트레킹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왕피천 피래미 축제는 온 가족이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 다같이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축제다.축제는 마을주민들이 전통방식을 살려 2008년부터 자발적으로 이어왔다. 대나무를 이용해 피래미를 잡는 낚시와 냇가에서 매운탕을 끓여 먹고, 멱도 감던 옛 여름풍경을 그대로 재현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주최한 전국 우수 농어촌 축제에 선정되기도 했다.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전통 대나무 피래미 낚시 체험, 풍년기원제, 보물찾기, 농산물 경매 등이 있다. 올해는 산악인 허영호와 함께하는 왕피천계곡 트레킹 체험도 준비돼 있다.손병복 군수는 "왕피천 피래미 축제는 마을 고유의 전통을 바탕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발전해 온 축제"라며 "올해 축제에서도 주민과 방문객 모두 좋은 추억을 만들기 바란다"라고 전했다.홍성철 기자 thor0108@edaily.co.kr

2025.06.02 16:31

1분 소요
도시는 시민이 선택한 정치를 닮는다[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전문가 칼럼

위기가 닥치면 정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그 해답을 보여준 사례가 바로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의 전 시장 롭 판 기이젤(Rob van Gijzel)이다. 2008~2016년 시장으로 활동한 그는 취임하자마자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아인트호벤을 세계적인 스마트시티로 변모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아인트호벤은 지역경제의 중심이던 필립스 등 대기업이 흔들리며 대규모 실업이 우려됐다. 판 기이젤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주요 기업 CEO들을 긴급히 불러모아 단기 근무제를 도입했다. 단기 근무제는 기업이 정규직 근로자의 근무 시간을 줄여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이는 해고 대신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숙련 인력을 유지하고, 정부의 보조금을 활용해 기업의 부담을 줄는 장점이 있다. 근로자에게는 고용 안정성과 일·생활 균형을 제공한다. 판 기이젤은 이 제도를 통해 아인트호벤 지역의 대량 실업을 방지하고 위기 극복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지식근로자 지원제도도 활용했다.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인재들이 조직 내에서 지속적으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교육‧지식 공유‧성과 보상 체계를 강화했다. 해고 대신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으로 고용을 지켜낸 것이다. 이 방안은 훗날 네덜란드 전체로 확산되며 위기 대응의 대표 사례가 됐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시민들을 변화의 주인공으로 세웠다는 것이다. 판 기이젤은 ‘마크트 메’(Maak’t Me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예산 사용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했다. 공원 조성부터 교육 프로그램까지,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졌다. 버려진 공간은 예술과 공동체 활동으로 되살아났고 스마트시티 기술은 시민들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판 기이젤의 리더십은 위기 앞에서 ▲빠른 결단력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 ▲그리고 시민을 믿는 용기까지 이 세 가지가 있다면 도시도 사람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피츠버그, 철강 도시에서 기술 도시로 한때 ‘강철의 도시’로 불렸던 미국 피츠버그는 1980년대 철강산업의 붕괴와 함께 깊은 침체에 빠졌다. 불과 3년 사이에 9만5000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고, 일부 지역의 실업률은 27%를 넘었다. 사람들은 해마다 수만 명씩 도시를 떠났다. 1990년대 초에는 도시 재정이 파탄 직전까지 몰렸다.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장으로 취임한 인물이 토마스 J. 머피 주니어(Thomas J. Murphy Jr.)다. 머피 시장은 위기를 도시 재설계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긴축이 아닌 투자로 대응했다. 그는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PPP’(Public-Private Partnership) 모델을 도입해, 총 45억달러에 달하는 민간 투자를 유치했다. 그 중심에는 도시의 핵심 자산이었던 황폐한 철강공장 부지 재개발이 있었다. 그는 이 부지를 매입해 상업·주거 복합단지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 중 하나인 ‘사우스사이드 웍스’(Southside Works)는 과거 그의 아버지가 근무했던 철강공장을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시킨 사례였다. 인상적인 점은 이 모든 일이 피츠버그가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재정위기 도시로 평가받던 시기에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시 예산의 25%가 부채 상환에 쓰이던 상황에서 과감히 펜실베니아 주정부의 Act 47 재정위기관리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외부의 엄격한 재정 감시를 수용하는 대신, 장기적 도시 재생을 위한 정책적 자유를 확보했다. 머피는 도시의 하드웨어뿐 아니라 경제 생태계 자체를 바꾸는 데에도 집중했다. 그는 지역의 유명 대학인 카네기멜론대학과 피츠버그대학과 협력해 첨단 기술 기업들을 도시로 끌어들였다. 구글‧애플‧우버 등 글로벌 혁신 기업들이 피츠버그에 연구센터를 설립하며 도시의 경제 구조는 철강에서 기술과 지식 산업으로 급격히 변화했다. 도시의 환경을 더욱 살기 좋게 개선하는 데도 힘썼다. 시민들을 위해 25마일에 이르는 자전거와 보행자 트레일을 강변에 조성하고 도시 전역에 녹지 공간을 확대했다. 처음에는 시민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프로젝트는 도시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받았다. 머피 시장은 어려운 결정과 비판을 감내하면서도 긴 호흡으로 도시의 미래를 설계한 것이다.우리가 만나는 미래, 결국 우리가 선택한 정치의 결과두 사례는 모두 위기 속에서 도시의 미래를 재설계한 리더들의 이야기다. 산업 쇠퇴와 경제 불안 속에서도 장기적 관점의 정책을 추진하며 시민 중심의 전환을 이끌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판 기이젤은 시민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조율형 리더십’이었다면, 머피는 결단과 추진력 중심의 ‘실행형 리더십’이었다. 전자는 신뢰와 합의, 후자는 속도와 방향성이 강점이었다. 도시를 바꾸고 살린다는 목표는 같았지만 리더십의 성향은 달랐던 것이다. 지금 이 도시들은 그들이 선택한 리더십을 닮은 모습을 띠고 있다. 정치 리더를 선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가 내리는 정치적 선택이 곧 우리가 살아갈 도시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도시 하나도 이처럼 리더의 철학과 결단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리더는 누구일까?중요한 것은 정당의 색깔이나 이념보다 실제로 위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는 일이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민을 설득하며 미래를 위해 당장은 인기 없는 결정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있는 후보.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공공과 민간, 중앙과 지방의 역량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후보. 우리는 그런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나 연장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위기 앞에서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는 시간이다. 우리 삶의 기반이 되는 도시를 살린 리더십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멀리 보고 꾸준히 가는 정치인, 분열대신 통합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은 물론 야당과도 소통하며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리더를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다. 내가 던진 한 표가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준다. 우리가 만나는 미래는 결국 오늘 우리가 선택한 정치와 시민 참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2025.06.0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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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하려면…”틈새 시장 노려야” [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전문가 칼럼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들어온 이후 가장 큰 생활의 변화는 집에서 편하게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전 세계에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할 수도 있고 더 이상 무거운 것들을 들고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도 없어졌다. 편하게 집에서 앉아서 필요한 물건들을 검색하고 가격을 비교하고 주문하면 끝이다.1990년대 후반 인터넷 망이 깔리기 시작하고 컴퓨터의 보급이 보편화된 지역에서는 그때부터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지만 동남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은 스마트폰의 보급이 본격화된 2010년 초반에 가서야 그 편리함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동남아시아의 전자상거래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필자가 2015년 처음 싱가포르로 이주했을 때 3%가 되지 않았던 전자상거래의 침투율은 현재 20%가 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부국가는 3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남아 전자상거래 기업 일부만 생존 그 흐름에 따라 생겨나기 시작했던 많은 이커머스 업체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몇 개만이 남았다. 그중 당시 후발 주자였던 쇼피는 동사의 모회사인 SEA의 2017년 나스닥 상장이후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나머지가 뒤따르고 있다. 전자상거래는 나누자고 한다면 1세대~3세대 모델로 나눌 수 있다. 1세대는 단순 중개 플랫폼이다. 소비자와 판매자를 단순히 연결시켜주고 판매자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는 구조이다. 미국의 이베이, 한국의 G마켓을 생각하면 된다. 2세대는 아마존, 쿠팡과 같은 모델이다. 플랫폼과 더불어 자체 창고와 물류사를 가지고 풀필먼트(Fulfillment)라고 하는 상품의 입고부터 보관· 포장·배송·반품에 이르기까지 고객 주문의 전 과정을 물류 전문 업체가 대행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모델은 창고, 자체 차량 등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하다. 3세대 모델은 소위 커뮤티티형으로 불리는 것으로 공통의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 구매 등을 통해 소비를 주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업체는 중국의 판둬둬, 틱톡 등이 있다. 2024년 동남아시아 전자상거래 시장에 중요한 전환점이 도래했다. 지난 10여 년간 적자 운영을 이어온 대표 플랫폼들이 마침내 수익성을 달성하였다. 라자다는 2024년 7월 첫 월간 흑자를 기록했고, 쇼피도 2024년 4분기에 흑자전환을 알렸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네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시장의 과잉 경쟁이 정리되며 상위 플랫폼 중심으로 통합이 이뤄졌고, 둘째, 쇼피를 필두로 판매 수수료 인상이 단행되어 수익성이 개선됐다. 셋째, 물류 내재화와 같은 핵심 분야에 집중 투자한 전략이 주효했다. 넷째, 틱톡숍과 테무 같은 신흥 플레이어들의 영향력은 아직 제한적이다. 2017년 싱가포르에 진출한 아마존은 더 이상 이 지역에서 확장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동남아 전자상거래 1세대 모델 2세대 전환 느려 쇼피와 라자다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전자상거래업체는 1세대 모델이다. 쇼피는 비록 SPX라고 불리는 자체 물류회사를 가지고 있고 여기에 많은 투자를 하기는 하지만 2세대 모델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대신 연 10%가 넘는 이율을 받는 할부서비스 등 핀텍 분야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쇼피에서 쇼핑을 해보면 1,000원짜리 제품을 사도 몇 개월 할부가 가능하다. 쇼피가 흑자전환에 성공을 한데에는 수수료 인상이 가장 크게 작용을 했다. 쇼피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당시 강자였던 큐텐, 라자다에 비해 현저히 낮은 판매자 수수료, 무료 배송을 통해 급격히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하지만 굳건한 1인자가 된 이후에는 판매자 수수료를 급격히 올리기 시작했고 현재는 광고비를 포함했을 때 판매자로부터 판매가의 약 40%를 가져간다. 광고비는 광고를 하지 않으면 플랫폼에서 노출이 되지 않기 때문에 판매자로서도 지출을 해야만 하는 비용이 되었다. 자체 물류사를 통해 배송은 하지만 여전히 절반이 넘는 물량은 다른 물류사에 위탁을 한다. 쇼피의 압도적인 물량에 물류사들은 매우 낮은 가격으로 배송을 해주고 있으며, 이는 그 물류사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즉 쇼피는 현재 판매자들과 물류사들의 이익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 이 구도는 쉽게 흔들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징둥이 30% 지분을 가지고 있는 쇼피와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라자다는 중국의 상품 및 판매자 소싱에 대한 강력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라자다는 필요할 경우 알리바바로부터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 제조업기반이 약해 자체 생산 상품 및 브랜드가 거의 없는 동남아시아에겐 중국의 물건이 없이는 현재로서는 전자상거래의 운영이 쉽지 않다. 벤치마킹을 할 수 있는 중국의 이커머스 시장의 변화에서도 보면 과거 알리바바와 JD가 20년간 시장을 지배하였으나 현재는 2세대 없이 3세대 플레이어들과 시장을 나눠가지고 있다. 현재 동남아시아에서는 틱톡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큰 위협은 되지 않고 있고 현지 관련 스타트업은 보이지가 않는다.한국 기업들에게도 이 흐름은 시사점이 크다. 동남아 진출을 노리는 한국의 스타트업이나 ▲물류 ▲결제 ▲광고 솔루션 기업들은 플랫폼과의 ‘경쟁’이 아닌 ‘틈새’를 찾는 전략이 절실하다. 또한, 수익성과 시장지배력의 역설 속에서, 디지털 경제가 단순한 팽창이 아닌 내실과 생존의 국면에 들어섰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25.06.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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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에 아이들이 울고 있다”...중학교 폭력, 고등의 2.5배 증가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지난해 중·고등학교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심의 건수가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학교의 폭력 발생 건수와 처분 비율은 고등학교에 비해 3배에 달해 경각심이 요구된다. 대학입시에서 학교폭력 관련 처분은 실질적 감점이나 지원 제한 등 치명적 불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 모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교육부와 관련 기관에 따르면, 2024년 전국 2380개 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으로 인해 실제 심의가 진행된 건수는 1만660건으로, 2023년 8604건에 비해 23.8%(2056건) 증가했다. 같은 해 실제 처분 건수는 1만2975건으로, 전년(1만1258건) 대비 15.3%(1717건) 늘어났다. 이는 한 건의 심의에 복수 인원이 포함되고, 중복 처분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심의 유형별로는 고등학교에서 언어폭력이 31.1%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체폭력(27.3%) ▲사이버폭력(14.1%) ▲성폭력(11.7%) ▲금품갈취(3.9%) ▲강요(3.9%) ▲따돌림(3.1%) 순으로 집계됐다. 특히 사이버폭력은 전년 대비 52.9% 증가했고, ▲성폭력 46.3% ▲따돌림 34.6% ▲언어폭력 23.5%가 증가하며 전반적인 폭력 양상이 심화되고 있다.고등학교 단계에서 내려진 처분 중에서는 2호 ‘접촉·협박·보복행위 금지’가 27.3%로 가장 많았으며, ▲1호 ‘서면사과’(19.6%) ▲3호 ‘학교봉사’(18.8%) ▲5호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18.1%)가 주요 유형이었다. 이 중에서도 3호 학교봉사는 전년 대비 24.1%, 2호는 16.8%, 5호는 16.2% 증가해 경고 수준 이상의 조치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폭력…중학교가 ‘진앙지’중학교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24년 중학교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심의 건수는 2만7624건으로, 고등학교의 2.5배를 넘어섰다. 이는 전년(2만1651건) 대비 27.5%(5973건) 증가한 수치다. 실제 처분 건수는 3만5752건으로 고등학교의 3배 가까이에 달한다. 중학교의 처분 건수 역시 2023년 3만302건에서 18.0%(5450건) 증가했다. 중학교 심의 유형별로는 신체폭력이 30.9%로 가장 많았다. 이어 ▲언어폭력(29.3%) ▲사이버폭력(11.6%) ▲성폭력(9.2%) ▲금품갈취(5.9%) ▲강요(5.1%) ▲따돌림(3.9%)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중 따돌림은 전년 대비 52.4%나 증가했고, ▲사이버폭력 46.1% ▲금품갈취 32.3% ▲강요 30.6% ▲언어폭력 29.9% ▲성폭력 28.4% 등이 증가해 전반적인 심각성이 확인됐다.중학교의 실제 처분 유형으로는 2호 ‘접촉·협박·보복행위 금지’가 29.2%로 가장 많았다. 이어 ▲3호 ‘학교봉사’(20.9%) ▲1호 ‘서면사과’(20.1%) ▲5호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13.0%)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특히 7호 ‘학급교체’는 전년 대비 37.8% 증가했으며, 3호 학교봉사는 24.2%, 1호 서면사과는 19.0%, 4호 사회봉사는 18.0% 늘었다. 퇴학 처분도 1명에서 4명으로 증가하며 엄정한 대응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학교폭력 처분은 대학 입시에서 결정적인 불이익으로 이어진다. 서울대는 1호부터 9호까지 모든 처분에 대해 정시와 수시 전형에서 정성 평가 반영을 명시하고 있다. 연세대와 고려대도 수시 학생부교과전형 등에서 모든 처분에 대해 지원 자체가 제한되거나 감점 처리된다. 정시 전형에서도 연·고대는 물론, ▲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등도 관련 처분 이력을 기준으로 실질적 불이익을 준다. 고교 입시 단계에서는 일부 영재학교에서만 전형 요강상 불이익이 명시돼 있으며, 특목고나 자사고에서는 현재까지 구체적 명시 사항은 확인되지 않았다.학교폭력 발생이 중·고등학교 모두에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단순히 입시 불이익 차원을 넘어 학습과 성장 과정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다. 특히 갈수록 사회 전반에서 사법적 정의와 윤리의식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고 있어, 학교폭력은 단순 청소년기 일탈이 아닌, 사회 진출 이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5.06.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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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4점 전부가 위작이었던 희대의 미술품 사기 사건 [백세희의 컬처&로(LAW)]

전문가 칼럼

최근 필자를 찾는 미술품 위작 상담이 늘었다. 위작은 콜렉터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폭탄이다. 판매자와 구매자의 평판을 모두 갉아먹는 사건인지라 당사자 사이에서 조용히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더라도 규모가 큰 사건은 화제가 되기 마련이다. 미술품 구매자, 즉 콜렉터가 아니더라도 미술시장을 공부하거나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아마도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희대의 사기 사건이 있다. 2005년에 시작돼 무려 12년 동안이나 다툼이 이어지다가 2017년 여름, 대법원의 판결 선고로 종지부를 찍은 ‘화가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위작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사건 초반에는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워낙 긴 시간에 걸쳐 공방이 이어지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도 점차 희미해져 갔다. 이에 사람들은 결론이 나긴 났는지, 어떻게 났는지, 그 내용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번 칼럼에서는 ‘화가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위작 사건’의 전말을 훑어보고, 이를 배경으로 하여 작품의 진위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 즉 미술품의 감정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이중섭 미발표작 전시회 추진...시작된 위작 재판화가 이중섭의 50주기(2005년)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고서연구회의 K 명예회장은 2004년 방송사 SBS에 이중섭의 미발표작 전시회를 제안했다. 그는 일본 도쿄에서 표구점을 운영 중이던 이중섭의 차남 L을 찾아가 자신이 소장하던 이중섭의 그림을 보여줬고, L은 K 회장이 보유한 모든 그림이 진품이 맞다고 SBS에 확인해줬다. 몇 달 뒤, L은 이중섭의 유작이라며 그림 8점을 서울옥션 경매에 내놨는데, 이때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이들 그림이 모두 위작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L은 유족이 50년 동안 보관해왔다는 이중섭의 미발표작 20여 점도 새로 공개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4점이 K 회장이 SBS에 보여줬던 작품과 같은 것으로 드러나 문제의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다.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L이 K 회장으로부터 위작을 넘겨받은 뒤에 이를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검찰에 수사를 촉구했다. 이에 L은 위 감정협회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며 지리한 법적 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감정 결과와 이에 대한 불복이 이어지는 와중에, K 회장은 이중섭과 박수근의 그림을 추가로 공개했다. 그는 자신이 1970년대 초에 인사동 고서점에서 집 1채 값에 달하는 금액으로 이 그림들을 묶음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이때 비로소 박수근의 그림도 등장해 이 사건의 통칭이 ‘화가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위작 사건’이 됐다.(이는 대법원의 판결문에서도 쓰인 명칭이다) 박수근의 아들 박 모 씨는 K 회장이 공개한 박수근의 그림이 위작이라며 K 회장을 고소했다. K 회장도 박 모 씨와 감정협회를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하며 사건은 복잡하게 얽혀갔다. 검찰은 2005년 10월에 표본 작품들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감정 의뢰했고, 이들 기관은 표본 작품들을 모두 위작으로 판단했다. 검찰이 본격적으로 K 회장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결과 약 2800여 점에 달하는 이중섭과 박수근의 그림을 찾아냈다. 전문가들의 감정 끝에 압수한 2800여 점의 그림들은 전부 위작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검찰은 2007년 10월 K 회장을 구속 기소하고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일본 국적의 L에게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1년 반 정도 진행된 재판 끝에 1심 재판부는 2009년 2월 K 회장에게 사기죄, 위조사서명행사죄, 무고죄 등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명했다. K 회장은 이에 불복하여 항소(2심), 상고(3심)를 제기했지만, 항소심 법원과 상고심 법원(대법원) 이를 모두 기각하고 그의 유죄를 확정지었다.(대법원 2017. 7. 18. 선고 2013도1843 판결)법원이 이 사건의 그림 2800여 점 모두가 위작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일까? 사실인정은 법관의 전속적인 권한이지만 미술품 감정의 경우처럼 특별한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한 때도 종종 있다. 재건축 사건의 경우 보상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시가 감정,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의 유사성 감정 등이 그 예이다. 이때 법원은 감정인을 위촉하여 그 판단을 구한다. 법관이 감정인의 판단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감정인의 감정 결과가 대부분 사실인정의 기초자료가 됐다. 그래서 법원은 소송의 양 당사자에 중립적인 감정인을 위촉하고자 노력한다. 각각의 당사자가 별개로 감정 신청을 하여 법관이 이를 종합하여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화가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위작 사건’으로 돌아오자. 이 사건 판결문에서 법원은 “안목감정, 과학감정 및 자료감정에서 나타난 사항들을 면밀히 종합해 보면 가짜 그림이라고 봄이 타당하고, 피고인도 이를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미술품의 진위 여부에 대한 감정은 자료감정과 안목감정이 주를 이루고 작품의 상태에 비추어 가능할 경우 과학감정도 이뤄진다. 하나하나 살펴보자.자료감정과 안목감정의 차이자료감정은 다른 말로 ‘출처조사’라 한다. 말 그대로 해당 작품 소유권의 역사 등을 거래기록, 카탈로그 레조네 등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다. 감정에서 작품의 소장 이력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은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과정이다. 출판 서적이나 관련 기사 등을 통해 작품에 대한 과거의 기록이 있는지 찾아보고, 그 기록들과 작품 소유자의 소장 경위 등의 진술 사이에 서로 모순되는 점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까지는 작가별로 작품 전체를 등록하는 카탈로그 레조네가 법제화돼 있지 않다. 따라서 판매 기록, 전시회와 경매 도록, 작가의 아카이브 등 여타 접근 가능한 기록들과 소장 이력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료감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법원은 자료감정 결과를 진품 인정의 유일한 증거가 아닌 ‘유력한 증거 중 하나’로 다루곤 한다. ‘화가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위작 사건’에서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출판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에 등장하는 두 팔로 물고기를 안고 있는 그림은 1952년 10월 한 잡지와 1955년 이중섭 개인전 포스터와 전시안내장에 사용됐다. 그런데 이 포스터와 안내장의 그림들은 K 회장의 그림과 좌우가 바뀌어 있다. 좌우가 바뀐 그림은 이중섭의 작고 이후 발간된 화집 『한국 현대미술 대표작가 100인 선집』에 수록된 것과 일치하는데, 위 선집에서 좌우가 바뀐 그림이 사용된 이유는 원작을 촬영할 때 제작진이 실수로 원화를 촬영한 도판의 필름을 뒤집어 인쇄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위작 화가는 위 선집의 그림을 그대로 모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바로 발표된 출판 서적을 종합하여 판단한 것으로서 자료감정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지금까지 밝혀진 진품의 숫자도 근거가 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작가들의 작업일지 등을 조사했으며, “진품 수에 비해 피고인이 보유하고 있는 작품의 수가 너무 많은 점”도 그림들이 가짜로 보이는 근거로 들었다.안목감정은 미술 전문가의 지식, 경험, 직관에 기초한 판단이다. 진품 여부를 결정하는 매우 결정적이고 중요한 감정 방법이지만 주관적인 평가이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판사들을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전문가가 ‘딱 봤을 때 너무 조악합니다. 아닙니다’라고 말하는데, 이걸 어떻게 판결문에 옮길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안목감정은 스타일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검토한다. ▲예술적인 스타일 ▲품질 ▲색채의 사용 ▲화풍 ▲주제와 소재 ▲물감의 종류 ▲물감의 터치 등등을 종합적으로 전문가의 눈으로 보아 판단하는 것이다. 이중섭·박수근 사건에서도 감정협회는 ‘감정 목적물은 선의 필치에서 이중섭 특유의 표현과 속도감이 나타나지 않고, 인체의 특징을 파악하지 못해 조악하게 복제되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재판부도 20~30년간 두 작가의 작품을 접해온 전문가가 평가하는 안목감정 결과를 활용했다.과학감정은 과학자들에 의해 객관적인 절차를 거치는 방법이다. 작품의 상태가 여러 과학실험 과정을 거칠 수 있을 때 실시한다. 비교적 오래된 작품의 경우에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세라믹이나 점토로 이뤄진 작품(조각이나 골동품)에 적용 가능한 열발광 분석 ▲유화를 사용한 그림에 화가 특유의 필치를 확인해 볼 수 있는 X선 투사 ▲수정하거나 덧칠한 부분 등을 알 수 있는 자외선과 적외선 사용법 ▲재료를 화학적으로 분석해 화가가 그림을 그렸던 시대와 맞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재료 분석 등이 주된 방법이다. 이중섭·박수근 사건의 경우 감정협회는 “이중섭의 그림에는 펄 물감이 사용된 적이 없는데 위작은 펄 물감으로 채색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도 “이중섭·박수근의 생전에는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물감이 칠해져 있는 것도 있다”고 판시하며, 박수근 화백이 사망한 1965년 이후인 1984년부터 미술용 물감에 들어간 티타늄과 규소 성분을 찾아낸 X선 형광 분석기 확인 결과, 현미경 관찰, 적외선 촬영 등을 활용한 과학감정 결과를 받아들였다. 미술진흥법 시행에 따른 미술품 감정 제도 변화‘화가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위작 사건’은 작품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국내의 다른 사건들에 비하면 비교적 깔끔하게 끝난 편이다.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한 편의 드라마로서 그 결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작품 공개 → 가짜인가? → 감정 → 전부 가짜’라는 단순한 서사 때문에 적어도 우리에게는 단순명료한 결말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중섭의 차남인 L에 대한 처분은 최종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뭔가 미심쩍은 것들이 완전히 규명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위작 사건은 작가 본인에게 엄청난 심리적·경제적 타격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적 문화 인식 수준을 의심받을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내에는 미술품의 감정평가가 공신력 있는 특정 기관이 아닌 여러 화랑 혹은 사설 기관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문제점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작가별로 작품 전체를 등록하는 카탈로그 레조네가 법제화된 다른 국가들과 달리 우리의 경우 객관성이 떨어지고 각 기관마다 진위 판정이 서로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국가가 개입하여 특정 기관을 감정연구센터로 지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실제 법률의 제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그러는 와중에 2024년「미술진흥법」이 제정됐다. 위 법은 미술품 감정업을 하는 자에게 미술품 잠정을 의뢰한 자나 다른 미술 서비스업자로부터 독립하여 공정하게 감정을 하도록 하는 등의 의무를 부여한다. 나아가 통합미술정보시스템의 구축과 운영의 권한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부여해 정부가 미술품 정보의 객관적인 관리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미술진흥법」은 제정 후 시행된 지 불과 1년이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법이 시장의 위작 문제를 얼마나 줄여줄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기존 사설 감정기관에 위반시 처벌 규정도 없는 의무 몇 개를 부여한 것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있고, 통합미술정보시스템이 실제로 언제 구축될지도 미지수라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길 바랄 수는 없다. 2834점이 모두 위작으로 판명난 이중섭·박수근 그림 위작 사건을 겪고도 수년 동안 아무런 변화도 없던 과거를 돌이켜 보자. 이제야 첫 발을 뗀 미술진흥을 위한 국가의 노력을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2025.05.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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