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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 높은 빌딩들 사이 한복판에 조용히 자리한 레스토랑 ‘콩두’.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이 공간은 오롯이 한식을 말한다. 입구 한쪽엔 작은 장독대와 300년 된 간장 종지가 놓여 있고, 내부는 전통적이지만 결코 올드하지 않은, 세련된 절제의 미학을 품고 있다.향긋한 들기름 냄새와 정갈한 백김치, 섬세하게 정리된 나물 한 접시. 그리고 묵직한 황동 솥에 담긴 전복 미음과 제철 나물 비빔밥까지. 콩두의 식탁은 단순한 요리가 아닌 하나의 서사다. 각 메뉴는 오래된 장독대의 기억과 어머니 손맛, 그리고 지역의 역사와 계절이 담긴 한 폭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그 식탁 앞에 앉은 외국인 손님들의 표정은 놀라움 그 자체다. “이 요리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왜 이 김치는 이렇게 부드럽고 담백하죠?” 식재료 하나하나에 깃든 의미와 문화적 맥락을 하나씩 풀어낼 때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멈추지 않는다. 바로 이 감동의 순간들, 이 작은 문화적 공감들이 모여 한식의 세계화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한윤주 콩두 대표가 있다.한식의 실험실이 된 레스토랑 ‘콩두’
서울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콩두는 한윤주 대표가 20년 넘게 일궈온 철학의 결실이다. 그는 “왜 한국 음식은 고급화되지 못하나”라는 질문 하나로 전국의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장류를 배우고, 농촌의 재래시장을 돌며 진짜 재료를 탐구했다.그렇게 만들어진 콩두의 식탁은 느리고 조용하지만, 그만큼 깊다. 계절 따라 바뀌는 제철 나물, 직접 담근 장, 장독의 세월이 깃든 음식 하나하나에 그의 시간과 철학이 담겨 있다. 대통령 외빈 만찬의 한상차림으로 선정된 콩두의 음식은 외교의 장에서 한식의 품격과 정서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한 대표는 한식을 단지 맛있는 요리가 아닌 브랜드로 인식한다. 그래서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및 한식진흥원과 함께 ‘한식 콘텐츠 번역 플랫폼’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단순한 조리법 전수가 아니라, ‘철학과 맥락, 감정과 서사’를 함께 가르치는 구조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한식을 레시피 중심으로만 가르쳐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음식을 설명하는 언어도 바뀌어야 합니다.”그의 관심은 이제 관광으로 확장된다. “한식은 국가관광의 전략 콘텐츠”라며, 그는 남도의 장류, 강원의 전통주, 경북의 한옥 다이닝 등 지역성과 문화성을 담은 체험형 미식관광을 기획 중이다. “한식은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진짜 한식은 땅에 있고, 장독에 있고, 계절에 있어요.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그는 패션 디자이너 출신으로서 감각과 창의성은 넘쳤지만, 식당 경영은 처음이었다. 좋아하는 일도 막상 일이 되면 고민과 어려움이 따르는 법이었다. 하루아침에 쏟아진 인기에 즐거움과 함께 부담도 찾아왔다. “집에서 30명분 음식을 만드는 건 문제도 아니었는데…,” 라며 그는 웃지만, 정작 매일 수많은 손님을 상대하며 식자재 관리부터 직원 교육까지 신경 써야 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삼청동 한옥에서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 콩두라는 이름 아래,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음식’이라는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한식은 철학 없이 유행만 좇아
그는 요즘 세계 미식 트렌드 속에서 한식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감지한다. “이제는 한 끼 식사를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는 시대”라며, 음식이 단순한 영양소가 아니라 목적지이자 콘텐츠, 체험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렇기에 그는 한식이 ‘어떻게 만들까’보다 ‘왜 이렇게 만들었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한 대표는 K-푸드의 세계적 인기에 대해 “조심스럽게 바라본다”고 말한다. “한식은 철학 없이 유행만 좇고 있다”는 그의 말은 지금의 ‘K-푸드 신드롬’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단순한 확산을 넘어선 해석과 설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맛이 아닌 맥락, 조리법이 아닌 시간과 정서를 세계에 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사람들이 스시를 먹으며 일본을 떠올리듯, 김치를 먹으며 한국의 계절과 기후, 문화를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한식의 세계화가 진짜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그의 메시지는, 한식이 단순한 ‘음식’이 아닌 ‘문화의 언어’가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된장과 간장은 수개월, 때로는 수년을 기다려야 완성됩니다. 한식은 기다림과 정성을 재료 삼아 탄생하는 ‘시간의 음식’입니다.” 그는 프렌치처럼 레시피가 명확하고 빠른 완성을 지향하는 요리와는 달리, 한식은 그 자체가 느리고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손맛, 장맛, 계절감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이 중심이기 때문이다.한식의 세계화는 단순한 언어 번역이 아닌 ‘문화 번역’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치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김장이 왜 생겼고, 겨울을 어떻게 준비했는지까지 설명되어야 의미가 살아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그가 자주 언급하는 ‘번역력’이다. 단순한 단어의 변환이 아니라, 정서와 이유, 서사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의 문제다.인터뷰의 마지막, 그는 조용히 되묻는다. “우리는 종종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죠.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 문화를 얼마나 잘 설명하고 있을까요?”한윤주 대표는 한식 세계화를 ‘자기 존중’의 문제로 본다. 우리가 우리 것을 믿고, 사랑하고, 자랑할 수 있을 때 세계도 그것을 존중하게 된다는 믿음이다. “세계화는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됩니다.”지금의 K-푸드는 세계로 확산되고 있지만, 그 속을 채울 언어와 철학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김치 한 조각, 된장 한 숟갈 뒤에 숨은 계절과 사람, 기억과 문화까지 전달되어야 한다. 한식의 세계화는 이제 ‘어떻게 만들까’가 아니라, ‘왜 이렇게 만들었나’를 묻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제, 그 물음에 우리 스스로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