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승소율 90%라더니 6247억 토해냈다…공정위 통계의 착시
- [공정위는 공정한가]④
처분 일부 취소돼도 승소로 집계…전부 승소율과 최대 20%p 차이
대형 과징금 잇따라 취소…건수 아닌 ‘처분 유지율’ 공개 필요
[이코노미스트 권지예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법 집행의 정당성을 설명할 때 앞세우는 지표가 있다. 90%대를 넘나드는 행정소송 승소율이다.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기업이 제기한 소송 10건 가운데 9건에서 공식적으로 승소했다는 의미다.
공정위는 지난 8월 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가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최근 5년간 확정판결 건수 기준 승소율이 92.2%라고 보고했다. 비교 대상으로 제시한 2025년 말 기준 전 부처 행정소송 전부 승소율은 59.0%였다.
그러나 두 수치는 집계 기준부터 다르다. 공정위 승소율에는 법원이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일부를 취소한 ‘일부 승소’가 포함된 반면 전 부처 통계는 전부 승소율이다. 사건 수 기준 승소율은 높지만 실제 과징금이 얼마나 유지됐는지도 알기 어렵다.
2017년부터 2025년 8월까지 공정위가 기업에 돌려준 과징금은 6247억원에 달한다. 과징금을 환급하면서 지급한 이자 성격의 환급가산금도 474억원으로 집계됐다. 거액 과징금 처분이 잇달아 법원에서 취소되거나 감액된 셈이다. 단순히 몇 건을 이겼는지가 아니라 최초 처분과 과징금이 최종적으로 얼마나 유지됐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건수’ 챙기고 ‘액수’ 깎인 일부 승소
공정위 공식 통계연보에 따르면 확정판결 기준 행정소송 승소율은 2021년 90.9%, 2022년 91.1%, 2023년 89.6%, 2024년 92.8%, 2025년 94.1%를 기록했다. 전부 승소와 일부 승소를 합산한 수치다.
문제는 일부 승소의 성격이다. 법원이 법 위반 사실이나 시정명령은 인정하면서도 과징금 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일부 또는 전부를 취소하는 경우가 있다. 공정위는 처분의 핵심이 유지됐다며 이를 승소로 분류하지만 기업이 소송을 하는 이유가 과징금을 줄이거나 취소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패소나 다름없다.
전부 승소만 따지면 수치는 달라진다. 2022년과 2023년 전부 승소율은 각각 70.9%, 70.1%로 공식 승소율보다 약 20%포인트 낮았다. 2024년과 2025년에도 각각 83.1%, 89.1%로 공식 승소율을 밑돌았다. 과징금 감액 규모를 보여주는 별도 통계가 없어 실제 처분이 어느 정도 유지됐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위가 완전 패소가 아닌 일부 승소까지 승소로 집계하면서 전체 승소율이 높아지는 착시가 발생한다”며 “사건 수 기준 승소율이 높더라도 실제 과징금 유지율은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쿠팡·웰스토리 등 ‘전액 취소’ 패소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5년 8월까지 공정위가 기업에 돌려준 과징금 순환급액은 6247억원이다. 행정소송 패소에 따른 금액이 4436억원, 직권 취소에 따른 금액이 1389억원으로 전체의 93.2%를 차지했다. 환급가산금도 474억원에 달했다.
대법원은 최근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5억4000만원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공정위는 웹소설 공모전 당선 작가들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제한했다고 봤지만 법원은 이를 민사상 계약관계로 판단했다.
쿠팡에 부과된 과징금 약 33억원도 취소됐다. 서울고등법원은 2024년 2월 쿠팡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모두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삼성웰스토리 급식 일감 몰아주기 사건에서는 삼성웰스토리와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에 부과된 과징금 2349억여원이 전액 취소됐다. 공정위는 2021년 삼성전자 등 4개 계열사가 삼성웰스토리를 부당하게 지원했다고 판단했지만, 서울고법은 올해 4월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모두 취소했다. 다만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SPC그룹 부당지원 사건에서는 과징금 647억원 전액 취소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SK실트론 사익편취 사건에서도 SK㈜와 최태원 회장에게 부과된 과징금 총 16억원과 시정명령이 최종 취소됐다.
사건별 사실관계와 판결 이유는 다르지만, 공정위가 제시한 법리와 증거만으로는 제재의 전부 또는 핵심 근거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형 과징금 처분이 법원에서 취소되면 해당 기업뿐 아니라 시장에도 혼선이 생긴다. 제재 발표를 토대로 이뤄진 거래와 투자 판단의 전제가 뒤늦게 흔들리고, 공정위의 조사·제재 역량과 법 집행에 대한 신뢰도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봉의 교수는 “공정위 심사관은 행정 공무원의 관점에서 법률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유인이 있다”며 “무혐의 판단에 따른 책임 부담도 적극적인 제재로 기울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은 행위의 부당성과 증거에 의한 입증 여부를 엄격하게 따진다”며 “정책적 필요성을 고려하는 행정기관과 법률·증거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법원 사이에서 시각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납률 45.9%…소송으로 묶인 과징금
국회예산정책처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공정위의 과징금 징수결정액은 7926억원이었지만 실제 수납액은 3636억원으로 집계됐다. 공식 수납률은 45.9%다.
공정위는 미수납액 4290억원 가운데 1615억원은 납부 기한이 도래하지 않았고, 1876억원은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에 따른 징수유예액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제외한 실질 수납률은 82%라는 입장이다.
미수납액 전체를 징수 실패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징수유예액이 1876억원에 달한다는 것은 고액 과징금을 둘러싼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법원이 처분을 취소하면 징수가 무산되고 이미 납부된 금액은 환급가산금과 함께 돌려줘야 한다.
공정위는 대형 사건의 처분 취소와 과징금 환급을 막기 위해 조사부터 소송까지 단계별 대응 체계를 정비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현재 공개되는 사건 건수 중심의 승소율만으로는 실제 제재 성과를 충분히 판단하기 어렵다. 법원이 최종적으로 인정한 과징금 규모와 당초 부과액의 차이까지 제시해야 법 집행의 완성도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교수는 “일부 승소를 포함한 승소율만으로는 공정위 처분이 어느 정도 인정됐는지 알기 어렵다”며 “과징금 유지율과 처분 취소 사유를 함께 공개해야 법 집행의 실질적인 성과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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