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금융시장은 트럼프발 관세 불안이 소멸된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신흥국 증시가 상호관세 부과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특히 미국 증시는 보란 듯이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패권국가로서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당초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에 유화책을 쓰지 않고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는 등 맞불 작전으로 치킨게임 양상을 보인 바 있다. 이후 미-중은 제네바(5.11일)와 런던 협상(6.10)을 통해 상호 관세를 115%포인트(p) 인하하고 반도체와 희토류 수출 규제도 완화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미-중 양국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을 앞두고 신경전을 벌인 것처럼 희토류,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힘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장기전에 돌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에서는 트럼프의 궁극적인 목표가 결국 중국 견제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 들어 국제 정부 회의에서 미국만 발언하고 그 발언 내용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우리 당국자의 언급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세계는 미국을 다시 본다최근 트럼프의 글로벌 관세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귀결되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에서 리딩국가 미국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 미국의 여론 조사기관 Morning Consult의 2025년 6월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44개 국가 중 38개국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하락했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34개국에서 중국의 호감도는 오히려 상승했다는 점이다.이러한 정서 변화가 반영된 조사 결과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덴마크 DPI(Democracy Perception Index)가 96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76개국(약 79%)이 미국보다 중국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태로 인해 반중 감정이 지속되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결과인 셈이다. 이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자국 이익을 위해 동맹국 등 여타국과 갈등도 마다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환된데 따른 일종의 부작용이다. 이러한 반미 감정은 특히 네덜란드·독일·캐나다·프랑스 등 전통적 미국 우방국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정책 외에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분담금 압박, 글로벌 기후협약 탈퇴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인 일본도 관세 협상의 대가로 제시한 5500억달러 투자와 관련해 불공정성에 대한 내부 불만이 커지고 있다.특히 중동 지역에서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인질 교환 협정 등으로 마무리 되고 있는 것 같은 상환인데 중국이 뜻밖에 큰 혜택을 보고 있다. 아랍 바로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선호도가 크게 하락한 반면 중국의 선호도는 상승했다. 그 결과 미-중간 선호도 격차는 2배로 확대됐다.이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시아파, 수니파 등 종파를 불문하고 이스라엘과 미국을 동일시하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중동에 대한 원유 수입 확대, 인프라 투자 등 경제 협력 증가가 호감도 상승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파이낸셜타임즈(FT)는 트럼프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인도, 대만 등 중국 주변국에 대해서도 고율의 관세 부과(인도 25%, 대만 20%) 등 자국 이익을 위해 거침없는 행보를 지속하면서 미국의 미래를 위협하고 중국에는 유리한 선물을 준다고 분석했다. 가장 주목할 국가는 인도다. 인도는 최근 미국과 관세 및 러시아산 원유 수입 갈등을 겪으면서 중국으로 외교의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다. 모디 인도 총리는 미국과의 관세 갈등 이후 트럼프의 전화를 4차례나 거부한 반면 지난 9월 중국 주도의 상해협력기구(SOC)에는 7년 만에 참석했다. 참고로 인도는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 장기간 중국과의 갈등을 지속하면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핵심 카드로 인식돼 왔다. 앞서 언급한 최근의 글로벌 정세 변화는 기존 미국 중심 국제질서의 균열 신호로 해석하는데 무리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부상하는 글로벌 사우스, 중국의 새로운 무대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는 인도·브라질·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전 세계 약 120여 개 개발도상국을 아우르며 전세계 인구의 85%, 국내총생산(GDP)의 40%, 외국인직접투자 유입의 65%를 차지하는 거대한 지역 경제 블록이다. 이들 국가는 지정학적으로는 분산돼 있으나, 경제 개발이라는 공동 목표, 탈서방 중심의 국제질서 재편이라는 인식을 일정 수준 공유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글로벌 사우스를 전략적 우군으로 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속해 있는 신흥 경제국 연합체인 브릭스(BRICS) 국가(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는 기존 5개국에서 인도네시아·이란·이집트·아랍에미리트(UAE)·에티오피아 등을 포함한 10개국으로 확대됐다. 이들 BRICS의 GDP는 PPP(구매력평가) 기준 82조달러로 선진국 G7 GDP의 합계 59조달러를 크게 상회한다. 아울러 중동에서도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 중국은 원유의 안정적 확보와 일대일로(중국의 新실크로드 전략) 해상 루트 구축을 목적으로 사우디·UAE·이란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위안화 결제 협정, 네옴시티 투자, 이란과의 중재 외교 등은 미국의 공백을 메우는 중국의 행보를 잘 보여준다. 미국이 셰일오일 덕에 중동에 대한 관심을 줄인 사이, 중국은 조용히 판을 뒤집고 있는 셈이다.아프리카에서는 미-중의 영향력 격차가 더욱 분명해지면서 이미 ‘중국의 뒷마당’이 됐다. 중국의 대 아프리카 FDI(외국인직접투자)는 미국의 35배, 무역 규모는 4배 수준이다. 특히 중국은 갈륨 등 희귀광물의 주요 생산국으로서 자원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와 장기적 협약을 맺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전략원자재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큰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중국은 2006년부터 아프리카 각국과 3년마다 정상급 회담을 정례화하여 정치·외교·경제 전반에서 파트너십을 다지고 있는데 이는 1973년 마오쩌둥이 아프리카 등을 제3세계로 강조하면서 시작된 외교 전략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이러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연대는 중국에게 있어 미국의 대중 견제를 완충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향후 국제기구 개편, 무역결제 체계 전환 등에서도 기반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브릭스 등 신흥국과의 경제협력을 넘어서 금융 및 공동결제 시스템 구축 등 자국 중심의 국제금융질서 마저 주도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중국, 커진 위상과 함께 높아지는 경계감이처럼 중국의 외연은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에 힘입어 확대되고 있지만, 그림자도 길어지고 있다.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 내에서도 중국의 팽창주의적 행보, 불투명한 정책 결정구조, 그리고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미국은 이러한 국제 정서를 활용해 반도체·전기차 배터리·핵심 소재 등 전략물자에서 탈중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중국의 과도한 국유기업 보조금과 시장개방의 비대칭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반보조금 조사, 공급망 다변화 전략 등을 통해 대응 중이다. 특히, 미국발 관세 풍선효과로 중국의 대유럽 수출이 증가하면서 EU의 경계감이 한층 더 커지고 있다. 실제로 자동차 생산의 메카이자 EU의 핵심 국가인 독일의 경우 중국산 전기차로 인해 경쟁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위기감마저 커지고 있다. 또 중국과 협력하고 있는 일부 개도국들조차 채무의존·기술 이전 미흡·환경 파괴 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일대일로 참여국 중 일부는 과도한 부채를 떠안게 되었으며, 자국 경제주권이 위협받는다고 인식하는 중이다. 참고로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대출금리는 최대 9%에 달하며 만기 또한 4~5년에 그치는 등 원조가 아닌 상업적 성격에 대한 비판도 상당하다. 더욱이 일대일로 대출국들은 신용등급이 낮거나 등급 자체가 없어 부실 위험이 큰 상황이다. 아울러 남중국해·대만 문제·국경 분쟁 등 중국의 강경 외교는 주변국과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필리핀·베트남·인도 등은 지정학적 압박을 받는 동시에, 중국의 내정간섭에 대한 우려를 표출하고 있고 역대급 밀월 관계인 중국과 러시아도 실상은 균열 여지가 상당하다. ▲우수리강 국경분쟁 충돌(1969년) 경험 ▲러시아의 과도한 중국경제 의존에 대한 경계감 ▲러시아-북한과의 관계 개선 등 중-러간 내재 불안요인이 최근 트럼프의 친러시아 정책과 맞물려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늘방석 위에 실리외교: 한국의 갈 길은미-중 사이에 낀 한국의 외교 무대는 바늘방석이다. 중장기적으로 미-중 패권 전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어서 우리나라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미중을 둘러싼 국제 환경의 복잡성을 인식해 보다 정교한 대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 2기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 하에 인도·EU 등 여타 국가의 실익 추구 사례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과 사이가 나쁜 인도의 경우, 미국 주도의 쿼드(QUAD)에 참여하는 동시에, 경제적 이익 확보를 위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확대하고 중국 중심의 브릭스 및 상하이협력기구(SCO)에도 적극 참여(2025년 9월)하고 중국과의 항공편을 5년 만에 재개키로 합의(2025년 10월)하는 등 극명한 이중 외교를 펼치고 있다. 유럽의 경우 EU 집행위원회가 중국과 갈등하는 반면 주력 회원국인 독일·프랑스는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등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미-중사이에서 실익을 추구하는 신중립국이 최소 100여개로 아시아·중동 및 남미에 집중되고 있으며 이들 국가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가 크게 증가하는 등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갖고 실익을 추구하면서 다극체제 전환에 대응해 다자외교체제 참여, 중견국 협의체 주도, 국제기구에서의 역할 확대 등을 추진하면서 전략적 외교지평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의 대미투자 3500억달러의 현금 투자 요구와 조지아주 근로자 구금 사태 등에 대한 국내 불만을 미국 언론에 적극 알려 대미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필요가 있다. 다만 현시점에서 경제적 효과가 큰 중국인 관광객의 단체 방문 재개에 맞춰 진행되는 반중 시위는 정치·경제적 측면 모두 실익이 거의 없어 보인다.마지막으로 외교적 협상력 제고와 실익 확보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산업경쟁력 및 기술자립도를 제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탄소중립·디지털 전환·생명과학 등 미래 핵심 산업에서의 기술우위를 기반으로 국제표준도 주도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필자는_1997년 북경 대외경제무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며 중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중국 경제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중국의 경제·금융 구조 변화를 주제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고, 저서 <중국 경제와 금융의 변화 그리고 시사점>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을 제시했다. 2006년부터는 국제금융센터에서 중국을 비롯한 주요 신흥국의 거시경제 및 금융시장 동향을 연구해 왔으며, 현재는 국제금융센터 세계경제분석실 실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