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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하청의 이중 착취, 죽음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대신경제연구소 ESG인사이트]

산업 일반

산업현장의 죽음이 멈추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 통계에 따르면 산업재해 사망자는 ▲2022년 644명 ▲2023년 598명 ▲2024년 589명으로 집계됐고, 동기간 사망사고 건수 역시 감소하고 있다.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란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의미한다.산재 사망 줄었지만…소규모·하청 현장은 여전히 사각지대 해당 수치만 보면 산업재해가 감소하고 있다고 안도하게 된다. 하지만 최근 3년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사망자 수는 전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024년만 해도 사망자 589명 중 339명이 소규모 하청 및 재하청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중 152명은 5인 미만 초소형 사업장에서의 사고였다. 올해 상반기 산재 사망은 지난해 동기에 비해 소폭 감소했지만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크게 늘었다. 하청 노동자들이 ‘떨어짐·깔림·부딪힘’ 등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사망했다. 이 배경에는 뿌리 깊은 다단계 하청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많은 현장, 특히 건설·조선·제조업의 경우 원청에서 1·2·3차 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가 ‘위험의 외주화’를 양산해 반복적으로 대형 참사가 터지고 있다. 이는 ‘사고’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다. 고위험 작업을 하청업체에 맡기면서 원청의 관리와 책임은 소홀해진다. 고용은 불안정하고, 가장 위험한 작업에 집중 투입됨에도 원청이 지급한 대금은 하청에 재하청으로 내려오면서 쪼개져 근로자가 손에 쥐는 임금은 원청이 지급한 금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현상은 파견뿐 아니라 사내하청·도급·용역 등 간접고용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다. 거기에 하청업체는 인건비와 납기 압박에 안전 투자를 소홀히 한다. 실제 사례를 보자. 올해 6월, 7년 전 김용균씨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8년 베테랑 기술자가 기계 끼임 사고로 사망했다. 비정규직이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기에 같은 발전소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회사 명의가 매년 바뀌는 ‘쪼개기 계약’이 일상화됐다. 재하청 업체 노동자였던 그는 밤 10시 이후, 심지어 자정 넘어서까지 작업 지시를 받았다. 당진 대한전선 공장에서는 하청업체 소속 40대 노동자가 떨어진 작업대에 깔려 숨졌다. 그의 업무는 납기마다 달라졌다.7월에는 구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베트남 출신 20대 노동자가 폭염에 체온 40도가 넘는 상태로 숨졌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조기 출근하여 1시에 퇴근했지만 외국인 일용직 하청 노동자였던 사망자는 폭염 속에서 작업을 계속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세 차례 사망사고가 발생해 고용부의 특별 감독을 받았던 포스코이앤씨에서는 7월에도 사망사고가 이어졌고, 대부분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제도 부족·현장 근로자 안이한 시각 문제법제도 역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는 도급인(원청) 사업장에서 관계수급인(하청업체 등) 근로자가 작업하는 경우 원청은 물론 하청업체 근로자의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원청이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함을 규정하고 있다. 동법에 따라 ‘도급인이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조치·보건조치를 해야 하는 경우는 근로자 파견의 징표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과 고용노동부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불법파견’ 판정 논란 등으로 원청의 감독이 소극적으로 이뤄진다. 임금 착취 구조와 관련해서는 지난 2019년 건설 공공부문에 공공발주자가 임금 및 하도급 대금 등을 직접 지급하는 ‘임금 직접 지급제’가 도입됐으나 전반적인 산업현장에서의 전면 도입은 요원하다. 또 중대재해처벌법이 2024년부터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됐지만 하청업체들의 안전비용 투자나 인력 충원은 언감생심이다. 제도 이행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이다.물론 현장 근로자들의 안이한 시각에도 일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현장에 방문해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 중의 하나인 지게차 작업 시 안전모 착용을 권하면, 현장 근로자들은 “개활지에서는 법적 의무가 아니잖아요”라고 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지침상으로는 그렇죠. 근데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코너 돌다가 넘어져서 지게차에서 튕겨 나가 떨어지면요? 매년 지게차 사고로 1000명 이상이 다치거나 죽고 있는데 선생님이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요?”라고 다소 강하게 말하면 그렇게나 사고가 많이 일어나냐며 놀라곤 한다. 공장 출입구에 긴 파이프 더미가 적재돼 있어 지적하면, 현장 근로자에게선 “잠깐 놓은 것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화재 등 비상시 탈출에 방해가 될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안이한 인식도 결국은 잘 정비된 제도와 강화된 관리·감독 및 교육훈련을 통해 바꿔 나가야 할 부분이다.결국 다단계 하청의 이중 착취 구조가 지속되고 원청의 관리·감독이 소홀하며, 정부가 법제도를 정비하고 적극 대처하지 않는 한 산업현장의 죽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려면 원청의 책임 강화, 하청 단계 제한과 적정 이윤 보장, 실질적 안전비용 지원, 원청이 적극적으로 사업장 내의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해소하는 방향으로의 법제도 정비와 강력한 시행 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도 또다른 노동자가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2025.09.07 10:00

4분 소요
‘항생제 오남용’ 막을 수 있게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 [스페셜리스트뷰]

전문가 칼럼

일상생활에서 항생제 내성의 가장 큰 원인은 오남용이다. 의료진의 처방대로 복용하지 않고 불필요하게 항생제를 복용하는 것을 대표적인 오남용의 예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항생제 오남용은 세균의 내성을 키워 준다. 결국 약효를 떨어뜨리게 되고 그 결과 질병이 더 쉽게 퍼지게 되는 악영향을 가져온다. 특히 항생제 오남용은 병원균을 ‘슈퍼박테리아’로 진화시켜 국민 건강을 크게 위협할 수 있다. 2050년이 되면 3초마다 1명이 슈퍼박테리아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영국에서 발표한 항생제 내성(AMR·Antimicrobial Resistance)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50년에는 기존 항생제로 치료할 수 없는 ‘슈퍼박테리아’ 때문에 전 세계에서 1000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했다. 항생제 내성 환자를 위협한다글로벌 항생제 내성 연구(Gram) 프로젝트팀은 시간에 따른 항생제 내성 감염(AMR) 추세를 전 세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보고서를 2024년 9월 16일 국제학술지 ‘랜싯’에 공개했다. 조사 결과 전 세계적으로 1990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100만명 이상이 항생제 내성 감염으로 목숨을 잃었다. 2050년에는 사망자 수가 약 200만명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연구팀의 조사 분석 결과에 의하면 현재부터 2050년까지 추산된 AMR 기인 사망자는 39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역시 이와 같은 항생제 내성에 관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2025년 7월 29일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분당서울대병원을 방문해 ‘항생제 적정 사용 관리’(ASP) 시범사업 추진 현황을 점검했다. 이날 질병관리청은 고령화와 감염병 유행 등으로2021년 이후 우리나라 항생제 사용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며 “지난 2022년 25.7 DID(Defined Daily Dose per 1000 inhabitants per day·인구 1000명당 하루 의약품 소비량)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네 번째이며, 평균치의 1.36 배”라고 설명했다. 질병관리청은 ASP 사업에 참여 중인 상급종합병원 78개소 중 15개소를 선정해 점검하고, 매년 점검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되면 혈류와 복강 내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 OECD에 따르면 감염의 70%는 의료 환경에서 발생한다. 항생제 내성은 수술, 이식 등의 집중 치료를 하는 도중에 암 환자들의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노인의 감염 위험성이 심각한 것으로 분석됐다. 고령층은 면역 기능이 약해 각종 감염병에 쉽게 노출돼 있어서 높은 사망률과 항생제 의존도를 보일 수 있다. 이런 항생제 내성 문제는 고령화에 따라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항생제 내성균은 ▲사람 간 직접 접촉 ▲의료기관 ▲음식 ▲글로벌 이동 등을 통해 추가로 확산돼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 항생제 내성 관련 문제는 의료 비용을 높인다는 점에서도 국가와 국민적 차원에서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환자가 감염된 세균이 1차 항생제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면 2차, 3차 항생제 등 더 비싼 대안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치료 기간이 길어져 더 오래 입원하게 되면 더 많은 치료비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항생제 내성균에 대응하는데 상당한 의료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 OECD 국가들만 따로 보면, AMR로 인한 연간 전체 의료비는 연간 약 289억 달러(약 40조원), 여기에 경제적 효과비용을 합하면 총 660억달러(91조원) 규모이다.의사가 처방한 의약품만…용법만큼 끝까지 사용해야질병관리청은 항생제 내성을 예방하기 위해 다음 3가지를 지킬 것을 당부하고 있다. 첫째, 의사가 처방한 항생제만 복용하며 의사에게 별도로 항생제 처방을 요청하지 말 것. 둘째, 처방받은 항생제는 끝까지 복용하며, 항생제를 임의로 복용 중단하거나 복용을 중단한 항생제를 재복용하지 말 것. 셋째, 손 씻기와 예방접종 등을 통해 감염질환 발생을 예방할 것. 여기에 더해 항생제 사용의 필요성을 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현장 진단 시스템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현장진단(Point-of Care Testing·POCT)은 응급현장 또는 질병 진단을 위한 시설이 열악한 환경에서 신속하게 질병에 대한 결과를 얻기 위한 기술이다. 현장진단 기기는 기존의 병원에서 질병 진단을 위해 사용하는 대형 고가 장비 대신에 작고 가볍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런 장비를 일회용으로 만들어 간편한 진단이 가능하게 설계한 것이 POCT 플랫폼이다. 현재 POCT 진단 개발사들은 빠른 검사 결과가 요구되는 검사 종목에 대해 누구나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전염병 확산에 취약한 지역과 국가에서 전염병 관리에 효과적일 것으로 보이며, 고령화 사회에서 저비용으로 환자가 직접 만성 질환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 의료비용 절감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술의 변화와 더불어 현재 의료 현장에서는 신속성과 정밀성을 동시에 갖춘 진단 기술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특히 ▲패혈증 및 심장질환관련 응급 의료 ▲고위험군 감염병 대응 ▲중증 환자 치료에서 기존의 현장 진단과 고정밀 진단(Precision Diagnostics)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현장진단은 별도의 검사실이 아닌 환자가 있는 현장에서 검사를 시행해 진단하는 것을 말한다. 장소와 환경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짧은 시간에 결과를 알 수 있고 육안으로 현장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해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POCT는 민감도와 정확도가 낮고 여러 질환 검출을 위해서는 각각 검사를 해야 한다는 한계점도 있다. 대표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영증(코로나19) 항원 신속 자가 진단 키트 ▲임신 테스트기 ▲타액 및 소변 스틱 진단 등이 현장진단에 쓰이는 검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도의 한계를 개선하고자 형광소자를 이용해 전용 진단 리더기로 현장에서 pg/mL 단위까지 정확하게 진단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대표적으로 국내의 면역진단 전문기업으로는 바디텍메드·SD바이오센서·옵티바이오·나노엔텍 등이 있다. 위 기업들은 혈액 한 방울만 있으면 소형 리더기를 통해 12분 내 감염병·암·호르몬·당뇨·심혈관 질환 등 다양한 질환들을 진단한다. 가격 경쟁력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면역진단 외에도 ▲유전자증폭검사(RT-PCR) ▲전산화단층촬영(CT) 스캔 ▲유전자 정밀 검사 등의 고정밀 진단법은 높은 정확도를 제공하지만, 고가의 대형 장비와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며 분석 시간이 길어 응급 상황이나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는 적용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감염성 현장진단 품목 중 하나인 MxA(Myxovirus resistance protein A)는 바이러스에 대한 세포 저항을 매개로 대부분의 급성 바이러스에 상승하는 세포내 혈액 단백질이다. CRP(C-reactive protein)는 전반적인 감염에 상승하나 박테리아 감염에 더 높게 상승한다. MxA와 CRP 수치를 함께 측정해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감염을 구분하고,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국내 면역진단 플랫폼의 전문기업인 바디텍메드·옵티바이오·나노엔텍 사들은 ‘MxA/CRP’는 바이러스 감염 지표인 MxA 단백질과 세균 감염 지표인 CRP를 한 번의 검사로 동시 및 단일로 측정할 수 있는 차세대 감염 감별 진단 플랫폼을 개발하기도 했다. 전혈·혈장·혈청을 이용해 12분 이내에 결과를 도출할 수 있어 기존 PCR이나 혈액배양 검사보다 시간과 비용에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응급 상황에서 더 빛나는 의료 현장 진단 플랫폼 현장진단 플랫폼은 항생제 오남용 외에도 응급의료현장대응에 도움이 되는 필요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응급의료현장대응 현장진단 플랫폼은 응급 상황에서 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응급의료 서비스의 질과 효율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현재 과학기술 분야에서 개발되는 다양한 기술, 예를 들면 IoT, AI, 원격의료 등을 활용해 시스템화해야 한다.이런 기술들에 대한 적용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장 진단 및 환자 상태 파악이다. AI 기반 분석으로 응급 정도를 분류해 환자의 중증도를 자동 판단하고 이송 우선 순위를 결정할 수 있다. 둘째, 현장과 병원 간 정보 연계가 있다. 응급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병원에 실시간으로 전송해 의료진이 환자가 도착 전에 상태를 파악하고 사전에 준비하게 할 수 있다. 셋째, 의사결정 지원이다. AI 기반 알고리즘이 진단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대응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예를 들면 심정지 환자에게는 즉시 심폐소생술(CPR)과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을 권고하고 외상 환자에게는 트라우마 센터 이송을 제안하는 식이다. 넷째, 데이터 축적 및 사후 분석도 있다. 응급 대응 과정과 결과 데이터를 축적해 추후 분석 및 정책 수립에 활용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패턴을 파악하면 향후 응급의료 품질 개선 기초 자료들로 활용할 수 있다. 응급의료체계에서는 ‘골든 타임’이 특히 중요하다. 짧은 시간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대응할 수 있어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 특히, 패혈증이나 심장질환 등 중증 상황에서 신속한 현장진단 시스템은 보다 빠른 처치와 환자 분류 결정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현재까지 응급의료 체계가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지만, 응급현장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POCT 진단플랫폼 적용은 아직도 미흡한 상태이다. 결론적으로, 항생제는‘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잘못된 사용은 나와 가족, 사회 전체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올바른 사용 습관과 교육, 그리고 정책적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차원의 대대적 지원과 의료정책 보완 및 개선을 통해 신속하고 정확한 현장진단 플랫폼 산업화 및 응급의료 진단 대응 체계가 잘 갖춰진다면, 사회 전체가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응급의료실 ▲각 지방자치의 의료기관 ▲여러 산간벽지 등에서 환자들의 응급상황 의료 부담이 줄어들고, 전체적인 의료자원 활용도 높아질 수 있다. 기존에 문제가 됐던 항생제 오남용을 막고 응급상황 시스템을 개선하면 궁극적으로 민생안전과 국민건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는 ㈜옵티바이오 연구소장이자 생명과학 이학박사로 진단분야 전문가다. 건국대학교 겸임교수, 한국파스퇴르연구소, Sk 생명과학연구소, (주)바디텍메드, (주)피씨엘 등에서 기초과학 및 면역진단 제품 개발과 핵심 연구를 주도했다.

2025.09.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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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사이클이 예상보다 빠르게 시작되었다.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를 통해 한국 조선업의 기술력이 재조명되고, 대규모 수주 소식이 이어지면서 업계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조선업이 ‘초격차 우위’를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전환 속도의 차이다. 한국은 여전히 2D 도면과 숙련 인력의 경험에 기대는 경우가 많으며, 노동력 부족과 인재 확보의 한계는 지속가능성을 요구하는 현 시대에 치명적 리스크로 작용한다. 반면 중국, 유럽 등 주요 조선소들은 이미 빠른 디지털 전환을 통해 친환경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건조 능력을 확보했다.한국 조선업의 또 다른 기회 MASGA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MASGA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에 새로운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 LNG 운반선·초대형 컨테이너선·친환경 연료 기반 선박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해왔다. 특히 ▲정밀 용접 기술 ▲대형 선체 블록 제작 능력 ▲복잡한 엔지니어링 역량은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강점이다.MASGA는 단순한 협력 프로젝트를 넘어, 한국 조선소의 대규모 미국 현지 투자와 기술 이전을 가시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국이 아시아와 유럽 중심의 시장을 넘어 미국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미국 조선업이 재도약하는 과정에서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발판이다. 만약 한국 조선소들이 친환경 선박·스마트십 기술을 결합해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다면, 단순 수주 이상의 전략적 동맹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그러나 이 기회를 장기적 성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가 필수적이다. 기존의 가격 경쟁력이나 전통적 기술력만으로는 글로벌 친환경 규제와 빠른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국제해사기구(IMO) 의 탄소배출 규제 ▲유럽연합의 환경 기준 ▲미국 해양산업의 국산화 정책은 모두 조선업이 단순히 ‘잘 만드는 산업’을 넘어 ‘지속가능성과 디지털화를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산업’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조선소의 디지털 전환 사례 가속세계 조선업계는 빠른 속도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한 생산성 향상을 넘어, 지속가능성·비용 효율·글로벌 협업이라는 새로운 경쟁 요소가 핵심이 되었다. 대표적인 네 가지 조선소 사례는 다음과 같다.중국 국영 조선기업 CSSC의 자회사인 황푸원총은 군용·상업용 선박을 주력으로 하는 대형 조선소다. 그러나 세계 경기 둔화와 조선업 침체로 신규 수주가 줄고 건조 비용은 오르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중첸 첸(Zhongqian Chen) 최고경영자(CEO)는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을 목표로 다쏘시스템의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도입했다.황푸원총은 설계–제조–관리 프로세스를 단일 플랫폼에서 통합했다. 그 결과 ▲설계 검토 과정에서 고객 요구사항을 즉시 반영 ▲CNC 가공 데이터를 자동 생성 ▲몰입형 경험 기반 검증 등 구체적인 성과를 거뒀다. 특히 조립 프로세스를 시뮬레이션하며 휴먼 에러를 크게 줄였고, 전사적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는 스마트 제조 기반으로 확대 적용하며 품질과 효율성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본사를 둔 NAOS는 Ro-Ro 선박, 페리, 슈퍼요트 설계에 특화된 기업이다. 이들은 설계와 제조 간 실시간 협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문서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2016년 버추얼트윈 시스템을 도입했다. ‘Designed for Sea’ 솔루션은 개념 설계부터 구조·시스템 설계까지 마스터 3D 모델 기반 협업을 지원하여, 설계 오류와 간섭을 조기에 식별했다. 또한 ‘Optimized Production for Sea’는 블록 조립 계획과 3D 작업 지침서를 자동 생성해, 세계 각지에 흩어진 팀들이 마치 하나의 공간에서 협업하는 것처럼 작업할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설계 변경 시 자동 문서화가 가능해져 재작업과 오류가 크게 줄었고, 전체 설계 시간은 최대 40% 단축할 수 있었다. 1927년 설립된 네덜란드 다멘 조선 그룹은 전 세계에 35개의 조선소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다멘은 2017년 전사적 디지털 전환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솔루션을 활용해 제품·프로세스·서비스 전반을 통합 관리했다. 모델 기반 시스템 엔지니어링(MBSE)를 통해 설계 오류를 줄였고, 다중 물리 시뮬레이션으로 복잡한 시스템의 일관성을 확보했다. 나아가 운항 데이터 기반 성능 모니터링과 에너지 관리까지 실시간으로 수행하며, 조선업계가 직면한 ‘지속가능성’ 과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하고 있다.독일 파펜부르크에 위치한 마이어 베르프트는 크루즈선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조선소다. 이들은 숙련 인력의 경험을 데이터화·디지털화하여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일찍이 추진했다. 마이어 베르프트는 3D익스피리언스를 통해 전사적 데이터 구조화를 실현했다. 전통적으로 장인의 노하우에 의존했던 생산 현장에 버추얼 트윈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설계와 생산의 동기화 ▲부서 간 실시간 협업 ▲품질·비용 최적화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특히 초대형 크루즈선의 복잡한 시스템을 디지털 기반으로 관리하면서 프로젝트 지연과 비용 초과 리스크를 획기적으로 줄였다.현재는 AI 기반 학습 체계를 접목하여 설계와 운영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고,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확장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는 한국 조선소들이 지향하는 스마트 야드 전환의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이처럼 주요 글로벌 조선소들은 이미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 ▲지속가능성 ▲글로벌 협업 ▲데이터화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숙련 인력 중심의 전통적 방식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아, ‘초격차 경쟁력’ 확보를 위해 디지털화 속도 가속이 시급하다. 디지털 전환의 공통 분모, 버추얼 트윈 기술 이들 조선소의 디지털 전환 전략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버추얼 트윈 기술이다.버추얼 트윈은 실제 선박과 동일한 디지털 복제 모델을 만들어, 설계–생산–운영–유지보수 전 과정을 하나의 통합 데이터 환경에서 시뮬레이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단순한 3D 설계나 가시화를 넘어 ▲엔지니어링 데이터 ▲생산 계획 ▲운영 조건 ▲센서 데이터를 모두 연결한 실시간 ‘살아있는’ 가상 환경을 구현하는 것이다.설계 단계에서는 선체 구조·배관·전장 시스템 등 복잡한 요소를 가상으로 구성하고, 설계 변경을 제작 전에 즉시 검증한다. 생산 단계에서는 작업 순서·공정 배치·자재 투입을 시뮬레이션해 효율을 극대화하고 오류를 사전에 방지한다.운영 단계에서는 센서와 사물인터넷(IoT) 데이터를 가상 모델과 비교 분석하여 성능을 최적화하고, 연료 절감과 안전성을 강화하게 된다. 유지보수 단계에서는 고장 가능성을 미리 예측해 필요한 부품과 절차를 준비·정비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이러한 기능은 조선·해양 산업에서 설계와 생산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글로벌 친환경·안전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더불어 설계와 생산이 서로 다른 국가에서 이뤄지더라도 동일한 데이터와 표준으로 협업할 수 있으며, 연료 효율 개선·배출가스 저감·부품 재활용 설계 등 기업의 지속가능성에도 직접 기여한다.디지털 전환의 격차와 리스크는 비례반면 한국 조선업은 여전히 숙련 노동력과 2D 기반 설계에 의존하는 전통적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여러 리스크를 내포한다. 우선 고령화와 청년층의 기피 현상으로 인해 인력 수급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인력 부족은 단순히 생산 차질을 넘어, 장기적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문제다. 또한 2D 도면 중심의 설계 방식은 오류와 재작업의 가능성을 높여 생산성 저하를 불러오며, 이는 글로벌 수준에서 요구되는 속도와 정밀도를 충족하기 어렵게 만든다. 무엇보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요구가 강화되는 시대에 데이터 기반의 관리 체계가 부재하다는 점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글로벌 경쟁사들은 이미 ▲인공지능(AI) ▲버추얼 트윈 ▲모델 기반 시스템 엔지니어링(MBSE) 등의 첨단 기술을 생산 전 과정에 적용하며 효율성과 친환경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한국이 진정한 의미의 ‘초격차’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사람의 경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축적된 노하우를 데이터로 전환하고, 이를 기계가 학습할 수 있는 체계로 발전시켜야만 한다. 초격차 우위, 실행력이 답이다MASGA는 분명 한국 조선업에 전략적 기회다. 그러나 이 기회를 실질적 성과로 연결할 수 있을지는 얼마나 신속하고 철저하게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느냐에 달려 있다.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 ESG 요구에 부합하는 디지털 조선소로 변모해야만 진정한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중국과 유럽의 주요 조선소들 역시 같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 지난 10여 년간 이들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디지털 혁신에 집중해왔고, 특히 중국은 설계와 생산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기술력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한국 조선소들 또한 초격차 경쟁우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숙련 인력의 경험을 데이터화하고, 이를 기계가 학습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하는 노력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앞으로 한국 조선업이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경험과 기술력을 데이터로 전환하고, 버추얼 트윈을 기반으로 설계와 생산을 통합하고 AI와 MBSE 같은 첨단 기술을 현장에 적극 적용해야 한다. 기술은 기회의 문을 열어주지만, 경쟁력을 완성하는 것은 실행력이다. 한국 조선업이 MASGA를 계기로 세계 시장에서 다시 한번 초격차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디지털 전환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필자는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에서 설계관리 업무를 시작으로 영국 소재 기술연구소 워딩테크니컬센터(WTC)에서 설계표준 업무를 수행했다. 이후 CIES·한국후지쯔 등을 거쳐 2005년 다쏘시스템에 합류했다. LG전자 GPDM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Industry Services 부서장을 역임하며 현대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후 CSE(Customer Solution Experience) 본부장을 거쳐 2023년 2월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자동차·조선·항공 등 국내 주요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매출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2025.09.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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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골든타임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2880억달러(402조원). 우리나라의 올 한 해 예산의 60%가량(673조원)에 해당하는 이 금액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규모(추산치)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화나 유로화, 또는 미국 국채 같은 실물 자산에 가치를 고정해 안정성을 높인 디지털화폐(코인)를 말하는데요, 테더와 서클이 대표적입니다. 테더(USDT)의 경우 다른 디지털화폐와 달리 가치가 시시때때로 오르락내리락하지 않고 언제나 ‘1테더=1달러’가 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 같은 가격 안정성으로 기존 디지털화폐 시장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하던 비트코인을 대체하는 거래단위로 사용될 수 있으며, 24시간 운영, 빠른 송금 속도, 저렴한 전송 비용 등의 장점도 갖고 있어 주류 코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미국을 ‘세계의 암호화폐(디지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데 이어 지난 7월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지니어스 법’에 서명하면서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스테이블코인을 적극 활용해 달러 패권을 강화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구상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국제적 송금·결제 수단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면 전자 결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빠르게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요, 통화 주권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글로벌 안전자산인 달러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을 놔두고 누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쓰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다른 스테이블코인과 교환이 쉬워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시장 우위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발행사의 운용 실패나 외부 충격 시 대규모 상환 요구에 따른 코인런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과 외환 규제를 우회해 불법 자금세탁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문제점 등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반대하는 이유입니다.반대 이유도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유럽연합·싱가포르·일본 등 주요국들이 미국처럼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으로 편입하기 위해 기반 마련에 속도를 내는 만큼 우리만 한가롭게 도입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전제로 어떻게 할 것인지 치열하게 논의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씩 정해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통화당국과 입법부가 ‘누가 발행 주체가 되어야 하나’, ‘비은행 민간기관의 발행 허용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등 여러 쟁점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이에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어 걱정입니다. 어찌 보면 이런 혼란은 당연합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디지털화폐 시대의 첫발을 내딛고 길을 내야 해서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과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다고 뒷걸음칠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올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세밀하게 준비하되 적기를 놓치지 말아야겠습니다.

2025.09.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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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지 않고 전략을 세우다[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전문가 칼럼

런던 템스강변의 옛 화력발전소 굴뚝은 이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산업유산이 문화시설로 변모하며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된 이런 사례는 이제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공장이 예술 창고로, 관공서가 스타트업 사무실로, 쇼핑몰이 주거·문화 복합단지로 변신한다. 한국도 이 흐름에 올라탔지만 곳곳에서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서울로7017은 운영비와 저조한 이용률, 주변 정비계획과의 충돌로 존치 여부가 논의되고 있다. 영등포 대선제분 부지는 당초 공장 건물을 보존하며 문화공간으로 재생하려 했으나, 준공업지역 규제 완화와 수익성 문제로 결국 일부만 보존하고 나머지는 고밀 복합개발로 사업의 방향을 바꾸었다. 도시재생 정책이 큰 방향에서는 옳았지만 서두르고 치밀하지 못했고, 정권 교체와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원래의 계획이 흔들리고 수정되고 있다. 너무 서두른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우리가 놓친 것이 있는 걸까 정책의 지속성, 제도로 예측가능성을 확보하다늘 정치는 정책을 변덕스럽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가 남아 있으면 정책은 유지되고 민간의 투자는 유지된다. 로스앤젤레스는 1999년 적응형 재사용 조례(ARO)를 제정해 노후 오피스를 주거로 바꿀 때 주차 기준 완화, 내진 설계 간소화, 개발 인허가 절차 단축 같은 유연한 규칙을 마련했다. 이 제도는 수차례 개정을 거듭하면서도 도심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20년 넘게 유지됐다. 그 결과 1만2000호 이상의 신규 주택이 공급됐으며, 역사적 건물 보존과 생활 인프라 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대표적으로 브로드웨이 거리에 있던 한 금융사 빌딩은 아파트로 전환되면서 수백 세대의 도심 주거를 공급했고, 인근 상권을 살리는 효과까지 냈다.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Zollverein)은 폐광 이후 방치될 위기에서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보존·재활용의 장기 로드맵이 세워졌다. 초기에는 탄광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며 적자를 감수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 명성이 높아지자 기업 본사, 디자인 대학, 창업 지원 시설이 들어섰다. 지금은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독일의 대표적 문화관광지가 됐다. 공공이 수십 년간 정책을 일관되게 밀어붙인 덕분에 민간이 뒤늦게 따라와 선순환을 형성한 사례다. 적응형 재사용은 초기 비용이 크기 때문에 재원 조달 구조가 관건이다. 뉴욕 하이라인은 고가 화물철도를 공원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시민단체가 나서 민간 기부금을 모았고, 시정부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2005년에는 특별구역 지구제를 도입해 인근 부지 소유자들이 개발권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 판매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인접지 개발에는 용적률 보너스를 부여했다. 대신 개발업자들은 그 대가로 공원 기금에 기여했다. 공공은 규제 완화로 민간 수익성을 높여주고, 민간은 가치 상승분을 공원 운영에 환류시킨 셈이다. 이 구조 덕분에 공원은 민간 투자를 끌어들이면서도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개장 이후 하이라인은 연간 8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지가 됐고, 인근 부동산 가격은 10년간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영국은 ‘그린 딜’ 정책을 통해 친환경 리트로핏에 필요한 초기 비용을 보조금과 저리 융자로 지원한다. 런던의 공공임대주택 단지에서는 이 제도를 활용해 단열재 교체, 고효율 보일러 설치 등이 이뤄졌고, 결과적으로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가 입주민의 생활 안정으로 이어졌다. 요점은 한 가지 재원에 의존하지 않고 정부·민간·지역 커뮤니티가 분담 구조를 만들어 리스크를 낮춘다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이익, 장기적 가치로 환산하다적응형 재사용은 단기 수익만 놓고 보면 매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해외 도시들은 장기적인 공공가치를 경제적 언어로 환산해 전략을 세운다. 하이라인은 조성 자체로는 수익을 내지 않지만, 공원 개장 후 인근 부동산 가치와 관광 수입이 크게 늘면서 시의 세수 증대 효과가 막대했다. 한 연구에서는 공공투자 1달러가 8달러의 경제효과로 돌아왔다고 분석했다. 운영조직인 ‘하이라인의 친구들’은 지속적으로 후원금을 유치하며 프로그램을 운영해 단순 공원 이상의 가치를 창출했다. 런던 배터시 발전소는 1980년대 가동을 멈추고 수십 년간 흉물처럼 방치됐지만, 2010년대 대규모 민관 협력 개발이 추진되면서 다시 살아났다. 복원 비용은 막대했으나, 민간 개발자가 인근 부지에 아파트와 상업시설을 고밀도로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 수익으로 본체 복원 비용을 충당하게 했다. 현재 이곳은 글로벌 기업 본사, 문화시설, 고급 주거단지가 결합된 런던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 역시 초기에는 적자 문화시설 중심이었지만, 장소성이 쌓이며 디자인 대학과 기업 입주가 이어졌다. 문화적 명성이 결국 경제적 자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 유입은 지역 상권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런던은 리트로핏을 통해 절감되는 에너지 비용과 탄소 배출 저감 효과를 강조하며, 중앙정부에 부가가치세 인하를 요청했다. 사회적 가치와 환경적 편익을 정량화 해 단기 수익률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다. 파리 역시 ‘2050 탄소중립 계획’의 일환으로 리트로핏을 도시 전체의 전략 과제로 삼아, 건물 단위 에너지 절감 효과를 세부 지표로 관리하고 있다.개발 너머의 가치, 전략으로 읽다해외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낡은 공간의 재활용을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도시 전략으로 격상시켰다. 단기 비용 대비 편익만 보면 재개발이 유리해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환경적 지속가능성, 도시 정체성, 사회적 연대 같은 무형의 가치가 훨씬 크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를 위해 공공은 제도의 일관성을, 민간은 창의적인 사업구조를, 지역은 장소성을 투자한다. 적응형 재사용은 고비용·저효율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수익과 편익을 창출하는 과정이다. 과연 한국의 도시정책은 적응형 재사용의 도입이나 겉모습 뿐만 아니라 위에서 살펴본 정책의 일관성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까지 환산하며 다양한 비용분담구조를 실행하고 있을까? (다음편에 계속)

2025.09.06 13:00

4분 소요
AI광고 마케팅 시대의 해법[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전문가 칼럼

올해로 18년차를 맞는 아시아 최대의 국제광고제인 매드스타즈(부산국제마케팅광고제)가 3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8월 29일 막을 내렸다 'AI-vertising, AI 광고 마케팅 시대'를 주제로 개최된 이번 광고제에서는 생성형 AI가 일상을 점령하고, 10억 사용자로 급성장하는 시대. 광고와 마케팅 AI 시대 광고산업의 진정한 시대정신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AI와 인간 창의성의 조화기조연설자인 김종현 제일기획 대표이사는 '양손잡이형 에이전시: AI와 인간 창의성의 조화(The Ambidextrous in the AI Era)'라는 기조강연을 통해 혼돈의 시대를 밝히는 명확한 비젼을 제시해 화제를 모았다.그는 2년 전 애드아시아(AdAsia) 무대에서 'AI 시대 광고의 미래'를 전망한 이후, 불과 2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AI의 발전이 업계를 급격히 재편했다고 강조했다. 과거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리던 타깃 분석, 미디어 플래닝, 카피·이미지·영상 제작이 이제는 AI 기반의 실시간 데이터 분석과 자동화된 최적화 시스템으로 대체되며 불과 며칠만에 완성되는 시대가 됐다. 검색 중심의 SEO(검색엔진 최적화) 패러다임도 AEO(AI 답변 엔진 최적화)로 전환되면서 지난 30년간 인터넷을 지배해온 '검색(search)' 시대가 저물고 '질문(ask)'이 뉴노멀이 됐다.하지만 AI의 한계 역시 명확히 드러났다. 마케팅 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AI 생성 콘텐츠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획일적이고 밋밋하다"는 점을 꼽았다. 또한 사이언스 애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실린 연구도 AI 활용이 개인의 크리에이티비티를 높이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결과물 전체는 유사해져 집단적 창의성이 평균화되는 경향을 보여준다.창조 vs 생성이러한 현상을 김 대표는 '모델 콜랩스’(Model Collapse)로 설명했다.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다시 학습에 투입할수록 결과물이 단조롭고 무난해진다. AI 창작물은 예측 오류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무난한 값을 출력한다. 독창적인 결과보다는 가장 안전한 결과를 산출해내는 것이다. 이는 광고 크리에이티브가 지향하는 도전성과 독창성의 본질과 충돌한다.그는"결국 인간과 AI의 차별점은 크리에이션(creation)과 제너레이션(generation)의 차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크리에이션'은 인간의 의도나 생각을 반영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작 활동이며, '제너레이션'은 특정 규칙이나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기존 요소를 조합하거나 변형하는 생산 활동이다. 김 대표는 “크리에이션이 더 가치 있고 제너레이션이 덜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전에 없던 참신한 아이디어로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메시지를 크리에이션해야 한다"며 "AI와 인간의 크리에이티비티가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균형점에 도달하는 것이 AI 시대의 성공적 마케팅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역설했다. 김 대표는 AI와 크리에이티비티의 균형을 축으로 에이전시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하며, AI 시대 에이전시의 지향점으로 한 손에는 AI를, 다른 한 손에는 창의성을 거머쥔 '양손잡이형 에이전시’(The Ambidextrous)를 제시했다. 창의성의 민주화 DDB 비엔나의 리타-마리아 스필보겔(Rita-Maria Spielvogel)은 AI의 실질적 임팩트를 구체적 데이터로 제시했다. 그녀의 발표에 따르면, AI는 단순히 더 빠르고 저렴한 도구를 넘어 창의성 자체를 민주화하고 있다.미국 예측 거래 플랫폼 Kalshi의 브랜드 캠페인 제작 사례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명이 2일 만에 15개 영상 클립을 제작하며 비용을 95% 절감했고, AI-인간 협업을 통해 생산성은 40% 증가하면서 운영비용은 20%, 인건비는 30% 감소했다. 효과측면에서도 트위터의 후신 X에서 3백만 뷰를 기록하는 등 대단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였다. 이는 단순한 효율성 개선이 아니라 창의적 작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의미한다.스필보겔이 지적한 가장 중요한 통찰은 '창의성의 민주화’(Democratization)다. AI가 전문적 기술 없이도 누구나 고품질의 창작물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AI는 우리의 비범한 창의성에 대한 요구를 변화시킨다. 새로운 기술이 우리를 압도하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월트 디즈니의 말처럼 "호기심이 새로운 길로 이끈다"면, AI 시대의 창작자들은 더욱 깊은 호기심과 인간만의 고유한 관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다.회화의 사진 충격과 AI의 교훈김종현 대표가 결론으로 도입한 이야기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19세기 유명 화가인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가 사진기의 발명 직후 한 것으로 전해지는 'The painting is dead!(회화는 죽었다)'는 말을 인용하며 "사진의 등장은 회화를 죽인 것이 아니라, 화가들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것을 똑같이 그리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며 "이후 화가들은 색채, 형태, 감정, 추상적 개념과 같이 회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와 마찬가지로 AI도 우리 업계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대의 흐름이 변하고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클라이언트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제공한다는 우리 업의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우리가 제공해야 할 가치의 형태와 방식이 변화할 뿐이다"라고 강조했다.새로운 지평을 여는 혁신매드스타즈 2025에서는 이들 두 연사 외에도 40여명의 국내외 최고의 광고 마케팅 전문가들이 AI 시대 광고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기술에 매몰되거나 기술을 외면하는 극단이 아닌, AI의 효율성과 인간의 창의성을 조화롭게 결합하는 '양손잡이형' 접근이 바로 그 해답이다.광고 회사는 물론, 마케터들은 AI가 반복적인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하여 인간이 창의적 사고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인간은 AI를 통해 확보한 시간과 리소스를 활용해 더 깊이 있는 통찰, 독창적인 아이디어,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마케팅에 영혼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야 한다. 매드스타즈 2025가 제시한 시대정신을 통해 마케팅 산업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2025.09.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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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가상자산 투자시대' 활짝...우리는 역사적 변곡점에 서 있다 [김기동의 이슈&로(LAW)]

전문가 칼럼

2025년, 우리는 기업의 가상자산 투자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역사적 변곡점에 서 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주요 가상자산은 더 이상 투기적 상품이나 신생 기술의 산물이 아니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시장과 기업의 자산 포트폴리오, 심지어 실물경제 내 자본 운용 구조에까지 진입해 미래 산업의 기반이자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지난 2024년은 미국에서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화, 회계기준 변화, 자산운용 패러다임 전환이 동시에 촉발된 한 해였다. 2023년 12월, 미국 회계기준위원회(FASB)는 가상자산에 대한 공정가치 평가 회계기준을 공식 채택했다. 손익계산서 반영 시작...상장사들 ‘투자 촉매제’ 됐다 이전까지 가상자산은 ‘무형자산’으로 분류돼 가치가 상승해도 재무제표에 반영할 수 없었지만, 가치가 하락했을 때는 손실 처리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로 인해 가격 변동성이 큰 가상자산의 실제 가치와 회계상 수치 간에 괴리가 발생했다.이제 새로운 기준에 따라 가상자산도 평가이익과 손실 모두 손익계산서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 미국 회계기준의 획기적인 변경으로 기업들은 가상자산의 보유·평가·공시 방식을 투명하게 다듬을 수 있다. 이는 곧 나스닥·S&P500 상장사들이 대규모 가상자산 투자에 나서는 촉매제가 됐다.실제로 2025년 8월 현재 테슬라(Tesla), 마이크로스트래티지(MSTR), 마라톤디지털(MARA) 등 161개의 미국 상장기업이 총 93만3591 BTC(약 1138억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체 비트코인 발행량의 4.4%에 달한다.2025년 7월 미국 의회가 ‘디지털자산 3법’을 의결해서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 ▲주요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 확립 ▲거래 규범 정비 등 실질적 규제 환경을 마련했다. 대통령 서명까지 마친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연방 차원에서 최초로 규율하는 법률이다. 이 법률을 통해 기업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닌 회계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어 사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은 모든 가상자산을 ‘디지털 증권’과 ‘디지털 상품’으로 구분하고, 각각 SEC(증권거래위원회)와 CFTC(상품선물거래위원회)라는 다른 감독기관을 통해 사전에 법적 지위를 확정하도록 했다.클래리티 법안의 핵심은 ‘충분히 분산화된 네트워크’ 여부를 기준으로 ‘디지털 증권’과 ‘디지털 상품’을 구분하는 것이다. 기존처럼 SEC가 소송을 통해 사후에 관할권을 주장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발행 시점부터 명확한 규제 지위를 확보하게 하려는 중요한 제도적 변화를 의미한다.지난 8월 미국에선 퇴직연금 계좌에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하는 대통령 행정명령이 내려져 비트코인이 역대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모든 변화는 단순히 법적 허용을 넘어, 기업이 디지털자산을 자산 구조, 자금 운용, 사업모델 혁신까지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韓 기업들, ‘관객 입장’ 벗어나 ‘창조자’ 돼야우리나라는 과거 가상자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개인 투자자들의 참여율도 매우 높은 나라였다. 그러나 정부는 2017~2018년 가상자산 시장이 과열됐을 때 투기 억제를 위해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천명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법인이 가상자산을 보유하거나 투자하는 것이 사실상 제한돼 왔다. 하지만 최근 우리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2월 ‘법인의 단계적 가상자산시장 참여 허용’ 방침을 발표했다. 1단계로 ▲법집행기관·비영리법인·거래소에 한해 현금화 목적 거래를 허용한다와 2단계로 ▲상장사·전문투자자의 투자·재무 목적 거래를 시범적 허용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반 법인의 전면 참여는 외환·세제 정비와 추가 입법 이후 중장기 과제로 추진한다는 내용이다.비로소 한국 기업들도 가상자산을 재무적·운용적 측면에서 본격 도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회계처리, 세무규정, 공시의무, 내부통제 등 실무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이는 자산운용 및 사업 확장에 있어서 주요 고민거리로 남아 있다. ‘시기상조’ ‘제도 미비’라는 의견이 여전히 현실을 지배하고 있지만, 세계와 시장은 이미 가상자산을 적극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가상자산은 이제 기업의 사업모델, 경영 체계, 가치 창출의 근본을 다시 묻는 ‘인프라 전환’의 기점이 됐다. 단순한 투자 가능성 확인을 넘어서고 있는 셈이다. ▲자산의 정의와 활용 방식 ▲리스크 관리 ▲경영 전략 ▲공시 및 투명성 요구 등 전방위적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스테이블코인 등 가상자산 기반 서비스는 자금관리, 재무구조 혁신, 고객·사업 생태계 확장에 실질적 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실제 기업활동에서는 단순 투자와 보유만이 아니라, ▲자금 조달 구조 혁신 ▲유통·결제 시스템 개선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창출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이런 변화는 경영진, 재무 담당자, 회계·세무·법률 전문가, 리스크 관리자, IT책임자 등의 체계적인 공동 대응을 촉구한다.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 회계기준 명확화, 세무 처리 표준화, 공시 체계 구축 등 프레임워크의 변화가 시장의 요구다. 우리나라도 정부에서 앞장서서 혁신의 제도적 기반을 신속하게 마련해 줘야 한다. 그러나 기업도 이제 관객의 자리에서 벗어나 변화를 선도하는 창조자가 돼야 한다. 기술을 자산으로 만들고, 자산을 전략으로 연결하며, 무엇보다 사회적 책임과 투명성 속에서 지속 성장을 꾀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실질적 해법과 전략 지침을 갖추고, 새로운 시대의 중심에서 디지털자산을 실질적 성장 동력으로 활용해야 할 시점이다.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

2025.09.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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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인텔의 최대주주로”...반도체 패권 강화하는 美 [한세희 테크&라이프]

산업 일반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의견 일치를 보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 트럼프와 민주당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편에 속하는 샌더스 의원은 반도체 기업 인텔에 대한 정부 개입 문제에 있어 같은 의견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인텔의 지분 10%를 인수하기로 했다. 반도체와 과학법, 일명 칩스(CHIPS) 법에 따라 인텔에 주어지기로 돼 있던 보조금을 지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인텔은 최대 78억6000만달러(약 11조원)의 직접 자금 지원을 포함, 총 109억달러(약 15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받을 계획이었다. 이로써 미국 정부는 인텔의 최대주주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텔이 하는 일인 최첨단 반도체와 집적회로를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의 미래에 근간”이라며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에 자유 시장 경제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 의원들과 경제학자들은 “사회주의적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샌더스 의원은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국민 세금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라는 평소 주장이 반영된 것에 만족하는 모습이다. 미국 정부가 특정 민간 기업의 지분을 대량 보유하기로 하는 이례적 결정이 현실이 되는데 대략 2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8월 초 트럼프 대통령이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매우 큰 이해 상충을 일으키고 있다. 즉각 사임해야 한다”는 글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렸다. 인텔 자회사가 중국 국방과기대학에 반도체를 불법 판매했다는 의혹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정부 인텔 지분 확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탄 CEO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싱가포르에서 자랐고, 미국에서 성공한 인물이다. 반도체 회로 설계 소프트웨어 기업 케이던스의 CEO를 지냈고, 위기에 빠진 인텔의 구원투수 역할을 맡은 지 몇 달 되지 않았다. 졸지에 ‘중국 스파이’로 의심받게 된 그는 곧바로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DC로 날아갔다. 탄 CEO는 자신이 간첩이 아니며, 미국에 헌신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의 인텔 지분 인수 이야기가 나왔고,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은 말을 바꿔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수년 동안 줄곧 떨어지기만 하던 인텔 주가는 미국 정부의 지분 인수 계획이 알려진 후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모바일과 인공지능(AI)이라는 두 번의 큰 물결과 함께 찾아온 반도체 대호황의 시기를 모두 놓치고, 이젠 정말 생존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던 인텔에게 안전 장치가 하나 생긴 셈이다. 2021년 인텔은 사업 돌파구 마련을 위해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했으나 고객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인텔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116억7800만달러(약 16조9000억원)에 이르고, 올해 상반기 누적 영업손실도 37억달러(약 5조4000억원) 수준이다. 이에 따라 인텔은 독일과 폴란드에 파운드리 라인을 건설하려던 계획을 취소했고,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해 추진하던 오하이오주 공장 완공 시점도 미루던 차였다. 미국이 인텔을 원한 이유 사실 안전 장치는 미국 정부가 가장 갖고 싶었을 터다. 미국은 AI를 세계 패권 경쟁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고, 실제로 AI 기술의 최정상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AI를 돌아가게 만드는 핵심 반도체 제조는 전적으로 대만 TSMC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의 디지털 패권 유지에 필수인 첨단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은 대만과 한국의 소수 기업에 집중돼 있다. 이들과 견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국 내 기업인 인텔은 최근 수년 간 제조 역량이나 재무 상황 등에서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인텔의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미국 정부는 핵심 반도체 자체 생산을 위한 거점을 확보한 것이다. 정부는 미국 내 빅테크의 반도체 생산 물량 일부를 인텔에 돌리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AI 반도체 제조 역량의 집중에 따른 문제를 완화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개입은 시장에 비효율을 불러온다.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 경쟁에서 밀리고 있고, 기업 문화도 외부 고객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파운드리와 맞지 않는 인텔에 인위적으로 혜택을 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인텔이 시장보다 최대 주주인 정부의 눈치를 보며 결정을 하게 될 우려도 크다. 또 미국 정부의 지분이 들어가 있는 만큼, 다른 나라 정부나 기업 역시 인텔과 거래하는데 부담을 느끼거나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인텔은 최근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에서 정부 지분 투자로 인한 이같은 리스크를 명시했다. 더 큰 문제는 국가가 민간 기업과 시장에 개입하는 ‘국가 자본주의’로 미국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공정한 시장 경쟁 규칙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장에 직접 개입하려는 처사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밀릴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라지만, 중국을 이기기 위해 중국이 되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쨌든 이런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 행정부는 인텔 지분 인수에 이어 미국 대표 방산 기업인 록히드마틴 같은 기업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도 공공연히 밝혔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록히드마틴 매출의 97%가 미국 정부에서 나온다”며 “국방부에서 그런 구상의 경제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얼마 전 일본제철의 미국 US스틸 인수 조건으로 일본제철 주요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황금주를 얻었고, 엔비디아와 AMD에겐 중국 수출로 인한 수익의 15%를 정부에 내게 했다. 미국 내 유일한 희토류 광산 기업 MP머티리얼즈 지분 15%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런 조치들이 기술 패권 경쟁 승리를 위한 핀셋 처방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조치를 정교하게 실행 가능할까? 시장 실패보다는 정부 실패가 더 크고 장기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전체주의 국가가 힘을 쓰는 세계 질서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세계인들은 고민하고 있다.

2025.08.3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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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한미 정상회담, 한국 경제와 국정 동력의 향배 [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2025년 8월 25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의 첫 한미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적 의례를 넘어선 정치적·경제적 분수령이었다. 취임 82일 만에 성사된 이 회담은 국내적으로는 국정 동력 확보의 시험대였고, 국제적으로는 동맹의 미래를 가늠하는 자리가 되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회담을 두고 성과와 부담이 교차하는 만남이라며, 미국 내 산업보호 압력 속에서 한국이 상당한 양보를 요구받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반면 워싱턴포스트는 동맹의 미래를 시험하는 자리라 규정하며, 한미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진화할지, 아니면 협상형 거래관계로 후퇴할지를 관전 포인트로 제시했다.한국 주요 언론은 회담을 '운명의 회담'이라 규정하며,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 시험대로 해석했다. 극심한 국내 정치 양극화와 지지율 하락세 속에서, 외교 무대에서의 가시적 성과는 곧 국정 주도력 회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산업계 또한 이번 회담이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핵심 수출 산업에 미칠 영향을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보았다. 긴장 속 진행된 첫 정상회담…협력의 메시지로 마무리트럼프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돌발 발언으로 긴장 속에 시작된 첫 한미정상회담은 협력의 메시지로 마무리됐다.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이 일어난 것 같다는 언급은 AFP·로이터 등 외신들로부터 동맹에 긴장이 감돌았다는 평가를 낳았지만, 회담장에서 트럼프는 이를 오해로 정리하며 동맹을 치켜세웠다. 뉴욕타임스는 한 시간 동안 동맹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이 대통령의 설득이 성과를 거둬 트럼프가 입장을 바꿨다고 평가했고, AP는 남북 협력·북한 개발 구상이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며 북미·남북 대화 중재 가능성까지 열어두었다. 경제 의제에서도 조선업 협력이 거론되며 양국 첨단산업 연계의 단초가 마련됐다.그러나 불씨도 남았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감축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도, 기지 소유권 문제를 언급해 논란을 예고했다. 워싱턴포스트와 AP는 각각 미국이 한국 기지를 임대 대신 소유 원한다며, 오산 기지 계약 파기 발언을 보도했다. 외신들의 공통된 평가는 위기를 관리하며 협력의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식 동맹관은 언제든 거래로 전환될 수 있다. 한국은 이번 회담을 단순 이벤트로 소비하지 말고, 방위비·관세·주한미군 문제 등 구조적 불확실성에 선제 대응할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단기적 합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한국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중 전략에서 벗어나, 기술·산업·안보가 얽힌 새로운 동맹 질서 속에서 주도권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출발점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얻어낼 성과와 감내해야 할 비용이 앞으로 한미관계의 방향뿐 아니라 한국 경제와 정치 지형에도 중대한 변곡점을 만들 것이다. MASGA와 조선업 협력, 공격형 협상 카드로 부상한 조선산업이번 한미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조선업 협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한국은 훌륭한 선박 건조 능력을 갖고 있다”며, 한국과 함께 미국 조선업을 되살리자는 제안을 꺼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 구호를 변형한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를 새로운 회담 의제로 올리며, 러스트벨트 유권자와 군수 산업계에 동시에 메시지를 던졌다. 한국은 세계 1위의 조선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사실상 사라진 조선업 부흥이라는 정치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간극을 정확히 읽은 이재명 대통령은 맞춤형 협력안을 제시하며 외교 무대에서 공세적 주도권을 행사했다. 조선업 협력은 단순한 산업 협력이 아니다. 미국 내부에서는 러스트벨트 제조업 부흥이라는 정치적 서사가 걸려 있고, 한국 입장에서는 자동차·철강·반도체에서 불가피하게 방어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협상 구도를 전환시킬 공격 카드가 된다. 특히 자동차·철강은 미국의 관세·보호무역 압력이 집중되는 분야이지만, 조선업은 양국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협상 테이블에서 드문 윈-윈 카드였다.산업적 파급효과도 크다. 이번 협력은 한국 기업들에 군함 수주, 민간 선박 건조, 수리·개조 사업, 미국 내 합작 조선소 투자 등 다층적 기회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미국 해군의 함정 현대화 프로젝트와 연계될 경우, 수십조 원 규모의 안정적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이는 철강, 엔진, 해양플랜트 등 연관 산업에도 파급되며 산업생태계 전반의 부흥을 견인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MASGA는 단순한 정치 구호를 넘어, 한미 양국이 이익과 상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보기 드문 협력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번 조선업 협력은 방어적 외교에 머물던 한국이 처음으로 공격형 협상 성과를 이끌어낸 사례가 될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 700조원 대미 투자 러시의 명암이번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은 외교 무대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정부 차원의 동맹 강화와 함께, 우리 기업들이 줄줄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으며 사실상 투자 외교의 장이 펼쳐진 것이다. 발표된 규모만 1500억달러, 앞서 합의된 3500억달러 금융 패키지까지 합치면 총 5000억달러, 우리 돈 700조원에 달한다.항공·자동차·조선·원자력 등 주요 산업 전반에 걸쳐 협력안이 구체화됐다. 대한항공은 70조원 규모로 보잉 항공기 103대를 구매하며 국내 항공사 역사상 최대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로봇 공장 설립과 전기차·배터리 라인 확충에 36조원을 투입한다. 조선 분야에서는 HD현대가 미국 사모펀드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공동펀드를 조성해 조선소 현대화에 나서고, 삼성중공업은 미 해군 지원함 유지보수 사업에 참여한다. 원자력 부문에서도 차세대 SMR 개발과 원전 시공 등 4건의 협약이 체결됐다. 반도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슈퍼컴퓨터용 첨단 칩 공급을 논의하며 AI 반도체 시장의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문제는 이 막대한 투자가 한국 경제로 얼마나 환류되느냐는 점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투자 유치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확실한 이득을 얻지만, 한국은 자본과 고용이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관세 인하 시점이 여전히 미정이다. 대미 투자가 확대되더라도 무역 장벽이 그대로라면, 기업 부담은 줄지 않는다. 700조원이라는 거대한 투자 러시가 단순한 해외 이전에 머물지 않으려면, 정부와 기업의 전략적 설계가 필요하다. 해외 투자와 국내 연구개발(R&D)의 연계, 중소 협력업체의 글로벌 공급망 진입 지원, 국내 인재 양성과 투자 조건의 연결 등이 필수적이다. 대미 투자가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 성과가 한국 산업 생태계와 고용으로 환류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외형적 성과, 내실 없는 성장이 될 수 있다.대한항공의 보잉 항공기 구매는 단일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이다. 일본과 카타르도 최근 관세 협상 과정에서 대규모 항공기 구매를 약속했는데, 이번 대한항공의 행보 역시 미국의 전략적 요구에 부응한 성격이 강하다. 현대차는 로봇 공장을 비롯해 전기차·배터리 생산망을 강화하며 미국 내 제조 생태계에 깊숙이 들어간다. 이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보조금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지만, 국내 고용 기반 약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조선업은 MASGA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조선소 현대화와 해양 물류 협력을 추진한다. HD현대는 미 사모펀드와 수십억 달러 규모 공동투자 펀드를 조성했고, 삼성중공업은 미 해군 지원함 유지보수 사업 참여를 확정했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차세대 SMR 개발과 원전 시공 관련 협약 4건이 체결되며, 한국 원전 기술의 글로벌 진출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성과인가, 포에버 협상의 덫인가지난달 말 양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으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25%가 부과되고 있다. 적용 시점조차 불투명하며, 일본·EU도 유사한 합의를 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행정명령이 없다는 이유로 실효되지 않았다. 오직 영국만 예외적으로 인하 적용을 받았는데, 이는 영국의 대미 수출 규모가 작아 미국 산업에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간 140만 대 이상을 수출하는 한국은 그만큼 정치적·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뜻이다.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무역 협상이 끝났다고 못 박았다. 지난달 양국이 원칙적으로 합의했던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500억 달러 상당의 한국기업의 미국투자, 그리고 관세율 인하(25%→15%)를 공식화한 것이다. 회담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는 합의 불만족을 언급하며 한국의 세부 이행을 압박했지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으로 최소한 불확실성은 해소되었다고 평가된다. 대통령실은 이를 합의 이행과 신뢰 회복의 신호로 강조했다. 약속을 지키는 파트너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국내 산업계에 안정적 환경을 조성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백악관의 시각은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반드시 합의를 지킬 것이라며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더 나아가 이번 협정을 한국과의 역대 최대 무역 합의로 치켜세우며 정치적 성과를 미국 내 유권자에게 어필했다.산업계에서는 전기차·배터리·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 대한 미국 내 투자가 장기적으로 한국의 기술력 강화와 시장 확대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지만, 동시에 재정적·운영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관세 인하 혜택이 투자·구매 부담을 상쇄할 만큼 효과적일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미국 언론은 이를 트럼프의 협상 승리로 포장한다. SNS와 언론 플레이로 압박을 가하다가 최종적으로 합의를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행 가능성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대규모 투자와 구매 약속이 단기간에 실현되기는 어렵고, 한국 내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결국 이번 무역 합의는 성과와 부담이 교차하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불확실성을 줄이고 동맹 신뢰를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성과지만, 구조적 부담은 한국 경제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이재명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트럼프식 거래외교의 불확실성을 관리하면서, 대규모 투자와 구매를 어떻게 한국 산업의 체질 강화와 신시장 개척으로 연결할 것인가다. 성과를 국내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이번 합의는 기회보다 짐이 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외교적 봉합을 넘어, 경제적 실행 전략이다.반도체·의약품 문제 역시 상황은 유사하다. 미국은 최혜국 대우를 약속했지만 이를 입증할 공식문서를 제시하지 않았다. 블룸버그가 이를 포에버 협상(Forever Negotiations)이라 명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합의가 언제든 뒤집힐 수 있고, 정책적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 내 부처 간 경쟁 구도다. 통상 관료들이 각자의 성과를 부각하기 위해 협상을 계속 끌고 가는 방식이 고착화되어 있어, 합의는 완결되지 못한 채 늘 미완 상태로 남는다. 이는 한국 기업들에 항상 불확실성을 떠안게 하는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한다.자동차는 한국 수출의 핵심축이다. 관세 인하 합의가 실효되지 않는다면 산업 전반은 불확실성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적용 시점을 명시한 문서화, 구속력 있는 강제 장치 확보, 미국의 추가 요구에 대응하는 국내 지원 패키지 마련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과는 오히려 정치적 부담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이번 회담은 성과 있는 합의가 아닌 불안정한 약속으로 기록될 위험이 크다. 국익 중심 실용동맹, 한미동맹 3.0의 출발점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국방비 인상이 논의된 것은 한국 정부에 중대한 시험이다. 이는 곧 한국 재정에 직접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국내 여론의 강한 반발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단순히 비용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투자형 지출로 전환할 수 있다면, 오히려 산업적 기회로 승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증액분을 무기 공동개발, 방산 협력, 첨단 무기 도입에 연계해, 국내 방위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그것이다.문제는 국방비를 넘어선 전략적 유연성 확대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역에서 주한미군을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을 확대하려 한다. 이는 대중 견제에는 유리하지만, 한국으로서는 한반도 방위 공백이라는 구조적 불안을 초래한다. 따라서 한국은 정보 공유 확대, 첨단 무기 체계 배치, 미사일 방어 강화 같은 보완 장치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단순한 동맹 기여 확대가 아니라, 실질적 안보 공백을 막는 균형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이번 회담에서는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기지 부지의 소유권을 미국이 요구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내놓았다. 이는 한미동맹 역사상 전례가 없는 요구로, 국내에서 강력한 논란을 불러올 소지가 크다. 방위비 증액과 전략적 유연성, 그리고 기지 소유권 문제까지 결합될 경우, 동맹의 비대칭성이 심화되고 한국이 사실상 종속적 위치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방위비 증액을 산업적 기회로 재구성하는 투자형 접근. 둘째, 전략적 유연성 요구에 대한 보완적 안보 장치 확보. 셋째, 기지 소유권 문제와 같은 전례 없는 요구에 대해서는 원칙적 대응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부담만 늘고 실익은 적은 동맹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결국 방위비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단순한 금전적 논쟁이 아니다. 동맹의 대칭성과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시험대이며, 이재명 정부가 동맹의 비용을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지 여부가 향후 한미관계의 질적 변화를 결정할 것이다.워싱턴 CSIS 연단에 선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미래 비전을 명확히 제시했다.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 원칙은 남북관계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북한 도발에는 강력히 대응하되, 대화와 협력의 통로를 열어두겠다는 것이다. 이는 억지와 관리, 대화를 병행하는 3중 전략으로, 안보·경제·외교를 동시에 포괄하는 새로운 접근법이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준수하고 비핵화 공약을 지켜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화해와 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이야말로 남북 모두와 한미 양국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역설했다. “비핵·평화·공존의 길이 열릴 때 한미동맹은 글로벌 차원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발언은, 동맹을 단순한 군사적 장치가 아닌 미래 전략 플랫폼으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안보 차원에서는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 두드러졌다. 국방비 증액을 공식화하며, 스마트 강군으로의 전환과 첨단 방산 협력을 미국과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한국의 국방역량 강화와 한미 방산 협력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는 한미가 단순한 군사동맹에서 첨단 기술과 방산 산업을 매개로 한 첨단기술 동맹으로 진화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성과와 부담의 교차, 공격형 외교와 비대칭 동맹의 동시 현실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성과와 부담이 교차하는 자리였다. 조선업 협력이라는 성과는 한국 외교가 더 이상 수세적 방어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세적으로 협상 주도권을 쥘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였다. 자동차·철강·반도체 같은 전통 수출산업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압박에 직면한 상황에서, 조선업은 양국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드문 기회였다. 한국이 공격형 외교로 전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순간이었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거운 짐이 여전히 남았다. 관세 협상은 합의의 실체가 모호하고 적용 시점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국내 산업계가 체감할 수 있는 효과는 미미한데, 정치적 성과로 포장하기에는 근거가 약했다. 더구나 방위비 분담 증액과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대 문제는 한국 사회에 직접적인 재정적·안보적 부담을 안겼다. 나아가 주한미군 기지 부지 소유권 발언은 동맹의 비대칭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전례 없는 요구였다. 결국 이번 회담은 한미 관계가 성과와 압박을 동시에 수반하는 구조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미국 언론들이 지적했듯, 끝없는 협상과 압박이 동맹의 뉴노멀이 된 것이다. 향후 과제는 분명하다. 통상 분야에서는 합의의 실효성을 담보할 구속력 있는 문서화가 시급하다. 자동차 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세제 지원, 보조금, 연구개발 투자 확대 같은 산업 보호 장치도 병행해야 한다. 안보 분야에서는 방위비 증액을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무기 공동개발, 방산 협력, 첨단 무기 도입으로 연결해 산업적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서는 정보 공유 확대, 첨단 자산 배치, 미사일 방어 강화 같은 실질적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정치적으로는 국민 설득이 핵심이다. 외교적 성과는 성과대로 강조하되, 부담은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국민적 고통 분담 없이는 외교적 성과를 지켜낼 수 없다는 점을 공유할 때만 국정 동력이 유지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본질적 메시지는 결국 방패와 창의 균형이었다. 피해 산업에는 방패를, 기회 산업에는 창을 드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가 이 균형을 얼마나 능숙하게 운용하느냐가, 앞으로 한국 외교와 경제, 그리고 동맹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필자는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경영학 박사를 취득하고,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인적자원개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자동차 기획실과 인사부문에서 9년 간 근무한 경력이 있고, 대한경영학회 회장, 한국제품안전학회 회장, 산학협력단장·연구처장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제40대 한국생산성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25.08.31 09:00

11분 소요
AI 시대에 살아남는 기업가가 되려면…[스페셜 리포트]

전문가 칼럼

2025년 상반기, 미국 SaaS(Software as a Service) 기업들의 주가 성과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팔란티어(Palantir, +79%)와 중소기업용 재무 소프트웨어 기업인 빌닷컴의 주가 성과 차이는 무려 122% 포인트에 달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락한 기업들이 '망해가는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 여전히 견고한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었다.이런 극명한 차이가 생긴 것은 시장이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평가 기준이었던 ▲Rule of 40(매출 성장률과 이익률의 합이 40%를 넘어야 한다는 원칙) ▲연간반복매출(ARR) 성장률 ▲고객 확보 비용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기준은 ▲AI 시대 필수불가결성 ▲대체 불가능성 ▲실존적 문제 해결 능력이다.세일즈포스(Salesforce)는 여전히 Rule of 40을 충족하지만 -19% 하락했다. 반면 Palantir는 전통적 지표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밸류에이션(Valuation)을 받았다. 평가의 핵심 질문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성장하는가?"에서 "AI 시대에 얼마나 필수불가결한가?"로 바뀐 것이다. 인재 전략 대전환이 필수….’비기너 마인드셋’ 찾아라 2025년 4월 토비아스 뤼트게 소피파이(Shopify)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메모를 보냈다. "신규 채용을 요청하기 전에, AI로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증명하세요." 그런데 몇 달 후 인턴 채용을 75명에서 10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표면적으로는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Shopify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AI 시대에 가장 위험한 것은 무지가 아니라, '원래 그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말이다.현재의 인턴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Shopify는 이들을 ‘AI 켄타우로스’라고 부른다. 신화 속 존재인 켄타우로스가 반은 인간, 반은 말인 것처럼, 이들 인턴이 AI와 자연스럽게 협업한다는 의미다. 파한 타와르(Farhan Thawar) Shopify 엔지니어링 부사장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저는 그들이 게으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최신 도구를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작업을 거부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는 건강한 게으름이다.인턴들이 가져오는 가장 큰 가치는 바로 '비기너 마인드셋'이다. 이들은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건 불가능해"라고 배운 적도 없다. 그래서 자유롭다. 비기너 마인드셋은 첫 번째 해결책에 안주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더 나은 방법을 찾고, 프로세스 자체를 의심하고, 재발견한다.AI 시대의 인재상이 재정의되고 있다. 전통적인 채용에서는 경험·전문성·검증된 실적을 중시했다. 하지만 AI와 함께 일하는 시대에는 다른 자질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학습 능력이 전문성을 압도하고, 호기심이 경험보다 중요하다. 실험 정신이 완성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실험과 학습이 일상인 기업 만들어야 "AI 전문팀을 만들까, 아니면 모든 직원이 AI를 써야 할까?" "자발적으로 하게 둘까, 아니면 강제로라도 시켜야 할까?" 이런 고민들이 지금 여러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호주의 대표적인 스타트업인 캔바가 5000명 전 직원에게 업무를 중단시키고 AI 교육에 집중하게 한 실험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캔바는 이미 1년 넘게 챗GPT·클로드·제미나이 등 여러 AI 도구를 전 직원에게 제공해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풀 포텐셜’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도구 접근권한과 실제 활용 능력 사이에는 여전히 큰 격차가 존재했던 것이다.캔바가 제시한 핵심 철학은 "'AI 퍼스트'가 '휴먼 라스트'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AI 도구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일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체화시키려는 시도였다.가장 인상적인 성공 사례는 영업팀이 자체적으로 만든 ‘챗조지피티’(ChatGeorgePT)다. 이는 영업 플레이북과 교육 자료로 훈련된 맞춤형 GPT로, 영업 담당자들의 업무 시간을 주당 3시간씩 절약해준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위에서 내려온 오더가 아니라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나온 아이디어라는 점이다.AI 도입에서 ‘강요’보다 ‘실험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더 중요하다. 수백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 캔바의 진짜 목적은 업무에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다양한 AI 도구에 대한 체계적 접근, 그리고 역할별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신뢰베세머 벤처 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 조사에 따르면 90%의 경영진이 AI가 매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AI를 완전히 통합해 실질적 성과를 내는 기업은 단 1%에 불과하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많은 기업들이 AI를 단순한 기술 도입으로 접근하기 때문일 수 있다.더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조사에 따르면 78%의 지식근로자가 이미 회사에서 제공하지 않은 AI 도구를 업무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직원의 13%가 일일 업무의 30% 이상을 AI로 처리하고 있지만, 경영진은 이 비율을 4%로 추정하고 있다.즉, 직원들은 이미 AI의 가치를 체감하고 있지만 경영진과의 인식에는 격차가 있다. 많은 기업들이 하향식 AI 도입에 집중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향식으로 이미 활용되고 있는 AI 사용을 체계화하고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신뢰' 기업의 직원들이 AI 도구 사용에 편안함을 느낄 가능성이 '저신뢰' 기업보다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일부 기업에서는 리더들이 자신의 AI 실험 과정과 실패 경험을 직원들과 솔직하게 공유하면서 양방향 소통 채널을 만드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클라우드 기반 콘텐츠 관리 서비스 기업 박스(Box)의 CEO 아론 리비는 자신도 AI를 배워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직원들과 솔직하게 공유하면서 조직 전체의 학습 문화를 조성했다고 한다.레거시 기업의 역설… 기존 강점을 AI 시대 무기로한편 "AI 혁명에서 전통 기업들은 도태되고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47년 역사의 레거시 기업 오라클(Oracle)이 41% 성장으로 시가총액 6580억달러를 달성한 것은 레거시 기업의 AI 시대 생존 전략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Oracle의 클라우드 인프라(Cloud Infrastructure) 매출은 52% 성장했으며, 4분기에만 OpenAI를 포함한 30여 건의 AI 관련 계약을 체결하며 총 125억 달러의 수주를 기록했다. 독일의 다국적 소프트웨어 기업 SAP 역시 2024년 클라우드 매출이 27% 성장했으며, 4분기 클라우드 주문의 50%에 AI 컴포넌트가 포함되었다.성공의 핵심은 포지셔닝 전략이다. AI 기업이 되려 하지 않고, AI를 위한 필수 인프라로 자리매김했다. Oracle이 하지 않은 것은 AI 스타트업처럼 포지셔닝하거나 트렌디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대신 "AI는 결국 데이터입니다. 우리는 40년간 데이터를 다뤄왔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엔터프라이즈와 소비자 시장의 의사결정 논리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 특히 규모가 큰 기업의 의사결정자일수록 조직적 리스크를 동시에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위험 회피 성향은 검증된 벤더에 대한 신뢰 프리미엄으로 나타난다. ‘최고의 AI’보다 ‘신뢰할 수 있는 AI 통합’을 선호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들첫째, 인재 채용 기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험보다는 학습 능력을, 완성도보다는 실험 정신을 중시하는 채용 기준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특히 젊은 인재들의 ‘비기너 마인드셋’을 조직 전체로 확산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면접에서 "이전에 해본 적 없는 일을 어떻게 접근했는가" 같은 질문을 늘리고, "실패했지만 많이 배운 경험"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둘째, 상향식 AI 혁신을 지원하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직원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AI 도구들을 파악하고, 이를 체계화하여 전사로 확산시키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강제보다는 자발적 실험을 장려하는 문화가 더 지속가능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실제로 월 1회 ‘AI 실험 공유회’ 같은 자리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각 부서에서 시도해본 AI 도구나 워크플로우를 공유하고, 실패 경험도 솔직하게 나누는 자리가 있으면 조직 전체의 학습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셋째, 역할별 맞춤형 AI 교육에 투자하는 것을 고려해볼 만하다. 모든 직원이 거대 언어 모델(LLM) 의 작동원리를 알 필요는 없다. 대신 자신의 업무에 특화된 AI 활용법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케팅팀에게는 콘텐츠 제작과 고객 분석에 특화된 AI 도구 활용법을 교육하는 게 좋다. 영업팀에게는 리드 분석과 제안서 작성에 도움이 되는 AI 워크플로우를, 개발팀에게는 코딩 어시스턴트와 디버깅 도구 활용법을 교육하는 방식이다. 또한 단순히 도구 사용법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각 역할에서 "어떤 업무를 AI에게 맡기고, 어떤 부분에서 인간의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함께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접근이 일괄적인 AI 개론 교육보다 훨씬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넷째, 기존 강점을 AI 시대의 무기로 재포장하는 접근도 생각해볼 만하다. 완전히 새로운 AI 기업이 되려고 하지 말고, 특정 산업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인 ‘도메인 전문성’(Domain Expertise) 과 고객 관계를 AI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Oracle의 사례처럼 AI를 위한 필수 인프라가 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마지막으로, 신뢰를 기반으로 한 변화관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리더가 먼저 AI 실험 과정과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직원들의 우려와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양방향 소통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마케팅 기업 허브스팟(HubSpot)의 CEO 야미니 랜간은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의 인상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단순히 AI 도구 도입을 지시하지 않고, 대신 매주 금요일마다 자신이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5분짜리 비디오를 전 직원에게 공유한. 중요한 고객 미팅 전 AI 리서치 활용법, 경쟁 분석에서의 AI 적용 사례 등 어떻게 접목했는지 구체적 사례를 보여준다. 수십 년간 굳어진 워크플로우를 바꾸려면 리더가 먼저 자신의 생산성을 AI에 걸고 실험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런 접근이 직원들의 심리적 안전감을 높이고, 상향식 혁신을 활성화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중요한 것은 단계적 접근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작은 실험부터 시작해서 성공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AI 시대 생존의 핵심…기술 아닌 ‘마인드셋’AI 시대의 경쟁력은 AI를 얼마나 도입했느냐가 아니라, AI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에 달려있다. Shopify의 인턴들, 캔바의 직원들, Oracle의 전략가들이 보여준 것은 결국 같은 메시지이다.기술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마인드셋 격차는 오히려 벌어지고 있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매일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조직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만이 AI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회로 만드는 기업가 정신,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이다. 필자는 글로벌브레인 한국 대표이자 한일 크로스보더 투자 전문가다. 일본 교토대학 물리공학과를 졸업하고 노무라종합연구소 및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의 크로스보더 전략 컨설팅을 수행했다. 이후 AI 로봇 스타트업의 CSO를 역임하며 일본에서 제로투원 비즈니스를 담당했다. 현재는 글로벌브레인이라는 일본 주요 VC의한국 대표로 한국과 일본의 우수한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고 있다. 채널코퍼레이션·올거나이즈·리얼월드 등 한국의 담당 스타트업들의 일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양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25.08.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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