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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군함도 한국 손에…K조선, MRO 영토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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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만드는 한국 조선업이 ‘배를 고치는 시장’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미국 군사해상수송사령부(MSC) 소속 군수지원함의 유지·보수·정비(MRO)를 잇달아 맡았다.아직 미 해군의 핵심 전투함을 정비하는 단계는 아니다. 확보한 물량은 군수지원함이 중심이다. 다만 미국이 한국 조선사의 함정 건조 역량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업계에서는 MRO가 미 함정시장 진입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길 여는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가장 먼저 길을 연 곳은 한화오션이다. 한화오션은 2024년 8월 MSC 소속 루이스앤드클라크급 건화물선 ‘USNS 월리 쉬라’의 정기 대수리(ROH)를 수주했다. 월리 쉬라는 경남 거제 한화오션 사업장에서 약 7개월간 정비를 받은 뒤 지난해 3월 작업을 마쳤다.선체 부식과 프로펠러, 방향타 등 300건이 넘는 작업이 이뤄졌다. 손상된 방향타는 기존 설계도가 없는 상황에서 역설계해 새로 제작·교체했다.MSC는 월리 쉬라 정비를 통해 한국 조선소의 공급망과 자동화 설비, 숙련 인력의 역량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선박을 잘 만드는 한국이 미 군함도 제대로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적으로 증명한 셈이다.HD현대중공업도 뒤를 이었다. 지난 3월 말 MSC 군수지원함 ‘USNS 리처드 E. 버드’의 정비 계약을 따내 4월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정비 대상은 선체와 구조물, 추진·전기·보기 계통 등 100여개 항목이다.국내 조선사들이 MRO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정비 매출만이 아니다. 미국 군 함정을 직접 정비하며 품질과 보안, 납기, 검수 등 미 군수시장의 까다로운 절차를 경험할 수 있다.정비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수행 실적과 신뢰가 쌓인다. 이를 추가 MRO는 물론 함정 건조 사업으로 연결할 수 있다. 조선업계가 MRO를 미 함정시장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으로 보는 이유다.배 만들 여력 부족한 美, 韓에 눈 돌려미국이 한국 조선업을 주목하는 배경에는 자국 조선·정비 산업의 병목이 있다. 미 회계감사원(GAO)은 2024년 12월 보고서에서 2020~2022회계연도에 정비를 시작한 미 해군 상륙전함 14척 가운데 계획대로 작업을 마친 사례는 3척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나머지 11척에서는 누적 1200일이 넘는 지연이 발생했다.함정 건조 일정도 밀리고 있다. GAO가 지난 4월 미 하원 군사위원회 소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DDG-51 플라이트Ⅲ 구축함의 인도는 계획보다 22~58개월 늦어졌다.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의 건조 속도도 2025년 6월 기준 연간 1척에 머물렀다. 미 해군 목표의 절반이다. 2025년 인도된 잠수함 2척도 예정일보다 3년 넘게 늦었다.문제는 앞으로 필요한 배가 더 많다는 점이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미 해군은 2024년 296척인 함정 규모를 2054년 381척까지 늘릴 계획이다. 퇴역과 대체 수요까지 고려하면 새로 건조해야 할 함정은 총 364척이다. 연평균 12척꼴이다.필요한 예산은 연평균 약 300억달러(약 45조원), 총 1조750억달러(약 1600조원)로 추산된다. 함정 전력은 늘려야 하지만 건조와 정비 모두 제때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이다.인도·태평양에서 운항하는 함정을 미국 본토가 아닌 한국에서 정비하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한국에는 대형 상선과 군함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와 기자재 공급망, 숙련 인력이 있다. MRO 넘어 함정 건조까지 노린다미국의 관심은 정비를 넘어 건조로 향하고 있다. 미 국방부와 해군은 올해 국내 조선사들에 전투함과 급유함의 설계·건조 역량을 묻는 정보요청서(RFI)를 보냈다.전투함 관련 요청에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급유함 관련 요청에는 두 회사와 삼성중공업이 회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한국 조선사의 ‘배를 고치는 능력’을 넘어 ‘배를 만드는 능력’까지 공식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한 것이다.RFI가 실제 발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과 생산능력, 가격과 인도 조건을 확인하는 사전 조사에 가깝다. 그래도 미 정부가 한국 조선사를 잠재적인 함정 공급자로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제도 변화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8월 13일 미국 해군과 조선산업 기반을 재건하기 위한 각서에 서명했다. 미국 조선소에 투자하고 현지 인력 양성과 기술 이전에 나선 외국 조선업체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초도 물량 일부를 모기업의 해외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넘어야 할 문턱은 여전히 높다. 미국 법은 원칙적으로 자국 군함의 해외 건조를 제한한다. 예외가 인정되더라도 의회 통보와 예산, 보안 규정, 미국 내 투자와 공급망 구축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MRO에도 제한이 있다. 미국이나 괌 등을 모항으로 하는 미 해군 함정은 원칙적으로 해외 조선소에서 대규모 정비를 받기 어렵다. 한국 조선사들이 군수지원함 중심으로 실적을 쌓는 이유다.MRO가 신조선보다 수익성이 높은 사업도 아니다. 수조원이 오가는 함정 건조와 비교하면 개별 정비 계약 규모가 작다. 까다로운 미 군수 절차를 충족하기 위한 투자와 인력도 필요하다.그래도 조선업계는 MRO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군수지원함을 성공적으로 고칠수록 미국이 한국에 맡길 수 있는 함정과 작업 범위도 넓어진다. 정비 실적이 쌓이면 함정 건조시장에 도전할 명분도 강해진다.조선업계 관계자는 “MRO는 목적지라기보다 시작점에 가깝다”며 “미국 군수지원함 정비에서 신뢰를 쌓아 추가 물량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함정 건조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2026.09.20 09:00

4분 소요
엔진 정비 연 134대→500대…대한항공, 아시아 ‘비행기 병원’ 노린다

항공

대한항공이 항공기 정비·수리·개조(MRO)를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특히 항공기의 ‘심장’으로 불리는 엔진 정비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인천 영종도에 엔진정비 시설을 확충해 자체 항공기 정비를 넘어 수익사업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국내 항공 MRO 산업은 해외 의존도가 높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2024년 국내 항공 MRO 시장 약 3조9000억원 가운데 2조4000억원가량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산된다. 대한항공이 국내 정비 물량을 되찾고 델타항공과 중국남방항공 등 외항사 엔진까지 한국으로 끌어올 수 있을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부천·영종도에 흩어진 엔진 정비 한곳으로대한항공은 인천과 김포, 부산에 정비시설을 두고 있다. 인천에서는 중·대형 항공기를, 김포에서는 중·소형 항공기를 주로 정비한다. 부산은 기체 정비와 항공기 도색 등에 특화돼 있다. 1969년 부품 정비를 시작해 항공 MRO 분야에서 50년 넘게 경험을 쌓았다. 최근 가장 힘을 주는 분야는 엔진이다. 항공 MRO는 크게 운항·기체 정비와 엔진 정비, 부품 정비로 나뉜다. 이 가운데 엔진 정비는 높은 기술력과 오랜 경험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분야다. 엔진을 항공기에서 떼어낸 뒤 완전히 분해하고 세척·검사·수리한 다음 다시 조립해 성능시험까지 거쳐야 한다. 대한항공은 1972년 국내 항공당국과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인가를 받아 엔진 수리를 시작했다.현재 엔진 정비의 중심은 경기 부천과 인천 영종도다. 부천공장에서 엔진을 정비하고 영종도 운북지구 엔진 테스트셀(ETC)에서 성능을 시험한다. 영종도에서는 2016년부터 제1 ETC를 운영하고 있다. 가로·세로 각각 14m 규모로 최대 15만파운드급 초대형 엔진까지 시험할 수 있다. 대형 항공기 엔진을 해외로 보내지 않고 국내에서 시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지난해에는 바로 옆에 제2 ETC를 추가했다. 제2 ETC에서는 대한항공이 운용하는 에어버스 A321neo에 장착되는 프랫앤휘트니 PW1100G 엔진 등을 주로 시험한다. 제1 ETC가 초대형 엔진에 초점을 맞췄다면 제2 ETC는 차세대 고효율 엔진 정비 수요에 대응한다.대한항공은 ETC 인근에 5780억원을 투입해 신규 엔진정비공장을 짓고 있다. 연면적은 14만㎡가 넘는다. 축구장 약 20개를 합친 규모로 2027년 가동이 목표다. 공장이 완공되면 현재 부천과 영종도로 나뉜 엔진 정비 과정의 상당 부분을 한곳에 모을 수 있다.자체 정비 수요도 적지 않다. 아시아나항공과 통합하면 한진그룹 소속 항공기는 300대 안팎으로 늘어난다.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진에어와 에어부산, 에어서울의 정비 수요까지 고려하면 그룹 내부 MRO 물량만으로도 상당한 규모다. 국내외 12개 당국 인증 앞세워 글로벌 수주 경쟁대한항공의 연간 엔진 정비 능력은 올해 134대에서 2030년 500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정비할 수 있는 엔진 모델도 6종에서 12종으로 확대된다. 자체 항공기뿐 아니라 다른 항공사의 엔진을 정비해 수익을 내는 사업으로 MRO를 키우기 위해서다.해외 물량을 끌어오기 위한 기반도 갖췄다. 대한항공은 국내 항공당국을 비롯해 미국 FAA와 유럽항공안전청(EASA), 중국 민용항공국(CAAC) 등 국내외 12개 관계 당국으로부터 항공기와 엔진, 부품 정비 인가를 받았다. 안전과 직결되는 MRO 특성상 각국 당국의 인증과 정비 이력은 외부 물량 수주의 중요한 조건이다.외항사 물량 확보도 시작됐다. 대한항공은 2004년부터 다른 항공사의 엔진 정비를 수주해 왔다. 델타항공과 중국남방항공 등의 엔진을 정비한 경험이 있다. 최근에는 헝가리 저비용항공사 위즈에어가 보낸 PW1100G 엔진의 MRO와 성능시험을 영종도 시설에서 진행하고 있다.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으로 양사의 정비 인력과 시설을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룹 내부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외부 고객을 늘릴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다.MRO 확대 효과는 국내 항공산업 전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항공은 엔진과 부품 정비 기술을 국내 중소 협력업체에 전수하고, 수입 부품의 국산화와 관련 인증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 업체가 생산한 항공기 부품을 직접 구매하며 공급망 확대에도 나섰다. 9만개가 넘는 항공기 자재를 판매·대여하고 정비 장비와 공구도 공급한다.정비 인력 확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국토교통부 인가를 받은 항공기 정비 교육과정을 통해 정비사 양성 과정과 정기·특수 과정, 관리자 훈련 등을 운영한다. 대규모 시설을 갖춰도 숙련 인력이 부족하면 처리 물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인력 양성도 MRO 경쟁력을 좌우한다.과제는 해외 고객을 지속해서 확보하는 것이다. 항공사는 정비 기간에는 항공기나 엔진을 운용할 수 없어 소요 기간과 비용에 민감하다. 기술력뿐 아니라 부품 조달 능력과 숙련 인력, 엔진 제작사와의 관계, 각국 항공당국의 인증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싱가포르와 중국 등 기존 아시아 MRO 거점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다.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MRO는 대한항공이 노릴 수 있는 유망 사업이자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투자”라며 “엔진 MRO는 내부 정비 수요를 소화하면서 외부에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해외 고객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축적한 역량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2026.09.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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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 40% 확보했지만”…고려아연 2년 전쟁, 결국 주주 손에 달렸다

산업 일반

2024년 9월 13일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고려아연 주식을 주당 66만원에 공개매수하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당시 영풍과 MBK는 최윤범 회장 체제의 경영과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며 경영 정상화와 기업가치 제고를 내세웠다. 고려아연은 이를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규정하고 맞섰다.이후 공개매수 가격은 66만원에서 83만원까지 올랐고 고려아연도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89만원까지 높이며 반격했다. 전장은 법원과 주주총회로 옮겨갔다. 자사주와 상호주, 의결권 제한,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둘러싸고 소송과 표 대결이 반복됐다.하지만 경영권 분쟁은 여전하다. MBK·영풍이 고려아연 지분 40% 이상을 확보했지만 이사회 주도권은 여전히 최 회장 측이 갖고 있다. 2년 동안 수조원의 자금과 수많은 소송이 오갔지만 지분율만으로 경영권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이번 경영권 분쟁의 향방을 주주들이 판가름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대 실적 고려아연, 본업 흔들린 영풍지난 9월 9일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총 최대 승부처였던 감사위원 분리선출에서 고려아연 이사회가 추천한 백인규 후보가 출석 의결권의 81.8% 찬성을 얻었다. MBK·영풍 측 박유경 후보의 찬성률은 27.9%였다. 투표에 참여한 외국인·외국기관의 98.3%, 국내 개인주주의 79.1%가 백 후보를 선택했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국내 기관에서도 86.9%의 지지를 받았다.감사위원 선임에는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이 적용됐다. 일반 이사 4석은 양측이 2석씩 나눠 가졌다. 이에 따라 현재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2명, MBK·영풍 측 7명으로 구성됐다. MBK·영풍 측이 적지 않은 이사회 의석을 확보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40%가 넘는 지분 우위가 주총 장악력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이처럼 MBK·영풍이 지분 우위에도 경영권을 가져오지 못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고려아연의 본업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을 빼놓기 어렵다.고려아연의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은 12조4450억원, 영업이익은 1조3330억원으로 창사 이후 최대 반기 실적을 기록했다. 2분기에도 587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분기 실적 공시 이후 106분기 연속 영업흑자를 이어갔다.2년 전 양측이 공통으로 내세운 명분은 ‘기업가치’였다. MBK·영풍은 현 경영진의 경영 능력과 지배구조를 문제 삼았고, 고려아연은 현 경영진의 성장 전략과 경영 성과를 지켜야 한다고 맞섰다.분쟁 이후에도 고려아연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경영 성과는 최 회장 측이 일반주주를 설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어막이 됐다.반대로 영풍은 올해 1분기 43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2분기에는 15억원으로 줄었다. 핵심 생산시설인 석포제련소 가동률도 1분기 57.23%에서 2분기 51.7%로 낮아졌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의 상반기 가동률은 100% 수준을 기록했다. 고려아연 경영진 교체 필요성을 주장하는 영풍으로서는 석포제련소 정상화와 본업 경쟁력 회복 역시 주주들에게 설명해야 할 과제가 됐다.MBK에도 ‘시간’이 ‘비용’으로 돌아오고 있다. MBK 측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취득한 고려아연 주식은 172만2738주다. 평균 취득단가는 94만6112원으로, 이를 단순 계산하면 투자금은 약 1조6300억원에 이른다. MBK는 공개매수 당시 NH투자증권으로부터 1조5785억원 규모의 인수금융을 조달했다. 이후 상당액을 자기자본으로 상환하고 현재는 고려아연 지분을 담보로 한 6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유지하고 있다. 금리는 연 6.2% 수준이다.6000억원에 연 6.2%를 단순 적용하면 연간 이자 부담은 약 372억원이다. 분쟁이 길어질수록 비용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10월 콜옵션보다 중요한 ‘2027년 3월’MBK는 2024년 영풍과 체결한 경영협력계약에 따라 영풍 측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일부를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갖고 있다. 현재 지분을 계약상 산식에 적용하면 대상은 약 257만주 규모다.다만 콜옵션을 행사한다고 MBK·영풍 연합 전체의 고려아연 지분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영풍 측 지분 일부가 MBK로 이동하는 구조다. 대신 실제 옵션이 행사될 경우 양측 내부의 지분구조와 경제적 이해관계에는 상당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경영권 향방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줄 승부처는 2027년 3월 정기주총이다.현재 19명의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2명, MBK·영풍 측 7명으로 나뉘어 있다. 내년 3월에는 집중투표 대상 이사 8명과 분리선출 감사위원 1명 등 총 9명이 선임 대상에 오른다. 이번 9월 임시주총보다 훨씬 큰 폭의 이사회 재편 가능성이 열리는 셈이다.40%가 넘는 지분을 확보한 MBK·영풍에는 다시 이사회 진입을 확대할 기회가 된다. 고려아연 역시 최근 감사위원 표결에서 나타난 일반주주의 표심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결국 분쟁 3년차의 승부는 일반주주 설득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년 전에는 양측 모두 지분 확보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어느 쪽이 회사의 장기적인 기업가치에 도움이 되는지를 주주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단계”라며 “내년 3월 이사회 재편을 앞두고 결국 일반주주와 기관투자가를 얼마나 설득하느냐가 양측 모두에게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임시주총은 MBK·영풍 측에 다소 불리한 결과로 끝났고, 의도했던 바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본게임은 다음 주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향후 표 대결과 관련해서는 “과거에는 지분율 자체가 가장 중요했지만 3%룰과 집중투표제 도입으로 상황이 달라졌다”며 “앞으로는 일반주주와 기관투자자를 설득해 명분을 쌓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6.09.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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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제미나이', 기업 3곳 무단 해킹에도 "공개할 사안 아냐" 은폐 논란

IT 일반

구글의 인공지능(AI) 모델 '제미나이'가 안전성 평가 도중 내부 통제망을 벗어나 실제 기업 시스템에 침투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구글은 사태 파악 후에도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아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구글 제미나이가 지난 5월 사이버 보안 업체 '이레귤러'가 진행한 모의해킹(CTF) 평가 과정에서 외부 민간 기업 3곳의 시스템에 무단 접근했다고 보도했다. 제미나이가 가상 환경이 아닌 현실 속 기업 인프라를 직접 타깃으로 삼아 침입을 시도한 사례가 공식 입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번 무단 침투는 기밀 탈취 임무를 부여받은 제미나이가 시스템 설정상의 허점을 타고 외부망에 접근하면서 발생했다. 평가를 맡은 이레귤러 측은 원래 인터넷이 차단된 격리망에서 시험을 진행해야 했으나, 관리상 착오로 네트워크 연결을 차단하지 못했다. 이에 제미나이는 가상 목표물과 동일한 상호를 가진 실제 기업을 온라인에서 검색해 스스로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조사됐다.사고 발생 이후 구글의 대처를 두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구글은 WSJ의 취재 조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해당 침입 사실을 대외에 공표하지 않았다. 구글 측은 제미나이가 침투 대상이 실제 기업임을 자율 인식한 직후 공격을 중단했으며, 대상 기관에 실질적인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부 공개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헤더 앳킨스 구글 보안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은 "강력한 AI 모델을 책임감 있게 동작하도록 훈련하는 일의 중대성을 보여준 사례"라며 "이번 상황에서 모델은 적절한 방식으로 제어됐다"고 해명했다. 구글은 연방 당국에는 해당 정황을 보고했으며, 문제 발생 모델은 최신 버전이 아니라고 덧붙였으나 구체적인 모델명은 밝히지 않았다.그러나 보안 업계에서는 구글이 사안의 엄중함을 간과한 채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사이버 보안 스타트업 코리도어의 잭 케이블 최고경영자(CEO)는 "AI 모델이 부여된 임무 범위를 넘어 현실의 시스템을 상대로 사이버 공격을 감행했다는 것 자체가 핵심 문제"라며 "이는 공익 차원에서 대중에 투명하게 밝혀져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AI 모델이 통제 구역을 이탈해 독자적인 공격 태세를 갖춘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오픈AI의 GPT 모델이 샌드박스를 이탈해 허깅페이스 서버에 접근한 바 있으며, 앤트로픽의 클로드 역시 내부 검증 결과 3개 조직의 내부망에 침입했던 정황이 밝혀졌다. 주요 빅테크의 AI 에이전트들이 통제 불능 상태로 외부망을 위협하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기술 개발 속도를 조정하고 외부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층 힘을 얻고 있다.

2026.09.19 15:34

2분 소요
이익률 1위 뺏긴 K-반도체, 중·미 협공에 '샌드위치' 위기

IT 일반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던 한국의 '초격차'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범용 D램 공세와 미국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대규모 투자가 동시에 가해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K-반도체가 양쪽에서 압박을 받는 샌드위치 신세로 내몰리고 있다.수익성 지표에서부터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19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메모리 업계 영업이익률 1, 2위는 한국 기업이 아닌 중국 창신메모리(CXMT, 82%)와 미국 마이크론(80.4%)이 차지했다. SK하이닉스(76.3%)와 삼성전자 DS부문(70%)은 역대급 실적을 올리고도 상위 자리를 넘겨줘야 했다. 국내 기업들이 수익성이 높은 HBM 등 차세대 AI 메모리 생산에 집중하는 사이, 수급 불균형으로 가격이 급등한 범용 D램 시장의 수혜를 CXMT가 고스란히 누린 영향이다.시장 점유율 구조도 가파르게 변하고 있다. 2분기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39.4%)와 SK하이닉스(24.9%)는 1, 2위를 유지했지만, 합산 점유율은 1분기 67.3%에서 64.3%로 소폭 하락했다. 반면 3위 마이크론은 점유율을 23.3%까지 끌어올려 2위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단 1.6%포인트로 좁혔다. 4위 CXMT 역시 점유율을 9.5%까지 늘리며 기존 메모리 '3강' 체제를 '4강' 구조로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기술 추격과 자본력 공세도 위협적이다. CXMT는 최근 기업공개(IPO)로 확보한 14조 원의 현금을 바탕으로 설비 증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차세대 모바일 D램 LPDDR6 양산 선언에 이어 5세대 HBM(HBM3E) 테스트에 진입하는 등 기술 간격도 HBM 3년, D램 2년 수준까지 바짝 줄였다. 미국 마이크론의 HBM 주도권 쟁탈전 역시 거세다. 현재 HBM 시장은 SK하이닉스(50%)와 삼성전자(33%)가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지만, 마이크론(18%)은 연말까지 HBM 생산능력을 월 10만 장 수준으로 대폭 확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6 회계연도 설비투자(CAPEX) 규모를 기존 200억 달러에서 270억 달러(약 37조 원)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업계 관계자는 범용 메모리 공급 부족과 미·중 정부의 전폭적인 반도체 육성 정책이 이어질 경우, 양국 기업의 위협이 장기화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독주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6.09.19 09:26

2분 소요
“책은 안 읽어도 책갈피는 갖고 싶어”…100만개 팔린 ‘민음사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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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을 담은 ‘위시리스트’ 하나쯤은 품고 삽니다. ‘강예슬의 위시리스트’는 최근 소비자가 가장 열광하는 상품과 브랜드, 공간과 경험 등을 찾아 소개합니다. 단순히 인기 제품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이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했는지를 짚어 봅니다. 사고 싶은 마음 뒤 숨겨진 소비 흐름과 업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편집자주> “저희 아내도 못 구해서 난리예요.”최근 만난 한 50대 대기업 임원은 “아내가 ‘민음사빵’을 사고 싶어 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빵을 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송모씨(43)도 “민음사빵을 구하기 위해 물류 입고 시간에 맞춰 집 근처 GS25 매장에 방문했다”며 “아내가 원해 사긴 했지만 생각보다 빵도 맛있고 책갈피 품질이 좋아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출시 3주 만에 100만개 팔려민음사빵은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가 출판사 민음사와 손잡고 지난 8월 21일 선보인 협업 상품이다. 민음사빵에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 시집 표지에 민음사의 캐릭터 지식재산권(IP) ‘오늘의 귀여움’을 넣은 투명 책갈피 20종 가운데 하나가 무작위로 들어 있다. 종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모카번 우유크림)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대하여’(모카번 커스터드) ▲문정희 시집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깨찰빵 솔티밀크) ▲허연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깨찰빵 커스터드) 등 총 네 가지다.GS25가 지난 8월 21일과 26일 각각 2종씩 선보인 민음사빵은 출시 일주일 만에 12만개 넘게 팔리며 전국적인 품절 대란을 빚었다. 빵을 구하지 못한 소비자가 매장별 재고를 확인하기 위해 GS25의 ‘우리동네GS’ 애플리케이션(앱)에 한꺼번에 접속하면서 한때 앱 이용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GS리테일에 따르면 지난 9월 14일 기준 민음사빵의 누적 판매량은 100만개를 돌파했다. 입고 물량 대비 판매율은 100%를 기록 중이다. GS25 전체 빵류 매출에서도 민음사 빵 4종이 나란히 1~4위에 올랐다.민음사빵을 구하기 위해선 ‘오픈런’이 필수인 상황이다. 기자도 민음사빵을 사기 위해 GS25 매장을 세 곳 넘게 돌았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모두 “입고되자마자 10분 만에 다 팔렸다”였다.GS25 점주들은 “민음사빵의 인기가 많아 매일 발주를 하지만 입고일과 발주 물량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면서 “입고되더라도 종류별로 1개씩 최대 4개만 들어온다”고 했다.민음사빵의 유행을 이끈 건 빵에 동봉된 ‘책갈피’다. 책갈피가 소비자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면서 입고 즉시 완판 행진이 이어졌다.20개의 책갈피 중 인기 디자인은 웃돈을 주고 구매해야 할 정도다. 빵의 정가는 2700~3700원이지만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개당 5000원 정도에 거래된다. 인기 책갈피인 ‘오만과 편견’은 최대 2만9000원에 팔리기도 했다. 1만3000원인 책보다 두 배 넘게 비싼 가격에 판매된 셈이다. ‘책+빵’으로 2030 女心 잡은 GS25민음사빵 열풍의 배경에는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한 ‘텍스트힙’(Text Hip)이 자리한다. 텍스트힙은 책을 단순히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문장과 표지, 작가와 출판사 등을 하나의 콘텐츠이자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소비하는 현상이다.GS25도 텍스트힙 흐름에 주목했다. GS25에 따르면 민음사빵의 시작은 지난 6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이다. 도서전에 방문한 GS25의 디저트 상품기획자(MD)가 민음사 팝업에 이삼십 대 여성이 몰린 모습을 보고 민음사 굿즈를 넣은 빵을 기획했다. 민음사 팬과 편의점 디저트의 주요 소비층이 겹쳐 좋은 반응을 얻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MD의 예상은 적중했다. GS25에 따르면 9월 초 기준 민음사빵의 구매 고객 가운데 2030 여성 비중은 50%를 웃돈다. 20대 여성은 26%, 30대 여성은 25%를 차지했다.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의 종합독서율은 38.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대의 독서율은 75.3%로 전체 성인 평균의 약 2배에 달했다. 30대의 독서율도 66.4%로 다른 연령층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독서율은 낮아졌지만 책 관련 소비와 경험 등은 늘어나는 추세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개최된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약 16만명이 방문했다. 지난해 15만명보다 1만명 늘어난 수치다. 민음사가 지난 8월 26일까지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운영한 팝업도 하루 1000명 이상이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명품 브랜드도 텍스트힙 유행을 반영해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루이 비통은 도서관을 뜻하는 ‘라 비블리오테크’(La Bibliothèque)를 주제로 재단장한 ‘루이 비통 서울 도산 스토어’를 지난 9월 11일 공개했다.루이 비통 관계자는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 중인 텍스트힙 트렌드를 반영해 도서관을 주제로 도산 스토어를 꾸미게 됐다”고 설명했다.민음사빵의 인기는 MZ 세대를 넘어 4050세대로도 확장하는 모습이다. 한 40~50대 여성 커뮤니티에 올라온 민음사빵 구매 후기 글에는 “며칠째 앱으로 확인 중인데 재고 조회가 안 될 정도로 인기” “책갈피가 탐나서 동네 GS25 매장을 다 돌았는데 하나도 없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책갈피를 꼭 끼우고 싶다” 등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는 단순히 상품을 사는 것을 넘어 소비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보여주려는 특성을 보인다”며 “당분간 텍스트힙을 마케팅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2026.09.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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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팔려도 걱정…200개국 뚫은 K뷰티에 날아든 ‘규제 청구서’

유통

K-뷰티 수출 시장이 미국과 유럽·동남아·중동 등으로 넓어지면서 국내 화장품 기업들의 규제 대응 업무도 복잡해지고 있다. 국가마다 허용 성분과 제품 등록, 표시 기준이 달라 같은 제품이라도 수출 국가에 따라 별도의 준비가 필요해서다. 일부 제품은 현지 기준에 맞춰 처방까지 다시 짜야 한다.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2025년 114억달러(약 15조5600억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으로 올라섰고 최대 수출 시장도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수출 대상국 역시 200개국을 넘어섰다. 수출 영토가 넓어질수록 기업이 상대해야 할 규제도 다양해지는 구조다.나라 바뀌면 라벨 바꾸고, 선크림은 처방까지K-뷰티 기업들이 해외에서 거쳐야 하는 절차는 시장마다 다르다. 미국에서는 화장품규제현대화법(MoCRA)에 따른 제조시설 등록과 제품 리스팅 등의 의무가 적용된다. 유럽연합(EU)은 화장품제품신고포털(CPNP) 신고와 제품정보파일(PIF), 화장품 안전성 보고서(CPSR) 등이 필요하다. 중국도 일반 화장품을 대상으로 별도의 등록·신고 절차를 운영한다.차이는 실제 진출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에서 드러난다. 한 화장품 규제대응(RA) 전문업체에 따르면 일반 스킨케어 제품 1개를 기준으로 미국 등록에는 통상 약 2주, 50만~100만원이 든다. EU는 약 1~2개월, 200만~300만원이 소요된다. 중국은 현지 시험과 안전성 평가, 기술 심사 등을 거쳐야 해 통상 4~5개월이 걸린다. 실제 비용과 기간은 기업이 확보한 자료와 제품 유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국가별 규제 차이는 제품 자체에도 영향을 준다. 현지 안전성 기준에 맞추기 위해 성분의 처방 한도를 조정하는 사례가 있고 라벨도 수출 국가의 표시 기준에 맞춰 별도로 제작해야 한다.단적인 예가 자외선차단제다. 미국에서는 자외선차단제를 일반의약품(OTC)으로 관리한다.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 관계자는 “한국에서 잘 팔리는 자외선차단제라고 해도 그대로 미국에 가져가 판매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미국 기준에 맞추기 위해 성분을 빼거나 처방을 다시 만드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브랜드사도 수출국이 추가될 때마다 현지 규정을 다시 확인한다. 약 40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아로마티카는 새로운 국가에 진출할 때 현지 성분 사용 기준과 제품 등록·라벨 필수 표기사항·효능 표현 범위 등을 검토한다.아로마티카 관계자는 “같은 제품도 국가별 기준에 따라 라벨을 따로 제작하거나 제품 정보와 관련 자료를 추가로 준비한다”며 “이 과정에서 국가별 출시 시점이 달라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특히 중소 브랜드는 안전성 등을 입증하기 위한 시험 자료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RA 업계에 따르면 PIF 등 필요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출을 진행하면 실제 판매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자체적으로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업체는 외부 RA 전문업체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중국과 EU 등의 규정 개정에 따른 문의뿐 아니라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시장 진출 관련 문의도 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수출 늘자 규제도 장벽…정부, 문턱 낮추기 나서정부도 국가별 규제 차이를 K-뷰티 수출 확대 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로 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K-뷰티가 세계로 뻗어나갈수록 국가별로 다른 화장품 규제가 해외 진출의 장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정부가 국가 간 규제 협력을 위해 출범시킨 것이 ‘글로벌 화장품 규제기관장 협의체’(GCORAS·지코라스)다. 각국 화장품 규제당국이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애로사항과 규제 차이를 논의하는 협의체다.구체적인 규제 완화 논의도 시작됐다. 식약처는 지코라스를 계기로 아랍에미리트(UAE), 브라질, 베트남 등과 양자회의를 열었다. 자외선차단제 심사자료 간소화와 수출제품 등록 시 시험 및 기준·방법의 사전 제출 의무 완화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규제당국 간 협의로 기업 부담을 줄인 사례도 나왔다. 인도네시아가 오는 10월 18일부터 화장품 할랄 인증 표시를 의무화하는 가운데 식약처는 현지 당국과 협의해 기존 통관 제품의 적용 유예기간을 1년 연장했다. 국내 기업들이 이미 유통 중인 제품을 회수해 별도로 표시하거나 즉시 인증을 받아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아직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지코라스가 출범했다고 국가별 규제가 곧바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아니다. 성분과 안전성 평가, 제품 등록, 표시 기준 가운데 어떤 분야부터 규제 차이를 좁힐지도 앞으로 논의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등 K뷰티 주요 시장의 규제당국도 현재 지코라스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식약처는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 규제당국과 소통해 지코라스 참여를 확대할 계획이다. 동시에 주요 수출국과 개별 협의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당장 부딪히는 규제를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수출 시장 다변화에 맞춰 기업의 규제 대응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K뷰티가 수출 국가를 늘리는 단계에서 이제는 각 시장에 얼마나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며 “특히 중소 브랜드가 해외 사업을 확대하려면 국가별 규제 대응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026.09.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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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서 띄우고 아마존서 판다…마리엔메이가 70개국 뚫은 비결[이코노 인터뷰]

유통

“잠들기 전에 꼭 ‘마리엔메이’를 검색합니다. 터키어·아랍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로 올라온 후기와 댓글까지 봐요.”김수민 마리엔메이 공동대표에게 소셜미디어(SNS)는 광고 채널인 동시에 시장조사 창구다. 해외 소비자가 어떤 제품에 반응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이를 다음 제품과 마케팅에 반영한다.2020년 출범한 스킨케어 브랜드 마리엔메이는 현재 70여개국에서 제품을 판매한다. 전체 매출의 85% 이상이 해외에서 나온다. 북미와 유럽이 안정적인 매출 기반이고 최근에는 중동과 남미, 일본에서도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마리엔메이는 출범 당시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했다. 국내에서 인지도를 확보한 뒤 해외로 나가는 대신 처음부터 여러 국가에 동시에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2021년 투자에 나선 실리콘투의 글로벌 유통망을 활용해 초기 판로를 넓혔고, 이후 국가별 판매 데이터와 SNS에서 쌓이는 소비자 반응을 바탕으로 시장마다 제품과 메시지를 달리했다.김 대표는 애경산업을 시작으로 테팔·켈로그·필립스 등을 거쳐 유니레버 카버코리아에서 마케팅 전략과 기업 전략을 담당했다. 여러 글로벌 기업을 경험한 그는 마리엔메이를 공동 창업하면서 성분과 효능, 사용법을 소비자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K-클린뷰티’를 브랜드 방향으로 잡았다.미국은 성분, 동남아는 ‘비포·애프터’같은 제품도 국가마다 소비자가 반응하는 지점은 달랐다. 김 대표는 “미국은 리뷰나 성분 중심이 중요하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사용 후의 정확한 효과나 비주얼 임팩트가 좀 더 잘 통한다”며 “유럽에서는 안전한 성분과 클린뷰티 철학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중동에서는 색소침착이나 피부톤과 관련한 제품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았다.예상하지 못한 시장에서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다크서클 개선을 앞세운 아이크림의 비포·애프터 콘텐츠가 SNS에서 퍼지면서 아프리카에서 대량 발주가 들어왔다. 기존 판매 데이터만으로 시장을 정하기보다 SNS에서 나타나는 반응을 함께 살피는 이유다. 제품을 크리에이터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시딩 마케팅’도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처음부터 수천명에게 제품을 보내지 않는다. 마이크로 크리에이터에게 먼저 제품을 제공하고 반응이 확인된 제품과 콘텐츠를 중심으로 규모를 키운다. 이후 월 최대 4000명 수준의 시딩에 브랜드 앰배서더와 대형 크리에이터를 더한다.김 대표는 “일종의 테스트처럼 피드백을 받는 것”이라며 “소수 크리에이터에게 검증된 제품과 콘텐츠를 바탕으로 대량 시딩을 하고, 그 위에 로열 앰배서더와 영향력이 큰 메가 크리에이터를 쌓아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스피큘 제품을 알린 ‘No Pain No Gain’(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캠페인도 이 과정을 거쳤다. 제품을 바를 때 느껴지는 따끔함을 콘텐츠 소재로 삼았다. 회사에 따르면 캠페인 영상은 1억뷰를 기록했고 100여개국에서 1만1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후속 캠페인까지 약 1만8000건의 콘텐츠가 만들어졌다.김 대표는 데이터만으로 새로운 시장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이미 판매가 이뤄지는 시장에서 제품과 마케팅을 개선할 때는 데이터를 활용하지만 새로운 제품이나 카테고리를 만들 때는 창업자의 판단으로 먼저 시도한 뒤 소비자 반응을 확인한다는 설명이다.틱톡서 발견하고 아마존서 산다해외 판매 채널도 역할이 다르다. 아마존에서는 검색 키워드와 상세 페이지·리뷰·평점이 중요하다. 이미 제품 구매 의사가 있는 소비자가 검색을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서다.틱톡숍은 소비자가 제품을 찾기 전에 영상이 먼저 노출된다. 크리에이터의 사용 장면이나 짧은 영상을 보고 처음 제품을 발견하고 구매까지 이어질 수 있다.김 대표는 “틱톡숍은 콘텐츠가 수요를 만드는 플랫폼”이라며 “틱톡에서 제품을 발견한 소비자가 아마존으로 넘어와 구매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틱톡이 제품을 처음 알리는 역할을 한다면 아마존은 검색과 리뷰를 거쳐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는 셈이다.온라인에서 먼저 해외 소비자를 확보한 마리엔메이는 오프라인 유통망도 넓히고 있다. 터키에서 800개 이상 매장을 운영하는 화장품 유통업체 그라티스(Gratis)를 비롯해 대만 코스메드(Cosmed), 말레이시아 사사(Sasa) 등에 입점했다. 조지아에서는 300개 약국 채널에서 제품을 판매한다. 다음 입점 목표 중 하나로 미국 얼타뷰티(Ulta Beauty)를 꼽았다.온라인 중심 전략으로 빠르게 국가를 넓힐 수 있었지만 비용과 소비자 경험 측면에서는 한계도 나타났다. 온라인 광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커진다. 비슷한 성분과 효능을 앞세운 제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화면만으로 브랜드 차이를 전달하기도 쉽지 않다.김 대표는 “온라인으로만 지속하면 신규 고객 확보 비용이 굉장히 커진다”며 “스킨케어는 실제 제품을 체험하고 사용감을 느껴보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채널 확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빠른 해외 확장이 장기적인 브랜드 성장으로 이어질지는 또 다른 문제다. 김 대표가 경계하는 것도 특정 제품 하나가 SNS에서 바이럴(소문)을 타면서 단기간에 인기를 얻는 데 그치는 경우다. 마리엔메이는 소비자 후기를 활용한 바이럴 콘텐츠와 별도로 브랜드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특정 국가나 유통 채널에 매출이 집중되지 않도록 판매처도 넓히고 있다.김 대표는 “잠깐 뜨는 것은 할 수 있다. 하지만 10년을 가려면 브랜드 철학과 스토리텔링이 명확해야 하고 특정 국가나 특정 유통 채널에 너무 의존해서도 안 된다”며 “성공 사례를 여러 국가에서 반복해서 만들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마리엔메이의 다음 목표도 제품 하나의 흥행보다 브랜드를 남기는 데 맞춰져 있다. 김 대표는 “글로벌 소비자가 피부 고민이 있을 때 먼저 떠올리는, 효능이 증명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국의 클린뷰티 브랜드로 기억되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2026.09.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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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의자 같네”…잘 달리는 볼보 ES90의 뜻밖의 약점 [타봤어요]

자동차

잘 나가는 전기차는 많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몸이 시트에 파묻힐 만큼 강한 힘을 내는 차도 이제 낯설지 않다. 그래서일까. 최근 전기차를 탈 때면 얼마나 빠른지보다 얼마나 부드럽게 속도를 끌어올리는지에 더 눈길이 간다.지난 17일 볼보의 플래그십 전기 세단 ES90을 타고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에서 경기 포천시 소흘읍까지 왕복 약 130km를 달렸다. 도심과 고속도로, 한적한 외곽 도로를 두루 달려본 ES90은 빠른 차라기보다 편안한 차에 가까웠다. 다만 플래그십이라는 이름에 아쉬운 부분도 분명했다. 부드러운 거구ES90 트윈 모터 모델의 공차중량은 2545kg에 달한다. 106kWh 배터리를 탑재해 최고출력 456마력, 최대토크 68.4kg·m의 힘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4초다. 2.5톤이 넘는 덩치에도 상당한 성능을 갖췄다.가속페달을 밟아보면 수치에 걸맞은 힘이 금세 드러난다. 덩치가 무색할 만큼 빠르게 속도를 끌어올린다. 주행 환경에 따라 차의 성격을 바꿀 수도 있다. 조향과 서스펜션 감도를 조절할 수 있고 오프로드 기능도 갖췄다. 세단이지만 활용 범위가 넓다.오프로드를 활성화하면 차고를 높이고 내리막길 주행 제어 기능을 함께 작동시킨다. 직접 기능을 켜자 차체가 서서히 올라갔다. 세단이지만 다양한 노면 상황까지 고려한 셈이다.여러 기능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주행감이다. ES90에는 네 바퀴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듀얼 챔버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됐다. 전자제어 댐퍼가 초당 500회씩 움직이며 주행 상황에 맞춰 승차감과 차체 움직임을 조절한다. 3102mm에 달하는 긴 휠베이스도 안정적인 주행을 돕는다.가속페달을 깊게 밟았을 때 차체가 갑자기 튀어나가는 전기차 특유의 느낌도 적었다. 속도는 빠르게 올라갔지만 힘이 한꺼번에 쏟아지지는 않았다. 볼보가 강조하는 ‘부드럽고 선형적인 가속’이 어떤 느낌인지 쉽게 체감할 수 있었다. 빠른 가속보다 편안한 주행감에 무게를 뒀다는 인상이 강했다.주행 보조 기능도 안정적이었다. 고속도로에서 파일럿 어시스트를 활성화하자 차선 중앙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달렸다. 다른 차량에서는 차선 한쪽으로 과하게 붙어 불안한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ES90에서는 그런 느낌이 거의 없었다.트렁크 활용성도 눈에 띄었다. 용량은 409L다. ▲26인치 캐리어 1개 ▲24인치 캐리어 2개 ▲20인치 캐리어 1개 ▲20인치 플랫 캐리어 1개 ▲도트백 ▲보스턴백을 한꺼번에 실을 수 있었다. 리프트백 형태라 짐을 싣고 내리기도 편했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아쉬운 부분도 분명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음성인식 기능이다. ES90은 ‘아리아’라고 부르면 통풍시트나 공조 등 차량 기능을 음성으로 조작할 수 있다. 운전석에서 “통풍시트 켜줘”라고 말하자 곧바로 작동했다. 어느 좌석에서 명령했는지도 정확하게 인식했다.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조수석에 앉아 “나도 켜줘”라고 말하자 예상과 다른 반응이 나왔다. 조수석 통풍시트 대신 가수 로꼬의 ‘너도’가 재생됐다. 차 안에서는 웃음이 터졌지만, 앞선 명령의 맥락을 이해하고 이어가는 능력은 아직 부족해 보였다.음성으로 조작할 수 있는 기능도 다소 제한적이었다. 글로브박스와 창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실행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통풍시트와 공조 등을 음성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글로브박스나 창문까지 제한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사소하지만 의외였던 부분도 있다. 조수석 천장에 흔히 달려 있는 손잡이가 없다. 평소 조수석에서 몸을 일으키거나 자세를 고쳐 앉을 때 손잡이를 자주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불편했다. 플래그십 모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2열은 호불호가 갈릴 만했다. 공간 자체는 넉넉하다. 휠베이스가 3102mm에 달하는 만큼 무릎 공간은 충분하다. 다만 시트 방석은 다소 짧게 느껴졌다. 엉덩이를 깊숙이 넣고 앉아도 허벅지 아래쪽을 충분히 받쳐주지 못해 일부가 뜨는 느낌이었다.이날 한 기자는 2열에 앉아본 뒤 “목욕탕 의자에 앉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꽤 와닿는 비유였다. 공간이 좁아서가 아니라 허벅지가 충분히 받쳐지지 않으면서 앉은 자세가 묘하게 어색했다. 앞좌석에서 느낀 주행감과 승차감이 좋았던 만큼 2열의 아쉬움은 더 크게 다가왔다.ES90은 장점과 단점이 분명한 차다. 직접 운전할 때의 만족도는 높았다. 부드러운 주행 질감과 안정적인 승차감은 플래그십 세단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반면 음성인식과 일부 편의 기능, 2열 착좌감은 조금 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가격은 ES90 트윈 모터 기준 플러스가 7960만원, 울트라가 8741만원이다. 울트라에 듀얼 챔버 에어 서스펜션을 추가하면 9041만원으로 9000만원을 넘어선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상온 복합 기준 최대 520km다.ES90은 뒷좌석보다 운전석에서 더 매력적인 차였다. 부드러운 주행감과 안정적인 승차감은 장거리 운전에서 특히 강점으로 다가온다. 반대로 2열을 자주 이용한다면 계약하기 전 직접 앉아보는 것이 좋다.

2026.09.19 06:30

3분 소요
시작도 전에 힘 빠진 설탕세…증세 논란에 좌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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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야심 차게 추진하던 이른바 ‘설탕세’가 암초를 만났다. 당초 9월 초로 예정됐던 설탕세 법안 발의가 ‘의견 수렴’을 이유로 미뤄지면서다. 설탕 부담금 도입이 사실상 ‘꼼수 증세’라는 지적이 나오며 논란이 커지자 부담을 느낀 여당이 주춤하는 모양새다.정치권에 따르면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11일 대표 발의할 예정이었던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발의 시점을 늦추기로 했다.김 의원은 오는 10월 열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기관에 당류 저감 정책 관련 의견을 수렴한 뒤 이르면 연내 법안 도입을 재추진할 예정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설탕세가 증세를 위한 법안으로 해석되면서 법안 발의 시 사회적 저항이 클 것으로 봤다”며 “서둘러 법안 도입을 추진하기보다는 설탕세의 필요성에 관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먼저라고 판단해 법안 발의를 연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그는 “한국식품산업협회와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업계 관계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한 뒤 올해 안에 법안을 발의하는 게 목표”라면서 “부담금 부과보다는 비가격 정책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업계의 지적에 따라 국감에서 관련 질의를 통해 비가격 규제 방안도 논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대체당 포함 시 연간 부담금 약 9582억김 의원은 소아·청소년 비만을 예방하고 만성 질환을 억제하기 위해 첨가당뿐 아니라 대체당 음료에도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9월 초 발의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김 의원이 발의할 예정이었던 개정안에는 감미 음료 제조·가공업자와 수입판매업자를 대상으로 당류 함량에 따라 부담금을 차등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첨가당 함량이 100mL당 5g 이상 8g 미만이면 L당 250원, 8g 이상이면 L당 500원을 물린다. 인공감미료 등 대체당이 들어간 음료에도 유해성과 당류 대체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L당 최대 50원의 부담금을 매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설탕세 논쟁이 본격화한 건 올해 1월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설탕세 부과를 언급하면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28일 X(옛 트위터)에 ‘담배처럼 설탕 부담금으로 설탕 사용 억제, 그 부담금으로 지역·공공의료 강화에 재투자…여러분 의견은 어떠신가요?’라는 글과 함께 국민 80%가 설탕세 도입에 찬성한다는 설문 결과를 공유했다.여당에서는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고 법안을 발의하며 설탕세 도입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가당 음료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김선민 의원안과 이수진 의원안이 첨가당 중심의 규제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김윤 의원안은 정책 범위를 대체당까지 넓혔다. 김 의원은 “설탕 부담금 도입 목적이 단 음식의 섭취를 줄여 식습관을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체당도 법안에 포함해야 한다고 봤다”며 “대체당에 부과하는 부담금은 첨가당에 비해 많지 않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지난 6월 국회 토론회에서 공개된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 추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수입되는 가당 음료 200여개 품목에 김윤 의원안을 적용하면 연간 부담금 규모는 약 9582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평균 6789억원인 김선민 의원안과 이수진 의원안의 4274억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증세 논란’에 정부 신중론…업계 반발도대체당을 부담금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두고 증세 논란이 일었다. 설탕의 대안으로 대체당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대체당을 과세 대상으로 삼는 건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게 아니라 사실상 ‘우회 증세’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 9월 7일 한국조세정책학회 세미나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갑순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은 “설탕 부담금과 같은 일률적 가격 규제는 저소득층과 청년층의 소비 부담을 가중하는 조세 역진성과 예산 통제를 우회하는 재정 투명성 저해 등 구조적 한계를 내포한다”면서 “이미 시장에서 자율적인 당류 저감 노력이 작동하고 있는 만큼 가격 통제보다는 비가격적이고 시장 친화적인 접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노정란 명지대 미래융합경영학과 교수도 설탕세의 가장 큰 문제로 ‘소득 역진성’을 지목하며 “가격 규제보다는 소비자에게 당류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기업의 저당·제로 제품 개발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비가격 정책을 먼저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정부 역시 도입에 신중한 태도다.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9월 13일 정성호 민주당 의원의 설탕세 도입 관련 질의에 “설탕세는 ▲적용 대상 ▲부과 수준 ▲제도 설계 방식 등에 따라 소비 행태와 건강에 미치는 효과 등이 달라질 수 있어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답했다.이 후보자는 “설탕세 도입은 국민건강권과 함께 소비자 부담,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사안으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식품업계의 반발도 넘어야 할 산 중 하나다. 고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 인건비, 물류비 등 원가 부담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설탕세가 도입되면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업계 관계자는 “식품업계는 현재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와 위축된 소비 심리 등으로 원가 상승 압력에도 가격을 조정하지 않고 겨우 버티는 중”이라며 “설탕세는 기업이 가격을 올리는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당류 저감과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과세 대상을 확대하기 전 당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실제 소비 행태 변화, 정책의 실효성 등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2026.09.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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