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싸게, 돈은 길게…수입차 가격 인하의 비밀 [뒤집히는 차값] ①
- 테슬라·BYD 질주에 볼보·푸조도 가격 경쟁
판매 뒤엔 정비·부품·금융…고객 늘수록 수익 확대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가격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비싼 가격이 브랜드 가치로 통했지만 지금은 국내 출시 가격을 얼마나 낮췄는지가 신차 경쟁력을 가른다. 소비자도 이름값보다 가격과 상품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가격 경쟁의 중심에는 테슬라와 볼보, 푸조, BYD(비야디)가 있다. 시장 안착과 점유율 방어, 판매 회복 등 이유는 달랐지만 선택은 같았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이름값만으로 차를 팔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가격 인하가 이익을 포기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차량 판매 마진을 낮춰 고객을 확보하면 정비와 부품, 할부·리스 등에서 장기간 수익을 낼 수 있다. 판매량을 늘린 뒤 사후 서비스와 금융으로 수익을 보완하는 구조다.
가격 경쟁에 먼저 불을 붙인 곳은 테슬라다. 테슬라는 국내 판매 가격을 수시로 조정해 ‘시가’(市價)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중국산 모델 Y를 들여오면서는 가격을 5000만원 아래로 낮췄다. 국산 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맞붙을 수 있는 가격이었다.
테슬라는 구매 부담을 낮춘 뒤 판매량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최근 원화 약세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반영해 일부 차종 가격을 다시 올렸지만, 공격적인 가격 책정이 국내 판매 기반을 넓힌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효과는 판매량으로 나타났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수입 승용차 신규 등록 대수는 18만403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2% 늘었다. 시장 성장의 과실은 테슬라와 BYD가 주로 가져갔다.
테슬라는 올해 상반기 5만6147대를 판매해 수입차 브랜드 1위에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2.1% 늘었다. 모델 Y 판매량만 4만3361대에 달했다. 수입차 최초로 국내 전체 승용차 판매 순위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BYD는 같은 기간 1만1675대를 판매해 수입차 브랜드 4위에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7.9% 증가했다. 국내 진출 초기라는 점을 고려해도 가파른 성장세다. 낮은 가격이 관심을 넘어 실제 구매로 이어진 셈이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현대차·기아 차량 가격이 꾸준히 오르면서 수입차와의 가격 경쟁력도 과거보다 약해졌다”며 “최근에는 중저가 수입차와 전기차까지 선택지가 늘어나 소비자가 같은 예산으로 비교할 수 있는 브랜드와 차종이 훨씬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팔고 나서 더 번다…정비·금융의 힘
수입차 시장이 커졌다고 모든 업체가 웃은 것은 아니다. 가격 경쟁력을 갖춘 브랜드로 수요가 몰리면서 중위권 업체의 입지는 오히려 좁아졌다. 볼보와 푸조가 국내 판매 가격을 낮춘 배경이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차세대 순수 전기 플래그십 세단 ES90의 국내 시작 가격을 7294만원으로 정했다. 글로벌 주요 시장보다 최대 5000만원 이상 낮다. 이윤모 볼보코리아 대표는 “한국 판매 마진은 사실상 마이너스 수준”이라고 말했다.
볼보는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7470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보다 10.4% 성장했다. 하지만 전체 수입차 시장의 성장률인 33.2%에는 못 미쳤다. 점유율도 약 4.9%에서 4.1%로 낮아졌다.
ES90의 가격은 국내 고객 기반을 지키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차량 한 대에서 얻는 이익을 줄이더라도 판매량이 늘면 정비와 부품 교체, 금융상품 이용 고객도 함께 증가한다. 판매 가격만으로 수입차 업체의 수익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정비와 금융은 신차 판매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수익을 낸다. 정기 점검과 소모품 교체, 사고 수리는 차량 보유 기간 내내 이어진다. 할부와 리스도 계약 기간 동안 이자와 운용 수익을 발생시킨다. 보급 대수가 늘수록 수입사와 딜러사, 금융사의 장기 수익 기반도 넓어진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의 지난해 유지보수 등 용역 매출은 3258억원에 달했다. 벤츠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도 신차 판매 매출은 1.8% 줄었지만 정비·서비스 등 기타 매출은 3701억원으로 6.0% 늘었다.
금융 수익도 작지 않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BMW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의 자동차금융 자산은 2024년 말 7조6050억원에 달했다. BMW와 미니 국내 판매량의 50~60%가량을 이 회사가 취급한다. 2024년 운용수익은 4672억원, 영업이익은 1421억원이었다.
자체 금융회사가 없는 업체는 제휴 금융사를 통해 전용 할부·리스 상품을 판매한다. 금융사가 구매 부담을 낮춰 판매를 돕고, 브랜드는 고객을 확보한다. 수입사와 딜러사, 금융회사가 차량 가격과 금리 혜택을 묶어 수익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푸조도 가격표를 손봤다. 올해 출시한 7인승 SUV ‘올 뉴 5008 스마트 하이브리드’의 시작 가격은 4890만원이다. 개별소비세 인하분을 적용하면 4814만원으로, 글로벌 주요 시장보다 최대 3000만원가량 낮다.
현대자동차 싼타페와 기아 쏘렌토 등 국산 중형 SUV와 가격대가 겹친다. 국산차 구매층까지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푸조는 우리금융캐피탈과 전용 금융 서비스를 운영하며 낮은 가격과 할부·리스 상품을 함께 내세우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제조사들이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면서 영업이익률을 희생하는 출혈 경쟁이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며 “가격이 낮다고 품질까지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려운 단계”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전기차 중저가 시장을 수입차가 서서히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며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모델이 늘어나면 국산차와 수입차의 경계도 빠르게 흐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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