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증시 폭락에 “개미가 문제” 발언…개인투자자 ‘부글’ [증권가 레이다]
- 김용범 정책실장, 주가 폭락에 “국민 투자 패턴” 발언 논란 자초
투자자 “시장 안정보다 책임 전가” 비판 확산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이 한국 증시를 강타했을 당시 코스피는 2020년 2월 23일 2243.59에서 3월 19일 1457.64까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35.03% 급락했다. 당시에는 전 세계 경제 활동이 멈출 수 있다는 공포 속에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극단적으로 확대된 영향이 컸다.
하지만 올해 코스피는 ‘인류 종말’의 공포보다도 더 큰 공포의 장을 보여줬다. 6월 19일 장중 9385.59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한 뒤 불과 한 달여 만에 5000선대로 밀려나는 급격한 조정을 겪고 있다. 고점 대비 40%까지 밀린 것이다. 이후 코스피가 6600선으로 회복했지만 단기간에 수천 포인트가 증발하는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김용범 실장 발언…ETF 책임 두고 논란 확산
그 원인으로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와 5월 27일 신규 출시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급격한 성장이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품을 출시하는 데 역할을 한 금융당국과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확산하는 분위기다. 시장 변동성의 원인을 설명하거나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들이 책임을 시장 참여자에게 돌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비판 여론이 커지는 모습이다.
투자자들은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상황에서 시장 안정과 신뢰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보다 ‘손실 책임은 투자자가 져야 한다’는 식의 원론적인 설명이나 책임론이 반복됐다는 점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있다. 김 실장은 7월 29일 브라질 브라질리아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근 국내 증시 급락과 관련한 질문에 인공지능(AI) 투자에 대한 기대 변화와 중국 메모리반도체 업체 창신메모리(CXMT)의 성장 가능성을 주요 변수로 언급했다.
이어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큰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 시장은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높고 개인투자자들이 매우 역동적으로 투자하며 관련 파생상품이 많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특정 상품 하나만으로 이번 증시 급락을 설명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시장 구조를 설명한 것이라고 했지만, 시장에서는 다른 해석도 나왔다. 특히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둘러싼 책임론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개인투자자의 투자 성향을 함께 언급한 것이 사실상 투자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발언으로 비쳤다는 지적이다. AI 투자에 대한 기대가 과도했을 수 있다는 취지의 설명 역시 최근 급락장에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반발을 키웠다.
실제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은 오프라인 행동으로도 이어졌다. 국회의사당 앞에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폐지를 요구하는 근조화환 수십 개가 설치됐고, 온라인 투자자 커뮤니티에서도 정부의 시장 대응을 비판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투자자들은 시장 급락의 원인을 개인의 투자 행태로만 해석해서는 안 되며, 제도 설계와 시장 관리에 대한 정부의 책임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동의청원도 국회 심사 절차에 들어가게 됐다. 지난 6월 26일 게시된 ‘코스피·코스닥 양극화 심화 및 특정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 의한 시장 왜곡 개선에 관한 청원’은 5만1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국민동의청원은 30일 동안 5만명 이상이 동의하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자동 회부되며, 해당 청원의 마감 시한은 8월 1일이다.
“매를 벌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의 발언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제도와 관련해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나 반성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해당 발언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박제’처럼 회자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제도 도입 당시 충분한 위험성 검토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사후적인 반성만으로는 투자자들의 손실을 되돌릴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과거 발언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최근 정부의 장기연체 채무 탕감 정책을 적극 옹호했는데, 권 부위원장은 지난해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를 옹호하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바 있다.
당국자들이 이처럼 투자를 권장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거나 고위험 투자상품이 시장에 출시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길을 열어놓은 뒤, 시장이 급락하자 개인투자자의 투자 행태를 지적하는 듯한 발언이 나오면서 비판이 커지고 있다.
결국 논란이 커지자 더불어민주당은 7월 30일 코스피 급락 사태와 관련해 “집권 여당으로서 엄중하게 상황을 인식하며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한 표현은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의 한마디였다.
“지금 국민 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매를 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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