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뽀로로·티니핑·아기상어…한국 캐릭터는 왜 빨리 늙나
- [K피카츄는 왜 없나]①
포켓몬 누적 매출 200조원…세대 넘는 IP 생태계 구축
국산 캐릭터는 영유아 소비 단절이 한계
독자적 서사·글로벌 현지화·IP 보호 지원 필요
[이코노미스트 정길준 기자]
전 세계가 K-콘텐츠에 열광하지만 캐릭터 지식재산권(IP) 시장에서의 한국은 이제 막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 ‘포켓몬스터’(포켓몬)를 필두로 일본과 미국 캐릭터들이 시장을 지배한 사이, 국산 캐릭터들은 아이들이 크는 순간 함께 졸업하는 ‘단명’(短命)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대표 IP 홀더들은 아이들이 울음을 그치는 ‘육아 필수 영상’의 인식에서 벗어나 세대를 건너 물려줄 기억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육성 체계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에 따르면 포켓몬의 누적 IP 매출은 1500억달러(20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헬로키티’(약 149조원)와 ‘미키 마우스’(약 112조원)와의 격차를 아득히 벌린 수치다. 주식회사 포켓몬의 제28기(2025년 3월 1일~2026년 2월 28일) 매출과 영업이익은 5314억2800만엔, 1439억7200만엔으로 각각 한화 5조원과 1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대표 IP 홀더 세 기업(아이코닉스·SAMG엔터테인먼트·더핑크퐁컴퍼니)의 지난해 연간 합산 매출이 약 42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포켓몬이라는 단일 IP의 압도적인 위상을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이에 국내 IP 기업들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바통을 이어받아 전 세계 캐릭터 시장을 호령하기 위한 움직임에 분주하다.
성장하면 멈추는 소비, ‘세대 대물림’이 돌파구
가장 큰 걸림돌은 국내 캐릭터들이 영유아 시장에 쏠려 발생하는 ‘소비 단절’ 구조다. 형님 격의 IP ‘뽀로로’를 탄생시킨 아이코닉스는 이를 두고 오랜 고민을 이어왔다. ‘뽀통령’으로 군림해왔지만, 아이가 성장하면 소비가 멈추는 한계 극복이 과제다. 이에 아이코닉스는 유튜브·온라인 동영상 플랫폼(OTT)·숏폼으로 접점을 넓히며 세대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아이코닉스 관계자는 “어린 시절 뽀로로를 보고 자란 세대가 부모가 돼 자녀에게 다시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대물림에 주목하고 있다”며 “부모에게는 향수와 신뢰를, 자녀에게는 동시대적 재미를 주는 ‘온 가족이 공유하는 IP’로 포지셔닝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전했다.
영유아 타깃의 수명 한계는 최신 흥행작들도 고스란히 마주한 현실이다. SAMG엔터테인먼트(티니핑)는 여아 완구 시장을 장악하며 ‘파산핑’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히트쳤다. 2024년에는 영화 ‘사랑의 하츄핑’이 국내 124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막강한 팬덤을 입증했다. 그런 SAMG엔터도 저학년 이후의 연령대를 흡수해 포켓몬 같은 타임리스 IP로 도약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SAMG엔터 관계자는 “▲캐릭터 상품 ▲라이선싱 ▲뮤지컬 ▲영화 ▲오프라인 공간 사업 ▲팝업 등으로 확장하며 다양한 영역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연령 확장 실험에 대해서는 “출근핑·퇴근핑과 같은 소위 ‘00핑’ 밈을 탄생시키며 MZ세대 사이에서도 사랑받기 시작했다”며 “2025년에는 ‘더 티니핑’ 브랜드를 론칭했고, 성수 오프라인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이며 글로벌 팬덤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기상어 댄스’로 유튜브 조회수 1위를 차지하고 누적 조회수는 2100억뷰를 찍은 더핑크퐁컴퍼니(핑크퐁·아기상어)도 단순 바이럴을 넘어 탄탄한 세계관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권빛나 사업전략총괄이사(CSO)는 “데이터 기반의 본 글로벌(Born Global) 전략과 디지털 퍼스트 전략이 흥행의 비결”이라며 “244개국에 25개 언어로 현지화한 콘텐츠를 배급하며 글로벌 팬덤과의 접점을 넓혔고, 음악·댄스 포맷으로 언어 장벽을 낮췄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서사를 보강하기 위해 Z세대 타깃의 숏폼 애니메이션 ‘씰룩’과 웹툰·웹소설 포맷의 ‘문샤크’ 등 차세대 IP를 선보이고 있다.
출신 분야 꼬리표 떼고 ‘독자적 서사’ 구축해야
K-팝과 K-게임의 후광을 입고 빠르게 발을 넓힌 IP들은 특정 산업군이나 미디어 포맷의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IPX(옛 라인프렌즈)는 그룹 BTS와 협업한 ‘BT21’로 전 세계 5000만명의 팔로워를 확보했다. 초기 확산에는 성공했지만,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캐릭터 자체의 내러티브를 정교하게 빌드업해야 하는 상황이다. IPX 관계자는 “멤버들이 캐릭터 디자인부터 성격·관계·세계관까지 직접 제작에 참여했다”며 “이후 ‘BT21 유니버스’라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세계관을 확장하며 고민·도전·우정·사랑 같은 MZ세대가 공감할 보편적 감수성을 스토리에 담아냈다”고 전했다.
포켓몬처럼 게임에서 출발한 데브시스터즈의 IP ‘쿠키런’은 글로벌 누적 이용자 3억명을 돌파하고 뉴욕 타임스스퀘어 팝업스토어에서는 열흘간 4만명 방문, 매출 10억원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게임 비즈니스의 한계를 넘어 유기적인 생태계 구축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데브시스터즈 관계자는 “주요 게임과 함께 여러 IP 경험이 유기적으로 선순환하는 사업 구조를 확립해 중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확장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K-피카츄’의 탄생은 단기적인 성과를 넘어 장기적인 비즈니스를 견인할 수 있는 민관 협력 모델과 산업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책이 마련될 때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이코닉스 관계자는 “하나의 캐릭터 IP가 브랜드가 되고 수익화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비즈니스 기간과 제작 비용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애니메이션 부문에는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 마케팅·현지화 비용 지원과 해외 시장에서의 불법 유통·모방 대응 즉 IP 권리 보호가 동반돼야 어렵게 키운 IP의 가치가 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권빛나 CSO 역시 “초기 기술 개발부터 글로벌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민관 협력과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K-콘텐츠 산업 전반의 글로벌 스케일업과 비즈니스 다각화도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확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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