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포켓몬 신드롬의 진화…노스탤지어 소비와 감정 경제의 결합 [K피카츄는 왜 없나]③
- 분야 불문 무한 컬래버레이션
기업들 “가장 안전한 IP 흥행 카드”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피카츄요?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아요.”
28세 직장인 A씨는 사무실 책상 가득 놓인 포켓몬 캐릭터 상품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A씨는 2년 전 취업한 뒤부터 사무 공간을 포켓몬 캐릭터로 꾸미는 취미가 생겼다. 컴퓨터 옆에는 노란색 피카츄가 그려진 탁상 거울과 스케줄러, 포스트잇 노트를 가지런히 놓아뒀다. 의자에는 전기다람쥐를 닮은 에몽가 방석과 목 베개, 의자 커버로 사용하는 티셔츠가 걸려 있다. 파우치에는 CJ올리브영이 선보인 피카츄 립틴트와 쿠션팩트, 꼬부기 선스틱이 가득 담겨 있다.
차고 넘치는 포켓몬 굿즈 가운데 A씨가 가장 아끼는 물건은 최근 해외 직구로 어렵게 구한 다꼬리 탁상용 선풍기다. 그는 “요즘은 똘망똘망한 눈과 풍성한 꼬리를 가진 다꼬리가 나의 최애”라며 “눈을 뜨면 새로운 포켓몬 협업 상품이 쏟아져 나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포켓몬 협업 천국
포켓몬 무한 컬래버레이션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탄생 30주년을 맞아 식품은 물론 뷰티·패션·호텔·전시·유통까지 산업 전반으로 포켓몬 협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기업들은 신제품 출시부터 팝업스토어, 대형 행사 기획까지 포켓몬 IP(지식재산권)를 가장 먼저 고려할 정도다.
CJ올리브영은 지난 5월 한 달간 ▲상품 ▲공간 ▲체험 콘텐츠를 아우르는 IP 컬래버레이션 ‘올리브영X포켓몬’을 진행했다. 입점 브랜드 61개가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로 굿즈와 제품, 체험 요소를 결합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뷰티·웰니스부터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약 230종의 상품을 특별 기획 및 할인가로 선보였고, 포켓몬 패키지와 함께 키링·손거울·파우치 등을 증정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의 프리메라는 ‘피부 급속 충전’을 콘셉트로 한 포켓몬 에디션으로 빅히트를 쳤다. 1+1 구성에 캐릭터 굿즈를 더해 실용성과 재미를 동시에 잡았다. 헤어핀 등 굿즈를 결합해 스킨케어 루틴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한 점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설명이다.
식품업계도 포켓몬 열풍에 올라탔다. SPC삼립의 포켓몬빵은 띠부씰 수집 열풍을 일으켰고, 롯데웰푸드는 꼬깔콘·ABC초코·쮸쮸바 등에 포켓몬 캐릭터를 입힌 한정판 상품을 잇따라 선보였다.
통신·전자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SK텔레콤은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ZEM폰 포켓피스’를 출시했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포켓몬을 활용한 네 번째 시리즈로, 삼성전자의 갤럭시 A17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같은 날 서울 뚝섬한강공원 일대에서 열린 ’포켓몬 런 2026 인 서울‘의 메인 스폰서였던 SK텔레콤은 삼성전자와 함께 ‘포켓몬 런 트레이닝 센터’ 콘셉트의 체험 부스를 운영했다. 참가자들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워치8을 착용하고 러닝 중 심박수와 페이스, 칼로리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포켓몬은 기업 입장에서 가장 안전한 글로벌 IP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남녀노소 인지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세대 간 공감대까지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포켓몬 협업 상품은 출시 직후 품절되거나 예약 물량이 빠르게 동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은 신규 고객 유입과 브랜드 화제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팬덤을 사는 기업들
포켓몬 열풍의 중심에는 2030 소비자들이 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TV 애니메이션·게임보이·닌텐도 게임을 통해 포켓몬을 접한 세대다. 2030세대가 경제력을 갖게 되면서 어린 시절 좋아했던 캐릭터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어린 시절의 즐거운 기억을 소비를 통해 다시 경험하려는 ‘노스탤지어 소비’(Nostalgia Consumption)가 대표적이다. 경기 침체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심리적으로 익숙한 브랜드와 캐릭터를 찾는 경향도 강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포켓몬을 경험한 세대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소비력이 생겼고, 포켓몬 상품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며 “제품의 성능보다 소비자가 느끼는 즐거움과 애착이 구매를 결정하는 ‘감정 경제’ 현상의 대표 사례”라고 설명했다.
광고업계에서는 기업들이 포켓몬을 통해 소비자가 직접 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하는 ‘인증샷 소비’를 노린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포켓몬 팝업에서 찍은 사진 한 장, 한정판 굿즈 인증 게시물 하나가 또 다른 방문객을 불러들이는 자발적 마케팅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브랜드들이 단순히 제품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수동과 서울숲, 잠실 등 젊은 층이 몰리는 지역에 대형 팝업스토어를 잇따라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캐릭터 IP는 소비자들에게 감정적 연결고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단순 구매를 넘어 방문과 체험, 온라인 공유까지 이어지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캐릭터 IP는 유행이 지나면 팬층도 함께 줄어들지만 포켓몬은 부모 세대의 팬덤이 자녀 세대로 이어지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며 “IP 산업에서 가장 이상적인 장기 성장 모델로 평가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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