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녹색금융 없이 전환금융도 없다 [대신경제연구소 ESG인사이트]
- 790조원 기후금융 시대, ‘진짜 녹색’ 판별 기준 중요성 커져
전환금융 확대 속 K-Taxonomy 고도화와 신뢰 확보가 과제
[오현주 대신경제연구소 ESG리서치센터장] 올해 2월 25일 금융위원회는 ‘기후금융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2035년까지 총 790조원 규모의 기후금융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계획(2024~2030년, 420조원)에서 규모와 기간 모두 대폭 확대된 수치다. 이 발표에서 시장의 이목을 끈 키워드는 단연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이다. 고탄소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금융이 직접 지원해 기존 녹색금융이 닿지 못했던 탄소 다배출 산업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금융권과 산업계 모두가 주목했다. 기후금융 로드맵의 실질적 이행을 위해 금융위원회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으며,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 등 금융권도 지난 4월부터 실무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그러나 이 흐름 속에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우리나라 기후금융의 주축이었던 녹색금융은 이제 완성된 제도로서 뒷전으로 물러나도 되는 것인가?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전환금융에 쏠린 관심이 뜨거울수록, 녹색금융의 미완성 과제를 직시해야 할 이유는 오히려 더 커진다.
‘녹색금융’의 기준, K-Taxonomy
녹색금융의 핵심 인프라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다. 2021년 12월 최초 수립됐고, 2023년과 2025년 두 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 2개 부문 100개 경제활동으로 구성돼 있다. 재생에너지 생산·무공해 차량 제공 등 탄소중립과 환경개선에 직접 기여하는 녹색부문 93개 활동과 LNG 발전·블루수소 제조 등 과도기적 전환부문 7개 활동이다.
다만 단순히 이 분류표에 속한다고 해서 녹색금융의 수혜를 입는 것은 아니다. ‘4단계 판단 프로세스’를 거쳐 최종적인 녹색성을 판별하는 구조다. ▲‘활동기준’ 해당 경제활동이 분류체계에 정의된 녹색 활동에 속하는지 ▲‘인정기준’ 6대 환경목표 달성을 위한 기술적 기준에 부합하는지 ▲‘배제기준’(DNSH) 목표 달성 과정에서 다른 목표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보호기준’(MS) 노동·안전 등 최소한의 법규를 위반하지 않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K-Taxonomy의 역할은 단순한 분류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대출이 녹색여신인지, 어떤 채권이 진짜 녹색채권인지를 판단하는 근거이자 그린워싱을 방지하는 최전선이다. ‘2035 NDC’(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이행과 ‘2050 탄소중립’ 달성을 뒷받침하는 투자 나침반으로 기능하며, 기후금융 생태계 전반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기준점이다.
‘전환금융’ 기대만큼 큰 그린워싱 우려
친환경 프로젝트나 녹색산업에 자금을 대는 ‘녹색금융’이 기후금융의 정공법이라면, ‘전환금융’은 녹색금융이 포괄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채우기 위해 설계된 카드다. 한국은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탄소 다배출 제조업의 비중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유독 높다. 이들 업종은 녹색 기준을 당장 충족하기 어렵지만, 이들이 배출하는 탄소량은 국내 산업 배출의 약 73%를 차지한다. 결국 녹색금융만으로는 탄소중립의 핵심 고지를 공략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전환금융 도입의 배경이다.
이에 따라 2026년 2월 제정된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은 제도를 이원화했다. 구체적으로 ▲K-Taxonomy 활동기준 충족을 조건으로 일정한 유예기간을 부여하는 ‘녹색분류체계 기반 전환금융’ ▲기업이 자체 수립한 전환전략과 외부 검증에 의존하는 ‘전환전략 기반 전환금융’ 두 축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실효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첫째, 녹색금융과의 경계 모호 문제다. 동일한 투자가 녹색금융으로도, 전환금융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더 느슨한 전환금융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다. 둘째, 기후공시 의무화가 본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의 ‘자기 선언’에 의존하는 방식은 ‘그린워싱’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셋째, 전환 자금을 저금리로 조달한 뒤 공정 전환은 지연시켜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탄소 고착’(Carbon Lock-in) 리스크를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기업의 ‘자체 전략’에 의존하는 방식은 실질적 탈탄소를 담보하기 어렵기에,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필수적이다. 전환금융의 선도국인 일본이 철강·화학 등 고탄소 업종별 감축 경로와 핵심 기술을 명시한 국가 차원의 로드맵을 제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역시 기업의 자체 전략을 견인할 업종별 로드맵을 정교화하는 동시에, 그 최종 목적지이자 나침반이 될 K-Taxonomy의 정합성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무엇이 ‘진짜 녹색’인지 명확해야, 무엇이 ‘전환 중’인지도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금융의 두 바퀴, 함께 성장해야
전환금융의 나침반이 돼야 할 녹색금융 역시 아직은 미완의 과제다. 국내 녹색금융은 녹색채권·녹색여신에 집중돼 있어, 녹색펀드나 보험 등 다양한 자산군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대다수 중소·중견기업의 접근성은 여전히 낮고, 금융기관 내에서 K-Taxonomy 판단 프로세스를 금융 심사에 적용할 수 있는 전문인력도 부족하다. 녹색금융 자금이 실제로 K-Taxonomy 적합 활동에 사용되는지를 사후 검증하는 체계 역시 미흡하다.
전환금융과 녹색금융은 함께 성장해야 한다. 녹색금융 기반이 취약하면 전환금융은 방향을 잃은 채 자금만 흘러가는 구조가 된다. 시장의 관심이 전환금융으로 집중되는 이 시점에 ▲녹색금융 상품의 다양화 ▲접근성 확대 ▲심사역량 강화 ▲사후 모니터링 체계 구축 등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790조원이라는 숫자가 실질적인 탄소중립으로 이어지려면, 그 자금이 ‘진짜 녹색’으로 향하고 있다는 시장의 신뢰가 먼저다. 기후금융 선도국가로의 도약은 새로운 제도의 출범이 아닌, 기존 기준의 엄격한 실행에서 시작된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고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신경제연구소에서 약 4년 간 공급망 ESG 평가와 현장실사, 교육 및 컨설팅을 담당했고 2025년부터 ESG 데이터 분석 및 리서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ESG 관련 법제도 변화와 현장 적용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기업은 물론 공공기관의 ESG 경영 인식 제고 및 실행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대외 활동으로는 행정안전부의 정부행정역량평가 및 중소벤처기업부 윈윈아너스 사업 평가 등 각종 평가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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