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게임사들이 지스타 대신 AGF 찾는 이유[서대문 오락실]
- 비싼 부스비 대비 잔존율 한계에 ‘가성비·타깃 마케팅’ 부상
대형 MMORPG서 서브컬쳐·코어 팬덤 중심으로 생태계 무게중심 이동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국내 게임업계의 오프라인 행사 공식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매년 11월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G-STAR) 참가를 고심하거나 포기하는 대신, 12월 일산 킨텍스(KINTEX)에서 개최되는 국내 최대 서브컬처 축제 ‘AGF’(Anime X Game Festival)로 발길을 돌리는 게임사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실제로 ‘지스타 2026’에는 국내 주요 대형 게임사들이 대거 불참을 선언하며 빈자리를 비게임사와 해외 업체들이 채운 반면, 오는 12월 열리는 ‘AGF 2026’에는 일찌감치 메인 스폰서와 주요 참가사로 대형·중견 게임사들이 이름을 올리며 대조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게임사들이 이처럼 지스타 대신 AGF에 화력을 집중하는 배경에는 ‘팬덤의 충성도’ 차이가 자리 잡고 있다. 지스타는 불특정 다수의 일반 관람객과 가족 단위 방문객까지 폭넓게 찾는 종합 전시회 성격을 띤다. 신작 인지도 확보와 단순 시연 위주의 홍보에는 유리하지만, 행사가 끝난 뒤 실제 게임 접속과 과금으로 이어지는 전환율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AGF를 찾는 관람객은 애니메이션과 게임, 라이트 노벨 등 이른바 서브컬쳐 지식재산권(IP)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코어 유저’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단순한 게임 시연을 넘어 한정판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 새벽부터 긴 대기열을 감수하고, 성우 토크쇼나 코스프레, 개발진 무대 인사 등 현장 체감형 팬덤 이벤트에 열광적으로 반응한다. 지난해 열린 ‘AGF 2025’가 사상 처음으로 관람객 1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린 것도 이러한 서브컬처 팬덤의 막강한 결집력을 방증한다.
행사 참가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 대비 실질적 잔존율(리텐션) 효과를 따지는 ‘가성비 마케팅’의 필요성도 이러한 흐름을 부추겼다. 지스타 B2C관에 대형 부스를 꾸리고 시연 기기 수백 대를 설치하려면 부스 임차료와 시공비, 인건비, 부산 현지 체류비 등을 합쳐 큰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일회성 시연 행사를 치르더라도, 행사 종료 후 유저들이 게임에 정착하는 리텐션 효과는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와 달리 수도권인 일산에서 열리는 AGF는 지리적 접근성이 뛰어나 물류 및 인력 운영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나아가 대규모 시연대 대신 굿즈 판매 부스와 참여형 미니게임, 포토존 중심으로 부스를 구성해도 유저들의 만족도가 높아 투입 비용 대비 마케팅 효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현장에서의 굿즈 매출로 부스 운영비 상당 부분을 보전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경영진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요소다.
근본적으로는 국내 게임 생태계의 무게중심이 기존 대형 MMORPG에서 서브컬쳐 및 코어 팬덤 비즈니스로 이동하고 있는 시장 변화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막대한 물량 공세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흥행 공식이었으나, 최근에는 확실한 취향을 가진 코어 유저층을 공략해 IP의 생명력을 늘리는 팬덤 비즈니스가 핵심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인 MMORPG 강자들까지 앞다퉈 서브컬처 신작을 개발하고 AGF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국가 대표 게임쇼라는 타이틀을 가진 지스타가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형 부스 유치와 외형적 관람객 수 경쟁에만 매몰된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B2C 구성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유저들은 단순히 신작을 몇 분 해보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의 세계관을 오프라인에서 공유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데 더 큰 가치를 둔다”며 “지스타 역시 백화점식 나열에서 벗어나 서브컬처, 인디, 콘솔 등 특정 타깃층의 취향을 정밀하게 저격할 수 있는 세부 테마관을 구성하고 팬덤 친화적인 축제로 거듭나지 않으면 게임사들의 이탈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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