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잘되니까 더 달라?…바야흐로 ‘호황 파업’의 시간 [서소문 인사이트]
- 삼성·하이닉스서 전선·조선까지 번진 성과급 갈등
“회사가 번 돈, 내 몫은 얼마인가”
대표적인 곳이 삼성전자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총파업 직전 임금협상을 타결했지만 DS(반도체)와 DX(완제품)부문의 성과급 격차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DS부문 중심의 특별경영성과급이 도입되면서 DX부문 직원들의 반발이 커졌고 노조 간 갈등으로까지 번졌습니다.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은 이제 삼성전자라는 하나의 회사 안에서도 사업부를 가르고 있습니다. 반도체 인력이 주축인 초기업노조는 내년 임금교섭에서 DS부문 교섭단위 분리를 추진하고 공동교섭단도 구성하지 않겠다는 방침입니다. ‘같은 회사 직원’이라는 이름보다 ‘누가 얼마를 벌었느냐’가 보상의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이 같은 변화는 삼성전자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삼성전기와 삼성SDI도 기존 경제적부가가치(EVA) 방식 대신 영업이익의 10%를 기준으로 성과급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꿨습니다. 직원 입장에서는 회사가 얼마를 벌었는지와 자신이 얼마를 받을지가 이전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비슷한 장면은 다른 호황 업종에서도 나타납니다. AI 데이터센터와 글로벌 전력망 투자 확대의 수혜를 받는 전선·전력기기 업계에서는 LS전선과 HD현대일렉트릭 등을 중심으로 노사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LS전선은 노조 설립 37년 만의 첫 파업을 예고했습니다. 효성중공업에서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사무기술직 노조가 출범해 임금과 성과보상 체계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선 호황을 맞은 HD현대중공업에서도 영업이익과 연계한 성과배분 문제가 노사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AI 반도체 호황의 한복판에 있는 미국 마이크론의 대만 사업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마이크론은 올해 직원들에게 기본급의 최대 68개월에 달하는 보상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도 노조는 파업 카드를 내려놓지 않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은 일회성 보너스가 아니라 영업이익의 15%를 직원에게 나누는 상설 성과배분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대만 노동자들이 비교 대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시작된 ‘영업이익 N% 성과급’ 공식이 국경을 넘어 다른 기업 노동자들의 보상 눈높이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셈입니다.
공통된 질문은 하나입니다. “회사가 이렇게 많이 벌었는데 내 몫은 얼마입니까”입니다.
과거 임금협상의 중심이 기본급 몇 %를 올릴 것이냐였다면 이제는 영업이익의 몇 %, 특별성과급, 자사주 등으로 요구가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임금협상이 사실상 기업이 창출한 이익을 누구에게 얼마나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자본배분 협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도 이런 상황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반도체와 조선 등에서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자 기업들은 앞다퉈 ‘성과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성과급을 우수 인력을 붙잡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렇게 기업이 만들어 놓은 공식은 이제 역으로 직원들의 협상 기준이 됐습니다. 실적이 좋아졌는데 보상이 기대만큼 늘지 않으면 직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조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회사가 번 돈을 모두 당장의 성과로 나눌 수도 없습니다. 기업의 이익에는 임직원뿐 아니라 주주와 채권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의 몫이 얽혀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이익은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인수합병(M&A)에 투입돼 다음 성장을 만들어야 할 재원이기도 합니다.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수요가 폭증한다고 해도 전선업체가 생산능력을 늘리지 못하면 밀려드는 주문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반도체 기업 역시 호황기에 투자하지 않으면 다음 사이클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노사 갈등을 단순히 ‘노조의 과도한 요구’라고만 보는 것도, 반대로 ‘회사가 성과를 제대로 나누지 않는다’고만 보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관건은 오늘 만들어진 성과를 나누면서도 내일의 성과를 만들 여력을 얼마나 남겨두느냐입니다.
산업현장의 싸움은 이미 임금투쟁에서 ‘성과배분의 전쟁’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기업에도 새로운 숙제가 생겼습니다. 성과급 몇 %를 더 줄지를 넘어 직원·주주·미래투자 사이에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납득할 만한 원칙을 보여줘야 합니다.
회사가 잘돼서 직원들도 더 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행복한 고민입니다. 다만 오늘 번 돈을 누가 더 가져갈지만 다투다가 내일 벌 돈까지 줄어든다면 모두가 패자가 됩니다. 호황의 과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이제 새로운 룰을 고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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