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같은 듯 같지 않은 퇴직금·퇴직연금…어떻게 다른가 [이병희의 연금술사]
- “내 퇴직 급여, 통장에 그냥 둘까 굴릴까”
회사가 망해도 안전하게 지킨다…100세 시대 필수 연금 자산 점검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회사를 그만둘 때 받는 돈. 대부분의 사람은 무심결에 ‘퇴직금’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언젠가 그만둘 때 알아서 나오겠지’라며 무관심하게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돈이 ▲어디에 보관되는지 ▲누구의 손에서 운용되는지 ▲퇴직할 때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금융 자산으로 탈바꿈한다.
퇴직금과 퇴직연금의 차이를 명확히 파악하려면 먼저 각각의 법적·구조적 정의를 살펴봐야 한다. 두 제도의 공통점은 적립 주체가 회사라는 점이지만, 가장 큰 차이는 자금을 보관하는 곳이 퇴직금은 ‘회사 내부 통장’, 퇴직연금은 ‘외부 금융기관 계좌’라는 점이다.
퇴직금 제도는 근로자가 1년 이상 계속 근로를 제공하고 퇴직할 때, 회사가 자체 사내 자금(회사 법인 통장)으로 퇴직 지급금을 적립해 뒀다가 일시금 형태로 직접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반면 퇴직연금 제도는 근로자의 퇴직 급여를 회사 내부가 아닌 외부 금융기관(은행·증권사·보험사)에 매월 또는 매년 적립해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법적으로 회사의 자산과 근로자의 퇴직연금 자산이 완전히 분리된다. 외부 금융기관에 적립된 자금은 회사가 임의로 꺼내 쓰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퇴직연금은 운용 방식에 따라 ▲회사가 책임지고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B) ▲근로자가 직접 운용 주체가 되는 확정기여형(DC) ▲이직이나 퇴직 시 자금을 모아 관리하는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나뉜다.
돈을 보관하는 방식만 다른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수급 안전성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가 갑작스럽게 부도를 맞거나 경영난을 겪을 경우, 기존 퇴직금 제도에서는 회사가 사내 통장에 돈을 제대로 모아두지 않았다면 근로자가 퇴직금을 전액 수령하기가 매우 어렵다. 법적 우선변제권이 있다 하더라도 기업 회생 절차나 파산 과정에서 장기간 돈이 묶이기도 한다.
반면 퇴직연금, 특히 근로자 명의 계좌에 매년 적립되는 DC형과 IRP는 회사의 재무 상태와 완전히 독립된 외부 금융기관에 자금이 안치돼 회사가 망해도 근로자는 자신의 퇴직 급여를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
두 번째 차이는 운용 주체와 수익률이다. 전통적인 퇴직금은 정해진 법정 공식에 따라 지급된다. 근로자의 근속연수에 퇴직 전 3개월 평균임금을 곱해 계산한다. 회사가 사내 적립금을 어떻게 관리하든 근로자가 받을 금액은 고정된다. 임금 상승률이 높고 오랜 기간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퇴직금 제도가 유리하다.
퇴직연금은 퇴직금과 같이 금액이 정해지는 DB를 포함해 근로자 개인이 직접 자산을 운용해 수익을 낼 수 있는 DC형과 IRP가 있다. 시중은행의 예금 같은 원리금보장 상품에 넣을 수도 있고 주식형 펀드나 미국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채권 등 다양한 금융 상품에 투자하여 연금 자산의 규모를 늘릴 수 있다. 본인의 투자 역량과 시장 상황에 따라 연금의 최종 수령액이 달라지는 구조다. 자산 운용에 자신 있는 직장인이라면 이 방식을 통해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잘못 운용할 경우 원금 손실 우려도 있다.
세 번째는 세금 과세 및 인출 방식의 차이다. 기존 퇴직금은 퇴직하는 순간 회사가 퇴직소득세를 원천징수한 뒤 남은 금액을 근로자의 일반 개인 통장으로 일시금 지급한다. 세금 감면 혜택도 없다.
반면 퇴직연금은 일부 예외 상황을 제외하면 퇴직 급여가 일단 IRP 계좌로 이체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IRP로 이체하는 과정에서는 세금을 바로 떼지 않고 납부를 미래로 미뤄주는 ‘과세이연’ 효과가 발생한다. 이후 55세 이후 연금 형태로 나눠 수령하면 10년 차까지는 퇴직소득세의 30%, 11년 차부터는 40%까지 세금을 감면받게 된다.
100세 시대 필수 노후 안전망…나의 연금 유형부터 확인해야
과거의 익숙한 퇴직금 제도를 두고 정부가 퇴직연금 제도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사회적·경제적 구조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국민의 노후 준비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과거 평균 수명이 길지 않았던 시대에는 일시금으로 받은 퇴직금을 소비해도 노후 생계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적었지만, 기대수명이 100세에 육박하는 시대에 들어서면서 연금의 역할이 커졌다.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를 완전히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은퇴자의 퇴직금을 연금 형태로 장기간 나눠 수령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노후 안전망을 구축하고자 하는 취지다.
이미 근로자 300인 이상 대기업을 시작으로 단계별 의무화가 추진돼 왔으며 신설 사업장에 대한 퇴직연금 도입 의무화 등 법적 강제성이 확대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퇴직 급여를 매년 비용으로 처리해 세제 혜택을 받고 장기적인 재무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퇴직연금 도입은 주요 흐름으로 평가받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다음 두 가지 항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가 어떤 퇴직연금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지, 가입된 퇴직금 혹은 퇴직연금의 유형이 무엇인지다. 회사 인사팀이나 재경팀에 문의하거나 사내 인트라넷 시스템의 급여·복리후생 메뉴에 접속해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회사의 퇴직연금 규약에 DB‧DC 전환이나 혼합 도입이 돼 있다면 본인의 상황에 맞춰 제도를 선택할 수 있다.
퇴직 급여를 수령하고 절세 혜택을 누리기 위해 IRP 계좌를 주거래 은행이나 증권사를 통해 미리 개설해 두는 것도 방법이다. 이직이나 퇴직 시 급하게 계좌를 만들려다 보면 금융사별 수수료나 상품 라인업을 비교할 시간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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