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정부 주문은 늘고 은행 셈법은 제각각…차기 은행연합회장 ‘조정력’ 시험대
- [차기 은행연합회장 인선]②
가계부채·생산적 금융·스테이블코인 등 현안 산적
당국·한은·국회 잇는 ‘가교’ 역할 커져…대외 조정력 주목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차기 은행연합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만만치 않은 숙제를 받아들 전망이다. 가계부채 관리부터 ▲생산적 금융 확대 ▲상생·포용금융 ▲스테이블코인 등 은행권을 둘러싼 정책 현안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어서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요구는 거세지는 반면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인터넷전문은행 등 회원사들의 셈법은 사안마다 다르다. 차기 회장에게 단순히 은행권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대변인’을 넘어 업권 내부의 이해를 먼저 조정하고 당국과 접점을 만들어내는 역할이 요구되는 이유다.
금융권에 따르면 조용병 현 은행연합회장의 임기는 오는 11월 30일 만료된다. 은행연합회는 통상 이달 말 정기 이사회에서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관련 안건을 논의한 뒤 11월 중순께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차기 회장은 임기 초반부터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회원 은행 사이에 놓인 굵직한 현안을 풀어야 한다.
가계대출 줄이고 기업금융 늘려라…은행 ‘셈법 복잡’
대표적인 과제는 가계부채 관리와 생산적 금융이다. 정부는 은행권 자금이 부동산과 가계대출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구조를 바꾸고 첨단산업과 혁신기업, 중소기업 등 생산적인 분야로 자금이 흘러가도록 금융권에 역할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정책 방향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수익성과 건전성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기업금융은 산업과 기업의 성장성을 평가하는 심사 역량이 필요하고 경기 상황에 따라 신용 위험도 커질 수 있다. 가계대출을 줄인 만큼 기업대출을 단순히 늘리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다.
회원사 간 사정도 제각각이다. 기업금융 역량과 자본력이 상대적으로 큰 대형 시중은행과 지역 중소기업 금융 비중이 높은 지방은행, 비대면 개인금융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인터넷은행은 사업 구조부터 다르다. 같은 생산적 금융 확대라는 목표를 놓고도 대응 방식과 부담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역시 마찬가지다. 9월 28일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후 처음으로 조용병 회장과 은행연합회 16개 정사원 기관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가계대출과 물가안정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신 총재는 간담회 이후 은행장들로부터 정책에 참고할 현장 의견을 폭넓게 들었다고 밝혔다. 은행연합회가 통화당국과 은행 현장을 잇는 소통 창구 역할을 보여준 장면이다.
문제는 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기조와 은행들의 영업 여건을 어떻게 조율하느냐다. 대출 증가세를 억제해야 한다는 정책 목표는 분명하지만 은행별 성장 전략과 대출 수요는 다를 수밖에 없다. 공통된 정책 방향 안에서 회원사들의 현실을 반영한 입장을 만들어내는 것도 은행연합회의 주요 과제로 꼽힌다.
스테이블코인까지…공동 대응 과제↑
디지털자산은 차기 회장이 맞닥뜨릴 새로운 조정 과제다. 당시 간담회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이 주요 현안으로 논의됐다. 한국은행은 은행들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기반으로 한 예금토큰 실거래 테스트인 ‘프로젝트 한강’을 추진해왔으며 2차 테스트도 준비하고 있다.
은행권 역시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이해관계는 복잡하다. 향후 ▲발행 주체와 은행 중심 컨소시엄 구성 ▲비은행 사업자의 참여 범위 ▲준비자산 관리 방식 등에 따라 은행별 전략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은행권을 둘러싼 정책 논의의 범위도 과거보다 크게 넓어졌다. 가계대출과 금리 등 전통적인 은행 현안에 더해 최근에는 디지털자산과 ▲지급결제 ▲플랫폼 경쟁 ▲내부통제까지 논의 영역이 확장됐다. 개별 은행이 각자 대응하기보다 업권 차원의 공동 입장을 정리해야 할 사안이 그만큼 많아진 셈이다.
금융당국의 주문도 광범위하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9월 23일 조 회장과 8개 은행지주 회장을 만나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한편 지자체 금고 입찰의 과당경쟁과 금융사고 문제까지 거론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1~7월 은행권 금융사고는 47건, 1708억2000만원으로 집계돼 이미 2023년 연간 수준(33건·696억9000만원)을 넘어섰다.
은행연합회에는 정책 취지와 회원사의 현실 사이에서 업권의 의견을 모아 당국에 전달하고, 필요할 경우 제도 개선을 건의하는 역할까지 요구된다.
회원사·당국 잇는 ‘가교’ 역할 중요
회원사의 다양한 구성 자체도 차기 회장의 조정력을 시험하는 요인이다. 은행연합회 이사회에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SC제일 등 시중은행뿐 아니라 ▲산업·기업·농협은행 등 특수은행 ▲수협은행과 지방은행을 대표하는 부산은행 ▲인터넷은행을 대표하는 케이뱅크까지 참여한다.
자산 규모와 영업 기반, 고객층이 서로 다른 은행들이 한 조직에 모여 있는 만큼 모든 현안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특히 가계대출 규제와 ▲생산적 금융 ▲지자체 금고 ▲디지털 금융처럼 은행별 사업전략과 직접 맞물린 사안에서는 대정부 협상에 앞서 회원사 내부의 공통분모를 찾는 작업부터 필요하다.
차기 회장에게는 은행권의 다양한 이해를 조율하면서 금융당국·한은·국회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서로 다른 입장 사이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조정자’로서의 역량이 요구될 전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연합회장은 여러 은행과 업권의 이해를 조율하는 동시에 금융당국이나 국회 등 외부와 소통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며 “차기 회장 역시 이런 조정·소통 능력이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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