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다시 매긴 직장인 몸값③]
AI 사용자 39.1% “경험·판단력 더 중요해져”
AI 고노출 업종 청년 26.8만개↓·50대 17.3만개↑
“10년 경험 1분 만에 못 만들어”…암묵지가 가른 몸값
[편집자주] 송희구 작가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직장인들이 등장한다. 대기업에서 25년을 버틴 ‘꼰대’ 김 부장, 인정받는 ‘일잘러’ 송 과장, 이제 막 회사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 권 사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익숙한 ‘김 부장 세계관’을 AI 시대의 회사로 옮겨봤다. AI는 이들의 일과 몸값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기사 속 상황은 국내외 연구와 공개된 사례를 토대로 재구성했다.
[이코노미스트 김정민 경제전문기자] 다음 날 오전 임원 업무보고. 백 상무는 보고서를 한참 넘겨보다 한마디 했다.
“나쁘지 않은데.”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김 부장이 송 과장과 권 사원에게 말했다.
“보고서 다시 만들어야겠다.”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백 상무님이 나쁘지 않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다시 하라는 거야.”
김 부장이 말했다.
“백 상무가 진짜 마음에 들면 ‘이대로 갑시다’라고 해. 그런데 자료만 넘기다가 ‘나쁘지 않은데’라고 했잖아.”
김 부장은 보고서를 다시 펼쳤다.
“보고서 내용이 틀렸다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나쁘지 않다고 하지, 하지만 백 상무가 원하는 답은 없다는 거야.”
백 상무가 대리, 김 부장이 사원이던 시절부터 20년 넘게 함께 일하면서 쌓인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다.
◇AI 시대 더 중요해진 경험과 통찰력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직장인들도 경험과 판단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9월 발간한 ‘생성형 AI의 노동시장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화이트칼라 중심 57개 직업 재직자 1512명 가운데 76.1%가 생성형 AI를 업무에 사용하고 있었다.
생성형 AI를 사용한 이후 ‘경험과 판단력 등 인간 고유의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고 답한 비율은 39.1%였다. 덜 중요해졌다는 응답은 20.3%였다.
AI가 사람의 업무(task)를 일부 대신하는 것과 직업(job) 전체를 대신하는 것은 다른 문제여서다.
보고서 작성만 해도 자료 검색과 요약, 표 작성, 초안 작성뿐 아니라 숫자를 검증하고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가려내고 최종 결론을 내리는 일이 함께 이뤄진다.
생성형 AI가 자료 조사나 초안 작성처럼 정형화하기 쉬운 업무를 맡더라도 AI가 내놓은 결과를 검증하고 해석해 판단하는 업무는 남는다는 얘기다.
AI가 반복 업무를 가져갈수록 사람의 역할이 ‘찾고 정리하는 일’에서 ‘검증하고 판단하는 일’로 이동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재료를 바꿔보면?”…25년 경험이 찾아낸 해법
며칠 뒤 김 부장은 송 과장과 함께 거래처를 찾았다.
계약 협상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거래처 사장은 원자재 가격이 올라 더 이상 제품 단가를 낮추기 어렵다고 했다.
김 부장이 제품을 가리키며 물었다.
“사장님, 이 부품에 지금 재료를 꼭 써야 합니까?”
“품질 때문에 계속 그렇게 써왔죠.”
김 부장이 말했다.
“예전에 비슷한 부품에 다른 재료를 썼던 적 있잖아요. 이 부분만 재료를 바꾸면 품질 기준은 맞추면서 단가를 낮출 수 있지 않습니까?”
거래처 사장이 원가표를 다시 들여다봤다.
“가능할 수도 있겠네요. 테스트는 해봐야 합니다.”
“테스트해서 문제없으면 그렇게 갑시다. 우리가 20년 동안 거래하면서 어려울 때마다 서로 방법을 찾아왔잖아요. 이번에도 한번 찾아보시죠.”
며칠 뒤 거래처에서 연락이 왔다. 재료를 바꿔도 품질 기준을 충족하면서 원가를 낮출 수 있다는 답이었다. 계약은 성사됐다.
송 과장이 물었다.
“부장님은 재료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김 부장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예전에 한번 해봤으니까.”
AI도 원가표를 분석하고 대체 재료를 찾아낼 수 있다. 문제는 어떤 재료가 실제 생산라인에서 품질 기준을 통과했는지, 당시 어떤 문제가 발생했고 어떻게 해결했는지가 데이터로 남아 있느냐다.
김 부장의 머릿속에는 문서로 남지 않은 25년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런 경험을 암묵지(暗默知·tacit knowledge)라고 부른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청년 26.8만개 줄 때…50대 17.3만개 늘었다
노동시장에서도 경험이 적은 청년과 경력 근로자의 흐름이 엇갈린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발표한 ‘청년고용 위축, AI탓인가? 변화하는 경력 사다리와 대응 과제’에 따르면 2022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4년간 청년층 일자리는 28만5000개 감소했다.
이 가운데 26만8000개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감소했다. 전체 청년 일자리 감소분의 9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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