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美 움직이고 韓 채비한다…한미 조선협력에 ‘순풍’
- [마스가, 그린라이트·레드라이트]①
美 정부·의회·해군 잇단 방한…韓 함정 건조 역량 점검
정책금융·현지 협력센터 가동…사업화 속도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한미 조선 협력 사업인 ‘마스가’(MASGA)가 막연한 구호를 넘어 실행 기반을 갖춰가고 있다. 사업을 뒷받침할 투자·금융 체계가 마련되고 미국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의 방한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은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와 군수지원함 설계, 미국 현지 조선소 투자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다만 조선업계의 시선은 아직 신중하다. 한미 간 교류는 활발해졌지만 핵심인 미 함정 건조 사업은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내 함정 건조를 가로막는 법·제도도 손봐야 한다. 업계는 활발한 논의가 실제 수주와 생산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조선소 직접 찾은 美…커지는 사업화 기대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마스가 프로젝트와 관련한 미국 정부·의회 관계자들의 방한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이 한국 조선업의 함정 건조와 MRO 역량을 직접 확인하며 협력 범위를 넓히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8월 말에는 미 해군의 조선 전략을 총괄하는 리처드 브레켄리지 미 해군성 조선 담당 수석고문이 방한해 국내 주요 조선소의 함정 건조 역량을 살펴본 것으로 전해졌다. 브레켄리지는 지난 6월 수석고문에 임명됐다. 미국 조선 산업 기반 재건과 함정 획득 절차 개선, 이른바 ‘골든 플리트’ 구축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미 의회도 움직였다. 지난 7월 미 하원 세출위원회 국방소위원회 관계자 8명이 방한해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를 잇달아 찾았다. 방한단은 각 조선사의 함정 건조 능력과 미국 현지 투자 계획에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HD현대중공업에서 8200톤급 이지스 구축함과 필리핀 해군에 인도할 초계함을 둘러봤다. 한화오션에서는 3600톤급 호위함과 잠수함을 확인했고, 삼성중공업에서는 군수지원함을 포함한 전반적인 함정 건조 역량을 점검했다. 미 하원 세출위원회 국방소위원회가 국방예산을 심사하는 조직인 만큼 업계의 사업화 기대도 커졌다.
미국의 관심은 현장 방문에 그치지 않는다. 미 국방부와 해군은 국내 조선사들에 구축함과 군수지원함의 설계·건조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 정부와 의회, 해군 관계자들이 국내 조선소를 직접 찾고 설계·건조 역량과 생산체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점은 한미 조선협력이 선언을 넘어 실행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라며 “MRO를 시작으로 군수지원함과 기자재·모듈 공급, 장기적으로는 공동건조까지 협력 범위가 단계적으로 확대될 여지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부터 R&D까지…‘팀 코리아’ 실행 기반 구축
현장의 신중론과 별개로 마스가를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기 위한 투자·지원 체계는 차례로 갖춰지고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합의한 1500억달러(약 204조원) 규모의 조선협력 투자를 바탕으로 미국 조선소 현대화와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사업 발굴에 나서고 있다.
올해 6월에는 한미전략투자공사(KUIC)와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무역보험공사, 해양진흥공사 등 정책금융기관과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이 조선협력 투자 실행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참여 기관과 기업들은 별도 협의체를 꾸려 미국 내 투자 사업을 발굴하고 금융지원 방안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지난 7월에는 미국 워싱턴DC에 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가 문을 열었다. 지난 5월 한국 산업부와 미국 상무부가 체결한 한미 조선 파트너십 이니셔티브 MOU의 후속 조치다. KUSPC는 미국 조선소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컨설팅과 인력 양성, 연구개발(R&D), 기술 교류,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지원 등을 맡는다.
개소식에서는 민간 협력 방안도 공개됐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을 비롯해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 KUSPC가 참여하는 ‘팀 코리아’가 출범했다. 한미 기업과 기관들은 팀 코리아 구축과 공급망 협력, 인력 양성, 공동 기술개발 등 4개 분야에서 총 15건의 MOU를 체결했다.
공동 연구도 본격화된다. 서울대와 삼성중공업, HD현대중공업 등 한국 7개 기업·기관과 미시간대, 샌디에이고주립대(SDSU), 안두릴 등 미국 9개 기업·기관은 앞으로 5년간 총 1200억원 규모의 공동 연구를 추진한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선박 설계 최적화와 알루미늄 함정 자율용접, 대형 블록 도장 자동화, 자율운항 등 8개 과제가 대상이다. 선박을 대신 건조하는 수준을 넘어 미국 조선산업의 생산성을 높일 기술까지 함께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미국 현지 생산기반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는 필리조선소를 핵심 거점으로 삼아 50억달러(약 6조8000억원)를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HD현대는 미국 방산 조선업체 HII와 차세대 군수지원함 공동 설계·건조 및 현지 조선소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콘래드조선소와 액화천연가스(LNG) 벙커링선 공동 건조를 추진하는 등 현지 파트너십을 넓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개별 프로젝트의 투자 규모나 수주 금액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KUSPC 출범을 계기로 정부 간 논의가 기업 단위의 실행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며 “정책금융 지원까지 본격화하면 국내 조선사들의 미국 현지 투자와 선박 건조 협력도 점차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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