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ITOR's LETTER]
반도체 호황에 내년 국세수입 584조…법인세만 115조 급증
호황 세수 믿고 씀씀이 키워선 안 돼…잔치 끝날 때 대비해야
지난 6월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이 대통령은 두 사람을 “국가 영웅”, “국민 영웅”이라 불렀다. 그러고는 “국민을 대표해 인사드린다”며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이 대통령은 최근 최 회장, 이 회장과 각각 비공개 만찬을 가졌다고 한다. 요즘 나라 살림만 놓고 보면 이 대통령이 두 회장에게 밥 한 끼 거하게 사는 게 맞다.
내년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 총지출은 820조9000억원이다. 올해 본예산보다 무려 93조원, 12.8% 늘었다. 역대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보건·복지·고용은 289조원으로 9.3%, 교육은 110조7000억원으로 10.8%, R&D는 39조5000억원으로 11.2% 늘어난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는 29.7% 증가한 41조2000억원, 일반·지방행정은 무려 22.8% 늘어난 149조원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지출을 늘릴 만하다. 세수는 지출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내년 국세수입을 584조4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올해 추경 전망보다 무려 168조9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증가분의 대부분은 법인세와 소득세다. 법인세만 올해보다 115조4000억원 증가한 216조7000억원이 걷힐 전망이다.
반도체 슈퍼 호황으로 기업들이 벌어들인 돈과 내야 할 세금이 급증한 덕이다.
직원들에게 지급할 두둑한 성과급도 세수 확대에 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반도체 기업의 특별성과급 확대 등의 영향으로 근로소득세가 내년에 29조2000억원 더 걷힐 것으로 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이 돈을 잘 버니 법인세가 늘고, 직원들의 급여와 성과급이 늘면서 근로소득세까지 불어나는 구조다.
그러나 잔치는 언젠가 끝난다. 법인세는 경기 민감도가 가장 높은 세목 가운데 하나다. 반도체는 특히 더 그렇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반도체 불황으로 세수가 예상보다 수십조원씩 덜 걷혀 나라 살림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이유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 등으로 최근 10년의 내국세 증가 추세를 웃도는 추가세수를 기금에 넣고, 그중 45조4000억원은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에 투자하되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쌓아두기로 했다. 세수가 줄어드는 날을 대비한 재정 댐이다. 이 발상은 옳다. 문제는 댐을 쌓으면서 동시에 수도꼭지도 더 크게 열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지금은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시기다. 경기와 물가, 집값을 우려해 중앙은행은 시중의 돈줄을 죄는데 정부는 지출을 12.8% 늘린다. 한쪽은 브레이크를, 다른 한쪽은 액셀을 밟는 셈이다.
정부 재정이 수요를 자극하면 한은은 높은 금리를 더 오래 유지해야 한다. 그 대가는 대출이자와 자금조달 비용 상승으로 가계·자영업자·기업에 돌아간다. 정부가 액셀을 밟을수록 한은이 브레이크를 더 세게 밟아야 하는 정책 조합이 과연 합리적인지 의문이다.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들어오는 돈 가운데 얼마가 정상적인 세수이고 얼마가 반도체가 가져다준 일회성 보너스인지 냉정하게 구분하는 일이다. 어쩌다 들어온 보너스에 맞춰 생활비를 늘리는 집은 빚더미에 올라 앉는 게 수순이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인력거꾼 김첨지는 유난히 돈벌이가 잘됐던 날 설렁탕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토록 설렁탕을 먹고 싶어 했던 아내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지금 이재명 정부 경제는 여러 행운이 겹쳤다. 반도체는 초호황이고 성장률은 껑충 뛰었으며 주가도 치솟았다. 덕분에 세금도 넘쳐난다.
그렇다고 이 운수가 영원할 것처럼 국가의 씀씀이를 늘릴 일은 아니다. 호황기에 할 일은 잔치판을 키우는 게 아닌, 닥쳐올 불황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운수 좋은 날’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반도체 호황과 세수 풍년 뒤편의 취약 자영업자와 빚에 눌린 가계가 잔치의 계산서를 받아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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