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요즘뭐함?] “중고 잘못 사면 재수 옴 붙는다던대요?” 젠지세대가 깨부순 빈티지 열풍
- 싸구려 취급받던 중고, ‘취향템’으로
새 제품보다 희소한 ‘시간의 흔적’
거래액 10배 뛰고 젠지 옷장 32%가 세컨드핸드
무신사도 적극적인 세컨핸드 시장 공략 중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중고 제품 잘못 사면 재수 옴 붙는다던데요?”
대학생 이모씨(22)는 최근 생애 첫 명품가방으로 빈티지 루이비통 가방을 장만했다. 가볍고 넉넉한 수납을 자랑하는 이 제품의 정가는 약 350만원 선. 그러나 이씨는 절반 수준인 180만원에 가방을 사들였다고 했다. 그는 "세컨핸드 제품을 거래하는 네이버의 '시크' 앱에서 구매했다"며 "사용감이 적은 미품인데다가 시크가 직접 정품을 인증해주기 때문에 믿고 샀다"고 했다.
'남이 쓰던 물건을 잘못 사면 나쁜 기운도 따라온다더라'는 우려는 클리닝 서비스로 날렸다고 한다. 그는 "돈을 추가해 가죽 클리닝 서비스도 받았다. 나쁜 기운도 청소 된 것"이라면서 "누군가 오래 아끼고 쓴 물건이라는 점을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거래액 10배 뛴 중고 패션
최근 젠지세대를 중심으로 중고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고 있다. 한때 중고품에는 ‘남이 쓰던 물건’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따라붙곤했다. 그러나 젠지세대는 희소성과 디자인, 사용감까지 따져 자신만의 취향을 찾는 수단으로 중고 패션을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숫자로도 확인된다. 무신사의 중고 패션 플랫폼 ‘무신사 유즈드’는 올해 6월 거래액이 지난해 9월 출시 초기보다 약 10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판매자 수는 30배, 판매 상품 수는 6.7배 늘었다. 출시 1년도 안 돼 거래액뿐 아니라 판매자와 상품 공급까지 빠르게 확대됐다.
중고 명품 시장의 성장세도 뚜렷하다. 번개장터의 ‘2025 K-럭셔리 세컨핸드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 명품 거래 규모는 전년보다 52% 증가했다. 한 해 동안 새로 등록된 상품만 3900만건에 달했다. 명품 주얼리 거래액은 1년 새 381% 급증했다.
중고 시장의 중심이 의류에서 명품 가방과 시계, 주얼리 등 고가품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소비자 역시 가격만 따지지 않는다. 정품 여부와 희소성, 제품 상태, 다시 팔았을 때의 가치까지 함께 살핀다.
젠지세대에게 중고 거래는 일종의 ‘보물찾기’에 가깝다. 단종된 제품이나 과거 시즌 상품처럼 지금은 매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제품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누구나 살 수 있는 최신 제품보다 자신의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는 희소한 제품에 관심을 갖는다.
해외에서도 젠지의 중고 소비는 이미 하나의 소비문화로 자리 잡았다. 로이터가 지난 2월 전한 보스턴컨설팅그룹(BCG)·베스티에르 컬렉티브 조사에 따르면 세컨드핸드 의류가 젠지 옷장의 32%를 차지했다. 젠지 10명 중 8명은 리세일 플랫폼을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는 경로로 인식했다. 글로벌 리세일 시장은 2030년 최대 36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미국에서도 젊은 세대의 중고 소비 의향은 높다. 미국 리세일 플랫폼 쓰레드업이 지난해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젠지와 밀레니얼은 앞으로 12개월간 의류 지출의 46%를 중고 제품에 쓸 계획이라고 답했다. 젊은 세대가 중고를 보조적인 구매 수단이 아니라 의류 소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선택지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빈티지는 특별해
젠지가 중고 제품을 찾는 이유는 가격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새 제품에서는 얻기 어려운 희소성과 개성이 핵심이다.
중고 제품에 남은 사용 흔적도 단점으로만 보지 않는다. 가죽에 남은 주름이나 색감의 변화처럼 시간이 만든 흔적을 빈티지한 매력으로 받아들인다. 누군가 사용했던 시간이 제품의 개성을 만든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 보그가 지난 6월 공개한 소비자 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됐다. 최근 6개월 동안 명품을 리세일 플랫폼에서 구매한 소비자는 전체의 19%였고, 중고 매장이나 큐레이션 빈티지 부티크에서 쇼핑한 비율은 젠지에서 23%로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조사에서 세컨드핸드 럭셔리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희소하거나 독특한 제품을 발견할 수 있어서’로, 응답자의 44%가 꼽았다. 가격과 지속가능성은 각각 43%였다.
패션의 유행 주기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새 시즌 신상품이 유행을 이끌었다면 지금은 과거 제품이 SNS를 통해 다시 주목받고 중고 시장에서 거래가 늘면서 새로운 유행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중고 플랫폼이 패션 트렌드를 확인하는 창구가 된 이유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제품처럼 현재 다시 유행하는 디자인을 과거 컬렉션에서 찾는 소비도 늘고 있다.
유명인의 착장도 중고 시장에 빠르게 반영된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과거 시즌 제품을 착용하면 SNS를 통해 관심이 확산되고 검색과 거래가 뒤따른다. 새 제품 판매량보다 중고 시장의 검색량과 거래량에서 먼저 유행의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한다.
중고 소비는 이제 패션을 입는 방식뿐 아니라 패션을 바라보는 기준까지 바꾸고 있다. 제품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떤 시대를 대표하는지, 지금도 다시 살 가치가 있는지까지 따지는 식이다.
무신사도 뛰어든 중고 시장
중고 소비가 커지면서 패션업계의 대응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중고 거래가 신제품 판매를 잠식하거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최근에는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고 브랜드 접점을 넓히는 유통 채널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무신사는 ‘무신사 유즈드’를 통해 중고 패션 시장을 직접 공략하고 있다. 24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첫 대규모 온라인 행사인 ‘무신사 유즈드 페스티벌’도 연다. 스트리트·컨템포러리·스포츠·앙코르 등 4개 테마로 상품을 선보이고 아티스트 소장품 래플과 패션 인플루언서들의 온라인 플리마켓도 진행한다.
중고 시장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새 제품을 산 뒤 되파는 데 그치지 않고 중고 시장에서 제품을 먼저 발견한 뒤 브랜드를 알아가는 소비도 가능해졌다. 젊은 소비자에게 리세일 플랫폼은 상품을 거래하는 공간인 동시에 새로운 브랜드와 스타일을 발견하는 쇼핑 채널이 됐다. 로이터가 인용한 BCG·베스티에르 컬렉티브 조사에서 젠지의 80%가 리세일을 새로운 브랜드 발견 경로로 본다는 결과가 나온 이유다.
소비자가 구매 단계에서부터 재판매 가치까지 계산하는 문화도 자리 잡고 있다. 얼마나 싸게 샀는지가 아니라 정품 여부와 희소성, 상태, 향후 재판매 가격까지 따진다. 중고 거래가 절약형 소비에서 가치 중심 소비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리커머스 리터러시’라는 개념으로 이런 변화를 설명한다. 중고 제품의 가격뿐 아니라 품질과 희소성, 재판매 가능성까지 판단하는 소비자의 역량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과거 중고 패션은 가격을 낮추기 위한 소비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젊은 소비자들은 중고 시장에서 오히려 자신의 취향과 희소성 있는 제품을 찾는다”며 “특히 빈티지 제품은 새 상품과 달리 시간이 만든 이야기가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가치를 갖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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