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전기차 캐즘에도 더 ‘크게’ 간다…현대차의 제네시스 승부수 [마지막 퍼즐, GV90] ①
- EV9·아이오닉 9·GV90…큰 전기차 3각 편대
대중부터 VIP까지…전기 SUV 수익성 개선 박차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이전보다 둔화한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은 대형 전기차 라인업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차체와 상품성을 키워 수익성과 브랜드 가치를 함께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세 브랜드가 서로 다른 고객층을 겨냥하면서 대형 전기 SUV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힐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큰 전기차, 수요도 커졌다
판매는 순항 중이다. 현대차 아이오닉 9은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7329대가 판매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3608대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늘었다. 기아 EV9도 같은 기간 1552대가 팔렸다. 지난해 상반기 768대보다 102.1% 증가했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두 모델 모두 판매량을 두 배 이상 끌어올렸다.
여기에 제네시스 GV90까지 가세한다. 겨냥하는 고객층은 다르다. EV9과 아이오닉 9이 가족 단위의 3열 SUV 수요를 노린다면 GV90은 뒷좌석 중심의 VIP 수요까지 범위를 넓힌다. GV90 출시를 계기로 현대차그룹이 대형 전동화 시장에서 대중 수요부터 고급·의전 수요까지 폭넓게 끌어안을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시장에 거는 기대도 크다. 전체 전기차 시장은 주춤하지만 EV9과 아이오닉 9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어서다.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24만7226대로 전년 동기보다 20.5% 감소했다. 전체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5.8%에 머물렀다.
반면 EV9은 올해 상반기 미국에서 7035대가 팔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늘었다. 아이오닉 9도 판매량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올해 1분기 1990대에서 2분기 2868대로 증가했다. 미국 전기차 시장 전체가 뒷걸음질치는 와중에도 현대차그룹의 대형 전기 SUV는 비교적 선방한 셈이다.
제네시스의 미국 성장세도 GV90에는 호재다. 제네시스는 지난해 미국에서 8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2020년 1만6000대 수준이던 연간 판매량은 2024년 7만5000대까지 늘었다. 미국 럭셔리차 시장에서 제네시스의 점유율도 같은 기간 0.9%에서 2.7%로 높아졌다.
GV90은 여기에 올라탄다. 이미 미국에서 제네시스를 찾는 고객층이 두터워진 데다 EV9과 아이오닉 9을 통해 대형 전기 SUV 수요도 확인했다. 브랜드 최상위 대형 전기 SUV까지 더해지면서 기존 제네시스 고객을 한 단계 높은 차급으로 끌어올릴 여건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이 대형 전기 SUV에 힘을 싣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수요가 있다. 특히 미국은 큰 SUV가 잘 팔리는 시장이다. 현대차 팰리세이드와 기아 텔루라이드가 꾸준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이미 시장성을 확인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익숙한 차급에 전기차 선택지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넓힐 수 있다.
전기차의 구조도 대형 SUV와 맞는다. 차체가 커지면 바닥 면적도 넓어진다. 그만큼 큰 배터리를 넣을 공간이 생긴다. EV9 롱레인지에는 99.8kWh 배터리가 들어간다. 아이오닉 9은 110.3kWh다. GV90은 123.5kWh로 현대차그룹 전기차 가운데 가장 큰 배터리를 얹었다.
수익성도 빼놓을 수 없다. 전기차는 배터리가 차지하는 원가 비중이 높은 만큼 가격을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대형 SUV는 기본 가격이 높은 데다 고급 사양을 붙이기도 상대적으로 쉽다. 판매량이 크게 늘지 않더라도 차 한 대에서 확보할 수 있는 매출과 수익을 높일 여지가 있다.
현대차그룹의 중장기 전략도 같은 방향을 향한다. 현대차는 2030년 영업이익률 8~9%를 목표로 제네시스 등 고부가 차종 확대와 제품 믹스 개선을 주요 수단으로 제시했다. 기아 역시 제품 믹스 개선과 평균판매가격 상승 등을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많이 파는 것만큼 어떤 차를 파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GV90은 이 전략의 최상단에 놓인다. 제네시스는 2030년 연간 판매량을 35만대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GV90은 단순히 전기 SUV 한 종을 더하는 차가 아닌, 제네시스 라인업의 정점에서 판매 단가를 높이고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물론 덩치를 키운다고 무조건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배터리가 커질수록 원가 부담도 함께 커진다. 무거워진 차체는 전비에 불리하고 높은 가격은 소비자의 선택을 망설이게 할 수 있다. 대형 전기 SUV가 가진 장점이 그대로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관건은 가격이라는 분석이다. EV9과 아이오닉 9이 대형 전기 SUV의 수요를 어느 정도 확인했다면 GV90은 그 수요가 럭셔리 시장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시험하게 된다. 제네시스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높은 가격을 설득할 수 있느냐가 GV90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GV90은 사실상 미국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모델로 볼 수 있다”며 “미국 자동차 시장이 소형과 대형으로 양극화되고 차량 가격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제네시스는 고급화한 대형 SUV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판매량 자체를 크게 늘리기보다는 극소수의 고급차 수요층을 집중적으로 겨냥하는 것인데, 제네시스가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GV90을 통해 고급차 브랜드로서 또 한 번의 도약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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