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일반
PF 보증 풀고 이자 깎아준다는데도 ‘착공 버튼’ 못 누르는 건설사[주택 공급 ‘속도전’ 가능할까]②
- ‘공사비 80% 보증’ 문턱 낮췄는데… "원가 상승 해결 안돼"
지방선 미분양 문제 그대로…전문가 "사업성 여부가 핵심"
[이코노미스트 권지예 기자] 정부가 8·13 주택공급 대책을 통해 민간 건설사의 조기 착공 유도에 나섰다. 당근책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보증 확대와 조기 착공 사업장 금리 혜택을 꺼내 들었다. 자금난에 묶인 사업장의 금융 부담을 낮춰 주택공급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건설업계의 반응은 냉랭하다. PF 보증이 늘어도 높은 공사비와 미분양 위험, 낮은 사업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착공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돈을 빌릴 길은 넓혔지만 건설사들이 실제로 ‘착공 버튼’을 누를 유인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과 동떨어진 금융 지원
8·13 주택공급 대책의 금융 지원은 크게 'PF 공적 보증 확대'와 '대출 이자 지원' 두 축으로 나뉜다.
정부는 우선 PF 대출 보증 공급 규모를 총 33조원으로 확대한다. 대상은 분양가나 면적 제한 없이 전국 주택 사업장이다. 기존 토지 매입비 위주였던 보증 범위를 공사비 영역까지 넓히고, 수도권 사업장의 보증 한도를 공사비의 70%(서울 등 고열위 지역 최대 80%)까지 확대한 것이 핵심이다. 자금력이 부족한 정비사업 조합이 초기 사업비와 본공사비를 조달할 때 금융권 대출 문턱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반면 정부가 직접 대출 금리를 깎아주는 이자 지원책은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서울·수도권 사업장 가운데 ‘전용면적 85㎡ 이하’이면서 ‘분양가 9억원 이하’인 주거용 사업장만 지원 대상이다. 이 요건을 갖춘 상태에서 2027년까지 조기 착공에 나서면 1.0%포인트(p), 2028년 착공 시 0.5%p의 대출 금리를 직접 지원받는다.
문제는 이 같은 조건 설정이 현장 실태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정작 공급 가뭄이 가장 심각한 서울 도심 주요 재개발·재건축 단지의 경우 국민평형(전용 84㎡) 분양가가 10억~15억원을 웃도는 곳이 대다수다. 서울 핵심 정비사업장이 9억원 캡(상한선)에 걸려 이자 지원 대상에서 통째로 배제된다.
A건설사 관계자는 “서울 도심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97% 이상은 건설사가 직접 땅을 사서 추진하는 자체 사업이 아닌 도급 사업”이라며 “대형 시공사들의 경우 신용도가 높아 PF 보증 한도가 부족해 공사를 미루는 사례는 드물다. 현장의 진짜 걸림돌은 PF 대출 가능 여부가 아니라, 최근 3년간 30~40% 급등한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 공사비 원가 폭등”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실질적으로 재개발·재건축이 대부분인 서울에서 금융 지원책은 시공사가 아닌 시행사에 해당하는 영역”이라며 “빚을 더 내서 착공을 빨리하라는 건데, 조합원은 부담을 낮추려고 하지 빚을 더 내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PF 보증 범위에 공사비를 포함시켜 대출 한도를 늘려준 것 역시 조합이 나중에 상환해야 할 대출 빚의 한도를 넓혀준 것에 불과하다. 급등한 공사비 원가 자체를 낮춰주지 못하는 금융 대책으로는 조합과 시공사 간의 근본적인 공사비 증액 갈등을 해소하기 어렵다.
B건설사 관계자 역시 “사업비 지원책, 대출 보증 한도 상향 운영 특례 1년 연장 등 지원책을 통해 부담이 경감될 수는 있겠으나, 전체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이 뒤따르지 않으면 드라마틱한 반전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사업 구조 따라 셈법 엇갈려
부동산 대책을 바라보는 건설사들의 셈법은 각사가 처한 사업 포트폴리오에 따라 갈린다.
서울 정비사업 수주에 집중해 온 대형 시공사들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C건설사 관계자는 “서울 정비사업 현장에서 시공사가 PF 보증이 낮아 공사를 못 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며 “조합의 연체 이자 부담이나 사업 좌초 위험을 일부 줄여주는 효과는 있겠지만, 공사비 원가 상승에 따른 조합원과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선뜻 착공에 나서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에 따르면 300가구 이상 정비사업지 336곳 가운데 공사 중인 곳은 32곳 뿐이다. 북아현2구역 등 27곳은 2020년 이전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았지만 착공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공사비 상승은 물론 조합 갈등, 이주비 대출 규제가 주요인으로 거론된다. 서울 정비사업 공사비는 2021년 3.3㎡당 578만원에서 지난해 890만원으로 급등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방에 기반을 둔 중소 건설사들과 미분양 우려 지역 사업장의 시각은 더욱 서늘하다. D건설사 관계자는 “미분양 늪에 빠져 있는데 빚을 더 내서 지으라는 꼴”이라며 “대출 한도만 늘려주는 대책은 의미가 없으며, 미분양 해소책 없이는 착공은 꿈도 못 꾼다”고 토로했다.
PF 대출은 분양 후 들어오는 입주금(계약금·중도금·잔금)으로 원리금을 상환하는 방식에 기반한다. 미분양 적체가 심각한 지방 사업장의 경우, 정부가 보증을 서주고 이자를 깎아주더라도 아파트가 팔리지 않으면 대출금을 갚지 못해 부실이 커지는 구조다. 사업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출 한도만 늘려주는 정책은 건설 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조합원 정비사업의 핵심은 이주비 대출 지원을 통한 신속한 이주 추진과 사업성 제고에 있다”며 “재건축·재개발 이외의 일반 개발사업 역시 PF 자금 조달이 원활하게 일어나야 공급이 가능한 만큼, 정부 지원책이 실질적인 사업성으로 이어지느냐가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서 교수는 “사업성이 부족한 지방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민간 업체의 주택 공급을 촉진하는 데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정비사업 3.3㎡당 공사비>(단위: 만원)
연도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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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73
2023년 750
2024년 842
2025년 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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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주거환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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