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시끄러워지고 싶은 전기차의 속사정 [왜있을CAR]
- 보행자 안전 넘어 운전의 재미까지
완성차 ‘가상 사운드 경쟁 본격화’
수만 개의 부품이 모여, 하나의 차량이 완성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작은 부품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작고 하찮아 보일지라도, 그 어느 하나 대체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부품들이 차를 움직이고·길을 만들고·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지금부터, 미처 보지 못했던 부품들을 하나씩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편집자주]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전기차의 대표적인 장점 가운데 하나는 정숙성이다. 시동을 걸어도 엔진 진동이 없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도 엔진 굉음이 따라붙지 않는다. 내연기관차에 있는 엔진이 사라졌으니 자연스러운 변화다.
최근 자동차 업계에선 새로운 소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정숙함이 무기지만, 정반대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조용해진 전기차에 다시 소리를 입히기 시작했다. 스피커를 통해 엔진 회전음을 만들거나, 차량의 속도와 가속 정도에 따라 소리의 높낮이까지 바꾸는 형식이다.
특히 전기차 사운드 개발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여러 노력이 숨어있다.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상당한 시행착오도 거친다. 헬리콥터와 시계 초침 소리 등 다양한 음향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플라스틱 파이프에 소형 선풍기로 바람을 불어넣어 만든 소리까지 활용할 정도다.
아이오닉 5 N의 경우 운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소리도 다양하다. 2.0ℓ 터보 엔진에서 착안한 ‘이그니션’을 비롯해 미래형 전기차 사운드를 표현한 ‘에볼루션’, 전투기에서 영감을 얻은 ‘슈퍼소닉’ 등 세 가지 사운드가 마련됐다.
아이오닉 6 N에서는 모터스포츠에서 영감을 받은 ‘이그니션’, N 2025 비전 그란 투리스모에서 착안한 ‘에볼루션’, SF 감성을 담은 ‘라이트스피드’ 등 세 가지 가상 주행음을 선택할 수 있다.
이 같은 시도는 포르쉐 개발진의 관심도 끌었다. 프랑크 모저 포르쉐 911·718 라인 부사장은 아이오닉 5 N을 여러 차례 운전한 뒤 차량이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엔진음과 주행 감각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BMW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BMW는 영화음악 작곡가 한스 치머와 함께 ‘아이코닉사운드 일렉트릭’을 개발했다. 가속페달을 얼마나 밟는지, 차량이 어떤 상태로 움직이는지에 따라 실내에서 들리는 소리가 달라진다. 단순히 소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전기차에도 브랜드만의 감성을 입히겠다는 의도다.
아우디도 전기차만의 소리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e-트론 GT의 가상 주행음에는 약 32개의 서로 다른 음향 요소가 들어간다. 내연기관의 엔진음을 그대로 흉내 내는 대신 전기차에 어울리는 새로운 소리를 처음부터 창조한 것이다.
왜 완성차업체들은 앞다퉈 완벽한 소리를 개발해 넣을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단순히 ‘멋있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한다. 전기차로 넘어오면서 사라진 운전 감각을 소리를 통해 일정 부분 되살리려는 목적이 크다.
내연기관차에서 엔진음은 단순한 소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운전자는 엔진음의 높낮이를 들으며 차량의 상태를 자연스럽게 파악했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을수록 커지는 엔진음은 차량이 얼마나 힘을 쓰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엔진 회전수가 높아지면서 달라지는 소리는 속도가 붙고 있다는 사실을 귀로 전달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운전의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전기차는 다르다. 전기모터는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강한 힘을 내지만 이 과정에서 내연기관차와 같은 엔진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속도가 빠르게 올라가도 실내는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자동차의 성능은 높아졌지만 운전자가 귀를 통해 받아들이던 정보는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특히 고성능 전기차에서는 이런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빠른 가속 성능을 갖췄더라도 소리와 진동이 적다 보니 운전자가 체감하는 속도감이나 긴장감은 내연기관 고성능차와 다를 수밖에 없다. 완성차업체들이 고성능 전기차에 별도의 주행음을 적극적으로 넣는 이유라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내연기관차에 익숙한 운전자들은 초기 전기차를 탔을 때 소리가 없다는 점을 낯설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며 “소리가 없으면 주행이 다이내믹하지 않거나 차가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초기 전기차의 소리는 보행자가 차량 접근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 목적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운전의 재미와 감각을 높이기 위한 주행 사운드 개발에 완성차업체들이 공을 들이고 있다”며 “전기차 사운드가 안전을 넘어 운전자에게 보다 역동적이고 짜릿한 주행 감각을 전달하는 요소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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