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삼성 ‘두뇌’·현대차 ‘현장’·LG ‘생태계’… 피지컬 AI 주도권 ‘3사 3색’ 전략
- ‘말하는 지능’ 넘어 ‘실행하는 지능’으로… 2030년 상용화 분수령 맞아 대격돌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화면 속 텍스트와 이미지 생성에 머물던 인공지능(AI) 기술이 실제 물리적 공간에서 스스로 인지하고 판단해 움직이는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기존 생성형 AI가 인간과의 대화나 문서 작성 등 가상 세계의 데이터 처리에 집중된 ‘말하는 지능’이었다면, 피지컬 AI는 ▲로보틱스 ▲센서 ▲고정밀 제어 기술과 결합해 ▲제조 ▲물류 ▲건설 등 실제 현장에서 복잡한 과업을 완수하는 ‘실행형 지능’을 의미한다.
정부가 오는 2030년을 피지컬 AI의 본격적인 상용화 분수령으로 전망하는 가운데, 대한민국 산업을 이끄는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도 차세대 메가 트렌드로 피지컬 AI를 점찍고 총력전에 돌입했다. 다만 시장을 공략하는 3사의 접근법은 각사가 지닌 고유의 핵심 역량에 따라 ‘현장 배치’, ‘소프트웨어 두뇌’, ‘부품 생태계’로 명확히 갈리는 모습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거대 공장 결합한 ‘현장’ 강점
국내 기업 중 피지컬 AI의 현장 적용과 양산화 측면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곳은 현대자동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로보틱스 기술을 보유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자회사로 두고, 차세대 전기 구동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전면에 내세우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전략의 핵심 무기는 바로 완성차 제조 공장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거대 실증 무대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인근에 로봇 메타플랜트 응용센터(RMAC)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고난도 부품 조립, 하중 작업, 서열 작업 등 실제 자동차 생산 라인에서 발생하는 복잡하고 정밀한 물리적 반응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학습시키고 있다. 시뮬레이션 공간에서는 결코 확보할 수 없는 가공 현장의 물리적 마찰과 이물질, 유동적 현장 응급 상황 데이터를 차곡차곡 축적하는 방식이다.
나아가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에 로봇 양산 전담 법인인 '로보틱스 아메리카'를 설립하고, 오는 2028년까지 연간 3만대 규모의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 공장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이 중 2만 5000대 이상을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완성차 생산 현장에 즉시 투입해 초기 안정적인 자체 수요를 확보할 방침이다. 이후 축적된 양산 노하우를 바탕으로 타 산업군 기업들의 요구 조건에 맞춰 로봇을 맞춤 제작·위탁 생산해 주는 ‘로봇 파운드리’ 사업 모델로 영역을 확장한다는 셈법이다.
RX사업추진실 중심의 ‘소프트웨어 두뇌’
삼성전자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외형적 하드웨어 제작에 치중하기보다는 로봇을 자율적으로 제어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두뇌 시스템’과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 인프라’ 구축에 화력을 집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대표이사 직속으로 ‘RX(Robotics eXperience)사업추진실’을 전격 신설하며 전사적으로 분산돼 있던 로봇 관련 연구개발(R&D) 조직과 사업 역량을 하나로 모았다.
삼성전자의 궁극적 목표는 AI 기반의 완벽한 ‘무인 자율 공장’ 구현 및 대중적 로봇 OS(운영체제) 표준화다. 이를 위해 경북 구미사업장에 로봇 학습 전용 ‘데이터 팩토리’를 구축했다. 사람의 정밀한 손재주와 미세한 관절 동작을 로봇이 자연스럽게 재현할 수 있도록 시각, 촉각, 액션 데이터를 대규모로 수집·가공하는 핵심 거점이다. 또한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투자를 시작으로 서울대, 아주대 등 로봇 제어 분야 거장급 석학들을 적극 영입하며 고도화된 AI 알고리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삼성 그룹 차원의 막강한 밸류체인 시너지가 결합된다. 삼성전자의 AI 반도체(HBM 및 NPU)와 온디바이스 AI 기술, 삼성SDI의 로봇 전용 고성능 전고체 배터리, 삼성전기의 초고성능 센서 및 카메라 모듈 등이 로봇 두뇌 시스템으로 집결하고 있다. 특정 로봇 폼팩터에 갇히기보다, 글로벌 제조 현장을 지배할 로봇 두뇌 및 통합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지배하겠다는 전략이다.
핵심 부품 공급으로 ‘생태계’ 선점
LG전자는 완제품 로봇 시장에서의 직접적인 치킨게임에 뛰어드는 대신, 피지컬 AI 산업 생태계 전체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B2B 맞춤형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오랫동안 프리미엄 가전제품과 스마트팩토리 사업을 운영하며 축적해 온 정밀 모터 및 모션 제어 노하우가 강력한 자산이 됐다.
LG전자의 핵심 카드는 로봇의 관절과 근육 역할을 하는 ‘액추에이터’(Actuator) 모듈이다. LG전자는 고정밀, 고효율, 높은 내구성을 갖춘 액추에이터를 표준화·모듈화해 글로벌 완성형 로봇 제조사들에게 공급하는 핵심 부품 공급자 위치를 노리고 있다. 과거 PC 시대의 인텔, 모바일 시대의 퀄컴과 같이, 로봇 시장이 커질수록 필연적으로 성장의 수혜를 입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LG 스마트파크 등 세계적 수준의 첨단 제조 거점을 운용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공장 및 상업 공간 전체를 효율적으로 관제할 수 있는 로봇 AI 파운데이션 모델 기반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완제품 시장의 변동성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글로벌 로봇 개발사들이 LG전자의 액추에이터 부품과 통합 제어 솔루션을 채택하도록 유도하는 오픈 플랫폼 생태계 구축이 LG전자의 핵심 셈법이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피규어 AI, 유니트리 등 글로벌 테크 공룡들이 피지컬 AI 선점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3사의 서로 다른 접근법은 한국 산업계 전체의 경쟁력을 촘촘히 보완하는 긍정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실제 제조 및 물류 현장에서 최단 시간 내 대량 생산 체계와 실증 데이터를 쌓아 올리는 현대차, 하드웨어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지능을 결합해 로봇 두뇌를 구축하는 삼성, 고정밀 핵심 부품과 관제 플랫폼 표준화로 생태계를 포위하는 LG의 격전은 각 분야에서 강력한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피지컬 AI의 승패는 단순히 로봇이 얼마나 잘 걷고 움직이느냐를 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의 실시간 데이터 축적 속도, 하드웨어와 AI 소프트웨어의 유기적 결합, 대량 양산에 따른 경제성을 누구보다 빠르게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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