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같은 투싼인데 420만원 차이”…차즘이 드러낸 ‘깜깜이 견적서’
- [깜깜이 ‘차 견적서’를 투명하게]②
정상연 디자인앤프랙티스 대표 인터뷰
딜러 맘대로 수수료…‘용산상가’ 닮은 통제 불능 시장 수술
중고 거래 인식 바꾼 ‘당근처럼’…자동차 ‘소유’에서 ‘점유’로
[이코노미스트 권지예 기자] “매년 수십조 원이 오가는 시장인데 같은 차를 사면서 수백만 원씩 더 내고도 알아볼 방법조차 없는 게 지금의 자동차 리스·렌트 시장입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차즘 본사에서 [이코노미스트]와 만난 정상연 디자인앤프랙티스(차즘) 대표가 던진 문제의식이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자동차 리스 시장 규모는 23조원, 렌트 시장 규모는 약 30조원으로 합산 약 50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시장은 동일한 차량·계약 조건임에도 어떤 영업사원이나 알선업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야 하는 돈이 수백만 원 이상 차이 나는, 불투명한 중간 수수료 구조가 팽배했다. 하나은행 미래금융전략팀과 금융 핀테크 스타트업 ‘핀다’에서 자동차 금융 서비스를 다뤘던 정 대표가 이 수십조원대 시장에 적폐처럼 얽혀 있던 정보 비대칭과 수수료 거품을 걷어내려 나선 배경이다.
딜러 재량 따라 수수료…통제 불능 시장에 ‘메스’
현재 국내 자동차 리스·렌트 시장이 얼마나 주먹구구로 운영되고 있는지 아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자동차 리스·렌트는 표면적으로는 대형 금융사(캐피탈사)나 렌터카업체의 이름을 걸고 판매된다. 그러나 정작 최전선에서 소비자를 만나는 유통망은 통제 권한이 없는 프리랜서 영업사원들과 중간 중개법인(GA)들이 얽히고설킨 ‘다단계 위탁 구조’로 방치돼 있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영업 형태가 만연하다. 금융사가 설정한 원가(금리 및 잔존가치)에 영업사원이 임의로 자신의 마진(수수료)을 얹어 견적서를 새로 만들어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정보에 어두운 여성이나 사회초년생이 방문하면 수수료를 한껏 붙여 비싸게 팔고, 가격 비교를 까다롭게 하는 소비자에게는 마진을 대폭 낮춰 파는 이른바 ‘바가지 영업’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과거 차즘 임직원들이 동일한 ‘투싼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직접 견적을 받아본 결과, 같은 금융사의 같은 조건(5년 약정, 연 2만km)임에도 딜러의 자의적인 수수료 책정으로 인해 월 납입금이 29만원부터 36만원까지 천차만별로 벌어졌다. 60개월 계약 기간 전체로 환산하면 무려 420만원의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위탁 영업사원들이 정규직 소속이 아닌 프리랜서 형태이다 보니 소비자의 귀중한 개인정보 관리나 금융소비자보호법상의 가이드라인 준수 등 최소한의 내부 통제조차 전혀 이뤄지지 않는 금융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었다.
차즘은 이 고질적인 정보 차단과 통제 불능의 유통 구조 문제를 기술과 데이터로 해결하겠다는 목표로 출범했다. ▲16개 대형 금융사의 리스·렌트 조건 ▲잔존가치 ▲프로모션을 하나의 공통 포맷으로 변환하는 자체 데이터 레이어를 구축해 1분 만에 실시간 최저가 견적을 비교·심사할 수 있는 비대면 엔진을 개발했다.
정 대표는 “과거에는 중간 알선업자와 영업사원이 차값의 7~8%에 달하는 폭리 수수료를 챙기기도 했다”며 “차즘이 16개 금융사의 데이터를 투명하게 연동하고 정가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차즘과 경쟁해야 하는 업계의 평균 수수료율도 최근 3% 이하로 급격히 낮아졌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이를 ‘치킨 게임’이라 칭하면서도 ‘시장 정화 효과’라 표현했다.
190억 투자 유치 결실…자동차 유통 '인프라'로 한 발짝
차즘은 서비스의 본질과 시장 정화 가능성을 인정받아 누적 투자금 약 190억원을 달성했다. 지난 1월 141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최근에는 우리금융캐피탈과 KCB(코리아크레딧뷰로)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추가 유치했다. 정 대표는 “KCB가 설립 이후 처음으로 스타트업에 직접 지분 투자를 결정한 것은 차즘이 축적한 차량 거래 데이터와 이용 정보가 향후 신용평가 모델과 실제 금융 비즈니스에 핵심 변수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차즘은 8월 리스·렌트 이용자들의 최대 숙원이던 ‘승계 서비스’도 내놓는다. 리스·렌트는 보통 3~5년의 장기 계약을 맺지만, 해당 기간 동안 고객에게는 해외 발령·이직·결혼 등 삶의 다양한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는 계약을 중도 해지할 경우 차값의 20~65%에 달하는 수천만원대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야만 했다.
이에 차즘은 고객이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설계한 ‘출구전략’ 제공에 공을 들였다. 정 대표는 “금융사가 개별 고객의 해지 수수료를 낮춰주려면 금융감독원의 규제 승인을 거쳐야 하는 구조이다 보니, 지난 3년간 금융사들과 약관 및 수수료 조율을 계속해왔지만 현실적인 장벽이 높았다”며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릴 수 없어 선택한 대안이 바로 승계 마켓플레이스”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승계 시장은 규정과 기준이 없어 영업사원이 급한 사정에 몰린 고객의 조바심을 이용해 과도한 수수료나 지원금을 빼돌리는 폐단이 심했다”면서 “하지만 차즘은 계약 조건과 금융 심사를 표준화해 매도자와 매수자가 실시간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만날 수 있는 일대일 승계 마켓플레이스를 구축해 수천만원의 해지 위약금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처럼 차즘이 ‘출구전략’까지 구축하며 리스·렌트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배경에는 차량을 사지 않고 빌려 타는 소비문화가 필연적으로 확대될 것이란 강한 확신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소비자 특유의 ‘소유’ 욕구를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경제 환경의 변화를 짚었다.
정 대표는 “6년 전 4000만원대였던 그랜저 풀옵션 가격이 6000만원을 넘어서고 아반떼 신형도 4000만원대에 육박할 만큼 차값이 급등했지만 가처분 소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과거 피처폰에서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가며 약정과 할부가 표준이 됐듯 자동차 역시 ‘구매’에서 월 납입 부담을 낮추는 ‘임대(점유)’ 방식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정 대표의 목표는 중고 거래 시장을 바꾼 ‘당근’처럼 리스·렌트를 자동차 이용의 새로운 표준으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과거 타인이 쓰던 물건을 거래하는 것을 주저하던 소비자의 인식을 ‘당근’이 완전히 바꾸어 놓았듯, 차즘이 ‘하·허·호’ 번호판이나 리스·렌트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차량의 생애주기 전 과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해 대한민국 자동차 유통의 가장 신뢰받는 ‘인프라’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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