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고경민 블루엘리펀트 대표 “세계화 이끈 젠틀몬스터에 깊은 감사"
- [K아이웨어 르네상스를 향해]②
5만원대 안경으로 매출 507억원 성장…디자인랩 신설·IP 체계 강화
“젠몬은 프리미엄·블펀은 대중화, K아이웨어 생태계 확장해야”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먼저 겪은 성장통이 다른 브랜드들에게는 지름길이 되길 바랍니다.”
5만원대 안경으로 500억원대 브랜드를 만든 블루엘리펀트(블펀)가 성장통을 딛고 다음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빠른 외형 성장 과정에서 놓쳤던 부분을 돌아보고 디자인 역량과 지식재산권(IP) 관리 체계를 정비하며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지난 6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 블루엘리펀트 본사에서 만난 고경민 대표는 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두 딸의 엄마이자 위기를 수습해 조직을 다시 세우고 있는 삼성전자 법무실 출신의 CEO. 인터뷰 내내 시종 단단함과 온기가 함께 담겨 있었다.
함께 커야 더 멀리 간다
고 대표는 젠틀몬스터(젠몬)를 경쟁자가 아닌 K-아이웨어 산업을 세계에 알린 선구자로 평가했다. 블펀과 같은 후발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젠몬이 글로벌 시장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젠틀몬스터가 있었기에 블루엘리펀트도 존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명품과 견줄 수 있는 아이웨어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요.”
다만 블펀이 지향하는 시장은 젠몬과 다르다. 젠몬이 프리미엄 아이웨어 시장을 개척했다면, 블펀은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데일리 아이웨어’를 통해 K-아이웨어의 외연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두 브랜드는 지향점이 다릅니다. 젠틀몬스터가 명품 아이웨어 시장을 열었다면, 우리는 모두가 쉽게 착용할 수 있는 데일리 아이웨어 시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감도 높은 디자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경험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최근 들어 안경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시력 교정 도구로 인식됐던 안경은 이제 개성을 표현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아이웨어 시장은 2033년 4635억달러(약 676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패션 아이웨어와 스마트글라스가 새로운 성장의 축으로 떠오르면서 업계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시력 교정을 위해 라식을 받곤 했지만, 지금은 눈이 좋아도 패션을 위해 안경을 씁니다. 안경이 자기표현의 수단이 된 시대가 열렸습니다.”
블펀은 4만원에서 6만원대의 합리적인 데일리 아이웨어를 앞세워 소비자 접점을 넓혀왔다. 서울 성수동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입소문이 나며 연일 고객이 몰린다.
“저도 처음에는 성수가 왜 힙한지 잘 몰랐어요(웃음). 그런데 와보니 패션·뷰티 브랜드뿐 아니라 다양한 아이웨어 브랜드가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K-뷰티에 이어 K-아이웨어 브랜드도 하나의 문화와 산업이 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고 대표는 K-아이웨어의 경쟁력이 특정 브랜드 하나의 성공이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가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현장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구에서 30년 동안 대를 이어 K-아이웨어 안경 브랜드 ‘루페토’를 운영하고있는 김정민 대표는 “후발 브랜드가 선발 주자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어느 산업에서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면서 서로 성장하는 부분이 있다”며 “만약 그 과정에서 정도가 지나친 부분이 있다면 그에 맞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브랜드에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고 대표는 “새로운 아이웨어 브랜드들이 계속 탄생하는 시장이 더 중요합니다. 시장이 함께 커져야 K-아이웨어도 더 멀리 갈 수 있어요. 배척하지 않고 함께 가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블펀이 꿈꾸는 다음 10년
블펀의 향후 10년 목표는 더 큰 브랜드가 아니라 더 단단한 브랜드다. 회사는 지난해 디자인랩을 신설하고 제품·공간·비주얼 크리에이티브 조직을 재정비했다. 자체 디자인 프로세스와 IP 관리 체계도 강화했다. 디자인을 개인의 감각이 아닌 조직의 경쟁력으로 축적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법무실과 현대카드 등을 거친 법조인 출신의 고 대표는 대기업에서 경험한 제품 개발과 의사결정 시스템이 현재 기업 경영의 밑바 바탕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에서는 기획부터 디자인, 시제품 제작, 검증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의 프로세스로 움직였습니다. 오래가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체계적인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최근 젠몬과의 디자인 관련 법적 분쟁에 대해서도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블펀의 성장통이 개별 기업 간 갈등을 넘어 산업 전체가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서다.
“법적으로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마땅히 져야지요. 또한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블펀만의 디자인 역량을 키우고 사전에 검증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블펀은 최근 일본 후쿠오카 팝업스토어를 통해 도쿄 외 지역으로 오프라인 접점을 확대했다. 북미 시장에서는 지난 5월 미국 틱톡숍에 입점했고, 조만간 미국 LA 베벌리힐즈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예정이다.
하지만 고 대표가 거듭 강조한 것은 해외 매장 수보다 K-아이웨어 산업의 미래였다. 하나의 성공 사례보다 다양한 브랜드가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는 ▲MUTT ▲카린 ▲프로젝트프로덕트 등 또 다른 젠몬과 블펀을 꿈꾸는 K-아이웨어 브랜드들이 성장 중이다.
그는 K-아이웨어 산업이 성장하려면 ‘제2, 제3의 젠몬과 블펀’이 계속 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블펀의 사업 모델을 참고하는 브랜드들이 부쩍 늘어났어요. 경쟁자가 생기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에요. 시장 자체가 커지면 모두가 좋은 것이니까요. 새로운 브랜드들이 계속 탄생하는 산업 생태계가 마련돼야 합니다.”
한편 젠몬과의 디자인 모방 관련 형사 사건으로 구속 기소됐던 블펀 전 대표는 최근 법원의 보석 인용으로 석방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잠시 말을 멈췄던 고 대표가 인터뷰의 첫 문장을 다시 상기시켰다.
“우리가 먼저 겪은 성장통이 다른 브랜드들에게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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