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젠몬·블펀이 연 K아이웨어 전성시대, 이젠 대구가 키운다
- [K-아이웨어 르네상스를 향해]①
구글·삼성 등 K아이웨어 손잡고 스마트글라스 시장 경쟁
우재준 의원 “대구서 연구개발·마케팅 서울 협력구조 필요”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대한민국 안경산업의 심장, 대구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젠틀몬스터와 블루엘리펀트는 K-아이웨어를 세계 시장에 알리며 안경을 새로운 K-소비재로 끌어올렸다. 구글과 삼성전자 등 글로벌 빅테크가 AI(인공지능) 스마트글라스 시장 경쟁에 나서면서, 안경은 패션을 넘어 차세대 웨어러블 기기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브랜드의 성장만으로는 산업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시장이 한국 안경에 주목할수록 디자인과 브랜딩을 넘어 제조 경쟁력까지 갖춘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국내 안경 제조의 중심지인 대구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안경산업을 떠받쳐온 이유다.
세계 진출 성공한 K안경 브랜드
K-아이웨어의 출발점은 제조였다. 국내 아이웨어 산업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해외 브랜드의 생산기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젠틀몬스터(젠몬)과 블루엘리펀트(블펀)이 디자인과 브랜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 안경은 단순 제조품을 넘어 패션 문화 콘텐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대표 주자는 단연 젠몬이다. 젠몬을 운영하는 아이아이컴바인드는 2025년 매출 7723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대표 패션기업으로 성장했다. ▲제니와 카리나 등 글로벌 셀러브리티 마케팅 ▲실험적인 디자인 ▲세계 주요 도시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K-아이웨어’라는 개념을 글로벌 시장에 각인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XR 기반 AI 스마트글라스 개발을 위한 첫 아이웨어 파트너로 젠몬을 선택했다. 글로벌 빅테크가 한국 안경 브랜드를 차세대 AI 플랫폼의 핵심 파트너로 낙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K-아이웨어가 패션 브랜드를 넘어 미래 웨어러블 산업의 한 축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젠몬이 프리미엄 안경 시장을 개척했다면 블펀은 K-아이웨어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9년 출범한 블펀은 합리적인 가격과 트렌디한 디자인을 앞세워 빠르게 성장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중국·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MZ세대 팬층을 확보하며 성장했다. 블펀은 2025년 매출 507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69% 증가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아이웨어 산업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아이웨어 시장 규모는 2219억달러(약 300조원)로 추산되며, 2033년에는 4635억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스마트글라스와 프리미엄 아이웨어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럭셔리 업계도 아이웨어를 독립적인 사업 영역으로 키우고 있다. 구찌·생로랑·발렌시아가 등의 아이웨어를 전개하는 케어링 아이웨어(Kering Eyewear)는 2025년 매출 15억9200만유로(약 2조5000억원)를 기록했다. 안경이 단순한 시력 보정 도구를 넘어 패션·기술·럭셔리를 결합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안경 산업의 다음 퍼즐, 대구
글로벌 시장에서 K-아이웨어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제조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브랜드는 세계로 나갔으나 공장은 아직 따라가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젠몬과 블펀은 대부분의 제품 생산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제조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격 경쟁력과 대량 생산 체계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조 기반이 약화된 상황에서는 K-아이웨어가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한국 안경산업 제조 경쟁력의 뿌리는 대구에 있다. 전국 안경 제조업체의 약 70%가 대구에 밀집해 있으며 국내 안경테 수출의 약 60%를 담당한다. 1946년 국내 최초 근대식 안경공장이 들어선 이후 안경테 제조부터 렌즈, 부품·소재까지 관련 산업이 집적된 국내 대표 안광학 클러스터다. 그러나 오랜 기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중심 구조에 머물면서 제조기업의 브랜드 가치와 산업적 위상은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대구에서 대를 이어 30년째 안경 브랜드 ‘루페토’를 운영하는 김정민 대표는 “젠몬과 블펀은 한국 안경을 세계에 알린 공이 분명한 브랜드”라면서도 “이제는 한국 안경 제조의 중심인 대구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루페토는 안경 다리와 프론트 연결 부위의 나사를 없앤 독자 기술로 특허를 보유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 대표는 “대형 브랜드가 중국 생산을 선택하는 현실적인 이유는 이해한다. 가격 경쟁력과 생산 규모 측면에서의 차이 때문”이라면서도 “오랜 시간 축적한 제조 기술과 장인정신을 보유한 대구가 가진 가치는 결코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브랜드와 제조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내놨다. 그는 “대구국제안경전(DIOPS) 같은 행사에 젠몬과 블펀이 참여해 산업 전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제조기업과 상생하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며 “브랜드와 제조가 함께 성장해야 K-아이웨어도 지속 가능한 산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도 K-아이웨어를 하나의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재준 의원(국민의힘)은 “대구는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니라 연구개발과 새로운 브랜드가 탄생하는 K-아이웨어 산업의 요람”이라며 “생산과 연구개발은 대구가 맡고, 브랜딩과 유통·마케팅은 서울 등 소비시장과 연결하는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우 의원은 제조 생태계 고도화를 핵심 과제로 꼽았다. 국내 안경업계는 영세 제조기업 비중이 높아 자동화 설비와 스마트 제조 시스템 도입에 어려움을 겪는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어 “브랜드 경쟁력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브랜드가 계속 탄생하는 산업 생태계”라며 “제조와 디자인, 유통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든다면 K-아이웨어가 K-뷰티를 잇는 국가 산업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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