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11월 이후 원·하청 교섭 결렬·연쇄파업 우려…공급망 멈출 수도
시행령·지침으론 한계…교섭·쟁의 범위 명확히 하는 보완입법 서둘러야
[이코노미스트 김정민 편집국장]가을이 두렵다.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의 진짜 시험대는 올가을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원청에 협상 결렬을 선언
하고 파업에 들어가는 하청업체들이 줄을 잇는 시점이 이때쯤 될 것으로 보여서다.
자동차와 조선, 철강, 반도체 공장은 수많은 원·하청업체가 촘촘하게 연결돼 있는 하나의 공급망이다. 단 하나의 핵심 공정만 멈춰도 생산 공장 전체가 설 수 있다.
반도체의 마지막 단계인 패키징 공정을 담당하는 협력업체 노조나, 공장에서 하역장으로 제품을 실어 나르는 운송업체 노조가 원청과의 교섭 결렬을 이유로 파업에 들어간다고 가정해 보자.
작은 하청업체의 노사분쟁이 수만 명이 일하는 공장을 멈춰 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노란봉투법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리스크다.
이재명 대통령도 뒤늦게 문제를 제기했다. 공장 신설과 투자를 비롯해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이른바 ‘N% 성과급’까지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과도하지 않으냐는 취지다.
노동쟁의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지 않도록 대통령령이나 시행규칙, 행정지침 등을 통해 기준을 마련하라고도 지시했다.
대통령의 우려는 타당하다. 그러나 이런 사태는 이미 예고돼 있었다.
노란봉투법 제정 때부터 많은 전문가와 경영계는 사용자와, 노동쟁의의 범위가 지나치게 불명확하다고 경고했다. 노란봉투법은 법원 판결문에 등장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이라는 표현을 끌어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넓혔다.
여기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까지 노동쟁의 대상으로 포함했다.
누가 사용자인지, 원청이 무엇을 교섭해야 하는지, 공장 신설과 이전·투자·사업 매각 같은 경영상 판단 중 어디까지 파업의 대상이 되는지를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탓에 법원 판결이 쌓여야 혼란이 해소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호남 반도체 공장 신설 문제를 교섭 의제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장 입지가 근무지와 고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라면 거의 모든 투자 결정이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
N% 성과급 문제에서도 정부는 자유롭지 않다.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을 앞세워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했을 때 정부는 중재에 나서 협상 타결을 도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이 교섭이나 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면 “당시에는 왜 협상을 중재했느냐”는 질문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더 큰 문제는 법률이 열어 놓은 문을 시행령이나 행정지침으로 닫겠다는 발상이다. 하위 규정으로 상위 법률의 적용 범위를 제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무리하게 지침을 만들면 노동계는 입법 취지를 훼손했다고 반발하고, 법원에서는 위임 범위를 벗어났는 지를 두고 소송이 잇따를 것이다.
자칫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는커녕 새로운 법적 분쟁만 더할 수 있다.
해법은 보완입법이다. 공장 신설과 이전, 투자 규모와 사업 매각 같은 경영상 결정 자체와 그 결정이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을 구분해야 한다. 기업의 투자 여부는 경영의 영역으로 두되 그 결과 발생하는 해고와 전환배치, 근무지 변경, 고용보장과 보상만 제한적으로 노사가 교섭하도록 해야 한다.
원청의 사용자 책임도 원청이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근로조건으로 한정해야 한다. 하청업체가 결정할 사안까지 원청에 교섭 책임을 묻거나, 원청이 통제할 수 없는 요구를 놓고 하청노조의 파업을 허용하면 교섭은 애초부터 타결될 수 없다.
쟁의행위 역시 원청 사업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멈춰 세우지 못하도록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
가을이 오면 법률 문구를 둘러싼 논쟁은 공장 문 앞의 현실이 될 것이다.
하청노조들이 노란봉투법을 앞세워 파업의 깃발을 들고 공장을 세우는 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출이 흔들리고 일감이 끊기며 노동자의 일자리까지 위태로워진다.
공장이 멈추면 한국 경제도 멈춘다.
늦었지만 아주 늦지는 않았다. 시행령과 지침으로 '땜빵' 할게 아니다. 국회가 만든 불확실성은 국회가 걷어내야 한다. 노란봉투법에 담긴 청구서가 올가을 산업현장과 한국 경제를 흔들기 전에 정부와 국회가 보완입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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