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챗GPT 잡으려다 ‘섞어찌개’ 되나…시험대 오른 ‘모두의 AI’
- 대국민 무료 AI 공모 본격 착수
‘타사 모델 혼용’ 룰에 엇갈린 시선
[이코노미스트 정길준 기자] 정부가 전 국민이 인공지능(AI)을 옆에 끼고 사는 시대를 열어젖히기 위해 본격적으로 판을 벌였다. 대국민 범용 서비스인 ‘모두의 AI’ 프로젝트에 착수하며 독자적인 생태계 조성에 나선 것이다. 다만 이종 모델을 인위적으로 결합하는 사업 구조에 따른 부작용과 민간 기업의 수익성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용 폭증 시대에 ‘AI 기본권’ 띄운 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은 오는 8월 11일까지 ‘모두의 AI’ 프로젝트 참여 기업 공모를 진행한다.
정부가 대국민 무료 AI 추진에 나선 배경에는 최근 폭증하는 AI 운용 및 구축 비용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앞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AI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반도체 가격이 높고 공급도 충분하지 않아 큰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며 “함께 기술적 돌파구를 찾아 비용을 낮춰야 한다”고 진단한 바 있다.
최근에는 AI 토큰(AI가 텍스트를 인식·처리하는 최소 단위) 단가가 대폭 하락했는데도 전체 AI 비용은 오히려 치솟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삼성증권 분석에 따르면 GPT-4 기준 토큰 100만개당 비용은 2023년 30달러에서 2026년 0.1달러로 300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그런데 글로벌 빅테크들의 AI CAPEX(설비투자)는 2023년 1470억 달러에서 2026년 7100억 달러로 380%나 치솟았다. 단순 챗봇을 넘어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AI 에이전트’가 확산하면서 데이터 처리량 자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탓이다.
AI 에이전트는 하나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목표 설정부터 계획 수립과 실행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연산 절차를 한꺼번에 수행한다. 이 때문에 단순 질문 대비 AI 에이전트는 10~20배, 상시 가동형 에이전트는 무한대에 가까운 토큰을 소비하게 된다. 토큰 가격 하락에도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개인이나 민간 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비용 장벽이 생겨나는 구조다. 정부 주도 공공재 AI의 필요성이 부각된 이유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도 모두의 AI 프로젝트의 추진 당위성을 강하게 피력했다. 김 실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AI 시장은) 비어 있는 시장이 아니라 잠긴 시장”이라며 “개별 기업이나 병원이 감당하기 어려운 첫 도입의 위험을 국가가 먼저 떠안아 공공 영역에서 사용 사례와 신뢰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짚었다. 또 “AI에 대한 접근은 이제 하나의 기본권으로 봐야 한다. 국민 누구도 그 문 앞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챙기는 일은 국가의 몫”이라며 “AI 시대의 국가는 생산이나 통제를 하는 국가가 아니라 시장이 혼자서는 넘지 못하는 문턱만 넘겨주는 ‘시장을 조직하는 국가’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국산 AI 역량과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등 흩어진 재료를 엮는 ‘구슬을 꿰는 나라’가 돼 누구나 생산에 참여하는 AI 기본사회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익성·성능 확보 숙제
정부는 이번 공모로 2~3개 기업 및 컨소시엄을 선정해 올해 안에 범용 AI 챗봇과 공공 AI 에이전트 베타 서비스를 론칭할 계획이다. 나아가 2027년부터는 ▲자산 관리 ▲노후 설계 ▲주거 계획 등을 알아서 돕는 ‘전 국민 1인 1 에이전트’ 체계를 단계적으로 현실화한다.
초기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정부는 보유 중인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 B200 총 512장을 선정 기업에 나눠 지원한다. 평가 점수에 따라 1위 기업에는 256장, 후순위 기업에는 128장씩 차등 배분되는 방식이다.
정부의 장비 지원에 맞춰 기업도 자체 예산을 일정 비율 이상 투입하도록 했다. 대기업은 정부 지원액의 10% 이상, 중소기업은 5% 이상을 스스로 부담해야 하며 자부담 투자를 가장 많이 약속한 기업에는 최대 3점의 가점을 줘 민간 자본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이동통신 3사와 양대 플랫폼 등 주요 IT 기업들이 프로젝트 참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기업들의 부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자체 수익 모델을 동원해서라도 ‘필수 기능 무료 제공’ 원칙을 지켜야 하는 데다 사업 참가에 걸린 기술 요건마저 까다롭다.
과기정통부는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기준을 충족하는 국산 AI 모델을 50% 이상 활용하되, 국내 AI 생태계 다원화를 위해 타사의 국산 AI 모델도 30% 이상 의무적으로 결합하도록 규정했다. 반면 외산 AI 모델은 국산으로 도저히 대체할 수 없는 고난도 추론 등 최소한의 경우에만 쓰도록 엄격히 제한했다.
이에 무료 AI 서비스 운영을 위한 비용 부담과 인위적인 이종 모델 결합에 따른 성능 저하가 위험 요소로 지목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전 국민 무료 제공을 원칙으로 내세웠지만 그 막대한 비용을 지속해서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외산 모델 결합을 극도로 제한하고 국산 자사 및 타사 모델을 강제로 섞는 조건에서 과연 대중이 기대하는 챗GPT 수준의 고성능과 대중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며 “결국 비용과 성능 측면의 정밀한 컨트롤이 사업 성공의 핵심 관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자적인 기술 주권을 지키기 위해 공공 AI 프로젝트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당장 단기적인 성능만 고려하면 오픈AI 모델 등을 가져다 쓰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도 훨씬 편하겠지만, 이를 방치하면 향후 글로벌 빅테크에 국가 인프라가 완전히 종속될 수밖에 없다”며 “여러 우려와 기술적 난관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미래 국가 경쟁력을 대비하고 AI 주권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는 기업과 국가가 전향적으로 손잡고 반드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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