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으로 100억 벌었는데…"증명할 수 있으십니까?"
- [100억 코인 부자, 증명의 시간]①
내년 가상자산 과세 앞두고 커지는 자금출처 리스크
해외 거래소·개인 지갑 거래 복잡…“신고 시스템 보완 필요”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비트코인을 팔아 서울 아파트를 계약했습니다. 세금은 아직 안 낸다고 들었는데, 자금출처 조사 대상이 될 수도 있나요."
최근 세무 상담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이다. 세무사는 국내 거래소만 이용했는지, 해외 거래소와 개인지갑을 거쳤는지부터 확인한다. 번 돈보다 자금이 형성된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고민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벌 것인가보다, 번 돈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세금보다 어려운 증빙
2017~2018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에 투자해 수십억원대 자산을 만든 투자자들이 전문가를 찾고 있다.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법인을 설립하고 해외 투자에 나서면서 예상치 못한 세무 리스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한때는 어떤 코인을 사야 하나”가 상담의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이 돈을 어떻게 소명해야 하나”가 가장 많은 질문이다.
겉으로 보면 의아하다. 개인의 가상자산 양도소득은 올해 말까지 과세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은 자금출처 조사를 걱정한다.
김지호 법무법인 세움 세무사는 “가상자산 투자수익은 아직 국세청에 신고되는 소득이 아니다”며 “신고 소득에 비해 고가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소비가 급증하면 자금출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세무사는 “부동산만 사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고가 차량 취득이나 고액 소비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핵심은 가상자산 투자 여부가 아니라 늘어난 자산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라고 덧붙였다.
세무 전문가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세금이 아니라 ‘증빙’이다. 주식은 증권사 거래내역만으로 취득가액과 매매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가상자산은 다르다. 국내외 거래소는 물론 ▲개인지갑 ▲탈중앙화거래소(DEX)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까지 거래 경로가 다양하다. 거래 흐름과 취득가액을 확인하는 과정도 훨씬 복잡하다.
김 세무사는 "국내 거래소만 이용했다면 자료 확보가 비교적 쉽다"며 "하지만 해외 거래소와 개인지갑, DEX를 거치면 거래소마다 자료 형식이 달라 분석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지갑 거래는 입출금 기록은 남아도 실제 거래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해외 거래소가 폐업해 거래명세서를 발급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이 경우 온체인 기록과 자금 이동 내역을 종합해 거래 흐름을 입증해야 한다. 법무법인 세움은 인공지능(AI) 기반 분석 플랫폼과 협업해 여러 거래소와 블록체인 데이터를 함께 분석하고 있다.
김 세무사는 "현재는 투자수익 자체보다 거래 흐름을 객관적으로 소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도는 준비 중, 현장은 ‘보완 필요’
내년부터 가상자산 과세가 시행되면 거래기록과 취득가액 관리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개인이 2027년 1월 1일 이후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해 얻은 소득이 연간 250만원을 넘으면 기타소득으로 과세된다. 양도차익에는 20%의 분리과세 세율이 적용된다. 납세자는 다음 해 5월 소득세를 신고·납부해야 한다.
다만 올해 말까지 발생한 개인의 가상자산 양도·대여소득은 과세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거래기록까지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용연 세무사는 “가상자산을 매각한 자금으로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다만 국세청은 매각대금뿐 아니라 해당 가상자산을 처음 취득할 때 사용한 자금의 출처까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취득 당시 거래내역과 자금 흐름을 평소부터 체계적으로 보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주택을 매입하면 계약일로부터 30일 안에 '주택취득자금조달 및 입주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가상자산 매각 증빙도 자금조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지방자치단체가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판단하면 국세청에 통보될 수 있다. 이후 자금출처 소명 요구나 세무조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해외 거래소 이용자는 해외금융계좌 신고 대상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해외 금융회사나 해외 가상자산사업자 계좌를 포함해 해외금융계좌 잔액이 해당 연도 매월 말일 가운데 하루라도 5억원을 넘으면 다음 해 6월 신고해야 한다. 이를 누락하거나 과소 신고하면 미신고 금액의 10%(최대 10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정부도 내년 과세를 앞두고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사업자의 거래자료 제출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 거래소와의 정보 교환 체계도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화인 초이스뮤온오프 대표는 “국내 거래는 비교적 확인이 가능하지만 해외 거래소와 개인지갑, 디파이 등은 과세 범위와 집행 방식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며 “▲스테이킹 ▲에어드롭 ▲디파이 이자수익 ▲가상자산 선물거래 등 다양한 거래 유형의 과세 기준과 취득가액 산정 방식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납세자가 거래내역을 직접 정리해 신고해야 하는 구조”라며 “국세청 홈택스처럼 거래내역을 자동으로 정리하고 신고를 지원하는 시스템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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