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주주총회, 형식에서 실질로…개정 상법이 만든 변화[순화동필]
- 정관 변경 급증·주주제안 고도화…달라진 주총 풍경
결과보다 과정 중시…지배구조 평가 기준 변화
정관 변경 안건 급증…상법개정 취지 잘 반영했는가
올해 주주총회의 가장 두드러진 외형적 특징은 정관 변경 안건의 급증이다. 한국ESG연구소 분석 대상 652개사의 정관 변경 안건은 1722건에 달했으며, 이는 전년 479건 대비 약 3배 증가한 수치다. 서스틴베스트 분석 대상 232개사의 정관 변경 안건은 전년 198건 대비 3.7배 증가한 729건을 기록했다.
이 급증의 배경은 명확하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확대 ▲독립이사 명칭 도입 ▲3% 룰 강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 2인으로 확대 ▲집중투표제 정관 배제 금지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등 상법개정 사항을 정관에 반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KOSPI200 기업 중 191개사가 개정 상법 내용을 정관에 반영하는 등 상장회사 대부분이 개정 상법 준수를 위한 정관 정비에 나섰다는 점에서 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문제는 그 내용이었다. 기관투자자와 의결권 자문사들은 기업들이 상법 개정의 ‘형식’을 기계적으로 따르고 ‘취지’를 반영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고 판단했다. 대표적으로 이사 수 상한 신설·축소와 이사 임기 유연화다.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면 동시에 선임되는 이사 수가 많을수록 일반주주 추천 후보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의식한 기업들은 이사 정원의 상한을 낮추거나, 이사의 임기를 ‘3년’에서 ‘3년 이내’로 바꿔 사실상 시차임기제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집중투표제의 효과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야기했다. 의결권자문사와 기관투자자들은 이러한 이사 임기 구조 변경을 이유로 해당 정관 변경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결정했다.
전자주주총회를 정관으로 배제하려는 시도도 비슷한 맥락에서 제동이 걸렸다. 의무 적용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기업들은 법적으로는 가능한 조치였지만, 일반주주와 외국인 투자자의 주총 참여 기반을 구조적으로 축소시킨다는 점에서 의결권 자문기관들은 대부분 반대 입장을 견지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기업측 선제적 대응시작
올해 이사 선임 안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안건의 급증이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감사위원회 설치 상장기업 730개사 중 641개사가 분리선출 감사위원 선임 안건을 상정했고, 주총 시즌 종료 시점 기준으로 분리선출 방식으로 선출된 감사위원을 2인 이상 보유한 기업은 609사에 달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의 핵심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는 데 있다. 기존에는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에게만 이 규정이 적용됐다. 하지만 개정 상법은 모든 분리선출 감사위원에게 합산 3% 룰을 적용하기로 했으며, 분리선출 감사위원의 수를 1인에서 2인으로 확대하기로 했다(2026년 9월 10일 시행).
기업들은 해당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했다. 대부분은 합산 3% 룰 시행일인 7월 23일 이전인 이번 주총에서 선제적으로 분리선출 감사위원을 추가 선임해, 합산 3% 룰 적용 없이 우호적인 후보를 확정하려 했다. 일부 기업은 임기가 남은 기존 사외이사를 도중에 사임시킨 뒤 분리선출 방식으로 재선임하는 구조를 활용하기도 했다.
자기주식 의무소각 안건…심사 더욱 강화될 것
2026년 3월 6일 공포 및 시행된 3차 개정상법은 자기주식 취득 후 1년 이내 소각을 원칙으로 하되 ▲임직원 보상 ▲경영상 목적 등 예외적 사유가 있을 경우 ‘자기주식 보유·처분계획’을 작성해 매년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정기주총 소집 결의가 이미 이뤄진 시점에 법이 통과된 탓에 준비 기간이 극도로 짧았지만, 12월 결산 상장사 2478개사 중 266개사가 자기주식 보유·처분계획 승인 안건을 상정했고, 상정된 모든 안건이 가결됐다.
그러나 내용의 질은 엄격한 심사를 받았다. 한국ESG연구소는 102건의 자기주식 보유·처분계획 승인 안건을 분석해 절반 이상인 52건(51%)에 반대 의견을 권고했으며, 한국ESG기준원은 관련 안건 75건 중 11건(14.7%)에 대해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 발행주식총수 대비 과도한 규모의 자기주식 처분 계획을 상정하거나, 보유·처분의 목적이 불명확하거나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기재돼 상법이 요구하는 실질적 심의·승인 절차가 아닌 형식적 통과 수단으로 기능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임원 보수, 한도에서 종합적인 정책으로
이사 보수한도 안건에 대한 반대 권고율은 올해 가장 가파르게 상승한 지표 중 하나다. 해당 안건 반대 권고율이 한국ESG기준원 기준 22.5%로 전년 대비 5.7%포인트 증가했으며, 한국ESG연구소 기준 45.2%로 전년 대비 22%포인트 증가했다.
이유 중 하나는 2025년 4월 확정된 대법원 판결이다. 주주이자 이사인 자는 자신의 보수한도 승인 결의에서 특별이해관계인으로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고, 해당 주식은 발행주식 총수에도 산입되지 않는다는 법리가 명확해졌다. 지배주주가 이사로 재직 중인 기업의 보수한도 안건 가결이 실무적으로 어려워지자, 일부 기업은 정관에 임원보수규정을 신설해 주주총회의 연례적 보수한도 심의 절차를 사실상 대체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매년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회사의 이사보수한도를 승인할 수 있는 권한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건으로 주주권익침해 우려가 높아 기관투자자와 의결권자문사의 많은 반대가 있었다.
주주들의 관심도 단순한 총액 통제에서 보수 구조 자체로 이동하고 있다. 올해 정기주총에서 ▲성과보수 비중 확대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부여 ▲퇴직금 지급률 조정 등 보수 체계의 설계 방식에 직접 관여하는 주주제안이 다수 등장했다. BNK금융지주에는 RSU 부여 주주제안이, 덴티움에는 이사 보수한도 주주제안이 상정돼 이 중 덴티움의 안건은 실제로 가결됐다. 향후 ‘보수한도’를 단순히 승인하는 것이 아닌 ‘보수정책’을 종합적으로 주주가 판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개선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주주제안의 질적 개선
2026년 정기주총의 또 다른 본질적 변화는 주주제안의 내용이 질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ESG기준원 분석대상 기업 중 주주제안은 15개사에서 총 74건이 있었으며, 전년(7사·80건) 대비 기업수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42건(56.8%)에 대해 찬성투표를 권고했다.
한국ESG연구소가 분석한 주주제안 찬성 권고율은 전년 30.8%에서 62.7%로 두 배 이상 뛰었다. 2025년까지 주주제안의 주류는 ▲배당 확대 ▲자기주식 소각 등 단기 주주환원 요구였지만, 2026년에는 ▲이사회 독립성 ▲감사기능 강화 ▲보수 체계 개선 ▲기업가치 제고 전략 등 구조적 지배구조 측면으로 개선됐다. 법적 쟁점 및 실현 가능성 정도 검토를 잘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권고적 주주제안’ 안건 수는 한국ESG기준원 분석기준 전년 2건에서 올해 13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예를 들어 영국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탈이 LG화학에 ▲순자산가치(NAV) 할인율 공개 ▲선임독립이사 선임 ▲경영진 주식연계 보상 도입을 요구하는 권고적 주주제안을 상정했다.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가 모두 찬성을 권고했고, 실제 찬성률도 30.3%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나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관계로 부결됐다. 해당 사례를 포함해 이번 주총 시즌에서 실제 가결된 건은 1건에 불과하지만,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에 대한 시장의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KCC에 삼성물산 주식 유동화와 자기주식 소각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낸 뒤, KCC가 자기주식 소각 계획을 공시하자 주주제안을 철회했다. 표결이 아니라 소통으로 해결되는 유형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2027년 주총을 준비하며…결과보다 과정 묻는 시대로
2026년 정기주주총회는 개정 상법이 예고하는 지배구조 개혁(Governance Reform)의 서막이었다. 아직 가장 중요한 규정들이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합산 3% 룰은 2026년 7월 23일, 분리선출 감사위원 2인 확대와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2026년 9월 10일, 전자주주총회는 2027년 1월 1일부터 각각 적용된다. 이 세 가지 제도가 동시에 작동하기 시작하면, 일반주주와 행동주의 펀드 추천 후보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한층 높아진다.
2026년이 새 제도에 적응하는 ‘원년’이었다면, 2027년은 이 모든 기준이 일상적 잣대로 굳어지는 ‘실전의 해’가 될 것이다. 기업들의 준비사항은 정관 문구를 고치는 수준을 넘어선다. 이사 및 감사 후보 선정 단계부터 기관투자자 및 의결권자문사의 평가 기준을 내재화하고, 자사주 관리와 배당정책을 포함한 중장기 주주환원 로드맵을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공시하며, 주요 기관투자자와 사전에 충분히 소통하는 것이 핵심이다. 주주총회 당일의 표 대결보다, 주주총회 안건 전체를 아우르는 ‘소통의 질’이 결과를 좌우하는 시대가 왔다.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지형은 분명하게 이동하고 있다. 형식이 아닌 실질을, 결과가 아닌 과정을 묻는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필자는 NH-Amundi자산운용에서 ESG 및 스튜어드십 활동을 총괄하고 있다. ICGN 한국 자문위원과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투자자 전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대통령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녹색금융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2025년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정부·국회 주관 녹색금융 관련 간담회와 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여하고 KAIST·서울대·서강대 등 주요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서스틴베스트·에코프론티어·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KAIST 경영대학원에서 녹색금융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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