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대기업 100곳 넘었다…20년 묵은 '자산 5조' 기준 손보나
- [대기업 집단 100곳 시대]②
공시대상기업, 올해 11곳 추가돼 102곳
자산 기준 여전히 고정…“GDP 연동해 규제 대상 현실화해야”
총수가 있는 집단에는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율도 적용된다. 결국 기업의 ‘몸집’을 재는 자산총액 하나가 이 같은 규율의 적용 여부를 가르는 구조다. 문제는 경제와 기업 규모가 커지는 동안에도 이 기준이 오랫동안 5조원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규제 대상이 100곳을 넘어선 지금, 5조원이라는 문턱이 여전히 적정한지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9년째 그대로인 ‘5조원’…대상 기업은 57곳→102곳
공시대상기업집단 제도는 2017년 도입됐다. 정부는 2016년 경제 규모 확대를 이유로 기존 대기업집단 기준을 자산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높이면서도 공시·사익편취 규율은 5조원 이상 집단에 유지했고, 이듬해 이를 별도의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분리했다. 5조원 기준 자체는 2008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처음 적용돼 약 20년 가까이 된 잣대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기준은 이후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0.5%로 바뀌었지만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여전히 5조원에 묶여 있다.
당시 공시대상기업집단을 별도로 둔 것은 자산 10조원에 못 미치는 기업집단에서도 총수일가 사익편취나 내부거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기업집단의 소유·출자구조와 내부거래 등을 시장에 공개해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 제도의 주요 취지였다.
9년 사이 규제 대상은 크게 늘었다. 제도 도입 첫해인 2017년 57곳이었던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올해 102곳으로 증가했다. 소속 계열회사는 3538개에 달한다. 올해에만 라인·한국교직원공제회·웅진·쉴더스·대명화학·토스·한국콜마·희성·오리온·QCP그룹(옛 큐로홀딩스)·일진글로벌 등 11개 기업집단이 새롭게 지정됐다.
기업집단 수 증가를 5조원이라는 고정 기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기업 성장과 인수합병(M&A)으로 실제 몸집이 커진 곳도 있다. 다만 경제와 기업 규모가 커지는 동안 진입선은 5조원에 머물렀다.
규제 대상의 성격도 달라졌다. 제조업 중심의 대기업뿐 아니라 플랫폼·핀테크와 신생 성장기업까지 포함되면서 계열사가 100곳을 넘는 복잡한 집단과 불과 몇 곳에 그치는 집단이 같은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 기업집단별 규모와 지배구조의 차이가 커진 만큼 이들을 동일한 기준으로 규율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5조원’ 기준 어떻게 손질할까…GDP 연동 대안
전문가들은 5조원으로 고정된 자산 기준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기업들의 자산총액 산정 방식 자체를 손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강영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현재는 계열회사들의 개별 자산총액을 합산하기 때문에 계열사 간 출자나 채권·채무 등이 중복 계상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공정위도 이 문제에 대해 일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산총액 산정은 계열사 간 중복계상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 도입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순 자산 기준이 아닌 계열사 수나 내부거래 비중 등을 종합적으로 따지는 것도 현실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공정위는 매년 5월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지정하기에 앞서 자산 5조원에 근접한 기업집단들로부터 계열회사 현황 등을 담은 지정자료를 제출받는다. 이 자료를 토대로 계열회사 범위와 자산을 확정한 뒤 5조원 이상인지를 판단하는 구조다.
여기에 내부거래 비중이나 지배구조 등 여러 기준까지 적용하면 규제 대상을 정교하게 가려낼 수는 있지만 판단 과정은 훨씬 복잡해진다. 기업 역시 자산총액처럼 미리 계산할 수 있는 명확한 문턱이 사라지면 이듬해 규제 대상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조준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내부거래 비중 등 종합적인 판단까지 들어가면 공정위의 부담이 커지고 기업도 지정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자산 기준은 유지하되 5조원 문턱을 경제 규모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일률적인 기준은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며 “문제는 기준 자체보다 문턱이 너무 낮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처럼 공시대상기업집단도 GDP에 연동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강 변호사도 “기준금액은 GDP 등 객관적인 경제지표에 연동하는 것이 기존 법개정과 일관되면서도 합리성이 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공시대상 기업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은 지정자료 제출부터 각종 공시, 내부거래 관련 의무가 뒤따르고 자료를 누락하면 동일인이 제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새롭게 지정되는 기업집단은 기존 대기업집단에 비해 계열회사 관리나 지정자료 제출 경험이 부족할 가능성이 있다. 조 변호사는 최근 신규 지정 기업집단 가운데 지정 이후 수년 안에 지정자료 허위 제출 등으로 제재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이 제도는 제재 건수를 늘리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공시를 통해 기업집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한 사전 규제”라며 “규제 대상을 계속 넓히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정말 규제가 필요한 기업집단으로 범위를 좁혀야 기존 제도도 더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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