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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술지주도 돈 번다…이젠 경험을 나눌 차례” [이코노 인터뷰]
- 고병철 포스텍홀딩스 대표
포스텍 1기 졸업생, 2022년 합류 후 흑자 전환·첫 배당
“교수 연구실 먼저 찾아가 창업 정보 공유해 창업 시행착오 줄여”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2022년 고병철 포스텍홀딩스(포항공과대기술지주) 대표가 회사에 합류했을 때 잔고는 한 자릿수(억원)였다. 4년이 지난 올해 잔고는 60억원을 넘었다. 그 사이 30억원 증자가 있었지만, 나머지는 포트폴리오 지분 매각과 펀드 분배금으로 채웠다. 올해 초에는 지분 100%를 가진 포스텍 산학협력단에 처음으로 배당도 했다. 고 대표는 “두 자릿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면서 대학기술지주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면서 “외부 도움 없이 회사 스스로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포스텍 산업공학과 1기 학사·석사 출신이다. 포스데이타(현 포스코DX)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2000년 KTB네트워크 심사역으로 투자업계에 들어왔다. 이후 라이트하우스컴바인인베스트 공동대표, 이수창업투자 부대표를 거쳐 2022년 투자대표로 모교 기술지주에 합류했고, 지금은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한국 벤처캐피탈(VC)의 출발점을 외환위기(IMF)로 본다.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진 자리에 인터넷이라는 새 산업이 들어왔고, 닷컴 버블을 거치며 투자업계가 존재감을 알렸다. 투자자와 창업자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던 시절이라 시행착오도 컸다. 고 대표는 “판례가 쌓이고 교육이 이뤄지면서 창업자와 투자자가 이해관계를 같이 가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진단했다.
2012년 6월 설립된 포스텍홀딩스는 2017년부터 창업 초기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기술이전이나 정부 창업 프로그램 운영에 머물던 대학기술지주의 역할을 넓힌 셈이다. 지금까지 투자한 기업은 180여 곳이다. 고 대표 합류 이후에만 91개사에 투자했고, 이중 후속투자가 16건이다. 국내 액셀러레이터 400여 곳 가운데 상위 10% 안에 드는 규모다. 민간 투자사와 대학기술지주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 것이다.
고 대표가 성과로 꼽은 건 순위가 아니라 데이터다. 기업가치 10억~20억원에서 출발한 투자 기업 가운데 1000억원에 도달한 곳이 나오고 있고, 가장 큰 곳은 2000억원을 넘었다. 기업가치 300억원 이상, 시리즈 A·B 단계로 올라서는 기업도 해마다 늘고 있다. 투자 기업 한 곳은 AI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에 인수됐고, 포스텍홀딩스는 리벨리온 주주가 됐다. 그는 “투자 이후 언제쯤 다음 투자 유치가 이뤄지는지 통계로 볼 수 있게 됐다”며 “이를 바탕으로 대학 기술창업, 딥테크 창업, 지방과 서울을 잇는 창업에 맞는 로드맵과 보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수 연구실 먼저 찾아가는 기술지주
고 대표가 대학 창업에서 가장 안타까워하는 대목은 교수 사이의 단절이다. 한 교수가 창업하며 겪은 시행착오를 다른 교수가 그대로 반복한다. 연구에 바쁜 교수들이 창업 경험을 나눌 접점이 많지 않아서다. 그는 “시행착오는 시간과 에너지, 결국 자본을 소비하는 일”이라며 “주주인 우리가 허브 역할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방식은 ‘먼저 찾아가기’다. 창업을 결심한 뒤 만나면 이미 늦다. 포스텍홀딩스는 지난해부터 ‘스타디움 플러스’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회 2~3명의 교수 연구실을 직접 방문해 창업 준비 과정과 시기를 미리 안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템을 정해 창업한 사례가 한두 건 나왔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대학 기술지주 경영진은 “그런 프로그램은 처음 듣는다.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포스텍홀딩스가 이룬 성과를 타 대학 기술지주와 나누려고 하고 있다. 대학 기술지주 랭킹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서울대기술지주와의 관계도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라고 했다. “다른 기술지주가 잘된다고 우리가 잘못되지 않는다. 대학 창업에 대한 인식을 함께 높이는 일이 더 중요하다”라고 설명하는 이유다.
포스텍홀딩스의 운용자산(AUM)은 약 840억원이다. 모태펀드가 40%를 차지하고 기술지주 자체 출자 및 포스코와 지자체 그리고 동문·교직원·포스코 임원 등 개인 투자자가 채운다. 민간 VC와 비교하면 작은 규모지만 고 대표는 몸집을 키울 생각이 없다. 그는 “초기 투자와 프리IPO 투자는 서로 다른 근육을 쓴다”며 “시리즈 C까지 다 하려 하면 역량이 분산된다”고 잘라 말했다. 출자자를 넓히는 데도 선을 그었다. 초기 투자는 장기전이라 대학과 교수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가진 출자자가 맞는다는 이유에서다.
투자업계에서 활동한 26년의 시간 동안 그가 잊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색깔 있는 투자사는 살아남는다’라는 고집이다. 고 대표에게 포스텍홀딩스의 색깔에 대해 묻자 “창업 초기, 그리고 딥테크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포스텍 출신과 외부 기업 비율이 반반인 것도 정해 둔 숫자가 아니다. 포스텍이 다루지 않는 분야라면 다른 대학 교수를 찾아가 포스텍에서 쌓은 교원 창업 경험을 적용한다.
AI를 보는 시각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인터넷 시대 아마존, 모바일 시대 배달의민족이 나왔듯 기존 기업이 AI 기업으로 진화할 것”이라며 “언젠가는 굳이 AI 기업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는 산업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자의 눈길을 끄는 ‘엣지’는 시대를 떠나 실질과 실증에서 나온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고 대표는 “남들이 하지 못한, 자신만의 유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계획을 보여주는 창업자가 주목받는다”고 강조했다.
심사역의 직감도 다르지 않다. 그는 이승엽 선수를 예로 들었다. 하루 수천 번 스윙을 해도 4할 타율은 나오지 않았다. “직감은 수많은 고민과 실행으로 쌓인 인사이트다. 책상에서 공부한다고 만들어지는 능력이 아니다”고 조언했다.
4년 반의 기록, 공유로 잇는다
포스코와 포스텍, 제조 기반이 모인 포항을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키우겠다는 구상도 여전하다. 그는 “시간은 더 걸릴 수 있지만 조급하지 않게 계속 투자해야 한다”며 “성과를 인정받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고 대표는 4년 반 동안의 투자·회수·감액, 교원 창업, 교육 프로그램 기록을 수치화해 정리하고 있다. 이 기록을 필요한 곳과 나누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포스코를 만든 자본도, 포스텍도 한국을 위해 만들어졌다”며 “우리 경험을 다른 대학과 나누는 게 학교가 나라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후배들에게 건네는 말도 분명했다. 그는 창업의 허들이 낮아진 만큼 고객·직원·투자자 문제를 작게 미리 겪어보는 ‘모의고사’가 학교 창업 교육이어야 한다고 본다. 주위에 창업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심리적 허들도 낮아진다. “여러분은 선배 세대보다 창업할 확률이 훨씬 높다. 기회가 되면 해라. ‘창업은 절대 안 해’라고 할 필요는 없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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