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한국산이면 팔리던 시대 끝났다”…다시 中 향한 K브랜드 승부수는?
- [K브랜드, 다시 중국으로]①
'오프라인 대량 개점'에서 '상품성 검증 먼저' 전략으로
유행의 시작은 '상하이'...中 정부발 인프라 혜택도
한동안 중국 사업을 축소했던 K-브랜드들이 다시 현지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국내 시장은 성장에 한계가 있고 미국·일본 시장의 문턱은 높다. 그래서 중국은 여전히 포기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진출 공식은 달라졌다. 과거처럼 현지 법인을 세우고 매장을 늘리기보다 온라인에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한 뒤 핵심 상권을 골라 들어간다. 중국 소비자도 예전처럼 ‘K’라는 이름만 보고 지갑을 열지 않는다. 가격·품질·기능을 따지고 여러 플랫폼을 오가며 구매한다. 어떤 현지 파트너와 손잡느냐도 중요하다. 기회는 여전하지만 과거의 성공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는 K-브랜드의 중국 재도전 배경과 달라진 소비·유통 환경, 시장 안착의 조건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국내 내수 시장의 성장 한계 속에서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거점이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 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과 비교했을 때 중국은 엄청난 시장 규모와 지리적 접근성, 그리고 견고한 K-컬처 수요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K-브랜드들은 전략을 바꿔 중국 땅을 다시 밟기 시작했다. 1세대 기업들이 대규모 현지 법인을 세우고 오프라인 매장을 빠르게 늘리는 ‘속도전’과 '규모'에 집중했다면, 최근 재진출하는 브랜드들은 '검증'이 우선이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소비자 데이터와 시장 반응을 지켜본 뒤, 핵심 상권에 선택적으로 진입하는 전략이다.
중국 내에서도 가장 높은 소비력과 최신 트렌드 수용도를 자랑하는 상하이가 첫 시험대다. 무작정 세를 넓히기보다 정교하게 조율된 온·오프라인 옴니채널 진출 전략을 적용하며 K-브랜드들은 중국서 새로운 부활을 꿈꾸고 있다.
달라진 진출 공식
과거의 진출 방식은 위험 부담이 컸다. 이랜드·F&F 등 1세대 진출 기업들은 ‘오프라인 대량 개점’ 전략으로 중국 전역의 주요 백화점과 쇼핑몰에 수천개 매장을 동시다발적으로 오픈하곤 했다.
하지만 브랜딩이 충분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1선 도시의 핵심 상권에 대형 스토어를 여는 것은 막대한 임대료와 운영비 부담이라는 리스크로 이어졌다. 현지 소비자들의 구매 전환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브랜드 전체의 재무적 손실로 남았다.
K-브랜드들은 영리해졌다. 무신사 스탠다드와 마르디 메크르디 등 최근 중국 진출의 전면에 나선 브랜드들은 현지에 대형 오프라인 조직부터 무리하게 구축하기보다 ▲티몰(Tmall) ▲샤오훙슈(RED) ▲더우인(TikTok) 등 현지 소비자들이 매일 이용하는 대표 디지털 플랫폼에 먼저 입점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제품력과 스타일링 콘텐츠를 선보이며 Z세대를 비롯한 젊은 소비층의 반응을 확인한 뒤, 오프라인에서는 정규 매장에 앞서 팝업스토어 형태로 시장성을 신중히 테스트하는 식이다.
이같은 단계적 진출은 현지화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일례로 무신사는 서울 성수동이나 한남동 등 한국 매장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것이 중국 진출에 동력이 됐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상하이 화이하이중루에 첫 해외 매장 개설을 추진하는 등 차근차근 영토를 넓혀가는 중이다.
1세대 중국 진출 기업인 아모레퍼시픽 역시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현지 소비자 인사이트를 확보하고 브랜드와 제품, 채널 전략을 현지 상황에 맞게 발전시켜 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중국 시장은 디지털 플랫폼을 중심으로 소비자 트렌드가 매우 빠르게 형성되고 변화하는 특징이 있다"며 "온라인 채널에서 확인되는 소비자 반응과 시장 데이터를 브랜드 운영, 마케팅, 제품 기획 과정에서 다각도로 참고한다. 수집되는 데이터와 인사이트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사업 전반에 반영하고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왜 다시 상하이인가
K-브랜드들은 상하이를 중국 진출의 첫 번째 교두보로 보고 있다. 상하이는 중국 내에서도 최고 수준의 경제력과 소비력을 갖춘 명실상부한 1선 도시로 꼽힌다.
글로벌 문화와 해외 브랜드에 대한 수용도가 중국 내 타 지역보다 높은 곳이기도 하다. 개성과 취향이 까다로운 상하이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은 브랜드는 곧바로 중국 전역으로 입소문이 퍼지는 '콘텐츠 확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중국에서 마스터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는 최정민 대표는 "상하이는 중국 소비 트렌드의 주요 출발점 중 하나"라며 "특히 외식·디저트·패션처럼 새로운 경험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상하이에서 주목받은 브랜드가 주변 도시로 확산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국에 알려지는 흐름이 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 역시 "현재 상하이는 단순한 생산 거점을 넘어 소비자와 시장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이해하고 대응하는 전략 거점의 의미가 훨씬 커졌다"고 강조했다.
현지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한몫한다. 상하이시 차원에서 추진하는 파격적인 외자 유치 및 ‘수점(첫 매장) 경제’ 활성화 정책은 K-브랜드들의 재진출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주고 있다. 상하이시는 글로벌 유통 플랫폼과 신규 브랜드 유치를 위해 매장 입지 지원과 행정 절차 간소화 등 실질적인 인프라 혜택을 제공 중이다.
마르디 메크르디 브랜드를 전개하는 피스피스스튜디오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상하이에 10월 매장 오픈 준비를 하고 있다"며 "직접 상해 시에서 도와주고 있어, 중국 법인도 상해에 만들었다. 상해시 차원에서 K-브랜드를 유치하려는 분위기였다”고 밝혔다. 피스피스스튜디오는 하반기 중국 상하이 안푸루 지역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계획한 바 있다.
중국 소비자의 눈높이가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점은 복병이다. 오늘날의 중국 소비자는 단순히 '한국산'이라거나 연예인이 착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 현지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기량이 일신우일신한 데다, Z세대를 중심으로 감성 소비와 애국 소비(궈차오) 경향이 한층 짙어졌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 중국 시장에서 K-뷰티는 그 자체가 차별화 요인이었다면, 현재는 소비자들이 브랜드의 본질적인 경쟁력과 제품 경험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교한 '맞춤형 상품력'과 본질적인 브랜드 가치가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습하고 추운 중국 남방 기후와 건조한 북방 기후의 차이를 철저히 분석해 원단과 기능을 다각화하고, 현지 소비자의 체형과 라이프스타일을 세밀하게 반영하는 디자인 기획이 필수적이다.
이 관계자는 "연구개발 기반의 기술 경쟁력과 개별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충성도를 확보하는 것이 중국 시장 승부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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