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누구나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을 담은 ‘위시리스트’ 하나쯤은 품고 삽니다. ‘강예슬의 위시리스트’는 최근 소비자가 가장 열광하는 상품과 브랜드, 공간과 경험 등을 찾아 소개합니다. 단순히 인기 제품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이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했는지를 짚어 봅니다. 사고 싶은 마음 뒤 숨겨진 소비 흐름과 업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편집자주>
9월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불교용품점 계산대에 ‘공덕 키링 품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강예슬 기자] “헉, 이게 다 줄이야?”
지난 9월 12일 오후 1시 30분경 방문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의 불교용품점은 방문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매장 입구에서부터 계산대까지 결제를 기다리는 줄이 끝없이 늘어선 풍경은 놀이공원을 방불케 했다.
수많은 이들을 이곳으로 이끈 건 바로 ‘공덕 키링(열쇠고리)’이다. 십이지신 캐릭터를 활용한 작은 목탁 모양의 키링은 버튼을 누르면 목탁 소리가 난다. 가격은 개당 1만원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불교용품점에서 방문객들이 팔찌를 구경하고 있다. [사진 강예슬 기자] ‘공덕 키링’ 50분 만에 완판…소원 팔찌도 인기
공덕 키링은 ‘한 번 누를 때마다 공덕이 하나씩 쌓인다’는 해석이 더해지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키링을 사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면서 이날부터 구매 수량이 1인당 3개로 제한됐다.
기자도 공덕 키링을 구하기 위해 매장 곳곳을 샅샅이 뒤졌으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일찌감치 동났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구경한 건 계산대 위 ‘공덕 키링 품절. 입고일 미정’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붙은 견본품뿐이다.
밀려드는 줄에 정신없이 계산을 돕던 매장 직원은 “오전 11시쯤 공덕 키링이 입고됐는데 50분 만에 전부 팔렸다”며 “이날 입고된 수량은 300개 정도인데 공장에서 새로 만들어야 해 정확히 언제 판매를 재개할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핫한 건 키링뿐만이 아니다. 매장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한 팔찌 진열대에는 2030 여성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합격·재물·승진·사랑·인연·건강 등 각종 소원을 이뤄준다는 팔찌를 구매하기 위해서다.
금전운과 합격운이 좋기로 소문난 곳인 만큼 ‘봉은사 판전 합격합장주’와 ‘봉은사 재물합장주’가 인기가 많았다. ‘BEST’ 표시가 붙은 팔찌는 대부분 품절 상태였다.
투박한 염주 팔찌 외에 일상적으로 착용하기 좋은 원석 팔찌 등 종류도 다양했다. 가격은 5000~3만8000원선에 형성됐다.
팔찌 진열대 앞에선 “예쁘다” “귀여운 게 많다” 등의 감탄사가 계속 터져 나왔다. 한 일본인 여성은 손목에 여러 개의 팔찌를 낀 채 어떤 제품을 살지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고민했다.
팔찌 매대에서 만난 김보빈씨(25)는 “불자는 아니지만 봉은사가 재물운이 좋다고 해서 기운을 받으려고 왔다”면서 “재물합장주를 사고 싶었는데 품절돼 아쉽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 ‘개운명당’ 관련 게시글. [인스타그램 갈무리] 취업·주거 불안에 ‘개운’ 후기 화제
최근 젊은 세대가 앞다퉈 절을 찾는 이유는 ‘개운’(開運·운이 트임)을 위해서다. 금융·취업·주거 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운처럼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에 기대 심리적 위안을 찾으려는 청년이 늘어나는 추세다. 특정 장소를 찾아가거나 행운을 가져다주는 상품을 구매하는 등 ‘개운’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봉은사는 최근 ‘재물운 성지’로 알려지며 젊은 방문객이 증가하고 있다. SNS에서는 기도 방법, 공덕 키링 구매 후기, 팔찌 소개 등을 다룬 게시물이 다수 공유되고 있다.
‘개운 명당’의 시초는 서울 관악산이다. 지난 1월 방송 프로그램에서 “운이 안 풀릴 때는 관악산에 가라”는 한 역술가의 발언이 화제가 되며 2030세대를 중심으로 관악산이 ‘핫플’(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서울관광재단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등산관광센터 관악산점에는 5521명이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3909명 수준이던 1년 전보다 41.2% 늘었다. 9월 23일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관악산 해시태그 게시물은 32만6000개를 넘어섰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도 개운 명당 중 하나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이 풍수지리상 좋은 기운을 지난 장소로,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면 일복이 들어온다는 SNS 게시글이 확산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9월 9일 발표한 ‘2026년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 취업자는 지난 2022년 11월부터 46개월째 감소 중이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4년 1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62개월 연속 줄어든 이후 최장기간 내림세다.
청년 고용률은 28개월 연속 떨어졌다. 청년 경제활동참가율은 46.6%로 0.8%포인트(p) 하락하며 지난 2020년 8월(46.4%)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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