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1000조 굴리는데 투자엔 족쇄…보험사 ‘3% 규제’ 풀리나
- [보험사, 새 성장판 찾기]②
자회사 주식·채권 ‘자기자본 60%·총자산 3%’ 제한
K-ICS로 투자 위험 자본에 반영…사전 한도 규제 손질론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1000조원이 넘는 자산을 굴리는 보험사의 투자 족쇄가 풀릴지 관심이 쏠린다. 국내 보험시장이 포화되면서 보험사들이 인수합병(M&A)과 사업 다각화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지만 국내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두거나 지분을 확대할 때는 일정한 투자한도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특히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를 통해 투자 위험이 보험사의 요구자본에 반영되는 상황에서 투자 규모 자체를 미리 제한하는 사전규제를 어느 수준까지 유지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도 최근 보험사의 자산운용 수익률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규제 합리화 검토에 들어가면서 자회사 투자한도 등이 주요 개선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자본 있어도 ‘3%’에 막힌다
현행 보험업법 제106조에 따르면 보험사가 대주주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회사가 발행한 주식·채권을 보유할 경우 일반계정 기준 자기자본의 60%를 넘을 수 없다. 자기자본의 60%가 총자산의 3%보다 많다면 총자산의 3%가 한도가 된다. 사실상 두 기준 가운데 작은 금액이 적용되는 구조다.
예컨대 총자산 100조원인 보험사는 자기자본이 충분하더라도 총자산 기준이 적용되면 해당 자회사 주식·채권 보유액이 3조원으로 제한될 수 있다. 자회사에 대한 신용공여 역시 자기자본의 40%와 총자산의 2% 가운데 작은 금액으로 제한된다.
이 같은 규제는 보험사가 계약자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특정 대주주나 자회사에 과도하게 투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투자 실패가 보험금 지급 능력과 계약자 피해로 번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보험사를 둘러싼 건전성 규제 환경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2023년 도입된 K-ICS는 보험사가 보유한 자산과 부채의 위험을 측정해 이에 상응하는 자본을 보유하도록 한다. M&A로 새로운 자회사가 편입돼 위험이 늘어나면 보험사가 갖춰야 하는 요구자본 역시 증가한다.
실제 DB손해보험은 미국 보험사 포테그라 인수 이후 요구자본이 증가하면서 K-ICS 비율도 하락했다. 투자에서 발생하는 위험이 이미 요구자본 증가로 반영되는 만큼, 별도의 투자한도까지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업계에서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 때문에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투자 위험을 K-ICS를 통해 관리하면서 별도로 투자 규모에 일률적인 상한까지 두는 현행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내 M&A 막는 투자한도…보험사별 체감은 달라
투자한도가 실제 M&A 과정에서 변수로 거론된 사례도 있다. 지난해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는 한화생명과 흥국생명 등이 뛰어들었지만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힐하우스캐피탈이 1조1000억원을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한화생명의 자회사 투자한도는 약 8000억원, 흥국생명은 약 4000억원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에서 국내 금융회사 M&A에 대한 투자한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해외 투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해외 보험 자회사 등에 대한 투자에는 일정한 예외가 인정되는 반면 국내 금융회사 인수에는 투자한도가 적용돼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융회사 인수 시 한도 적용을 일부 예외로 두거나 총자산 3% 기준을 높이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다만 최근 보험사들의 해외 M&A 확대를 국내 투자한도 규제를 피하기 위한 움직임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국내 보험시장이 포화되고 보험사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새로운 성장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흐름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해외 보험 자회사 등에 일부 예외가 인정되는 현행 규제 체계가 국내외 투자처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은 있다.
실제 삼성생명도 현행 투자한도가 당장 M&A를 제약할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해외 회사 투자는 규제 예외 항목이기도 하고 현재 투자한도로 크게 영향을 받는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규제가 완화된다면 투자 범위나 규모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M&A 물꼬 트나…‘계약자 돈’ 안전장치는 숙제
자회사 투자한도 외에 보험사의 자금조달 규제도 개선 대상으로 거론된다. 보험사는 사채 발행 목적과 규모에 제한을 받으며 사채 발행한도 역시 직전 분기 말 자기자본 범위 내로 제한된다. 보험업계에서는 자금조달과 투자처를 보다 다양화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함께 손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규제가 완화되면 보험사들이 국내 보험사·증권사·자산운용사 M&A뿐 아니라 인프라와 벤처 등 장기투자 분야에 자본을 활용할 여지도 커질 수 있다. 국내 보험시장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새로운 이익원을 확보할 선택지가 넓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투자 자유도를 높이는 만큼 계약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보험사가 운용하는 자금은 결국 향후 보험금으로 지급해야 할 자금인 만큼 M&A나 특정 투자처에 자본이 과도하게 집중됐다가 손실이 발생하면 자본건전성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규제가 완화되면 국내 M&A나 해외 투자 등으로 투자처를 다양화할 수 있다는 데는 업계의 공감대가 있다”면서도 “보험사는 계약자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운용하는 만큼 특정 투자에 자금이 과도하게 집중돼 손실이 발생하면 자본건전성과 계약자 보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마다 자본여력과 자산운용 전략, 투자 비중이 모두 달라 현행 규제가 실제 투자에 미치는 영향도 회사마다 다르다”며 “규제를 무조건 완화하기보다는 투자 자율성과 계약자 보호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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