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엔비디아의 서버 가격 인상, ‘삼전닉스’에 약일까 독일까
- 메모리 주도권 확인에도 삼성전자 8% 넘게 하락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 조절과 반도체 고점론 우려 커져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칩 기업 엔비디아가 내년부터 AI 서버 시스템 가격을 15% 이상 올리겠다고 예고하면서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이번 가격 인상의 핵심 배경이 ‘메모리 반도체 품귀 및 가격 상승’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제조사에는 확실한 호재라는 평가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AI 투자 위축이라는 리스크를 남기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엔비디아 서버 가격 15% 인상 소식에도 삼전닉스 하락
블룸버그통신은 엔비디아 AI 반도체를 탑재한 상당수의 서버 가격이 15% 넘게 인상된다고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상된 가격은 내년 초 출하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차세대 제품인 ‘베라 루빈’과 현재 주력인 ‘그레이스 블랙웰’ 탑재 시스템도 대상이다.
엔비디아가 가격 인상을 결정한 배경에는 메모리 품귀 현상이 자리한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필요한데, 수요가 많아 반도체 제조사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HBM 가격이 치솟자 엔비디아도 서버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반도체 시장에서 ‘을’로 평가받았던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서버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주도권을 갖게 됐다는 평가다.
이런 가격 결정력 향상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성장세로 직결되며, 양사의 분기 실적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AI 칩(NPU 등)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결국 고성능 HBM과 단일기억장치(D램) 탑재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도 반도체 기업에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빅테크 기업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 조절하면 직격탄
단기적인 실적 호조 뒤에는 장기적으로 AI 시장 전체의 성장판이 닫힐 수 있다는 경고음도 함께 커지고 있다. 엔비디아의 서버 가격 인상은 단기적으로는 메모리 공급사의 이익을 늘려주는 요인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고객사들의 투자 부담을 키우는 요소이기도 하다. 빅테크 기업들이 AI를 통한 수익을 확인하지 못할 경우 AI 인프라 확장을 지연시키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구축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고, 전력 공급 부족과 전문 인력 부족·자본 시장의 금리 변화 등 복합적인 난관에 봉착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핵심 인프라인 AI 서버 가격까지 추가로 급등하면 투자 비용 절감에 나선 기업들에 치명적인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주요 기업들은 AI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수익성 검증이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경합적으로 데이터센터 투자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인프라 구축 비용이 지속해서 커지면 기업들은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불필요한 사업을 축소하는 리스크 관리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진다. 최근 불거진 ‘반도체 주가 고점론’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최태원 회장도 “반도체 가격 떨어져야”
데이터센터 신설 또는 확장 계획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면 최종적으로는 AI 서버에 탑재되는 HBM과 고용량 D램 등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전체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제품 판가 급락으로 이어진다. 단기적인 가격 상승이 과도한 인프라 비용 부담으로 이어져 장기적인 수요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주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24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8.7% 하락했고, SK하이닉스도 3.4% 내리며 장을 마쳤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두 기업이 최근 각각 110조원, 40조원에 달하는 주주환원 계획을 발표했는데도 주가가 하락했다는 것은 반도체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태원 회장이 지난달 반도체 시장의 호재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떨어져야 한다고 했던 발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실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런 상황을 우려한 바 있다. 최 회장은 지난달 15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9회 대한상의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가격은 떨어져야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 가격은 비정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진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마진율을 낮춰 공급을 늘리고 시장을 보호하면서 시장을 같이 키워나가야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이 유지·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반도체 가격을 더 올리면 우리가 공격의 대상이 된다”며 “우리가 전부 쓸어 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빨리 생산해 현재의 수요를 어느 정도 감당해야 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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