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태산…전국 공장 지붕에 태양광 깔면 52GW"[이코노 인터뷰]
- 함일한 에이치에너지 대표 인터뷰
대형 발전소 대신 전국 공장 지붕 주목
AI로 설계·인허가 장벽 없애 ‘롱테일’ 공략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함일한 에이치에너지 대표가 바라본 곳은 땅이 아니었다. 공장 위 지붕이었다. 대규모 부지를 확보해 발전소를 짓는 기존 태양광 사업과 정반대의 길이다. 함 대표도 처음부터 지붕에 주목한 것은 아니다. 국내 태양광 산업 초창기부터 대형 발전소 개발 사업에 참여했지만 부지 확보와 인허가, 주민 수용성 등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구조에 한계를 느꼈다.
함 대표는 “지붕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시장이었다. 너무 작아서 돈이 안 됐으니까”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 부분에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왜 땅이 아닌 지붕을 정조준했을까. 함 대표는 [이코노미스트]와 만나 그 이유를 하나부터 열까지 풀어냈다.
티끌 같은 지붕, 플랫폼으로 묶었지만
함 대표가 기존 태양광 사업에서 가장 크게 느낀 한계는 ‘규모의 역설’이었다. 발전소를 크게 지으려면 넓은 땅부터 확보해야 했다. 인허가를 받고 주민을 설득하고 전력망까지 확보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반대로 이미 존재하는 건물 지붕은 토지를 새로 개발할 필요가 없었지만, 하나하나의 규모가 작아 사업성이 떨어졌다. 이를 타개할 변화는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됐다. ‘하나의 거대한 발전소를 만드는 대신 전국에 흩어진 작은 공간을 하나로 묶으면 어떨까.’ 함 대표가 표현한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드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태양광 발전 사업은 ▲현장 조사 ▲구조 설계 ▲전기 설계 ▲발전량 분석 ▲인허가 ▲자재 조달 등을 거친다. 작은 발전소라도 필요한 절차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사업 규모가 작아질수록 전체 사업비에서 이런 고정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커진다. 결국 수익성은 떨어지고 여러 업체가 중간에 끼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만들어진다.
함 대표는 이를 기술로 없애기로 했다. 그는 “엔지니어링을 잘하자는 접근이 아니었다”며 “엔지니어링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자고 했다. 그래야 지붕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내놓은 해법은 조금 독특하다. 엔지니어링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이 필요하지 않은 구조를 만들었다.
실제 에이치에너지의 ‘패스파인더’는 건물 주소를 기반으로 지붕을 분석한다. 지도와 건물 정보를 활용해 태양광 모듈을 얼마나 설치할 수 있는지 등을 분석하고 제안서를 만든다. 이후 설계와 인허가에 필요한 작업 역시 플랫폼을 통해 처리한다. 과거라면 사람이 현장을 방문해 치수를 재고 설계 작업을 거쳐야 했던 과정이다.
함 대표는 “시스템 에어컨도 원래는 설계와 엔지니어링이 필요한 공사지만 제품과 설치 방법이 표준화되면서 하나의 상품처럼 됐다”며 “태양광도 모듈과 인버터, 구조물 등을 표준화하고 복잡한 설계와 행정을 플랫폼 뒤로 숨기면 지역 전기공사업체가 설치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시공사의 역할도 달라진다. 기존에는 설계와 인허가 역량을 갖춘 원청을 거쳐 하청과 재하청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플랫폼이 중간 과정을 맡으면 지역 업체가 직접 시공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함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지역 시공사의 시장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시장 자체를 크게 만드는 것”이라며 “기존에는 여러 단계 아래에서 하청을 하던 업체가 직접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구조”라고 말했다.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아
지붕이라고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계약 기간이다. 지붕 태양광은 발전설비 설치에 초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장기간 운영해야 수익을 회수할 수 있다. 함 대표는 현재 국내에서 통상 20년 수준의 장기 계약을 맺는다고 설명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기간이다.
이 사이 건물이 매각되거나 경·공매에 넘어갈 수 있고, 공장 폐업이나 지붕 보수 등의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함 대표 역시 이를 사업 리스크라고 인정했다. 그는 “사업성이 나오려면 최소 10년 정도는 필요하다고 보고 있고 현재 업계에서는 20년을 기준으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공매 가능성 등은 당연히 리스크로 보고 가격에 반영한다”고 말했다.
5년 안팎의 단기 계약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에이치에너지에도 숙제다. 설치한 구조물을 쉽게 떼어 다른 곳에 다시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표준화돼야 하지만 아직은 그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는 게 함 대표의 설명이다.
주택과 아파트보다 공장 지붕에 집중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공동주택은 이해관계자가 많고 민원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고층으로 갈수록 설치 비용도 늘어난다. 반면 산업단지 공장은 면적이 넓고 소유 관계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함 대표는 국내에서 경제성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지붕의 태양광 잠재 규모를 약 52GW 수준으로 추산한다고 설명했다. 공장 지붕만 제대로 활용해도 상당한 규모의 재생에너지 공급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함 대표가 바라보는 지붕의 끝은 단순히 태양광 패널을 많이 설치하는 데 있지 않다. 전국에 흩어진 작은 발전소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고, 여기서 생산된 전기와 자산이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최종 그림이다.
함 대표는 “창업할 때부터 전기도 모르는 수학자와 개발자가 한전 중심의 폐쇄적인 전력시장을 누구나 참여 가능한 플랫폼 경제로 만들겠다고 했다”며 “에너지 자본의 소유와 분배 구조를 바꾸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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