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홈플러스·고려아연 사태가 던진 경고…‘사모펀드 경영’의 위험성 [스페셜리스트뷰]
- 자본시장 ‘메기’ 아닌 ‘하이에나’로 전락한 사모펀드
투자금 회수 아닌 ‘장기적 가치’ 키우는 데 집중해야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이사] 1988년 뉴욕 자본시장은 거세게 요동쳤다. 거대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당시로서는 사상 최고액인 250억달러를 투자해 담배·식품 공룡 기업인 RJR 나비스코를 삼켰기 때문이다. 인수 자금의 대부분은 고위험 채권인 정크본드(Junk Bond)와 차입금으로 충당됐다.
이 거래를 생생하게 다룬 논픽션(실화) ‘문 앞의 야만인들’(Barbarians at the Gate)은 이후 40년 가까이 차입매수(LBO)의 원형이자 약탈적 금융공학이 가져올 위험에 대한 대표적 경고문으로 인용돼 왔다. 기업의 미래 현금 흐름과 자산을 담보로 오늘의 승부를 건 뒤 청구서는 피인수 기업과 노동자에게 넘기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38년이 흐른 2026년 현재 서울 자본시장에서도 똑같은 파국이 반복되는 모습이다. 한국의 사모펀드(PEF)인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홈플러스는 파산 및 청산 위기(회생절차 폐지 위기)에 놓였다가 메리츠금융그룹으로부터 2000억원 규모의 긴급운영자금(DIP)을 조달하며 극적으로 회생절차를 재개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MBK와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연대보증을 서는 조건이 붙었다. 사모펀드가 과도한 부채로 기업을 인수한 뒤 알짜 자산을 처분해 단기 이익을 챙기고 부실의 짐은 채권자와 노동자, 협력사에 넘긴다는 사회적 비판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약 1만2000명의 직원과 4600여개 협력업체의 생계가 담보로 잡힌 현 상황은 사모펀드에 의한 기업 경영이 왜 위험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모펀드가 지닌 경영의 득과 실을 명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미국 자본시장에서 사모펀드가 태동한 역사적 맥락과 구조적 결함 ▲한국 사모펀드의 성장 과정 및 폐단 ▲홈플러스와 고려아연 등 최근 사례가 시사하는 경고를 다각도로 분석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이를 방치할 경우 발생할 시스템적 위험을 막기 위한 뼈아픈 규제 정책 개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업가치 제고’ 목적…경영 전문성 부족 문제
1960~1970년대 미국의 주요 대기업은 무분별한 사업 다각화 추진으로 극심한 효율성 저하를 겪었다. 당시 전문경영인들은 주주가치 제고보다는 자신의 세력 확장과 권력 유지에 몰두했고, 주주와 경영진 간의 대리인 문제는 심화했다.기업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해 과감한 구조조정과 경영 효율화, 경영진 인센티브 정렬 등을 거쳐 기업가치를 올린 뒤 매각한다”는 명목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사모펀드다. 1976년 잭 콜버그와 헨리 크라비스, 조지 로버츠가 설립한 KKR이 대표적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한국의 부실기업과 은행이 대거 매물로 나왔으나 국내 자본력이 부족해 ▲칼라일 ▲뉴브리지캐피탈 ▲론스타 등 해외 사모펀드가 유수의 국부 자산을 헐값에 인수했다.
지난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및 매각 과정에서 불거진 대규모 시세 차익 유출, 먹튀 논란, 조세 회피 등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해외 먹튀 자본에 맞설 토종 자본을 육성하고, 국내 기업 구조조정을 자율적으로 해결하자”는 명분을 내세우게 됐다.
지난 2004년 12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개정되면서 2005년부터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제도가 공식 시행됐다. 의결권 있는 지분 10% 이상을 취득해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한 후 회수하라는 취지였다.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개정·시행된 이후 등장한 국내 사모펀드 중 하나가 2005년 설립된 MBK다. 이후 ▲VIG파트너스 ▲한앤컴퍼니 ▲IMM PE 등 토종 대형 PEF가 대거 등장하며 시장이 급성장했다.
MBK는 운용자산 45조원 규모의 동아시아 최대 사모펀드로 거듭났다. 코웨이, ING생명 등의 매각에 성공하며 ‘인수합병(M&A)의 귀재’라는 평판을 얻기도 했다.
‘토종 자본 육성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라는 명분 뒤에는 미국식 사모펀드의 가장 약탈적인 금융공학 폐단이 그대로 이식돼 있었다. 사모펀드는 본질적으로 기업의 장기적 영속성보다는 펀드 만기 내 매각(Exit)을 통한 수익률(IRR) 달성이 최우선 목표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경영 전문 기관이 아니다. 인수한 업종이나 산업 분야의 전문성은 더더욱 결여됐다. 사모펀드가 기업의 경영권을 잡고 직접 경영에 나설 때 위험한 이유는 홈플러스 사태와 고려아연 사태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MBK가 지난 2015년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인수한 방식은 전형적인 LBO이자 부동산 갭투자 구조다. 총인수 금액 7조2000억원 가운데 자기자본은 3조2000억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4조원은 인수금융 등 온전히 홈플러스가 떠안아야 할 빚이었다.
인수 후 MBK의 경영 전략은 철저히 재무적 현금 추출에 맞춰졌다. 지난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알짜 점포와 물류센터 등 4조1130억원 규모의 유형자산을 매각했다. 같은 기간 신규 재투자는 매각액의 6분의 1 수준인 7081억원에 그쳤다.
점포를 판 뒤 다시 빌려 쓰는 ‘세일앤리스백’(Sale & Lease Back·매각 후 재임대) 방식은 단기 현금을 확보해 빚을 갚는 데 쓰였다. 홈플러스는 매년 수천억원대의 고정 임차료 부담을 떠안게 됐다.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중심의 유통 환경 변화에 대응할 신규 설비투자(CAPEX) 투자가 블라인드 처리된 상황에서 고정비 부담만 늘어나자 부채 비율은 2955% 수준까지 치솟았다. 금융 천재의 완벽한 재무 계산기가 도리어 기업의 기초 체력을 완전히 고갈시킨 셈이다.
홈플러스 사태의 가장 심각한 지점은 비대칭적 리스크 구조다.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 측 지적에 따르면 MBK의 홈플러스 투자 펀드(3호 펀드)는 홈플러스의 경영 악화 및 파산 위기 속에서도 1조2000억원가량의 수익을 올렸고, 별도의 관리·성과 보수를 수취했다.
MBK 측은 지분 가치 소멸과 투자금 손실을 주장하지만, 피인수 기업이 빚더미에 앉아 청산 위기에 내몰리는 와중에도 펀드 단계에서 거액의 보수와 수익을 먼저 챙길 수 있는 제도적 빈틈은 사모펀드 경영의 지독한 도덕적 해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MBK 인수 기업, 평균 ROE 3년 새 2.3%p ↓
MBK와 영풍이 벌인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홈플러스 사태의 판박이이자 위험도가 훨씬 높은 사건이다.MBK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도 2조원 이상을 LBO 방식으로 빌려 투입했다. 업종에 대한 이해나 장기적 산업 비전 없이 오직 금융 자본의 힘과 부채 레버리지를 활용해 한국의 대표적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한 것이다.
MBK와 영풍은 경영권도 이사회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 현지에서 고려아연의 핵심 사업인 ‘프로젝트 크루서블’ 관련 투자 리셉션을 열고 사업 주체를 자처하는 등 파행적 행보를 보였다.
국내에서는 노조 면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해외에서는 경영권 장악을 전제로 행동하는 모습은 사모펀드가 얼마나 경영 정당성과 절차적 타당성을 무시하는지 보여준다.
고려아연은 단순 유통업을 넘어 국가 기간산업이자 미래 첨단 산업(배터리 소재·제련 기술)의 핵심 생태계다.
유통 기업인 홈플러스마저 자산 파편화와 임차료 폭탄으로 무너뜨린 사모펀드가 대규모 연구개발(R&D)과 장기 설비투자가 필수적인 국가 기간산업을 인수할 경우 홈플러스보다 훨씬 심각한 국가적 파국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국내 5대 사모펀드 인수 기업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MBK가 인수한 기업의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인수 첫해 7.0%에서 3년 후 4.8%로 2.3%포인트(p) 떨어졌다. 국내 주요 PEF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IMM인베스트먼트 인수 기업의 평균 ROE가 40%p 넘게 상승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학술 연구(김&박, 2018 등)에서도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은 전략적 투자자(SI)가 인수한 기업에 비해 CAPEX 및 R&D 투자 비율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영화엔지니어링 ▲딜라이브 ▲네파 등 MBK의 주요 실패 사례에서도 인수 대금의 절반 이상을 차입으로 조달하고, 상환 부담이 장기 투자 여력을 잠식해 기업을 고사시키는 동일한 패턴이 반복된다.
사모펀드는 본질적으로 경영 전문성이 부족하다. 유통부터 제련, 바이오까지 넘나드는 문어발식 인수는 전문성 없이 단지 금융공학적 차익만을 노린 행태다. 등기임원을 PEF 인사로 채운 채 알짜 자산 매각에만 골몰하는 사모펀드 경영은 기업의 영속성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MBK에 직무 정지를 포함한 중징계안을 의결했다. 기관 전용 사모펀드 운용사(GP)를 겨냥한 국내 첫 중징계로서 의미가 있으나, 여전히 특정 불건전 영업 행위에 국한된 단발성 처방에 불과하다.
사모펀드가 차입금 상환 부담을 피인수 기업에 전가하는 LBO 구조 자체를 제어할 법제적 안전장치는 공백 상태다.
‘LBO 부채 상한제’ 도입 등 제도 정비 필요
미국은 토이저러스 파산 등을 계기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발의한 ‘월가 약탈 방지법’(Stop Wall Street Looting Act)을 통해 PEF 운용사의 인수 부채 연대책임과 채권자·노동자 보호 등의 제도화를 시도했다. 한국 금융당국도 즉각적인 규제 정책 개혁에 나서야 한다.
먼저 인수 자금 중 차입금(인수 금융)의 비율을 30~40% 이하 등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LBO 부채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인수 주체가 아닌 피인수 기업의 자산과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거나 차입금 상환 의무를 피인수 기업에 전가하는 행위를 법률로 금지해야 한다.
사모펀드가 ▲국가 기간산업 ▲핵심 기술 보유 기업 ▲대규모 고용 창출 기업 등을 인수할 경우 해당 사모펀드 운용사의 산업 전문성 및 장기 경영 계획에 대한 엄격한 사전 적격성 심사를 의무화해야 한다.
단지 자금 조달력만 갖춘 투기적 자본이 국가 핵심 생태계를 위협하는 행위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서다.
인수 후 추가 대출을 통해 운용사(GP)가 과도한 특별배당을 수취하는 행위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피인수 기업이 유동성 위기나 파산에 직면할 경우 GP가 이전에 수취한 관리 및 성과 보수를 환수(Claw back)하거나 GP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도덕적 해이를 근절해야 한다.
사모펀드의 최소 보유 기간을 5~8년 이상으로 유도하고, 장기 보유 및 R&D·인프라 재투자 비율에 맞춰 세제 혜택 및 규제를 차등화해야 한다.
연기금 등 출자자(LP)가 위탁 운용사를 선정할 때 단순 과거 내부수익률(IRR) 수치뿐 아니라 ▲고용 유지 ▲R&D 투자 ▲노사 관계 등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비재무 지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모범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한국 자본시장은 오랫동안 단기적인 ‘자본 효율성’만을 최고의 가치로 신봉해 왔다. 기업의 영속성을 결정짓는 요소는 단기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수치가 아니라 ▲브랜드 가치 ▲기술력 ▲숙련된 인력 등 비재무적 자산이다.
사모펀드가 이를 무시한 채 금융공학으로 껍데기만 남기는 경영을 계속한다면 홈플러스의 파국은 고려아연을 넘어 한국 산업 전반으로 번져 나갈 것이다.
사모펀드는 본래 시장의 불합리한 가치를 바로잡고 혁신을 자극하는 ‘메기’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의 사모펀드는 분쟁 현장을 배회하며 차익만 노리는 ‘하이에나’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금융 자본과 산업 자본의 태생적 호흡 차이를 인지하고, 과도한 레버리지 차단과 산업 전문성 심사 등 한국 산업 구조에 맞는 엄격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세워야 할 시점이다.
이제 자본은 “얼마나 빨리 투자금을 회수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키울 것인가”에 답해야 한다.
금융당국과 자본시장이 뼈를 깎는 제도 혁신에 나서지 않는다면, 38년 전 뉴욕의 ‘야만인들’이 남긴 경고는 2026년 한국 경제 전체의 비극으로 현실화할 것이다.
필자는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 대표이사다. LG이노텍과 CEO스코어를 거쳐 인사 데이터 분석에 특화한 리더스인덱스를 설립했다. 미래포럼 30%클럽 기획위원과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을 지냈으며, 2019년 여성가족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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