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안 팔리는데 왜 비싸지?…뜨거운 감자 된 ‘원유 쿼터제’ [우윳값의 비밀]①
- 작년 1인당 흰 우유 소비량 22.9㎏…40년 만 최저
“이대론 못 버텨…시장 상황 반영해 제도 개편해야”
[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수요량이 증가하면 가격이 상승하고, 수요가 감소하면 가격이 하락한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근간인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대상 중 하나가 바로 ‘우유’다. 매년 소비량이 빠르게 줄어드는데 가격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비싼 우윳값’의 원인으로 한국의 경직된 가격 결정 구조가 지목되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도 커지고 있다.
낙농가·유업계, ‘음용유’ 감축 기준 두고 갈등
업계에 따르면 6월 30일 ‘2027~2028 용도별 원유 구매 물량 및 배분 조정 협상’이 열린다. 낙농진흥회 소위원회를 중심으로 생산자(낙농가)와 수요자(유업체) 간 협의를 통해 조정된 물량은 오는 2027년 1월부터 2년간 유업계의 원유 운영 및 매입 기준에 적용된다.
6월 초 개최될 예정이었던 물량 협상을 6월 말에서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원유 의무 구매 물량 축소를 두고 낙농가와 유업계 간 의견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도입된 원유 쿼터제에 따라 유업체는 낙농가와 사전에 협의한 할당량(쿼터)만큼의 원유를 2년 동안 기본 가격에 사들여야 한다. 원유 기본 가격은 전년도 우유 생산비가 ±4% 변동할 때 낙농가와 유업체가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올해는 원유 생산비가 전년 대비 0.4% 감소해 원유 가격이 3년째 동결된 상태다.
유업계와 낙농업계의 협상 최대 쟁점은 음용유(흰 우유 등)의 감축 규모가 될 전망이다. 현재 전체 쿼터 219만3000톤(t) 가운데 시유(흰 우유)와 가공 시유, 멸균유, 발효유, 컵 커피 등 음용유 제품에 사용되는 물량은 194만1000t으로 전체의 88.5%를 차지한다.
반면 분유와 치즈, 아이스크림 등의 원료로 쓰이는 가공유 물량은 11만t 수준으로 전체의 5%에 불과하다. 음용유용 원유 가격은 리터(ℓ)당 1084원, 가공유용 원유 가격은 ℓ당 882원이다. 의무 구매 물량(93.5%)을 초과한 원유에 대해서
는 ℓ당 100원의 초과유 가격이 적용된다.
양측 모두 원유 의무 구매 물량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감축 규모를 산정하는 기준이다. 유업계와 낙농업계가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유업계는 정부가 정한 음용유 쿼터인 194만1000t을 기준으로 감축 물량을 계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낙농업계는 지난해 실제로 유업체들이 구매한 음용유 물량인 189만t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024년 협상에서도 실
제 구매량을 기준으로 감축 규모를 정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기준이 달라지다 보니 감축 규모도 크게 차이가 난다. 실제 음용유 수요량인 179만7000t을 기준으로 감축량을 산정하면 낙농가의 과잉 물량은 9만3000t이다. 유업계의 기준에 따르면 과잉 물량은 14만4000t으로 최종 감축 규모는 최대 1만5000t까지 벌어진다.
흰 우유 수요는 지난 2021년(26.6㎏) 이후 매년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흰 우유 소비량은 22.9㎏으로 집계됐다. 25.3㎏에 달했던 1년 전보다 약 9.5% 줄어든 수치다. 흰 우유 소비가 본격적으로 증가한 1980년대 후반 이후 소비량이 가장 적은 수준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학생 수 감소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대용량 소비 축소 ▲두유 등 대체재 급증 ▲고물가 장기화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수입·멸균 우유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남는 원유에 적자 지속…수입산 공습까지 ‘난감’
유업계에서는 흰 우유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 맞춰 음용유 생산량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작년 음용용으로 사용된 원유는 약 160만8000t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4년 164만1000t보다 2%(3만3000t) 정도 줄어든 수준이다. 원유 쿼터제에 따라 할당된 음용유 물량보다 매년 30만t 이상 적게 소비되는 상황이다.
남은 원유는 장기간 보관이 불가능해 가공유용 원유로 활용하거나 분말 형태인 전지분유나 탈지분유로 생산해 보관해야 한다. 문제는 국산 탈지분유의 제조 원가가 수입 분유 대비 높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산 탈지분유의 제조 원가는 킬로그램(㎏)당 1만3000~1만4000원 정도다. 수입 분유의 국내 유통 가격은 ㎏당 4500~5000원 수준이다. 국산과 수입 분유의 단가가 최대 3배 가까이 차이 나는 셈이다.
오경환 한국유가공협회 전무는 “저렴한 수입산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국산 분유를 제조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팔 수밖에 없다”면서 “수요 대비 많은 공급량으로 인해 유업계의 손실이 지속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분유뿐 아니라 흰 우유도 사정은 비슷하다. 오 전무는 “유가공 업체는 잉여 원유를 소진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우유를 할인 판매하는 상황”이라며 “지금처럼 유업계가 원유 재고를 떠안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유업체의 수익성 악화와 소비자 가격 부담 심화 등의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해부터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수입 우유에 적용되는 관세가 사라지면 국산 우유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월 미국산 우유의 수입 관세가 0%로 철폐된 데 이어 오는 7월부터는 유럽산 멸균 우유에도 무관세가 적용된다.
수입 멸균 우유는 값이 싸고 유통기한이 길어 카페·베이커리 등 기업 간 거래(B2B) 시장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수입 우유의 90%가량을 차지하는 폴란드산 멸균 우유의 가격은 도매가 기준 ℓ당 1300~1500원 선으로 국산 제품의 절반 수준이다.
오 전무는 “중장기적으로 낙농·유가공 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맞춰 공급 물량과 가격 등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면서 “생산자와 유업체뿐 아니라 소비자, 정부가 함께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제도 개편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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