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에너지 안보 경고등’ 켜졌다…재생에너지 전환, 돌파구 될까 [에너지 전쟁, 중동 쇼크 그 이후]①
- 생산·물류 동시 타격…위기 ‘구조화’ 단계 진입
정책 드라이브에도 단기 성과는 불투명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대한민국 경제 엔진이 ‘에너지 리스크’라는 거대한 암초를 만났다. 중동발 위기로 인한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LNG) 가격의 변동성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갉아먹고 있다. 에너지는 이제 단순한 비용 문제를 넘어 산업 경쟁력 전반의 발목을 잡는 핵심 변수가 됐다. 이에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 이상으로 확대하는 ‘에너지 대전환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과연 이번 계획은 한국 경제의 해방구가 될 수 있을까.
외풍에 흔들리는 에너지 안보
중동 사태 장기화는 한국 에너지 구조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원유의 70%, LNG의 상당량을 중동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즉각적인 공급망 차질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번 위기가 과거와 다른 점은 단순한 통과 리스크가 아니라 생산 리스크로까지 번졌다는 데 있다. 이란은 정권에 대한 위협을 받을 때마다 호르무즈 봉쇄를 위협해 왔지만 역사적으로 해협이 완전히 폐쇄된 적은 없었고 대부분 위협이나 부분적 교란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박 운항 ▲보험 ▲물류가 동시에 위축되며 통항 차질이 사실상 마비에 가까운 수준으로 심화됐다. 여기에 더해 카타르 LNG 설비 일부가 공격을 받아 생산 차질까지 현실화됐다. 카타르에너지는 전체 LNG 수출능력의 17%에 해당하는 물량이 3~5년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고 한국을 포함한 일부 장기계약 물량에 대해서는 불가항력 가능성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이번 장기화의 핵심은 단순한 가격 급등이 아니라 산업활동을 떠받치는 중간재와 물류 흐름의 불안정성이 구조화된다는 데 있다. ▲LNG ▲나프타 ▲에틸렌글리콜 같은 품목은 한국의 대중동 수입 비중이 높으면서 동시에 중동의 글로벌 공급 비중도 커, 가격 상승과 물량 제약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나프타는 에틸렌·프로필렌·합성수지로 이어지는 석유화학 밸류체인의 출발점이다. 나프타 조달이 흔들릴 경우 원가 상승을 넘어 ▲플라스틱 ▲포장재 ▲타이어 ▲자동차 부품 ▲전자부품 등으로 충격이 빠르게 확산된다.
이런 상황속에서 최근 정부는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고 재생에너지·전기화를 축으로 한 ‘에너지 대전환’ 로드맵을 내놨다. 현재 약 10%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오는 2030년 20% 이상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4월 6일 국무회의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면 전환과 녹색 제조 경쟁력 강화를 골자로 한 ‘국민주권정부 에너지 대전환 추진계획’을 보고했다.
우선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100기가와트(GW) 보급 목표를 조기 달성해 발전 비중을 20%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태양광 보급을 위해 햇빛소득마을과 ▲산단 지붕형 ▲영농형 ▲수상형 ▲접경지역 ▲공공기관 ‘재생에너지 100% 사용(RE100)’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할 예정이다. 풍력의 경우 계획입지, 일괄 인허가를 통한 완공까지의 총 사업기간 단축, 풍력발전기 안전점검체계 쇄신 등도 추진한다. 수송 부문에서는 전기·수소차 전환을 가속한다. 2030년 신차의 40%를 전기·수소차로 채운다는 기존 목표를 앞당겨 달성하고 ▲경찰차 ▲LPG 택시 ▲렌터카 ▲법인 차량 등 공공·영업용 차량의 조기 전기차 전환을 추진한다.
에너지전환을 통한 지역균형발전도 꾀한다. 국가 전력망을 분산형, 양방향 전력망으로 전면 혁신한다.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양수발전 등 유연성 자원을 대폭 확대하고 지역 내 ▲전력 생산 ▲저장 ▲소비가 최적화되는 분산형 전력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국민주권정부 에너지 대전환 추진계획을 신속히 추진해 우리나라를 중동전쟁 등 대외적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만들어가겠다”며 “이를 통해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 대전환 나선 정부, 실효성은 ‘글쎄’
다만 재생에너지 전환의 경우,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단기간 내 전환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은 최근 ‘중동 전쟁은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할 것인가’ 보고서를 통해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제약 요인과 향후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화석에너지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이에 따른 금리 인상이 재생에너지 투자를 위축시킨다고 진단했다. 박유미 연구원은 “전쟁으로 급등한 에너지 가격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이에 따른 금리 인상은 자본 조달 비용에 민감한 재생에너지 투자를 상대적으로 위축시킨다”며 “금리 2% 상승 시 가스 발전 비용은 11% 오르는 데 그치지만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은 20%나 뛴다”고 지적했다.
또한 디젤 가격 상승으로 재생에너지 설비 건설 현장의 중장비 운영 비용이 전쟁 이전 대비 35% 증가한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화석에너지 위기가 오히려 다른 화석연료 사용을 부추기는 역설적인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렸고 아시아와 유럽의 발전용 석탄 선물 가격은 각각 13.2%, 14.2% 상승했다. 인공지능(AI) 투자 경쟁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으로 인해 재생에너지 대신 빠르고 안정적인 가스 발전이 주요 대안으로 떠오르는 점도 전환을 늦추는 요인이다.
아울러 박 연구원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 하락과 별개로 기존 전력 시스템에 재생에너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망·저장·백업 등 시스템 전반의 구축 비용이 여전히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연구원은 이러한 구조적 제약을 극복하고 실질적인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기 위해 여러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박 연구원은 “우선 차액결제 계약·장기 고정가격 계약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투자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전력망을 포함한 에너지 시스템 인프라 구축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건물·산업 부문의 에너지 효율 기준 강화 ▲대중교통 투자 확대 ▲전기차·히트펌프 등 전기화 제품 보급 확대 등 에너지 총 수요 절감과 함께 화석연료 사용 억제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정 지역 및 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광물 조달·비축을 위한 자원 외교와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며 “마지막으로 재생에너지로 대체가 어려운 석유화학 원료 등은 여전히 필수적이므로,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도 화석연료의 공급 안정성은 지속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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