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교통사고 치료 8주 넘으면 입증하라"…車보험 적자 끊을까
- [‘8주 룰’ 온다...개혁인가 침해인가]①
경상환자 과잉 치료비만 1.3조...해외는 이미 ‘치료 제한’ 도입
한의계·시민단체 “치료권 침해” 반발…제도 연착륙은 미지수
자동차보험 시장의 ‘고질병’으로 꼽혀온 치료비 누수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을까. 자동차 사고 경상환자가 8주 이상 치료를 받으려면 별도의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시행규칙’, 이른바 ‘8주 룰’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수십 년간 이어진 자동차보험 적자 구조에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쏠린다. 경상환자의 장기 치료 관행이 보험금 증가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돼왔기 때문이다.
‘8주 룰’ 왜 도입하나
국토교통부는 오는 4월 1일부터 ‘8주 룰’을 도입하려 했지만, 구체적인 심사 기준 마련과 시스템 정비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시행을 잠정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일정 지연이라기보다 제도의 파급력이 큰 만큼, 정교한 기준 설계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8주 룰’은 교통사고 후 염좌·타박상 등 12~14급 경상환자의 경우 통상 치료 기간이 4~8주 이내라는 점에 착안한 제도다. 8주를 초과하는 치료에 대해서는 의학적 필요성을 추가로 입증해야하고 관련 기관이 심사를 진행해 불필요한 장기 치료를 억제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자동차보험 적용 경상환자의 약 90%는 상해일로부터 8주 이내 치료를 완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금융당국은 자동차보험 과잉 치료비를 줄이기 위해 지난 2023년 1월부터 경상환자가 치료 후 4주가 지나 계속 치료를 받으려면 추가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병원이 4주 이후에도 큰 제약 없이 진단서를 발급해주고 있어, 사실상 경상환자의 과잉 진료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에는 8주 이후 추가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이전처럼 진단서만으로 치료를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8주 룰 도입 배경에는 경상환자들이 ‘과도하게 장기 치료를 받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자리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교통사고 경상환자 수는 163만명에서 166만명으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같은 기간 진료비는 3조3000억원에서 4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국토부는 그 원인으로 경상환자의 상당수가 자동차 사고 후 한의원 등에서 ‘어혈 제거’ 등을 이유로 장기간 통원 치료를 이어가며 진료비 누수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자동차보험의 경우 진료비를 보험사가 부담하기 때문에 일부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장기 치료를 권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과잉 진료와 장기 치료 등으로 인해 경상환자에게 지급되는 치료비는 지난 2023년 한 해에만 1조3000억원에 달했다. 최근 6년간 연평균 증가율도 9%로, 중상환자(연 3.5%)보다 2.5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치료 종결 이후 장래 발생이 예상되는 추가 치료에 대해 사전 지급하는 ‘향후 치료비’(합의금 성격)도 함께 증가했다는 점이다. 2023년 기준 향후 치료비는 1조4000억원으로, 경상환자 치료비보다 많은 수준이다. 8주 이내 치료 완료자의 향후 치료비는 평균 80만원이었지만, 8주를 초과한 경우에는 약 140만원으로 거의 두 배에 달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향후 치료비는 보험사가 조기 합의를 목적으로 관행적으로 지급해온 합의금”이라며 “경상환자의 90%는 8주 이내 치료로 대부분 회복되는데도 고액의 향후 치료비를 받아가는 기이한 구조였다”고 말했다.
다만 앞으로는 경상환자의 경우 향후 치료비를 지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가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은 국토부와 협의해 이를 대신할 ‘위자료’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위자료 현실화 방안 도입을 위해 외부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의 경우 이미 경상환자의 진료비 누수를 줄이기 위해 치료기간과 치료비, 위자료 등에 일정한 기준을 두고 관리하고 있다. 미국은 1980년대 위자료 상한을 설정하는 배상책임 개혁을 실시했고, 이후 자동차보험 대인배상 보험금 규모와 소송 건수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역시 경상환자 위자료 상한을 도입했으며, 캐나다는 치료기간과 치료비 상한을 제한하고 있다. 일본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도 경상환자의 치료기간에 일정 기준을 두고 있다.
車보험 적자만 7000억...손해율 하락 기대
금감원은 8주 룰 도입으로 경상환자 진료비 누수를 줄여 전체 자동차보험료를 약 3% 인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상환자 진료비 비중이 높은 구조에서 해당 비용이 줄어들면 보험사의 손해율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손해보험사들의 자동차보험 사업 적자 규모는 약 7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경상환자 관련 비용이 줄어들 경우 적자 폭 역시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제도가 무난히 연착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도입 전부터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대한한의사협회 소속 한의사들은 3월 초 국토부 앞에서 8주 룰 철회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했다. 한의계는 “소비자의 의료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 금융정의연대 역시 “경상환자의 보상권을 사실상 제한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8주 초과 치료에 대한 심사 주체로 거론되는 국토부 산하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 관계자는 “개정안은 법제처 심사를 거쳐야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다”며 “현재로서는 세부 사항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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