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2026 지방선거, 도시의 ‘생존 방정식’을 묻다[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지방선거와 도시]①
행정통합 약인가 독인가, 정치적 셈법에 가린 주민의 실익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2026년 6월 지방선거의 시계추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앙 정치권은 공천 주도권을 둘러싼 정쟁과 계파 싸움으로 분주하지만 선거의 본령인 지역 사회는 과거와 확연히 다른 결정적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대한민국 행정 지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정통합’이라는 거대한 파고가 선거의 전면에 부상했기 때문이다.
현재 대구·경북을 필두로 ▲광주·전남 ▲충청권 ▲부산·경남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에서 추진 중인 ‘행정통합’ 논의는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강력한 승부수로 여겨졌다. 중앙정부의 파격적인 재정 지원과 권한 이양은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마중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구체적인 사항들이 여전히 ‘말과 구호’에만 그치고 있고 통합이후 주민의 삶이 나아지는 ‘주민의 유불리’보다, 권력 구도에서 정당과 정치인이 쥐게 될 ‘정치적 유불리’가 우선시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통합의 실익을 냉정하게 따져 묻고, 그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지역의 주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대안 모색’의 장이 되어야 한다.
‘내용 없는 통합’은 독(毒)이다
최근 행정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여러 지자체장 사이에서는 통합의 ‘속도’보다 ‘실질적 내용’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무조건적인 통합이 아니라 ‘연합을 거친 단계적 통합’ 혹은 ‘자율권이 전제된 통합’을 주장한다. 이는 정치적 선언으로서의 통합이 아니라, 통합 이후 지방정부가 가질 실질적인 재정권과 인사권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통합은 오히려 행정적 비대화와 혼란만을 야기할 것이라는 냉철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다.
중앙정부로부터 어떤 파격적인 입법적 특례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가 먼저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성급하게 추진되는 ‘내용 없는 통합’은 알맹이 없는 포장지에 불과할 수 있으며, 이는 고스란히 차기 지방 정부와 주민의 부담으로 전가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준비 없는 통합’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국내외 사례를 통해 목격해 왔다. 2010년 단행된 마산·창원·진해(이하 마창진) 통합 사례다. 구체적인 합의나 세부적인 운영 방안의 결정을 미룬 채 ‘우선 합치고 보자’는 식의 정략적 결정이 내린 결과였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시청사 위치를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은 끝나지 않았고, 마산과 진해의 원도심은 공동화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 구체적 결정이나 내용을 사전에 합의하지 않고 무리하게 선거를 앞두고 통합부터 한다면, 시너지 효과는커녕 막대한 행정비용만 늘리고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키는 과오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비효율은 해외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의 2016년 레지옹(Region) 개편 당시, 22개 광역 단체를 13개로 통합했으나 행정 비용은 오히려 폭증했다. 각 조직의 급여와 복지 체계를 상향 평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인건비 상승이 통합의 경제적 실익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헤이세이 대합병’ 역시 거점 도시에서 멀어진 외곽 지역의 공동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충분한 설계 없는 통합은 관료주의의 비대화라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우리는 영국의 연합당국(Combined Authorities)모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주요 도시들은 행정 구역을 물리적으로 합쳐 정체성을 훼손하는 대신, 경제 개발이나 교통 등 특정 사무만 공동 수행하는 ‘유연한 연대’를 택했다. 각 지자체의 독립성은 유지하면서도 광역적 경쟁력이 필요한 분야에서만 힘을 모으는 방식이다.
동시에 모든 도시가 거대해질 필요가 없음을 증명한 홋카이도 히가시카와정(東川町)의 사례도 되새겨봐야 한다. 이들은 인근 대도시와의 합병을 거부하고 독자적 생존 전략을 택해 인구 증가를 일궈냈다. 결국 통합이든 자립이든, 대의는 ‘지방도시의 경쟁력 확보’에 있다. 중앙의 보조금에 의존하는 ‘천수답 행정’에서 벗어나, 강력한 재정권과 인사권을 바탕으로 우리 지역만의 DNA를 발견하고 자립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2026년, 도시의 ‘생존 설계자’를 가려낼 시간
2026년 지방선거는 우리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실력 있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다. 행정통합은 그 일꾼이 해결해야 할 수많은 난제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유권자는 후보자가 내뱉는 ‘통합’이라는 구호 자체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도시 설계의 전문성과 행정의 디테일을 들여다봐야 한다.
중앙정부의 지원금만 훈장처럼 자랑하며 무리하게 통합을 외치는 리더는 위험하다. 반대로 변화하는 환경을 외면하며 고립을 자초하는 리더 또한 대안이 될 수 없다. “통합이든 자립이든, 우리 지역의 실질적인 재정 자율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지역 간 갈등을 조정할 실질적인 복안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먼저다. 단순히 덩치만 큰 공룡 도시가 아니라, 작아도 단단하고 자생적인 도시를 만들 ‘준비된 설계자’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100년 뒤에도 살아남는 도시를 만드는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가 될 것이다.
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6월 지방선거 전까지 ‘투표로 설계하는 도시’라는 주제로 연재를 이어갈 예정이다. 정치는 결국 공간을 규정하고 그 공간은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가 도시의 물리적·사회적 지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다각도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단순한 주거 정비 담론을 넘어 고령화 시대의 생존을 위한 도시의 재구성, AI와 전력이 도시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미래 인프라 전략 아울러 님비(NIMBY)와 핌비(PIMBY) 사이에서 갈등을 기회로 바꾸는 리더십의 본질을 짚어볼 것이다. 나아가 포퓰리즘에 가려진 도시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정치적 슬로건의 철학까지, 유권자가 지역의 진짜 설계자를 가려내는 데 필요한 날카로운 통찰을 공유할 계획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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