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성공 모델, 로봇 의료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스페셜리스트뷰]
-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이 던진 질문
한국 의료보험, 로봇 의료 기술 품을 때
韓, 의료 기술과 제도 함께 수출해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 공표’에 따르면 한국의 국민 의료비(경상의료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8.5%로, OECD 평균 9.1%보다 낮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는 의미다.
다수 국가가 의료 접근성과 재정 안정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한국은 두 목표를 함께 유지해 왔다. 이는 의료 인프라의 문제를 넘어 제도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동시에 작동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의료를 비용이 아닌 사회적 투자로 바라보는 인식과 국민 다수가 제도의 필요성과 가치를 신뢰해 왔다는 점이 시스템을 떠받쳐 왔다는 것이다.
한국 의료는 속도와 정확성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환자가 병원을 찾는 순간부터 진단·검사·치료로 이어지는 과정이 빠르고 체계적이다. 의료진의 숙련도와 임상 경험 역시 세계적 수준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실제로 한국은 ▲중증 질환 ▲고난도 수술 ▲암 치료 ▲재활 분야에서 해외 환자 유입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국가 중 하나다. 2024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약 117만명으로, 2023년 대비 약 93% 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 의료 시스템이 단순히 ‘비용이 적어서’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어서’ 선택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의료 역량의 중심에는 건강보험 제도가 자리한다. 한국의 의료보험은 의료 서비스를 일부 계층의 특권으로 두지 않고, 사회가 함께 부담하고 함께 누리는 구조를 구축해 왔다.
▲감염병 대응 ▲고령화 대응 ▲만성질환 관리 등 다양한 보건의료 과제 속에서도 제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동해 왔다는 점이 국제 사회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다만 이런 성과가 우연의 산물은 아니다. 의료를 공공재로 인식하고 국민 건강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위에서 수십 년간 축적된 정책적 선택과 현장의 노력, 의료진과 국민 간 신뢰가 맞물려 만들어낸 결과다.
그러나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가, 이제는 로봇 의료 기술을 제도 안에 담아낼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과 의료보험 제도가 다가오는 의료 기술의 새로운 시대까지 충분히 품을 준비가 돼 있느냐는 질문은 전혀 다른 문제의 시작점이다.
고령화에 돌봄인력 부족까지
의료는 더 이상 병원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만 정의되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 도입을 시작으로 인공지능(AI)이 의료 현장에 깊숙이 들어왔고, 이제는 물리적 세계와 결합한 피지컬 AI, 즉 로봇 기술이 치료 과정 그 자체에 개입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과거 의료 기술 혁신이 진단 정확도를 높이거나 치료 기법을 정교화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면 오늘날 로봇 기술은 치료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환자의 움직임을 직접 보조하고 ▲반복적이며 고강도의 재활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며 ▲의료진 숙련도 편차를 줄여 치료의 일관성을 높인다. 이는 단순한 효율 개선을 넘어 의료 제공 방식의 근본적 변화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에서 ▲보행 장애 ▲근력 저하 ▲신경계 질환은 개인의 삶의 질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 의료비와 돌봄 부담으로 직결된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2022년 기준 522만9000원으로, 전년 대비 25만6000원 증가했다는 통계청 ‘2024 고령자 통계’도 함께 제시됐다.
돌봄 인력 부족은 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연구에 따르면 2050년 요양보호사는 약 100만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요양보험 인정자 수는 2024년 116만5000명으로 전년 대비 6.1% 증가했고, 급여비용은 16조2000억원으로 11.6% 늘었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수치도 인용됐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앞으로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웨어러블 로봇과 같은 의료 로봇 기술은 구조적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로 제시된다.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도구가 아니라, 치료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수단이라는 이유에서다.
웨어러블 로봇을 포함한 의료 로봇 기술은 의료 기술과 제도 사이 간극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영역으로 꼽힌다. 특히 웨어러블 로봇은 산업용 로봇이나 휴머노이드 로봇과 기술적 전제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목적이 로봇을 정교하게 만드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족시키는 데 있다.
웨어러블 로봇은 인체에 직접 착용되고 움직임을 보조하며, 일상과 치료 과정에서 장시간 사용된다. 따라서 ‘정확히 움직이는 기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벼워야 하고 ▲착용 시 불편함이 없어야 하며 ▲개인마다 다른 체형·보행 패턴·근력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간 관절 움직임과 근육 사용을 정밀하게 해석하는 생체역학적 분석이 필수다.
이 분석 결과는 ▲기구 설계 ▲제어 알고리즘 ▲소재 선택 ▲센서 구성까지 모두 반영돼야 한다. 단순한 공학 문제가 아니라 의학·공학·임상이 결합한 고난도 융합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요구 조건은 웨어러블 로봇의 원가 구조와 연구개발 비용을 근본적으로 높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고성능이면서 경량화된 핵심 부품 ▲인체 적합 소재 ▲정밀 센서·제어 기술 ▲장시간 접촉에도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품질 기준이 필수라는 이유다.
의료기기로서 요구되는 임상시험과 안전성 검증 역시 일반 로봇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시간과 비용을 요구한다. 웨어러블 재활 로봇 한 대를 의료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단순히 기술이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수많은 임상 검증과 반복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해야 했고, 동시에 치료 효과가 객관적으로 입증돼야 한다. 의료진이 현장에서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착용성과 유지관리까지 고려한 설계도 필수 조건이다.
웨어러블 로봇은 한 번 개발하면 끝나는 장비가 아니라, 임상 데이터를 통해 지속적으로 고도화돼야 하는 플랫폼에 가깝다. 이 때문에 연구개발 비용, 임상 비용, 생산 비용, 품질 관리 비용이 구조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웨어러블 로봇 가치 담지 못하는 현실
문제는 현행 의료보험 수가 체계가 이런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기존 치료 행위나 전통적 의료기기를 기준으로 설계된 수가 구조 안에서는 웨어러블 로봇이 제공하는 임상 가치와 장기적 사회 효과를 정량적으로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유럽 13개 국가 조사 결과도 언급된다. 독일·프랑스·벨기에·영국 등 7개국은 혁신 의료 기술에 대해 기존 행위 수가와 분리된 시범 보상 체계를 기반으로 임상 효과와 치료 유용성을 실제 의료 현장에서 검증하는 제도적 장치를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런 제도는 혁신성 자체를 보상하기 위한 접근이라기보다, 치료 효과와 의료적 유용성을 근거로 공적 보상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구조다. 대표 사례로 독일은 '디지털 건강 애플리케이션'(DiGA) 제도를 통해 디지털 치료 기술을 공보험 체계 안에서 한시적으로 보상하고, 임상 효과와 사용 근거가 축적되면 정식 보험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반대로 이런 제도적 장치가 충분하지 않으면,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의료 현장에서는 제한적으로만 사용되거나 해외에서 먼저 활용되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다.
물론 의료보험 제도가 로봇, 특히 신기술을 모두 포괄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다. 공공 재정의 한계 속에서 안정성과 형평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제도 특성상 모든 혁신 기술을 즉각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다.
그럼에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할 산업군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웨어러블 로봇은 단순한 신기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직면한 초고령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보조하고 완화할 핵심 수단 중 하나다.
고령자의 보행 보조와 재활을 통해 낙상과 합병증을 줄이고, 장기적인 돌봄 비용과 사회적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사회적 효과를 고려하면 웨어러블 로봇은 의료보험 제도 안에서 별도의 틀로 논의될 충분한 명분이 있다.
한국 의료보험, 로봇 품을 준비해야
해법은 비교적 명확하다. 초기에는 기존 의료 기술과 같은 잣대를 적용하기보다, 웨어러블 로봇과 같은 기술을 위한 별도 보험 항목이나 시범 수가 체계를 도입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높은 연구개발·생산·임상 비용이 현실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보험 가격이 설정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구조가 마련돼야 기업이 기술 개발과 품질 향상에 지속 투자할 수 있고, 의료 현장도 안정적으로 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 도입된 기술은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임상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 데이터는 다시 효과 검증과 고도화로 이어진다는 선순환이 제시된다.
이 선순환은 결국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국내 의료 현장에서 충분히 사용되고 제도 안에서 검증된 기술은 해외 시장에서도 강력한 경쟁력을 갖게 된다.
한국 의료는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는 성과를 지키는 데서 나아가 다음 단계로 확장해야 할 시점이라는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의료 서비스를 넘어 의료 기술과 제도를 함께 수출하는 국가로 도약해야 한다.
의료 로봇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환자 곁에 와 있고 의료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의 진화를 인정하고, 이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정책적 결단이다.
정부와 정책 당국이 변화를 선도적으로 수용할 때 한국은 의료 기술과 제도를 동시에 수출하는 ‘진정한 의료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으며, 그 선택이 한국 의료의 다음 10년, 다음 20년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생명공학 헬스케어의 융합을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 및 인공지능(AI) 로봇 산업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미래의료학자이자 로봇헬스케어 전문가다.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서강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엔젤로보틱스 대표이사로서 웨어러블 로봇 기반의 디지털 커넥티드 케어 솔루션을 구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디지털 헬스케어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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