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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호 2026-04-06

긱워커 기본법 충격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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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틱 AI’는 먼 산…K관광, 도입률 2.2%의 경고

산업 일반

kwonjiye@edaily.co.kr2026년 글로벌 여행 산업이 거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검색하고 예약하던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이 사용자의 취향을 학습해 스스로 일정을 짜고 결제까지 마치는 ‘에이전틱 AI’(Agentic AI) 기반의 테크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관광 생태계는 심각한 ‘디지털 양극화’라는 위기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 중이다.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OTA)인 트립닷컴의 사례는 인공지능(AI)이 관광 산업의 지형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트립닷컴이 도입한 실시간 AI 여행 어시스턴트 ‘트립지니’(TripGenie)는 출시 3년 만에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트립지니를 활용한 항공·호텔 등 AI 기반 예약 건수는 전년 대비 약 400% 증가했고, 이용자들의 검색 시간 또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실시간 번역 및 메뉴 안내 등 도구형 기능 사용량도 약 300% 늘어나며 여행지 현지 활용도 역시 높아지는 추세다. 맞춤형 추천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기술적으로 입증된 셈이다.실제로 트립닷컴의 고객 서비스 챗봇은 전체 상담의 75%에 달하는 요구사항을 85% 이상의 정확도로 해결하며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 응대를 넘어 실질적인 예약 전환으로 이어지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반면 국내 관광 산업의 현주소는 처참한 수준이다. 최근 한국스마트관광협회가 주최한 포럼에서 정광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숙박·음식점업 등 관광 분야의 실질적 AI 도입률이 고작 2.2%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재작년 기준 글로벌 상위 기업들의 도입률이 73%를 상회하는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기술적 고립 상태에 가깝다.현재 국내에서 글로벌 공룡들에 대적할 만한 곳은 오픈AI의 차세대 병기 ‘오퍼레이터’와 손잡고 기술 고도화에 나선 야놀자가 유일하다. 나머지 97.8%에 달하는 대다수 중소 관광 업체들은 AI를 학습시킬 기초 데이터조차 부재한 실정이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데이터가 없으니 AI를 못 쓰고, 기술력이 없으니 데이터를 외국 플랫폼에 뺏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정부도 이 같은 위기를 인지하고 데이터 기반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취임한 박성혁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공사 출범 64년 만에 임명된 첫 기업인(제일기획 총괄장) 출신답게 ‘데이터 기반의 전략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K-브랜드’라는 이미지에만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정밀한 데이터를 활용한 전략적인 관광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박 사장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풍부한 마케팅 경험을 바탕으로 관광산업 역시 반도체나 자동차와 같은 IT 기반 정보 산업으로 정의했다. 그는 ‘관광AI혁신본부’를 신설하고 산하에 AI데이터실을 둬 방대한 관광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일본이 50여 종의 데이터를 정책 수립에 활용하고, 스위스가 데이터 기반 관광 전략을 추진하는 것처럼 우리도 국가적 차원의 인프라 개편이 시급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박 사장은 취임 간담회에서도 “관광산업 혁신을 가속화하려면 데이터 생태계 전반의 개편이 필수적”이라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김바다 한국스마트관광협회장은 “현재 관광업계가 이해하는 AI 활용의 개념 자체가 모호한 상태”라며 “여행사들이 AI를 도입한다고는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수준은 미미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가 나서서 관광기업이 어떤 분야에, 어떻게 AI를 활용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며 “업계 전반을 아우르는 백서와 기술 도입 가이드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2026.04.06 17:18

3분 소요
우주에서 약 만든다…신약 개발 판 바꿀 변수는 ‘중력’ [이코노 인터뷰]

바이오

우주가 더 이상 탐사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신약 개발의 새로운 실험실로 주목받으며 제약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지구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미세중력’ 환경이 있다. 중력이라는 절대적 조건이 사라질 때 물질과 생명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연구가 산업적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윤학순 스페이스린텍 대표가 우주로 눈을 돌린 것도 이 지점에서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기존 환경에서 풀리지 않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한 결단이었다. 윤 대표는 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창업을 목표로 했던 건 아니다"며 "연구를 계속하다 보니 지구에서는 바꿀 수 없는 변수, 중력이 보였다”고 말했다.반도체 엔지니어로 출발한 그는 우주공학 박사 과정과 뇌과학 연구를 거치며 미국 항공우주국(NASA)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서로 다른 분야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환경이 바뀌면 인체와 물질은 어떻게 달라지는가’라는 질문이 축적됐다.그는 “우주 방사선이나 미세중력은 대부분 위험 요소로만 인식된다"며 "하지만 나는 그 환경을 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윤 대표는 “리스크(위험)를 줄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활용하면 전혀 다른 치료 접근법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그때부터 우주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그는 “이미 글로벌 제약사들이 우주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건 미래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시장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결국 그는 2021년 스페이스린텍을 설립하며 우주 기반 신약 개발 시장에 뛰어들었다.단백질 구조 바꾸는 환경…치료 방식까지 달라진다미세중력 환경은 단백질 의약품의 구조를 바꾸는 핵심 변수다. 지상에서는 단백질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가라앉고 뭉치면서 불균일한 구조를 형성한다. 이로 인해 점도가 높아지고 약물 설계와 투여 방식에도 제약이 생긴다. 윤 대표는 “점도가 높다는 건 결국 투여 방식의 한계로 이어진다”며 “대표적으로 항암제 ‘키트루다’처럼 장시간 정맥 주사가 필요한 경우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반면 우주에서는 중력 영향이 거의 없어 단백질이 보다 균일하게 성장한다. 구조적 안정성이 높아지고, 고농도에서도 점도가 낮게 유지되는 특성이 나타난다. 그는 “같은 물질이라도 환경이 바뀌면 전혀 다른 특성을 갖게 된다”며 “이 차이가 의약품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투여 방식 개선으로 직결된다. 정맥 주사 중심이던 치료가 피하 주사 등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 시간이 줄고 부담이 낮아진다”며 “의료 시스템 측면에서도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용량 감소와 부작용 저감 가능성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동일한 효과를 더 적은 용량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치료 비용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특성은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단백질 구조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어 표적 치료제 개발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그는 “결국 신약 개발은 구조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느냐의 문제”라며 “우주 환경은 그 정확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데이터에서 생산으로…우주 제약 산업화 본격화응용 분야도 확대되는 추세다. 인슐린을 비롯해 줄기세포, 인공 장기 등 다양한 바이오 영역에서 활용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표는 “인슐린의 경우 서서히 방출되는 형태로 설계가 가능하다”며 “투여 주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사업 모델 역시 이러한 특성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스페이스린텍은 우주에서 단백질 데이터를 생산하고, 이를 개발과 생산 단계까지 연결하는 위탁연구(CRO)·위탁개발생산(CDMO)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데이터 확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우주 환경에서는 불순물이 줄어들어 정제 공정이 단순화되는 특징도 있다. 이는 제조 비용 절감뿐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윤 대표는 “대규모 설비 중심의 기존 생산 방식이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기술 검증도 진행 중이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단백질 결정 생성 실험과 자동화 시스템을 구현하며 실행력을 확보했다. 그는 “우주에서 실험을 자동으로 수행하고, 지상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제어하는 기술을 갖췄다”고 설명했다.최근에는 단백질 결정화 실험 모듈 실증에도 성공했다. 회수된 시료는 해외 연구기관과 공동 분석이 진행 중이다. 윤 대표는 “결국 경쟁력은 데이터”라며 “이를 어떻게 확보하고 활용하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글로벌 제약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머크는 2017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첫 실험을 시작했으며, 아스트라제네카·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일라이 릴리 등 주요 기업들도 잇따라 우주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다만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그는 “지금은 시장을 정의하는 단계”라며 “누가 먼저 기준을 만들 것이냐의 경쟁”이라고 진단했다.창업 초기에는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탓이다. 윤 대표는 “시장성이 없다는 평가도 많았지만, 연구 성과를 통해 하나씩 증명해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확신은 있었지만 이를 입증할 데이터가 부족했던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현재는 기술 실증과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마지막으로 그는 우주 제약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윤 대표는 “개발 비용이 낮아지면 그동안 포기됐던 희귀질환 치료제도 다시 시도할 수 있다”며 “우주 제약은 새로운 시장을 여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2026.04.06 10:00

4분 소요
노동자 보호 ‘소득 감소’ 역풍 피하려면 [긱워커 870만, 일터 기본법 파장은]④

전문가 칼럼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이하 일터 기본법)과 근로자 추정제의 핵심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등 기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던 노동자들을 근로자로 추정해 법적 보호의 우산 아래 포함하자는 것이다. 새벽배송 기사와 배달 라이더 그리고 보험설계사 등 수백만명의 노동자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논의가 이뤄지는 것 자체는 환영할 일임이 분명하다. 다만 노동자 보호 수단으로 “근로자로 추정한다”라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성급한 접근의 위험성근로기준법은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정의한다. 경제학에서 임금이란 근로자가 자신의 시간을 기업에 판매하고 받는 대가다. 근로자는 노동시장에 자신의 시간을 공급하고, 기업은 그 시간을 구매한다.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지 않는 대신 기업의 지시에 따라 사용하는 데 동의하는 계약 행위다. 임금을 받으면 하기 싫고 쉬고 싶다고 일을 중단하거나 그 시간에 기업이 시키지 않은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반면 ▲특고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는 시간이 아니라 산출량(성과) 기준으로 보수를 받는다. 기업이 원하는 것은 일정 시간 동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결과물이다. 기업은 이들의 시간 사용을 전면적으로 통제하지 않는다. 대신 작업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위험을 상당 부분 이들이 스스로 떠안는다. 재화와 서비스 시장 상황이 나빠져 물량이 줄면, 이들의 수입은 곧바로 줄어든다. 이 구조는 임금근로자라기보다 위험을 함께 부담하는 계약 당사자, 즉 넓은 의미의 자영업자에 가깝다.생산량에 근거해 보수를 지급하는 개수급(Piece Rate)과 생산에 투입한 시간에 근거해 보수를 지급하는 시간급(Time Rate)의 선택도 중요하다. 생산성이 높은 사람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개수급을 선호한다. 본인이 더 일하면 그만큼 수입이 추가로 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산성이 낮거나 안정성을 중시하는 사람은 경기 변동 위험을 기업에 넘기고 시간급 임금근로자가 되기를 원한다. 어떤 노동자가 자영업 또는 프리랜서를 택하고, 어떤 노동자가 임금 근로를 택하는지는 이런 자기 선택의 요소가 존재한다.이 관점에서 ‘모든 일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추정하는 접근은 여러 문제가 있다. 첫째, 서로 다른 위험·보수 구조를 억지로 하나의 틀에 넣으면서 원래 상호 이득이었던 균형을 깨뜨린다. ▲특고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의 계약은 지금까지 기업과 종사자 모두에게 시간급과 개수급 중 더 유리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 그런데 이들에게 일괄적으로 근로자 지위를 부여하면 생산량 감소에 따른 위험을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당연히 기업은 이들 유형의 노동에 대한 수요를 줄이려 할 것이다. 이 경우 전체 일자리와 소득이 감소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둘째, 근로자 추정제는 분쟁의 입증책임을 근로자에서 사업주로 옮겨서 사업주가 “이 사람이 언제 근로자로 인정될지”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퇴직금·연장수당·4대 보험·형사처벌 위험까지 기업이 감당해야 한다면 프리랜서·플랫폼 인력 활용 자체를 줄이거나, 자동화·해외 아웃소싱(위탁)으로 대체하는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쪽은 보호 대상인 플랫폼·특고 종사자들이다.셋째, “일하면 모두 근로자”라는 시그널은 고소득 프리랜서에게도 불리하다. 이들은 성과와 자율성을 중시하며, 개수급 구조 속에서 높은 보수를 얻어 온 집단이다. 이들에게까지 근로자 틀을 강제하면 오히려 선호하지 않는 고용 형태를 강요하고 일 방식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핵심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특고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이 산재·성희롱·괴롭힘·일방적 계약 해지 등에 취약해서 보호가 필요하다는 대전제에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돼 있다. 쟁점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다.첫째, 근로자 추정제는 전면 일괄 도입이 아니라 요건과 범위를 엄격히 한정해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상시성 ▲전속성 ▲사용자의 구체적 지휘·감독 ▲보수 구조 등 정량적 기준을 세밀히 설계해 사실상 임금근로자에 해당하는 집단을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둘째, 일터 기본법은 계약 형태와 무관한 최소 권리 기준을 제시하는 기본법으로 역할을 한정해야 한다. ▲성희롱·괴롭힘 금지 ▲안전보건 ▲공정 계약·정보제공 의무 ▲부당한 계약 해지 제한 등은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다.셋째, 보호 강화는 재정지원 패키지와 함께 추진돼야 한다. ▲특고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산재·고용보험 확대와 분쟁조정·법률구조 강화 등의 비용을 전적으로 기업에 떠넘기면 수요 축소와 소득 감소를 부를 뿐이다. 국고 지원과 단계적 분담 구조를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보호는 늘리되 일자리 총량은 지키는 균형 유지가 가능하다.일터 기본법은 “누가 노동자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답을 찾으려는 첫걸음이다. 다만 그 답이 보호의 이름으로 노동 수요와 소득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경제적 차이를 정면에서 인정하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2026.04.06 09:00

4분 소요
엎친 데 덮친 격…‘일터 기본법’ 도입에 우울한 소상공인 [긱워커 870만, 일터 기본법 파장은]③

유통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한숨이 커진다. 정부와 여당이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이하 일터 기본법)과 ‘근로자 추정제’ 도입에 속도를 내면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 현상과 경기 불황 장기화로 역대급 위기를 맞은 자영업이 규제 강화로 벼랑 끝에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국회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3월 25일 전체회의를 열고 김태선·박홍배·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일터 기본법과 김주영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나란히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했다. 정부와 여당은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입법을 마무리 짓겠다는 방침이다.‘인건비 폭탄’ 우려…“비용 감당 어려워”문제는 인건비 부담을 우려하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반발이 거세다는 점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2월 26일 열린 ‘2026년도 소상공인연합회 정기총회’에서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법안 통과 저지를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에 나선다고 밝혔다.이날 연합회는 결의문을 통해 “790만 소상공인은 고물가·고금리·고인건비의 삼중고와 내수 부진 속에서 이미 폐업의 기로에 서 있다”며 “일터 기본법은 소상공인 영역의 고용 축소를 초래하고 경제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자리 말살 정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연합회는 “법안이 통과되면 후속 입법으로 근로기준법령 개정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연합회에 따르면 법 시행으로 특수고용직 및 프리랜서가 근로자로 인정될 경우 소상공인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법정 비용은 최저임금 기준 1인당 월평균 약 42만원, 연간 약 505만원에 달한다. 지난 2023년 중소벤처기업부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소상공인 평균 영업이익인 2500만원의 20%를 넘는 수준이다.연합회는 “퇴직금 적용까지 더해지면 소상공인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지역 일자리가 사라지는 ‘고용 절벽’과 ‘연쇄 파산’이 현실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한계에 도달한 자영업의 현실은 주요 경제 지표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전체 사업자 폐업 규모는 약 100만8000명으로 나타났다. 집계 이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3월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92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083조8000억원이었던 1년 전보다 9조1000억원(0.8%) 불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체 대출 증가율은 전년(1.0%)보다 낮아졌지만 자영업자 1인당 평균 대출 규모(3억4000만원)는 1000만원(2.9%)가량 늘었다.자영업자 가운데 취약 차주(다중채무자 중 저소득 또는 저신용 차주)는 작년 말 기준 전체의 12.6%(40만4000명)를 차지했다. 취약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14조6000억원으로 지난 2024년 말보다 1조1000억원(1.0%) 증가했다.지난해 4분기 말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86%로 나타났다. 작년 3분기 말(1.93%)보다 0.07%포인트(p) 내렸지만, 여전히 비은행권(3.64%)과 취약 자영업자(12.14%)를 중심으로 장기 평균(2012∼2025년)인 1.58%를 웃돌았다. “업무 특성 반영 못 해…논의 즉각 중단해야”누적된 고금리와 인건비 상승, 내수 부진 등이 소상공인·자영업자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유가와 생활 물가 등이 오르면서 급격히 위축된 소비심리도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한국은행이 지난 3월 25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3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7.0으로 집계됐다. 112.1이었던 지난 1월보다 5.1포인트(p) 낮은 수준이다. 비상계엄 사태 당시인 지난 2024년 12월 기록한 –12.7p 이후 1년 3개월 만에 가장 크게 떨어졌다. CCSI는 현재생활형편·생활형편전망·가계수입전망·소비지출전망·현재경기판단·향후경기전망 6개 지수를 이용해 산출한 지표다. 100보다 높으면 장기 평균(2003∼2024년)과 비교해 소비심리가 낙관적, 100을 밑돌면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대리운전이나 택배, 메이크업, 인테리어 등의 업종은 업무 특성에 따라 건당으로 계약이 이뤄지는데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되면 소송 우려로 기존처럼 단기 고용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프리랜서로 계약해 사업소득세 3.3%만 냈던 근로자도 4대 보험을 포함하면 20% 가까이 세금을 내야 해 수입이 줄게 된다”고 설명했다.그는 “일터 기본법은 자본 시장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나온 법안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법 시행 시 영세 사업자의 인건비 부담이 커져 대다수는 사업을 지속하기 힘들 거라고 본다”고 덧붙였다.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31일 김주영·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권리 밖 노동 보호를 위한 패키지 입법 간담회’를 열었다. 법안과 관련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취지다.노동부는 법안 마련 과정에서 총 6차례의 공식 간담회와 7번의 토론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연합회 측은 플랫폼 노동자와 관련 종사자 중심으로 이뤄져 반대 의견 수렴이 미흡했다고 비판한다.연합회는 정부와 국회에 ▲소상공인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 논의 즉각 중단 ▲영세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방침 철회 ▲소상공인 경영 부담 완화를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간담회에서 김태선 의원은 “올해 상반기 내 통과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당장 통과시키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며 “너무 늦지 않게 지원책과 함께 보완 방안을 마련해 가겠다”고 말했다.

2026.04.06 08:00

4분 소요
럭셔리 뷰티 ‘명가’ 에스티로더가 흔들린다 [K뷰티 ‘성골’의 변신 vs 글로벌 명가의 추락]②

산업 일반

미국 럭셔리 뷰티 ‘명가’ 에스티로더컴퍼니즈가 흔들리고 있다. 에스티로더컴퍼니즈는 전 세계 150여 개국에서 ▲에스티로더 ▲라메르 ▲조말론 등 유명 화장품을 전개하고 있는 글로벌 ‘빅3’ 화장품 기업이다. 그러나 최근 3년간 젠지세대의 소비 패턴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고, K-뷰티와 중국 C-뷰티의 급격한 성장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실적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다급해진 에스티로더컴퍼니즈는 부진한 브랜드를 헐값에 내놓는가 하면,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마케팅을 중심에 둔 포트폴리오 변화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풀 꺾인 ‘갈색병’ 신화에스티로더컴퍼니즈는 지난 80년간 럭셔리 뷰티의 전형을 구축해 온 기업이다. 작은 크림 한 통, 에센스 한 병에 30만~40만원대에 달하지만, 품질과 브랜드 이미지가 결합되며 소비자들의 선망을 받아왔다.성공한 뷰티 브랜드는 스킨케어를 넘어 향수·색조·보디 제품으로 확장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에스티로더컴퍼니즈의 방식은 사뭇 달랐다. 실제로 대표 브랜드인 에스티로더는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와 ‘더블웨어 파운데이션’ 등 소수의 히트 제품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키워왔다.문제는 주 소비층과 화장품 구매 패턴이 변했다는 점이다. 그 사이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른 3040 소비자들은 이제 더 이상 럭셔리 스킨케어에 집착하지 않는다. 화장품 연구·개발·생산(ODM) 기술이 보편화하면서 제품 수준이 상향 평준화를 이뤘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브랜드보다 더 트렌디한 뷰티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다.업계 관계자는 “과거만 해도 갈색병은 여행 뒤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 1위였지만 이제는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다”며 “3040세대는 작은 에센스 하나에 30만원을 호가하는 에스티로더의 갈색병을 더는 합리적인 소비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갈색병 대신 ‘가성비’가 탁월한 K-뷰티와 중국의 C-뷰티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실적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에스티로더컴퍼니즈는 2025 회계연도 매출이 약 143억달러로 전년 대비 8% 감소했다.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는 에스티로더컴퍼니즈가 2023년 이후 중국 시장 둔화와 면세 채널 부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K-뷰티와 같은 지역 브랜드가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면서 3년 연속 성장 정체 국면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경쟁사와의 격차도 벌어지는 모양새다. 로레알은 지난해 약 450억유로 매출로 최대 실적을 냈다. 반면 에스티로더는 약 150억달러 수준에 머물며 격차가 세 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국내 뷰티 R&D 업계 관계자는 “에스티로더컴퍼니즈의 명성을 이끈 스테디셀러 중심 구조의 한계가 드러났다”며 “럭셔리 뷰티를 추구하던 회사의 아이덴티티도 흔들리고 있다”고 귀띔했다.다소 폐쇄적인 지배구조도 한계로 지목된다. 에스티로더컴퍼니즈는 창업주 가문이 차등의결권으로 약 80% 의결권을 쥐고 있다. 자연스럽게 디지털 전환과 소비 트렌드 변화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대규모 구조조정…경쟁력 회복은 ‘글쎄’에스티로더컴퍼니즈는 매출이 줄자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스테판 드 라 파베리 에스티로더컴퍼니즈 최고경영자(CEO)는 ‘뷰티 리이매진드’ 전략을 내놓고 구조조정과 포트폴리오 재편을 시작했다. 비용 절감과 디지털 전환을 통해 2026년까지 수익성을 회복하겠다는 목표다.가장 먼저 돈 안 되는 브랜드부터 팔고 있다. 에스티로더컴퍼니즈는 2010년 이후 K-뷰티 붐이 일자 더마 코스메틱을 지향하는 ‘닥터자르트’를 1조2000억원에 사들였다. 그러나 거대한 뷰티 공룡의 품에 안긴 닥터자르트는 특유의 경쾌한 마케팅을 하지 못했다. 결국 주요 시장이었던 중국 및 한국 내 부진으로 최근 1년 매출은 1788억원으로 23% 줄었고, 영업적자도 232억원으로 확대됐다.에스티로더컴퍼니즈는 닥터자르트의 운영사인 해브앤비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IB업계는 해브앤비의 기업 가치를 2000억원대로 평가한다. 당초 인수 가격보다 1조원가량 가치가 줄어들면서 ‘헐값 매각’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동시에 대규모 M&A도 추진한다. 에스티로더컴퍼니즈는 스페인 향수·패션 하우스 푸이그와 M&A를 전제로 한 사업 통합 협상을 진행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이 거래가 성사될 경우 기업가치 400억달러(약 54조 원) 규모의 글로벌 ‘럭셔리 뷰티 공룡’이 탄생할 것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투자업계 시선은 냉정하다. 모닝스타 댄 수 애널리스트는 “인수 이후 통합과 체질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브랜드 투자와 혁신, 실행력 회복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에스티로더컴퍼니즈의 주가는 M&A 관련 보도 직후 약 8% 하락했다. 물론 손을 놓고 있진 않다. 에스티로더컴퍼니즈는 백화점과 면세점 중심 전략을 넘어 온라인과 SNS 숍으로 판매 채널을 넓히고 있다.그러나 이런 자구안이 에스티로더컴퍼니즈의 움직임이 근본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럭셔리 뷰티 명가를 지탱해 온 큰 축인 R&D보다 마케팅에 치우치고 있다는 것이다.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공시에 따르면 연구개발 투자액은 2022년 이후 연간 약 4000억원 초반 수준에 묶여있다. 이마저도 비용이 판매관리비에 포함돼 기술 투자 성격이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로레알은 연간 약 2조원에 달하는 R&D 투자를 집행하며 글로벌 뷰티 업계에서 압도적인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경쟁사들이 인공지능과 바이오 기반 기술 투자를 늘리는 상황 속에서 에스티로더컴퍼니즈는 M&A에 몰두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OEM사 관계자는 “에스티로더는 마케팅 기업이 된 지 오래”라면서 “지속적이고 독보적인 기술력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무기가 된다. 그러나 마케팅과 포트폴리오 재편 위주의 경영은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일구는 데 한계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2026.04.06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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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화장품계 ‘양반’ 아모레퍼시픽 [K뷰티 ‘성골’의 변신 vs 글로벌 명가의 추락]①

산업 일반

seojy@edaily.co.krK-뷰티업계의 ‘양반’ 아모레퍼시픽(아모레)이 변하고 있다. 1945년 설립된 태평양화학을 모태로 하는 아모레는 글로벌 수준으로 발전한 대한민국 화장품 업계의 토대를 만든 기업으로 평가된다. 자연스럽게 국내 굴지 화장품 ODM(연구·개발·생산) 기업을 비롯해 뷰티 업계 전반에 아모레 출신들이 전면 포진하고 있다. 아모레는 한때 가족이었던 직원들이 외부에서 활약하는 모습에 무척 관대했다. 보통의 기업들이 자사 출신 경쟁자들의 싹을 자르거나 날을 세우는 모습과 달랐다. 아모레 이름 뒤에 ‘K-뷰티업계의 양반’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배경이다. 성골 의식 내려놨다…확 달라진 조직 문화“사실 여기 있는 우리 전부 아모레퍼시픽 출신입니다.”국내 한 중견 화장품 ODM 기업 임원이 곁에 있는 두 명의 파트장을 가리키며 웃었다. 한때 아모레에서 선·후배로 합을 맞췄던 이들은 타 ODM사로 옮겨 핵심 개발과 브랜드 성장을 이끌고 있다. “K-뷰티 업계의 뿌리는 아모레에서 시작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내외 중견 K뷰티 기업은 물론 해외 개발사까지… 소위 잘 나가는 회사에는 모두 아모레 출신들이 포진해 있습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모레 출신’이라는 이력 자체가 화장품 업계에서는 경쟁력으로 통하는 분위기다. 최근 K-라이프스타일 향수 브랜드로 주목받는 L사 대표도 ‘아모레 향 컨설팅 및 브랜드 매니저 출신’ 프로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아모레에서 경험을 쌓은 뒤 독자 브랜드를 세운 이 대표는 한남·도산·명동으로 플래그십 스토어를 확장하며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고 있다.대기업은 내부 직원의 이직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다. 주요 기술이나 영업·마케팅 노하우 등 민감한 내부 기밀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어서다. 일부 기업은 임직원에게 경업금지(퇴직자가 경쟁사나 동종 업계로 이직하거나 창업하는 것) 서약서를 받고, 이를 어길 시 민사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그러나 아모레는 전 직원의 동종 업계 이직이나 퇴사 후 브랜드 론칭에 비교적 관대한 편으로 평가된다. 같은 아모레 출신들이 잘 되길 바라는 분위기와 국내 대표 뷰티 기업이라는 자부심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마다 조직 문화가 다르지만 아모레는 영업이나 마케팅 전반에서 점잖은 편”이라며 “‘양반’이나 ‘화장품 사관학교’라는 표현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고 귀띔했다.아모레는 경영에서도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를 중시해왔다. 경쟁사들이 단기 실적에 집중할 때도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는 데 무게를 뒀다. 채널 입점 역시 신중하게 결정했다. 브랜드에 맞지 않는 채널은 입점하지 않았고, 해외 진출도 충분한 시장 조사를 거친 뒤 실행에 옮겼다.문제는 글로벌 뷰티 시장의 변화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유통망이던 백화점과 면세점 중심 구조는 SNS와 온라인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소비자들은 새롭고 트렌디한 브랜드를 찾기 시작했다. 북미와 동남아를 중심으로 ‘빠른 테스트-빠른 확장’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K-뷰티 전략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기존 방식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내부 위기의식이 커진 배경이다.아모레 관계자는 “예전에는 퇴사자들의 외부 성공을 응원하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그들을 통해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시대에 맞추어 변화하려는 조직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달라진 실적과 전략양반 의식을 내려놓으면서 성장 방식은 물론 실적도 달라지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아모레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9.5% 증가한 4조2528억원, 영업이익은 52.3% 늘어난 3358억원을 기록했다.무엇보다 내용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일부 브랜드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았다. 최근에는 ▲라네즈 ▲에스트라 ▲코스알엑스 등 복수 브랜드가 동시에 글로벌 성장 축을 형성하며 포트폴리오를 분산했다.아모레는 전략적으로도 변화를 택했다. 2023년 총 9351억원을 들여 유럽에서 성장하던 코스알엑스의 인수를 마무리했다. 이후 일시적인 매출 정체를 감수하고 저마진 도매(B2B) 채널을 줄이는 대신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직접 판매(D2C) 구조로 전환했다. 그 결과 코스알엑스는 신규 제품군이 안착하며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시에 증가했다.이커머스·글로벌 플랫폼·틱톡 등 SNS 채널 활용도 확대했다. 코스알엑스는 지난해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직전 분기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분기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이다. 기존의 ‘브랜드 중심·장기 전략’에서 벗어나 속도를 높인 결과로 풀이된다.김승환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는 지난 3월 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해외 시장에서 핵심 브랜드의 호실적과 신규 브랜드 진출 확대에 힘입어 글로벌 전반에서 성장세가 나타났다”고 말했다.인수 기업을 통해 학습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코스알엑스는 국가별로 유통망을 유연하게 구성하고 채널 반응을 보며 물량을 확대하고 있다. 본사가 일괄적으로 전략을 설계하던 기존 방식과는 다르다. 현장 판단과 실행 속도를 중시하는 구조다.업계 관계자는 “코스알엑스의 유럽 영업 방식은 아모레 내부에서도 참고 사례로 거론된다”며 “시장 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바꾸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 변화”라고 말했다.아모레 관계자는 “각 지역 고객 특성에 맞춘 상품과 콘텐츠를 개발하고 글로벌 유통사와 협업을 강화해 해외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지역별 소비자 니즈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로 성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2026.04.06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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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성장 진단의 기준, 한국이 세운다고' 혁신 꿈꾸는 성제혁 지피 대표

CEO

k2young@edaily.co.kr체육학과 출신으로 보건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인공지능(AI) 의료기기 회사를 운영하는 최고경영자(CEO). 이력이 예사롭지 않은 성제혁 ㈜지피 대표이사는 수단이 아니라 ‘본질’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동경하며 ‘성장 분야’의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으로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며 맷집을 키워왔던 그는 이제 사업가로서 중요한 덕목인 ‘끈기’마저 장착했다. 20년 가까이 쉬지 않고 달려왔고, 이제 ‘성장 진단의 패러다임 변화’를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X레이 아닌 생체 데이터로 골연령 측정지피는 올해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CES 2026’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정부 지원을 받은 지피는 통합한국관의 ‘주목할 한국기업 15개사’로 뽑히는 등 AI 의료기기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지피는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에게 맞춤형 건강 정보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핵심은 ‘성장 진단과 예측’에 있다. 성 대표는 “코호트(참여자의 정보와 변화 장기 추적 방법) 데이터 3900만 건을 토대로 AI가 학습하는 플랫폼을 갖고 있다”면서 “생체 정보를 통해 골연령을 측정하고, 성장을 예측하는 건 지피가 보유한 독점적 솔루션”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다시 말하자면 근육량·단백질량·수분·체지방·기초대사 등 50가지 생체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이를 활용해 성장과 질환을 예측, 체계적인 건강 관리를 도와주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현재 국내외 대부분의 병원에서 성장 진단을 위해 ‘X레이’를 활용하고 있다. 지피의 플랫폼은 X레이를 대체할 골연령 측정 방식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셈이다. 성 대표에 따르면 인바디와 같은 간단한 체성분 분석기로 측정하고, 생체 데이터값을 ‘지피 플랫폼’(GP Growth Map AI)에 넣으면 골연령 등 결과가 나오는 심플한 방식이다.만약 1차적인 성장 진단 방식이 X레이 대신 지피 플랫폼으로 바뀐다면, 그야말로 패러다임의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다. 제약업으로 따지면 '퍼스트 인 클래스'에 해당하는 세계 최초의 신약 개발에 성공하는 셈이다. 그는 “아이들의 골연령을 예측하면 성장 예측도 가능하다. 이에 저신장, 성조숙 등의 예측이 가능해지는데 의사들이 성장 호르몬 주사를 처방할 때도 지피 플랫폼을 연계해서 활용할 수 있다”며 “이후의 추적 검사 예측도 가능한 플랫폼이라 성장과 관련해 활용도가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지피의 플랫폼은 X레이보다 더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지피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논문을 통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성 대표는 “지피 플랫폼의 정확도는 98.5%이고, 오차율이 1.5% 미만으로 굉장히 낮다. 성능을 비교했을 때 지피 플랫폼이 X레이 검사보다 30% 이상 앞서 있다”고 강조했다. 지피 플랫폼은 ‘국내 표본’만 있는 게 아니다. 13년 이상 추적해 온 빅데이터인 데다 표본 자체가 넓기 때문에 성별과 인종 등에 관계없이 모두 적용할 수 있다. 그는 “외국인 데이터들도 수집했는데 패턴이 전혀 다르지 않았다. 개개인의 생체 정보가 다르기 때문에 다 특수 패턴인 셈”이라며 “생체 성분 구성의 8가지 수치가 완벽하게 일치하면서 크는 아이들은 없다. 그래서 지피 플랫폼은 어느 나라에서 쓰든 바로 적용이 가능하고 굉장히 높은 정확도를 낼 수 있다”고 피력했다. 5년 내 1조원 가치 ‘유니콘’ 겨냥 지피는 성장 진단의 패러다임 혁신을 꿈꾸며 글로벌 진출을 겨냥하고 있다. 서두에 ‘CES 2026’ 성과 등도 언급했지만 성 대표의 향후 ‘성장 로드맵’은 확고하다. 그는 “CES는 사실 전자 박람회이고, 지피는 해외 진출을 위해 글로벌 빅파마들과 바로 손을 잡아야 한다. 성장 호르몬의 톱티어라 할 수 있는 화이자, 일라이 릴리, 노보노디스크 등의 빅파마들과 계약을 해야 한다”고 전략을 설명했다. 빅파마와의 접촉을 서서히 준비하는 한편 국내외 레퍼런스도 계속 추가할 계획이다. 그는 “임상을 하고 논문을 발표하는 등 의료적인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국내 대학병원에서 활용될 수 있게 협의 중이고, 곧 성과가 나올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경영적 판단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MBA 학위를 취득하고 박사 과정을 밟는 등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스타트업은 대표의 자질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10년 이상 꾸준히 할 수 있는 근성이 필요하다. 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털어놓았다. 성 대표는 리더로서 중요한 덕목 3가지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그는 “우선 겸손하고, 두 번째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통찰력이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경험과 철학을 토대로 5년 전부터는 명확한 전략적인 방향을 정한 뒤 밸류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키 성장 솔루션과 관련한 영양제 사업 등은 접고 ▲B2B(기업간 거래) ▲B2G(기업-정부·공공기관 거래) 의료기기 쪽으로 방향성을 정했다. 그는 “다른 기업에서 모방할 수 없는 기술이다 보니 공공 의료 및 최상위 병원과의 거래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네트워크를 통해 바이오·금융·공공·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고, 크로스 체크를 하면서 회사의 성장 전략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지피는 대략 20년 전 대학 시절부터 모은 생체 데이터들이 모여 지금의 기반이 됐다. 연구개발(R&D)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지금의 플랫폼이 탄생했듯이 앞으로도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다. 성 대표는 “플랫폼의 성능을 R&D를 통해 수치로 증명하는 작업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자금 압박이 들어 와도 목숨 걸고 R&D 절대로 쉬면 안 된다”고 밝혔다. 지피는 매년 15억원 이상을 R&D에 쏟아부으며 달려가고 있다. 매출의 80~90%에 해당하는 비용이다. 그는 “패러다임이 전 세계적으로 바뀌어서 지피 플랫폼을 쓴다면 새로운 기준이 되는 회사로 우뚝 설 수 있다”며 “2028년 상반기까지 빅파마 계약을 하는 것으로 목표를 정했고, 5년 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시나리오를 세웠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2026.04.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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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에 게임까지 뗐다…카카오 정신아의 독한 ‘AI 다이어트’

IT 일반

연임에 성공한 정신아 카카오 대표가 인공지능(AI)에 올인하는 ‘독한 다이어트’로 군살을 쫙 빼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런 경영 효율화 행보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지만, 과감한 사업 정리 과정에서 불거진 직원들의 고용 불안 해소는 임기 2기의 핵심 과제로 남게 됐다.정 대표는 지난 3월 26일 주주총회에서 연임을 확정 지으며 AI 중심의 미래 비전 전략에 탄력을 받게 됐다. 2024년 3월 취임한 정 대표는 그간 그룹 구조를 재편하고 거버넌스(지배구조)를 정비하는 등 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데 집중해 왔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핵심 사업에 역량을 재정비하며 내실을 강화한 결과, 카카오는 2025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간 연결 매출 8조원을 돌파하고 역대 최고 영업이익을 달성했다.카카오는 이처럼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미래 핵심 축인 AI와 카카오톡 중심의 성장을 향해 경영 기조를 완전히 전환한다. AI 사업의 경우 지난해 ‘카나나 인 카카오톡’과 ‘챗GPT 포 카카오’로 확보한 사용자 접점을 기반으로, 이용자들이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일상의 편의를 체감할 수 있도록 서비스 범위를 대폭 넓힐 계획이다.특히 올해 연말까지 ‘플레이MCP’와 ‘AI 에이전트 빌더’를 도입해 다양한 외부 파트너를 카카오 AI 생태계로 연결한다. 이미 올리브영·무신사·현대백화점 등과 손을 잡았다. 전문성을 갖춘 에이전트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이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로 차별화된 AI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핵심 자산인 카카오톡도 일평균 체류시간 반등에 힘을 쏟는다.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에 빼앗긴 이용자들을 AI 서비스로 다시 끌어들여 일평균 체류시간을 20% 확대할 방침이다. 이를 바탕으로 톡비즈의 구조적 매출 개선을 노린다.성장의 결실을 주주와 나누는 주주 친화 경영도 강화한다. 배당 가능 이익 확대를 위해 주식발행초과금 1000억원을 감액하고, 배당금 총액을 전년 대비 10% 늘리기로 했다. 또 보유 자사주 절반 이상을 소각하고 주요 경영진이 자사주를 적극 매수하는 등 책임 경영을 펼친다. 정 대표는 “2026년 연결 매출 10% 이상 성장과 영업이익률 10% 달성을 목표로 주주들의 기대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가슴 아픈 손절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카카오는 그간 공들여 키워온 비핵심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결단을 내렸다.앞서 3월 25일 카카오게임즈는 글로벌 시장 공략과 미래 성장 동력 강화를 위해 지분 구조 재편을 발표했다. 라인야후가 출자한 투자 법인 LAAA 인베스트먼트가 카카오로부터 지분 일부를 인수하고 신주 및 전환사채 인수에 참여한다. 거래가 완료되면 LAAA 인베스트먼트가 최대 주주가 되며, 카카오는 2대 주주로 물러나 전략적 협력을 이어간다. 약 3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게 된 카카오게임즈는 이를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투입할 계획이다.포털 다음 운영사인 자회사 AXZ와의 이별도 공식화됐다. 카카오는 AXZ 지분 전량을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에 넘기고 업스테이지 지분 일부를 취득하는 주식 교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2014년 다음 합병 이후 11년 만이다. 업계에서는 카카오가 부진한 포털 사업 부담을 덜고, 업스테이지는 방대한 포털 데이터를 확보한 만큼 ‘윈윈’으로 보고 있다. 업스테이지는 거대언어모델(LLM) ‘솔라’를 다음 서비스에 결합해 차세대 AI 플랫폼을 완성할 예정이다.헬스케어 사업도 재편됐다. 2025년 연말 차바이오그룹이 800억원에 카카오헬스케어 경영권을 인수하며 ‘디지털 헬스케어 동맹’을 맺었다. 카카오는 지분 매각과 재투자로 차바이오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AI 기술을 결합하는 전략적 관계를 형성했다.이에 매각설이 꾸준히 제기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모빌리티에도 관심이 쏠린다. 수익성 낮은 콘텐츠 자회사를 다수 보유한 카카오엔터는 K팝 아티스트 영역에서 아직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초유의 사법리스크로 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업계와의 마찰로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 피지컬 AI 등 중장기 신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투자금 회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무적 투자자(FI) 변경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멀티플 우상향 기대 속 고용 불안 비명정 대표는 취임 직후 132개였던 계열사를 작년 말 94개까지 줄였다. 목표치인 80개에는 못 미쳤지만 두 자릿수까지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행보에 시장은 긍정적이다. 김소혜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저수익 자회사 손익 개선 노력이 강화되고 있으며 카카오톡 광고 성장과 AI 생태계 확장이 기대된다”며 실적과 멀티플(주가 배수)의 우상향을 전망했다.다만 내부 결속은 여전히 난제다. 카카오 노조는 정 대표 연임이 결정된 날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분사와 매각, 인력 감축”이라며 “경영 쇄신의 결과가 노동자의 고용 불안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카카오는 실질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인정하고 고용 불안에 대한 대책을 협의해야 한다”며 “인사 실패를 반복하며 경영진이 성과를 독점하는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노조는 공동교섭 요구안을 만들어 회사에 제시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카카오 측은 “크루들과 꾸준히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2026.04.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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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 정의 모호…플랫폼 기업, ‘일법 패키지’에 한숨 커진다 [긱워커 870만, 일터 기본법 파장은]②

유통

정부가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이하 일터 기본법) 제정과 ‘근로자 추정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플랫폼 산업 전반에 긴장감이 감돈다. 프리랜서 계약 비중이 높은 플랫폼 업계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정부가 목표한 입법 시점이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추진 상황에 경영계와 노동계의 관심이 쏠린다.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20일 국회와 협의해 오는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이른바 ‘일법 패키지’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일법 패키지의 두 축인 일터 기본법과 근로자 추정제를 통해 약 870만명으로 추산되는 ‘법 밖의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는 구상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노동 시간 ▲퇴직금 ▲최저임금 등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권리 밖 노동자’는 지난 2024년 사업소득세 원천징수 대상자 기준 최대 869만명에 달한다. 같은 해 8월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 약 2241만3000명 가운데 40%가량을 차지하는 규모다.쿠팡·배민·네이버·카카오 등 타격 예상핵심은 현행 근로기준법을 개정한 근로자 추정제 도입이다. 근로자 추정제는 프리랜서·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를 민사 소송에 한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추정하고, 사업주가 반증하지 못하면 근로자로 인정하는 제도다. 기존에는 노동자 스스로 근로자성을 입증해야 했다면, 법 개정 후에는 사용자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배달 기사(라이더)나 택배 기사,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정보통신(IT) 업계 프리랜서 등이 근로자로 인정되면 ▲최저임금 ▲4대 보험 ▲퇴직금 ▲주휴수당 ▲주 52시간제 등의 적용 대상이 된다.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이들의 권리 보호는 일터 기본법이 담당한다. 일터 기본법에는 ▲공정하고 투명한 계약을 체결할 권리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사회보장제도를 향유할 권리 등 8가지 기본 권리가 담겼다.경영계는 법안이 도입되면 인건비와 법정 비용 등 경영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배달·대리운전을 비롯해 웹툰·웹소설·엔터테인먼트 등 소위 ‘긱워커’(Gig Worker)로 불리는 초단기 근로자가 많은 플랫폼 업체의 충격이 특히 클 것으로 보인다. ▲쿠팡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CJ대한통운 ▲네이버웹툰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의 기업이 법 영향권에 들 것으로 전망된다.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기업으로는 쿠팡이 거론된다. 쿠팡은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와 배송 전문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등 배송뿐 아니라 배달·콘텐츠 제작 및 송출 사업 등을 운영한다.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 ▲쿠팡 퀵플렉스(개인 배송자) ▲물류센터 협력직 등 고용 형태가 다양하다.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 등 배달 플랫폼 업계도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리케이션(앱)·결제 데이터 기반 시장분석업체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배달의민족 라이더 앱인 배민커넥트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지난 2월 말 기준 48만명으로 집계됐다.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의 MAU는 69만명 수준이다. 두 배달 플랫폼의 이용자 수를 합하면 120만명에 달한다.플랫폼 노동자인 라이더가 근로자로 간주되면 ‘시간당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돼 라이더의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 배달 건수에 따라 달라지는 라이더의 임금체계에 최저임금법을 어떻게 적용할지도 문제다.‘고용 사업자’에 대한 기준 역시 모호하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라이더의 90% 이상이 배민과 쿠팡이츠를 비롯해 배달 대행사 등 여러 개의 배달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한다. 배달뿐 아니라 택배, 대리운전 등을 함께 하는 경우도 많다. ‘자유롭게 일할 자유’ 사라질 수도업계는 일법 패키지 입법이 현실화하면 플랫폼 사업자의 비용 부담 증가로 라이더의 수입과 고용이 감소하고 배달 생태계가 위축될 수 있다고 본다. 인건비 상승에 따라 배달비가 인상되고 음식 가격이 오르면 소상공인과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업계 관계자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대부분의 라이더는 법안 도입을 반대하는 분위기”라며 “상사의 지시를 따르거나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게 싫어 라이더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을 근로자로 묶어 규제하게 되면 유연한 노동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그는 “라이더는 근로 시간에 제약이 없어 일하는 만큼 벌 수 있다는 게 장점인데 근로기준법을 적용받게 되면 수익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면서 “4대 보험 등 비용 부담도 늘어 실질 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우아한형제들은 프리랜서 형태로 운영돼 온 배달 산업에 직고용 제도를 도입한다는 취지로 지난 2022년 7월 손자회사 ‘딜리버리앤(N)’을 설립했으나 작년 12월 법인을 청산했다. 딜리버리앤은 라이더에게 연봉 3000만원과 4대 보험, 육아휴직, 유연근무제 등을 적용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초반 40명가량이던 라이더는 지난해 하반기 10명 내외로 감소했다. 근무 시간과 장소를 스스로 결정하는 자율적인 형태 기존 근무 방식과 달리 고정 근무 시간과 출퇴근 체계 등에 부담을 느낀 라이더의 이탈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주요 플랫폼 기업은 법안 추진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도 구체적인 적용 범위와 기준 등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데는 신중한 입장이다.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일법 패키지 도입이 확정되면 대응 전략을 고민하겠지만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하위 법령이 마련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규제가 현실화하면 기업의 비용 부담이 증가할 수 있어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2026.04.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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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눈치 보기 싫어”…자유로운 N잡러 택한다 [긱워커 870만, 일터 기본법 파장은]①

경제일반

#서울 동대문구에 거주 중인 이모씨(37·여)는 N잡러(복수의 직업을 가진 사람)다. 그는 “물류기업을 다니다 딱딱한 조직 문화가 싫어 퇴사했다. 지금은 낮에 시간 강사를 하고 밤에는 자전거로 배달을 한다.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직장에 다닐 때와 달리 스케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디자이너 박모씨(39)는 야간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박씨는 “아침에는 플랫폼을 통해 수주 받은 콘텐츠 제작을 하고 밤에는 대리기사로 일한다”며 “일감이 없을 때는 도보로 배달도 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긱워커’(Gig Worker·초단기 근로자)가 노동 시장에 뿌리를 내렸다. 전통적인 장기 고용 관계가 아닌 단기·프로젝트 단위의 업무를 맡아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다. 이는 노동자에게 자유를, 기업에는 효율화를 제공한다. 이들 모두에게 윈-윈(Win-Win)인 셈이다.원하는 만큼 일하고 돈 번다안정적인 고용만을 추구하던 시대는 끝났다. 고용 안전성이나 정기적인 복지 혜택보다 ‘시간 주권’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긱워커’라고 부른다. 이들은 기업 및 산업 현장의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다. 짧게는 몇 시간 단위로, 길게는 며칠 짜리 계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차량 공유 서비스 운전자와 배달 라이더 등 1인 계약자도 포함된다. 배달 등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서비스가 확산함에 따라 관련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긱워커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정부기관의 통계 자료로 확인 가능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인적용역 사업자(근로계약이 아닌 용역계약으로 형성된 관계) 규모는 2020년 704만명에서 2024년 869만명으로 165만명(23.4%) 늘었다.관련 기업의 이용자 수 증가도 긱워커 시장의 성장세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취업정보 제공 기업 인크루트가 운영하는 긱워커 플랫폼 뉴워커의 2024년 기준 일일 활성 이용자수(DAU)는 전년 대비 172.3% 늘었다. 같은 기간 기업 의뢰건수는 216% 증가했다.올해도 긱워커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전략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택스테크 스타트업 자비스앤빌런즈는 올해 긱워커 채용 건수가 5억5000건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022년 긱워커 연간 채용 건수가 1억2000만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약 358% 성장하는 것이다.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정규직 채용 대신 필요에 따라 전문 기술을 보유한 인력을 단기 채용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은 긱 이코노미 시장이 2030년 전후로 1조8000억달러에서 2조5000억달러를 상회하는 거대 시장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채용 리스크 없고 저비용·유연성 확보기업들이 긱워커를 고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은 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하기 위해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근로자 급여의 약 10% 수준인 4대 보험료를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또한 주 15시간 이상 1년 이상 근무한 정규직 근로자에게 1년 기준 급여 1개월치를 퇴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은 매월 급여의 12분의 1을 퇴직급여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또 다른 이유는 채용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 중견기업 채용 담당자는 “채용 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부적응”이라며 “스펙은 모두 훌륭한데,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 이는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훼손할 수 있다. 기업들이 인성검사를 적극 도입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기업들의 긱워커 선호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기업들이 정규직 노동자 고용을 꺼리고 있어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26년 기업 경영 전망 조사’에 따르면 30인 이상 기업 229곳 가운데 31.4%는 ‘긴축경영’에 나설 계획이라고 답했다. 기업 규모가 300인 이상인 대기업의 경우는 41%, 300인 미만은 기업은 26.1%가 긴축경영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긴축경영의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61.1%가 인력 운용 합리화로 가장 많았다.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긱워커의 증가는 디지털 플랫폼 확산과 유연한 근무 선호 그리고 추가 소득 수요 확대가 함께 작용한 결과”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경기와 수요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을 고정비보다 변동비로 관리하려는 유인이 커졌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기업들은 필요한 인력을 필요한 시점에 빠르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이종우 남서울대 교수는 “글로벌 정세 불안으로 인해 현재 경기 상황이 불투명하다”며 “저성장세가 이어짐에 따라 기업들은 정직원 고용보다 단기 계약 형태의 고용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이어 “여기에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인력 대체 요인과 정부의 노동법 강화 기조 등이 맞물리면서 기업들은 정규직 고용 부담이 더 커졌다. 이런 흐름이라면 단기 고용 노동자를 선호하는 추세가 계속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2026.04.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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