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성장 전략을 얘기할 때면, 언제 어디서든 빠짐없이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바로 ‘규제개혁’이다. 규제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에서도 변함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막는 규제, 신산업 진입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철폐하라는 것이다. 경제 성장에 관심 없는 정부가 어디 있으랴. 게다가 한국민은 특히 경제 성장에 진심이다. 그런데도 왜 한국 경제가 성장하려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규제개혁은 지지부진일까. 대다수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고 주장하는 것이니 이들이 경제 성장에 필요하다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 되고 있다면 안 될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부의 ‘소극적 정책’ 추진 이유는뭔가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정할 때, 혹은 A와 B 중 하나를 선택할 때는, 그로 인한 편익과 비용을 비교하기 마련이다. 개인 혹은 시장의 의사결정이라면 이들의 비교가 용이하다. 개인의 만족도 또는 돈(금액)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예컨데 영철이가 점심으로 똑같이 1만1000원인 제육볶음과 순댓국 중 순댓국을 택했다면, 그날은 순댓국이 더 땡겼기 때문이다. 오성전자가 피지컬 인공지능(AI) 사업 진출을 검토할 때면, 신사업의 투자 비용과 예상 수익을 따져서 이문이 남겠다 싶어야 뛰어들 것이다. 정부 정책 결정도 마찬가지다. 편익과 비용의 비교 형량을 통해 순 편익이 더 큰 쪽을 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국민이 보기에는 세금 낭비 사업이 드물지 않고, 뭔가 해보려는 의욕적인 기업의 발목 잡는 규제가 흔하다. 왜 그럴까? 정책 결정의 편익과 비용 비교에서는 ‘누구’의 입장에서 ‘무엇으로’ 평가하는지가 민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가와 관료는 대체로 공익, 즉 국민의 편익 관점에서 정책을 결정한다. 단, 이들도 사람이라서 인지상정(人之常情)에 따른다. 적극적으로 사익을 챙기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면서 공익을 추구할 정치인과 공직자는 많지 않다. 그래서 국민의 편익과 비용은 정책 결정자 본인의 이해라는 렌즈를 통해 굴절된다. 그 방향과 정도는 정책 유형에 따라 다른데, 규제개혁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우선 편익은 모호하고 비용은 선명하다. 규제로 인해 보호되는 것은 기존 이익이며, 침해받는 것은 미래 이익이다. 규제개혁에서도 비용만 더 선명해질 뿐, 편익이 갑자기 확실해지지는 않는다. 또 기존 이익 침해에는 이미 형성된 이익집단이 거세게 반발한다. 반면에 미래에 이익을 얻을 집단은 아직 가시화되어 있지 않다. 자연히 개혁의 편익(기대 이익 창출)보다는 비용(기존 이익 소멸)이 크게 느껴진다. 기존 이익집단과 별 상관없는 경우에도 편익과 비용은 불균형하다. 국민의 안전·건강과 관련된 분야가 대표적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운전미숙, 졸음운전, 음주운전을 범하지 않는 대신 오작동 우려가 있다. 일반 자동차에 비해 자율주행 자동차는 10만대 당 미숙, 졸음, 음주 등 운전자 잘못에 따른 사고를 100건 줄일 수 있는 반면, 오작동으로 10건의 사고를 더 유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주행 자동차 허용에 따른 편익과 비용은 뭐가 더 클까?
자율주행 자동차 오작동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사방에서 난리를 칠 것이다. 하지만 운전자 귀책 사고 절감은 결과적으로 그럴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순수하게 공익만 따진다면, 자율주행 자동차를 허가하되 오작동 사고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그러나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정치인과 관료(및 일반 시민) 입장에서, 드러나지 않는 잠재적 사고 예방의 편익보다는 구체적으로 발생한 오작동 사고의 피해가 훨씬 크게 느껴진다. 가만히 있으면 정부의 늑장을 탓하는 신문 사설이나 공청회 정도의 부담만 지면 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허가했다가 오작동 사고 발생 시의 후폭풍은 어마어마하다. 현 상황을 유지하면 성공과 실패 모두 발생하지 않으니, 칭찬도 없지만 비난도 크지 않다. 적극적으로 개혁해서 7이 좋아졌으나 3이 나빠졌다면? 규제개혁에 따른 혜택은 정부가 어차피 할 일을 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개혁의 부작용은, 특히 특정 사고 발생처럼 가시적인 경우라면, 정부의 잘못이 된다. 이런 구조에서 기존 규제를 적극적으로 개혁하겠다고 나설 리가 없다.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 당연하다. 규제개혁의 본질적 속성정부 정책 수단은 둘이다. 하나는 ‘돈’이고 다른 하나는 ‘말’이다. 특정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돈(재정 투입)을 사용할 수도 있고 말(규제)로 대신할 수도 있다. 저소득 근로자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근로장려금을 지급할 수도 있고 최저임금제를 실시할 수도 있다. 전자를 택하면 정부 재정이 소요된다. 후자를 택하면 고용주 부담이 늘어난다. 전자는 세금(혹은 채무) 증가로 연결되고 후자는 고용 감소와 물가인상으로 이어진다. 재정 투입과 규제 중 어느 것을 택할지는 정책 상황마다 다르다. 또 유사한 정책 상황이라도 국가에 따라 선호 형태가 다른데, 우리는 규제를 선호하는 편이다. 모범적인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과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는 의외로 고용 유연성이 높다. 이유는 노동자들이 잘려도 생계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해고된 노동자에게는 높은 수준의 실업급여가 지급된다. 그리고 양질의 전직 훈련과 취업 알선 서비스가 제공된다. 그래서 얼마 뒤에는 예전 수준에 버금가는 직장에 취업한다. 우리 사회에서 고용 유연화가 어려운 까닭은 해당 노동자 집단의 반대가 거세기 때문이다. 북유럽 수준의 안전망이 갖춰져 있다면, 반대의 강도가 대폭 줄어든다. 우버나 타다 등 모빌리티 플랫폼 등장에 택시업계가 격렬하게 반발한 이유와 그에 대한 대책도 유사하다. 개혁으로 손해 보는 노동자 및 산업계 지원 비용과 개혁으로 신산업 동력이 창출됨으로써 사회 전체가 누릴 편익을 비교하면, 편익이 비용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러나 정부 입장으로 보자면, 비용은 가시적이며 당장 투입되는 것이지만 편익은 잠재 이익으로 느리게 창출된다. 줄어든 것은 현 정부 곳간이지만 채워지는 것은 미래 정부 곳간이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설 리가 없다. 정부 입장으로는 편익보다 비용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는 것, 바로 규제개혁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이는 모든 나라에 공통된다.
규제 샌드박스, 효과 보려면그럼에도 나라마다 규제개혁 수준이 천차만별인 것은, 나라마다 정부역량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규제개혁 수준에 대한 평가는 생략한다. 각자의 평가에 맡기겠다. 대신 현재 여건에서, 규제개혁 수준 향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따져보자. 가장 필요한 것은 ‘규제 샌드박스’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다. 흔히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해서는 규제방식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허용되지 않은 것은 금지된다는 ‘원칙 금지, 예외 허용’이 포지티브 방식이다. 금지되지 않은 것은 허용된다는 ‘원칙 허용, 예외 금지’가 네거티브 방식이다. 혁신을 위해서는 허용이 원칙인 네거티브 방식이 당연히 유리하다. 하지만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국민의 안전을 위한 규제를 생각해 보라. 기존에 존재하는 제품만 규제하고, 신제품은 아무리 위험해도 규제할 수 없다? 말이 안 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규제 샌드박스’이다.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일정 기간 특정 지역에서 소규모로만 우선 허용한 후, 유통 과정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토대로 사후에 방침을 정하는 것이다. 기존 규정이 없다고 신산업을 금지(포지티브 방식)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어떤 문제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조건 허용(네거티브 방식)할 수도 없으니 조건부 허용 후에 지켜보고 확실한 판단을 할 수 있을 때 필요한 조치를 하려는 것이다. 이런 묘수가 있음에도 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규제개혁이 미진한 이유는, 소극적으로 눈치를 보면서 운영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집단의 반대가 심한 사안은 애초 규제 샌드박스 대상으로 채택되지 않는다. 또, 대상이 되더라도 안전성 검증에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서 통과가 쉽지 않게 한다. 공유경제·원격진료·모빌리티·빅데이터 활용 등 논란이 큰 분야는 본체는 건드리지 않고 일부만 대상으로 채택한다. 규제 샌드박스가 십분 성과를 내려면, 행정부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이해집단 간 갈등이 심하거나 신산업 진출에 중요한 핵심 규제는 대부분 법률 형태이다. 법률 개정은 본래 국회의 권한이라서 행정부가 오롯이 담당할 수 없다. 게다가 이해관계집단 간 갈등 해결은 행정보다는 정치 영역에서 풀어야 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 규제 샌드박스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국회가 함께해야 한다. 국회에 가칭 ‘신성장 동력창출 규제개혁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자. 그래서 행정부와 함께 규제 샌드박스를 전향적으로 운영하자. 정쟁에 몰두하는 것도 국회의 역할이겠다. 하지만 행정부와 협력해서 국가적 과업을 이뤄내는 것 역시 국회가 할 일이다. 나는 우리 국회가 그 정도의 능력은 갖췄다고 믿는다.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필자는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책·규제 분야의 대표적 학자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를 받은 뒤,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정부 규제개혁, 공공정책 의사결정, 비용·편익 분석을 중심으로 연구해 왔으며 정경대학장과 정책대학원장, 정부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행정학회·한국정책학회 등 주요 학회에서 연구·편집 책임을 맡았고, 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과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정책 현안에 대한 실천적 해설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