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가사노동 해방 현실 될까...LG ‘클로이드’가 던진 질문[피지컬 AI가 바꾸는 질서]③
- 단순 청소 넘어 요리·세탁·정리까지 수행하는 ‘양팔 로봇’의 등장
LG전자, ‘제로 레이버 홈’ 비전 제시하며 글로벌 서비스 로봇 시장 주도권 정조준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2026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현장에 마련된 가상의 주방 환경으로 꾸며진 전시장. 양팔이 달린 하얀색 로봇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전날 사용자가 설정해둔 식단 정보를 확인한 로봇은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를 꺼내고 준비된 반죽을 오븐에 넣는다. 조리가 시작되자 로봇은 거실로 이동해 바닥에 흩어진 아이들의 장난감을 정리하고 건조기에서 막 꺼낸 수건을 일정한 크기로 개켜 선반에 차곡차곡 쌓는다.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LG전자가 선보인 지능형 홈 로봇 ‘클로이드’의 시연 모습이다.
가사 노동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꿈꾸는 ‘제로 레이버 홈’(Zero Labor Home) 비전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LG전자가 CES 2026에서 공개한 양팔 인공지능(AI) 로봇 클로이드는 기존 로봇청소기로 대표되던 가정용 로봇의 패러다임을 뿌리째 흔들며 단순한 가전을 넘어 ‘가사 대행자’로서의 서막을 알렸다.
‘양팔’이 가져온 혁명, 가사 노동의 물리적 한계를 넘다
그동안 가정용 로봇 시장은 로봇청소기의 성공 이후 이렇다 할 혁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바닥을 닦거나 공기를 정화하는 등 평면적인 움직임에 국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LG 클로이드는 인간의 신체 구조를 모사한 ‘양팔’을 장착함으로써 로봇이 가정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비약적으로 확장했다.
클로이드는 머리와 두 팔이 달린 몸체, 휠 기반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된 하체로 구성된다. 허리를 세우는 각도를 조절해 105cm부터 143cm까지 키 높이를 스스로 바꾸며 약 87cm 길이의 팔로 바닥이나 높은 곳에 있는 물체도 잡을 수 있다. 특히 몸체에 달린 두 팔은 ▲어깨 3가지(앞뒤·좌우·회전) ▲팔꿈치 1가지(굽혔다 펴기) ▲손목 3가지(앞뒤·좌우·회전) 등 총 7가지 구동 자유도로 움직인다. 이는 사람 팔의 움직임과 동일한 수준이다. 5개 손가락도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관절을 갖추고 있어 섬세한 동작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클로이드는 정교한 ‘매니플레이션’(Manipulation, 물체 조작) 기술을 핵심 경쟁력으로 갖추게 됐다. 단순히 물건을 집어 옮기는 수준을 넘어 ▲냉장고 문을 여닫고 ▲세탁물을 분류하며 ▲수건을 개는 등 고도의 소근육 조작이 필요한 가사를 수행한다.
특히 LG전자는 이번 클로이드에 이족 보행 대신 ‘휠(Wheel) 기반 자율주행’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실질적인 가정 환경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이족 보행 로봇은 문턱을 넘거나 계단을 오르는 데 유리하지만 에너지 효율이 낮고 넘어짐 위험이 크다. 반면 휠 방식은 낮은 무게 중심을 바탕으로 주행 안정성이 뛰어나며 어린이나 반려동물과의 충돌 시에도 사고 위험이 현저히 낮다. 기술 과시보다는 실제 사용성에 무게를 둔 것이다.
머리는 이동형 AI홈 허브로 개발된 ‘LG Q9’의 역할을 수행한다. ▲로봇 두뇌인 칩셋 ▲디스플레이와 스피커 ▲카메라와 각종 센서 ▲음성 기반의 생성형 AI 등이 탑재됐다. 이로써 인간과 언어·표정으로 소통하고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주변 환경을 학습하며 이를 기반으로 집안 가전을 제어한다.
LG전자는 칩셋에 자체 개발한 VLM(시각언어모델) 및 VLA(시각언어행동) 기술을 적용했다. 피지컬 AI 모델을 기반으로 가사 작업 데이터를 수만 시간 이상 학습시켜 홈로봇에 최적화한 기술이다. 로봇이 상황에 맞게 효과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VLM과 VLA 기술이 모두 필요하다. VLM은 시각 정보를 언어로 해석하고 언어 명령을 시각 정보와 연관해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역할을 한다. VLA는 이렇게 통합된 시각·언어 정보를 바탕으로 로봇이 구체적인 행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도록 한다.
‘제로 레이버 홈’ 야심…가전 생태계의 완성
LG전자가 클로이드를 통해 제시한 ‘제로 레이버 홈’은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선다. 이는 고객이 가사 노동에 투입하던 물리적 시간을 오롯이 자신을 위한 가치 있는 시간으로 되돌려주겠다는 브랜드 철학의 실현이다.
이러한 비전 뒤에는 강력한 가전 경쟁력이 뒷받침돼 있다. LG전자는 ▲세탁기 ▲냉장고 ▲오븐 등 전 세계 가정에 보급된 방대한 가전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클로이드는 독자적인 AI 플랫폼을 통해 이들 가전과 유기적으로 소통한다. 예를 들어 세탁기가 세탁 완료 신호를 보내면 로봇이 이를 인지해 세탁물을 건조기로 옮기거나 냉장고 내부의 식재료 유통기한을 체크해 조리 우선순위를 정하는 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상당수 로봇 기업이 공장 자동화나 물류 로봇 등 B2B 시장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LG전자는 자사의 강점인 가전 경쟁력을 로봇과 결합해 가정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을 공략하고 있다”며 “이는 빠르게 성장하는 글로벌 서비스 로봇 시장에서 독보적인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라고 밝혔다.
혁신적인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클로이드가 일반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걸림돌은 단연 ‘가격’이다. 고성능 센서와 정밀한 관절 모터, 생성형 AI를 구동하기 위한 하이엔드 칩셋이 탑재된 클로이드의 가격은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는 클로이드의 가격과 구체적 출시 시기는 실증 결과를 반영해 결정할 계획이다. 아울러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해 구독 형태로 클로이드를 판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성과 보안 이슈도 해결 과제다. 가정은 공장처럼 정제된 환경이 아니다. ▲바닥에 놓인 전선 ▲갑자기 튀어나오는 아이들 ▲로봇의 센서를 교란하는 거울이나 유리창 등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또한 집안 내부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로봇의 특성상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도 크다. 해킹을 통해 가정 내 사생활이 유출될 경우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술적 완결성 못지않게 윤리적·제도적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대중화의 길, 여전히 높은 ‘현실의 벽’
전문가들은 가사 로봇이 단기간에 대중화되기보다는 특정 계층과 상황을 중심으로 먼저 확산될 것으로 전망한다. 초기 시장은 고소득 맞벌이 가구나 고급 주거 단지의 기본 옵션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시간의 가치가 비용보다 높은 계층에게 클로이드는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 가구를 돕는 ‘케어 로봇’으로서의 역할도 기대된다. ▲식사 보조 ▲정리 정돈 ▲응급 상황 알림 등은 고령층 가구에서 가장 절실한 서비스다.
장기적으로는 구독 경제나 렌탈 서비스와의 결합이 대중화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가의 로봇을 직접 구매하는 대신 가전 관리와 결합된 월 정액 서비스를 통해 로봇을 대여하는 방식이다. LG전자가 이미 가전 렌탈 시장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가진 만큼 로봇 또한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따를 확률이 높다.
19세기 세탁기의 등장은 여성들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키며 사회 구조를 변화시켰다. 21세기 중반을 향해 가는 지금 LG 클로이드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가사 노동은 그동안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지만 대가는 없는’ 수고로운 일로 치부돼 왔다. 하지만 이제 그 수고는 기계의 몫으로 넘어가고 있다. LG전자가 제시한 ‘제로 레이버 홈’은 단순히 편리한 삶을 넘어 인간이 생존을 위한 필수 노동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정서적인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대를 의미한다.
김창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열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당사는 스마트팩토리 기반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 ▲모터 ▲액추에이터 ▲자율주행 등 핵심 기술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며 “홈이라는 공간을 가장 깊이 이해한 기업으로서 AI 홈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LG전자의 홈로봇은 개별 기기가 아니라 스마트 가전 생태계와 연동되며 발전하는 홈 로봇 솔루션”이라며 “가전과 로봇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축적되는 고객 생활 데이터가 차별화된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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