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미리 줄까, 나중에 물려줄까”…상속·증여 뭐가 유리할까
- [ECONO TAX]
갑작스러운 상속 땐 세금 낼 현금 없어 ‘급매’도
“미리 주면 무조건 절세” 아냐…자산별 전략 달라
예금·주식부터 대출·보증까지 가족끼리 공유해야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서울에 사는 40대 직장인 A씨는 이번 추석 부모님을 만나 평소 꺼내기 어려웠던 질문을 꺼냈다.
"아버지, 그런데 재산이 정확히 얼마나 있으세요?"
A씨는 부모가 서울에 아파트 한 채와 예금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아파트를 언제 얼마에 샀는지, 예금과 주식은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혹시 갚아야 할 대출이나 보증이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부모 역시 "나중에 알아서 나눠 가지면 된다"며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부모가 건강할 때 상속은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상속이 발생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부모가 남긴 재산을 찾는 것부터 세금을 낼 돈을 마련하고 형제자매끼리 재산을 나누는 일까지 한꺼번에 해야 한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면 부모님의 건강 걱정만큼이나 한 번쯤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이 '우리집 재산'인 이유다.
부모 재산 80%가 부동산…세금 낼 현금은 어디서
특히 우리나라 고령층은 재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가구의 평균 자산은 5억1517만원이다. 이 가운데 부동산이 4억1278만원으로 전체 자산의 80.1%를 차지했다. 저축 비중은 14.2%에 그쳤다.
집값이 올라 부모의 재산은 커졌지만 당장 쓸 수 있는 현금까지 많아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런 자산 구조는 갑작스럽게 상속이 발생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정근 세무법인 엑스퍼트 논현지점 대표 세무사는 "60대 이상 부모 세대는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은 데다 생전에 자녀와 상속 문제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문화도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다"며 "자녀가 부모의 정확한 자산 규모나 구성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오랫동안 병환을 앓았다면 가족들이 상속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 하지만 사고나 급환으로 갑작스럽게 상속이 발생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속세를 얼마나 내야 하는지 몰랐던 데다 세금을 낼 현금도 준비돼 있지 않을 수 있어서다. 결국 물려받은 부동산을 급하게 팔아 세금을 마련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 세무사는 "상속세 납부 재원이 없어 상속받은 부동산을 급하게 처분하면서 시세보다 싸게 매각하는 사례가 있다"며 "부동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양도소득세까지 발생하면 자녀에게 실제로 남는 재산이 예상보다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리 주면 세금 줄겠지?'…증여가 항상 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재산을 미리 자녀에게 넘겨주면 해결될까.
꼭 그렇지는 않다.
상속에는 여러 공제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거주자의 상속이 발생하면 기초공제와 인적공제를 합한 금액과 5억원의 일괄공제 가운데 큰 금액을 적용받을 수 있다. 배우자가 있다면 배우자 상속공제도 받을 수 있다. 결국 같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배우자 유무와 자녀 수, 채무 등에 따라 실제 내야 할 상속세는 달라진다.
이 대표는 "무조건 미리 증여하는 것이 세금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자산 규모와 배우자 유무에 따라 전략이 달라진다"며 "상속공제를 고려하면 자산 규모가 크지 않은 가정은 굳이 서둘러 증여할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앞으로 가격이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재산이라면 사전증여를 검토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10억원인 재건축 예정 아파트를 자녀에게 증여했다고 가정해보자. 이후 가격이 20억원으로 오른 뒤 부모가 사망하더라도 상속세에 합산되는 사전증여재산의 가액은 원칙적으로 증여 당시 평가액을 기준으로 한다.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은 상속개시 전 10년 이내에 증여했다면 상속세 과세가액에 합산된다.
다만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증여부터 결정해서는 안 된다. 증여할 때 내는 증여세와 취득세는 물론 향후 집을 팔 때 발생할 수 있는 양도소득세까지 함께 따져봐야 한다.
이 세무사는 는 "재건축·재개발 예정 부동산처럼 향후 가치 상승이 예상되는 자산이나 전체 자산 규모가 큰 가정이라면 계획적인 사전증여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집만 물려주면 끝?…세금 낼 '현금'도 남겨야
상속을 준비할 때 세금을 얼마나 줄일지만 고민해서도 안 된다. 실제 세금을 무엇으로 낼 것인지도 중요하다.
부모에게 20억원의 재산이 있다고 해보자. 20억원 대부분이 집 한 채에 묶여 있는 것과 부동산 외에 예금·주식 등 금융자산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은 상속이 발생했을 때 큰 차이가 난다.
금융재산에는 별도의 상속공제도 있다. 순금융재산이 2000만원 이하라면 전액을 공제받을 수 있다. 2000만원을 넘으면 일정 기준에 따라 공제하며 최대 한도는 2억원이다.
이 세무사는 "자산이 부동산에만 몰려 있으면 세금을 내기 위해 집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60~70대부터는 부동산뿐 아니라 금융자산도 일정 부분 확보하는 방향으로 자산 구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상속세를 낼 현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종신보험을 활용할 수도 있다. 부모를 피보험자로 하되 소득이 있는 자녀가 계약자가 돼 보험료를 실제 부담하는 방식이다. 부모가 사망한 뒤 지급되는 보험금을 상속세 납부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 세무사는 "소득이 있는 자녀가 계약자이자 보험료 납입자가 돼 부모를 피보험자로 생명보험에 가입하는 방법도 있다"며 "상속이 발생한 직후 보험금을 상속세 납부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보험금의 상속·증여세 과세 여부는 실제 보험료 부담자와 계약 구조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자녀가 알아둬야 할 것은 재산만이 아니다. 부모 명의의 대출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선 보증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빚도 확인해야 한다. 재산보다 빚이 많다면 상속인은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을 검토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추석에 부모님께 물어야 할 것은 "저한테 얼마를 물려주실 건가요"가 아니다. ▲어떤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 ▲갚아야 할 빚은 없는지 ▲갑작스럽게 상속이 발생해도 세금을 낼 현금이 있는지. 이 세 가지부터 가족끼리 공유하는 것이 상속 준비의 시작이다.
이 세무사는 "부동산과 예금·주식·보험 등 금융자산뿐 아니라 대출과 보증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채무까지 미리 정리해 자녀와 공유해둘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향후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 등 법적·세무적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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