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집을 짓는 정책에서 사람이 사는 정책으로[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주택공급 이것이 문제다]③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수도권에는 집을 더 지어야 한다는 말이, 지방에는 지어 놓은 집이 팔리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같은 나라의 주택시장을 두고 정반대의 진단이 오간다. 이달 8일과 9일 국회에서 잇따라 열린 지방 부동산 토론회도 이 간극을 드러냈다. 여야 의원들이 각각 마련한 자리에서 지방 미분양과 지역경제의 위기가 논의됐다. 공급이 부족한 곳에는 더 짓고, 남는 곳에는 덜 지으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주택은 오늘 필요하다고 내일 완성되지 않고, 다 지었다고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앞선 미국편에서는 주택공급을 가로막는 규제를 걷어내기 위한 정치적 합의를, 영국편에서는 공급의 속도를 늦추는 계획과 결정의 절차를 살펴봤다. 주택난을 해결하려는 고민이 진영이나 국경에 갇혀 있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뉴질랜드도 같은 길을 걸었다. 다만 이 나라의 경험에서는 한 가지를 더 고민하게 만든다. 규제를 풀어 지을 수 있는 집을 늘린 다음, 그 집에서 살아갈 사람까지 충분히 생각하고 있는가.
규제를 풀어도 남는 질문
2021년 10월 뉴질랜드 노동당 정부와 제1야당 국민당은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손을 잡았다. 주요 도시의 주거지역에서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필지마다 최대 3층, 3가구의 주택을 별도의 개발허가 절차 없이 지을 수 있도록 하는 중밀도 주거기준(MDRS)을 추진했다.
주택의 높이와 가구 수를 제한하는 규칙이 주거비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미국의 초당적 합의, 영국 노동당의 계획규제 개편과 문제의식이 다르지 않았다. 오클랜드는 2016년 광범위한 용도지역 개편으로 더 많은 주택을 지을 수 있게 했다. 오클랜드 시의회가 소개한 한 연구에 의하면 이 개편으로 2016~2021년 약 2만2000호의 추가 주택 인허가가 이루어졌다고 추정했다.
임대료 상승을 완화했다는 연구도 나왔다. 이를 실제 임대료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되지만, 공급 여건을 바꾸는 일이 주거비 부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지을 수 있는 물량을 늘리는 것과 실제 주거를 제공하는 것은 다르다. 올해 오클랜드의 계획상 주택 수용용량 기준이 약 200만호에서 140만호로 조정됐다. 이는 200만호를 짓기로 했다가 60만호의 건설을 취소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도시계획이 이론적으로 허용하는 주택의 규모를 조정한 것이다. 그 물량이 실제 건설로 이어질지는 수요와 사업성, 기반시설 여건에 달려 있다.
뉴질랜드 정부도 같은 필지라 하더라도 도심과 교통시설 가까이에 있는 땅과 수요가 적거나 재해에 취약한 땅의 공급 가능성을 똑같이 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집을 허용하는 규칙만으로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입지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기반시설이 따라오고 생활이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
규제를 풀면 공급이 늘 수 있다. 그렇다고 늘어난 인허가가 곧 주거 문제의 해결을 뜻하지는 않는다. 뉴질랜드의 경험을 ‘규제 완화의 성공’이나 ‘공급 과잉의 실패’ 가운데 하나로만 읽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이 여기서 가져와야 할 교훈은 건설을 허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집이 누구의 거처가 될 것인가까지 공급정책에 담고 있는지다.
집을 짓는 시간보다 짧은 정책의 수명
뉴질랜드의 초당적 합의가 같은 형태로 계속 유지된 것도 아니다. 정권 교체 이후 정부는 MDRS를 지방정부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다만 올해 오클랜드 주택계획을 조정하면서는 이전 기준을 믿고 사업을 추진한 개발자와 소유자를 위한 경과조치도 마련했다. 계획의 변화가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사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 다루어야 했던 것이다.
주택은 인허가에서 건설까지도 오래 걸리지만, 임대로 운영한다면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내다봐야 한다. 정책을 바꿀 수는 있다. 다만 오늘의 기준을 믿고 내일의 사업을 결정한 사람들에게 그 변화가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부가 민간의 참여를 원한다면 규제를 푸는 일만큼 제도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우리의 주택임대사업자 정책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정부는 2017년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집주인을 제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오래 임대하고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대신 지원을 제공해 세입자의 주거를 안정시키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불과 3년 만인 2020년 단기임대와 아파트 장기일반 매입임대 유형을 폐지했다. 등록임대제도 전체를 없앤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를 매입해 장기간 임대하도록 유도하던 정책의 방향은 크게 달라졌다.
그런데 이제 지방 미분양을 풀기 위해 지방에 한해 아파트 매입임대 등록을 다시 허용하자는 제안이 국회 토론회에서 나온다. 집이 부족할 때는 임대사업자를 주거 안정의 협력자로 불렀다가, 집값이 오르면 다주택 보유의 문제를 앞세우고, 집이 팔리지 않으면 다시 참여를 요청하는 셈이다. 부작용을 고치는 것과 장기 임대사업의 기반을 흔드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임대주택을 오래 운영할 사람을 육성하겠다는 제도에 정작 긴 호흡이 없다.
이런 변화가 반복되면 새로 주어지는 혜택보다 그 혜택이 얼마나 지속될지를 먼저 따지게 된다. 주택공급에 필요한 민간의 자금과 판단은 선언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에서 살펴본 규제 개편의 과제에 뉴질랜드가 덧붙이는 것은 정책의 수명이다. 집을 짓고 운영하는 시간보다 정책의 수명이 짧다면, 공급의 약속도 그만큼 불안해진다.
지방에 살려면 수도권 집부터 팔아야 하나
지방의 주택수요를 바라보는 방식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7월 말 전국 준공 후 미분양은 2만9152호다. 이 숫자는 이미 지어진 집을 누가 사거나 빌려서 사용할 것인지가 공급정책의 과제가 됐음을 보여 준다.
특히 인구와 구매력이 줄어드는 지방에서는 지역 안에 있는 수요만으로 새로 공급된 주택을 모두 받아내기 어렵다. 필자는 이런 지역일수록 수도권 거주자의 제2주택 수요와 임대를 목적으로 한 투자수요가 함께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방에서 살 사람은 반드시 지방의 집을 한 채만 소유한 사람이어야 할까. 수도권에 집을 가진 사람이 지방에 또 하나의 거처를 마련해 두 지역을 오갈 수도 있고, 지방 주택을 매입한 사람이 다른 가구에 임대할 수도 있다. 주택을 사는 사람과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이 반드시 같아야 지방의 주택수요로 인정할 이유는 없다.
수도권에서 오래 살아온 가구에 지방으로 옮겨 오라고 권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먼저 수도권의 집을 팔라고 하면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 자녀와 가족이 남아 있을 수 있고, 병원이나 생활의 기반도 수도권에 있다. 지방 생활이 맞지 않아 돌아오려 할 때 예전의 집을 다시 구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지방 이주에 수도권 주택 처분까지 묶이면 생활을 바꾸는 선택에 자산을 정리하는 결단이 더해진다.
그 집을 임대해 두고 지방으로 옮겨 와 살아도 된다면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수도권 주택에서 나오는 임대소득을 지방의 주거비와 생활비에 보탤 수 있다면, 특히 은퇴 이후의 이주를 생각하는 가구에는 이전보다 현실적인 길이 열린다. 필자는 수도권의 집을 팔아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 주는 것만으로도 지방 생활을 선택할 사람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도권 주택은 세입자의 거처가 되고, 지방 주택은 소유자의 새로운 생활공간이 된다.
물론 임대소득의 규모와 대출 부담, 지방의 의료·교통 여건에 따라 가능한 선택은 달라진다. 그러나 이런 이동의 가능성 자체를 정책이 좁혀 놓을 이유는 없다. 사람을 지방으로 움직이려면 수도권과의 연결을 먼저 끊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연결을 가진 채로도 생활의 중심을 옮길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공급의 끝에 거주를 놓아야 한다
제2주택이나 투자수요가 지방에 들어온다고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매입만 이루어진 채 비어 있는 집이 늘어난다면 우리가 강조하는 거주인구를 늘리는 성과를 거둘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지역 내부의 구매력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주택을 외부의 자금과 연결하고, 그 집을 실제 생활이나 임대에 이용하는 경로까지 닫아서는 곤란하다. 한 채를 소유하고 그곳에서만 사는 모습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주택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주택공급의 논의를 인허가와 준공에서 끝내지 말아야 한다. 누가 그 집을 사용할 것인지, 살고 싶은 사람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다른 지역에서 옮겨 올 때 무엇이 걸림돌이 되는지도 공급의 문제다.
미국의 정치적 합의, 영국의 계획절차 개편, 뉴질랜드의 밀도 규제 완화는 주택공급을 둘러싼 고민이 국제적으로 얼마나 닮아 있는지 보여 준다. 동시에 제도를 바꾸어 집을 늘리는 것만으로 주거의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드러낸다. 우리 정치권과 제도권이 지방의 미분양을 건설경기의 문제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 집에 들어가 살 사람의 생활과 이동까지 관심의 범위에 넣어야 한다.
주택공급 정책은 집을 짓는 데서 시작하지만, 사람이 사는 데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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