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마통 64조 쓰고도 68조 남았다…가계대출 ‘숨은 뇌관’
- 미사용 약정한도 전체의 51%…신규대출 규제에도 추가 차입 가능
계좌 수 제자리인데 사용액 급증…2021년보다 높은 금리도 부담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은행권 마이너스통장(한도대출)에서 차주들이 이미 64조원 넘게 빌려 쓴 가운데, 추가로 꺼내 쓸 수 있는 돈도 68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대출을 받지 않고도 기존 약정 한도 안에서 상당한 규모의 추가 차입이 가능한 만큼 가계대출 관리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은행권 마이너스통장 약정액은 132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실제 대출 잔액은 64조2000억원이다. 약정액에서 이미 사용한 금액을 제외한 미사용 한도는 67조9000억원으로, 실제 빌려 쓴 돈보다 3조7000억원 많았다. 전체 약정액의 51.4%가 아직 사용되지 않은 셈이다.
마이너스통장은 한도를 미리 설정한 뒤 필요할 때마다 돈을 꺼내 쓰는 구조다. 신규 대출을 받지 않더라도 기존 약정과 개별 이용 조건이 유지되면 한도 내에서 추가 차입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신규 대출 문턱을 높이더라도 이미 설정된 마이너스통장 한도에서 대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계좌 그대로인데…마통 사용액 10%↑
실제 올해 들어서는 신규 마이너스통장을 크게 늘리기보다 기존 차주들이 한도를 더 사용하는 흐름이 두드러졌다.
금융감독원이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별도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63조6409억원에서 올해 7월 말 69조7283억원으로 6조874억원(9.6%)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계좌 수는 486만9319개에서 489만3636개로 2만4317개(0.5%) 증가하는 데 그쳤다. 계좌 수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대출 잔액은 10%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계좌당 대출 잔액도 지난해 말 약 1307만원에서 올해 7월 말 약 1425만원으로 118만원(9.0%) 증가했다.
증가세는 특히 4~7월에 집중됐다. 이 기간 늘어난 잔액은 5조7827억원으로 올해 1~7월 전체 증가액의 95%를 차지했다. 신규 계좌 증가보다 기존 차주들의 한도 사용 확대가 대출 증가를 이끈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도 지난 10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은행권의 신규 마이너스통장 취급 축소에도 기존 약정 한도 내에서 상당 규모의 대출이 실행됐다는 점을 짚었다.
고금리에도 ‘빚투’…68조 추가 차입 여력
마이너스통장 증가가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대출 규모가 코로나19 이후 ‘빚투’ 열풍이 불었던 2021년 수준으로 커진 반면 돈을 빌리는 비용은 당시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7월 말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2021년 말 70조1814억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2021년은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배경으로 개인투자자의 주식 투자가 급증했던 시기다.
반면 은행별 대출 잔액에 가중치를 적용한 마이너스통장 평균 금리는 2021년 말 연 3.94%에서 올해 7월 말 연 5.64%로 1.70%포인트 상승했다. 1억원을 같은 금리로 1년간 사용한다고 단순 계산하면 연간 이자 부담이 약 394만원에서 564만원으로 170만원 늘어난다.
높아진 금리에도 차입을 활용한 투자 움직임은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2분기 신용대출과 보험약관대출 등 금융권 기타대출을 활용한 레버리지 투자가 크게 확대된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차주들이 아직 사용하지 않은 마이너스통장 한도가 67조9000억원에 달한다는 점이다. 증시 등 자산시장 상황에 따라 자금 수요가 다시 커질 경우 신규 대출 심사를 거치지 않고 기존 한도에서 추가 대출이 실행될 여지가 있다.
특히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마이너스통장 약정액은 오히려 줄었지만 실제 사용액은 증가했다. 은행권 마이너스통장 약정액은 지난해 말 133조2000억원에서 올해 8월 말 132조1000억원으로 1조1000억원 감소한 반면, 같은 기준 대출 잔액은 59조원에서 64조2000억원으로 5조2000억원 증가했다.
신규 한도를 줄이는 방식만으로는 기존 약정 안에서 이뤄지는 대출 증가까지 관리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창민 의원은 “마이너스통장은 기존 한도에서 추가 대출이 쉽게 이뤄질 수 있어 가계부채 관리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며 “금융당국은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뿐 아니라 마이너스통장의 실제 이용 증가와 미사용 한도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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