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V5 생산하는 EVO Plant East
차체 공장 용접 100% 자동화
조립 공장도 로봇 영역 확대 중
지난 8일 찾은 EVO Plant East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알 수 없는 매캐한 향기가 코끝을 가득 채워도, 온 신경은 공장 곳곳을 채운 로봇에 쏠렸다. 눈을 뗄 수 없었다. 회색 차체 사이를 노란 로봇팔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모습은 공장의 분위기를 더욱 이질적으로 만들었다. 체감상 공간의 90%는 로봇이, 10%는 사람이 채운듯했다. 그만큼 사람이 없었다.
EVO Plant East의 차체 공장에 들어서자 기아 관계자가 한마디를 던졌다. “사람이 없죠.” 실제로 그랬다. 차체 공장에서는 근로자를 찾는 게 로봇을 찾는 것보다 어려웠다. 거대한 로봇팔 사이로 불꽃이 터지고 차체가 다음 공정으로 넘어갔다. 바닥에서는 무인운반차량(AGV)이 필요한 부품을 실어 날랐다.
차체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기존 자동차 공장과 조금 다르다. EVO Plant East에는 ‘4-벅’(Buck) 순차 조립 공법’이 적용됐다. 기존에는 하나의 주요 공정에서 차체를 조립했다면, 이곳에서는 이를 네 단계로 나눴다.
▲차량 내부 골격을 만드는 인너벅(Inner Buck) ▲차체 측면 구조를 구성하는 레일벅(Rail Buck) ▲외관 패널을 조립하는 아우터벅(Outer Buck) ▲지붕 구조를 얹는 ‘루프벅’(Roof Buck) 순이다. 차체를 부위별로 나눠 조립하는 만큼 차량 크기나 사양이 달라져도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게 기아의 설명이다.
과정 대부분은 로봇 몫이었다. 도어와 테일게이트, 펜더 장착 위치는 비전 카메라가 먼저 확인한다. 이후 로봇이 측정값에 맞춰 부품을 조립한다. 일반 용접건이 닿기 어려운 곳은 레이저 빔을 활용해 접합한다. 두 대의 로봇이 서로 움직임을 맞춰 차체를 옮기고, AGV가 차체와 부품을 다음 공정으로 공급한다.
눈앞에서는 복잡한 작업이 실시간으로 이뤄졌는데, 사람의 손은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불꽃이 ‘펑펑’ 튀는 사이 차체 한 대가 모습을 갖춰갔다. 공정이 끝나면 로봇은 다음 차체를 기다렸다가 똑같은 움직임을 반복했다. 빠르다기보다는 정확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생산 속도를 위해 급하게 움직이기보다, 정확함에 초점을 둔 듯 보였다.
차체 공장을 빠져나와 조립 공장으로 이동하자 그제야 사람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이유가 있었다. 차체 공장과 달리 조립 공장은 다뤄야 할 부품만 600여개에 달한다. 단단한 부품뿐 아니라 휘어지고 형태가 쉽게 변하는 부품까지 종류도 제각각이다. 아직은 사람의 손이 필요한 작업이 적지 않은 이유다.
차체 공장과 조립 공장의 차이는 숫자로도 차이가 난다. 조립 공장의 자동화율은 20% 후반대, 약 29% 수준이다. 반면 차체 공장은 용접 작업이 100% 자동화돼 있다. 부품을 옮기는 핸들링 작업도 약 80%를 로봇이 담당한다. 최종 품질을 확인하고 수정하는 ‘메탈 피니시’ 공정 등에 사람이 투입되면서 차체 공장 전체 자동화율은 80% 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의 손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와이어링이나 일부 샤시 모듈 체결처럼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은 여전히 사람이 맡았다. 스티커처럼 작은 부품을 붙이는 작업도 사람의 몫이었다. 기아 관계자도 “조립 공장이 다루는 600여개 부품 가운데 아직 작업자가 직접 다뤄야 하는 부품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 기술적으로 가능한 영역부터 자동화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실제 로봇의 영역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무겁거나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부터 기계가 대신했다. 후드를 들어 올려 차체에 맞추고 체결하는 작업은 물론 크래시패드와 헤드라이닝 장착까지 자동으로 이뤄졌다. 로봇이 잘할 수 있고, 사람이 굳이 힘을 써야 할 이유가 없는 작업부터 자동화했다. 효율성을 위한 선택과 집중이다.
기아 엠블럼마저 로봇이 붙일 정도다. 단순히 정해진 위치에 같은 엠블럼을 반복해서 붙이는 방식도 아니다. PV5 카고와 패신저, 샤시캡 등 어떤 차량이 들어왔는지 설비가 자동으로 인식한다. 이후 기아 엠블럼을 후드에 붙일지, 테일게이트에 PV5 엠블럼을 붙일지, 캠퍼·프라임·WAV 등 별도의 서브 엠블럼이 필요한지를 판단해 로봇이 알아서 부착한다.
PV5처럼 사양이 복잡한 차를 한 라인에서 생산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자동화가 필요하다. 차체 공장 기준으로만 PV5의 사양은 180여개 이상으로 나뉜다. 기아는 각 부품에 데이터 매트릭스를 입력해 설비가 부품의 사양을 자동으로 구분하도록 했다. 사람이 눈으로 부품을 확인하고 판단하는 과정도 줄였다.
내년 가동을 앞둔 ‘이보 플랜트 웨스트’(EVO Plant West)에서는 자동화 범위가 한층 넓어진다. 현재 East 조립 공장의 자동화율이 20% 후반대라면 West는 30%대 수준으로 높아질 예정이다. East에서 검증된 기술 대부분을 적용하고 자율이동로봇(AMR)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기술을 추가한다. 또 West에서 새롭게 검증된 기술은 East에도 다시 적용할 계획이다.
자동화가 많다고 해서 공장 운영까지 단순해지는 것은 아니다. 로봇이 정확한 동작을 반복하려면 지속적인 설비 관리가 필요하다. 기아는 라인이 가동되지 않는 시간을 활용해 로봇의 움직임을 조정하는 ‘티칭’ 작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이 작업할 때보다 설비에 내려야 하는 명령이 많아지면서 운영의 복잡성도 일부 커졌다는 설명이다.
공장을 둘러보는 동안 사람과 기계의 움직임은 묘하게 대비됐다. 로봇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했고, 작업자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설비를 살폈다. 사람이 하던 일을 로봇이 가져간 만큼, 사람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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